경기도 용인에서 서초동으로 출근하는 코스모스악기 민명술(閔明述·60) 사장은 차 안에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음악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눈만 감으면 그의 머릿속에선 아름다운 선율이, 귓속에서는 우아한 화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때론 피아노의 경쾌한 멜로디가, 때로는 플루트의 그윽한 음률이 하루를 상쾌하게 열어준다.
회사에 도착하면 10층 집무실로 가기 전, 우선 1·2층과 5·6·7층에 자리잡은 쇼룸부터 들러 각종 악기를 만지고 살펴본다. 수억원대의 파이프오르간부터 몇 만원짜리 하모니카까지, 어느 것 하나 정이 가지 않는 물건이 없다.
유명악기 1만2000여 종 공급
민사장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악기를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가장 많은 악기를 파는 사람이기도 하다. 세계 유명악기 1만2000여 종을 공급해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그 이름 석 자와 회사명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조용히 사업만 키웠지 외부에 알려지는 걸 아주 꺼려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여야 하는 경제풍토에서, 우리 회사는 비록 악기지만 외제를, 그것도 대부분 고가품들을 수입해 팔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하지만 그가 외제 악기 수입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980년대 초부터 초등학교에서 1인1기(一人一技)를 장려하는 정책이 시행되자 미취학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 음악 교육 붐이 일었다. 아울러 음악을 전공하거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피아노, 바이올린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국산악기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전문가용이나 특수악기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그러한 풍토에서 민사장은 악기 수입·유통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 코스모스악기를 세계적인 악기업체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올해는 민사장이 한 우물을 판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72년, 아내 정진숙 씨와 단 둘이 시작한 악기전문유통회사 코스모스악기는 현재 임직원 110명의 탄탄한 중소기업이 됐다. 올해 3월4일에는 제36회 납세자의 날 기념 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 2001년 법인세 15억원, 부가가치세 9억6000만원을 성실 납부한 공로다.
올 10월에는 ‘코스모스가와이’ 란 이름으로 첫 자체 브랜드상품을 출시한다. 일본의 세계적 피아노제조업체 ‘가와이’의 디지털피아노를 OEM방식으로 제작, 판매하는 것. 한국인의 정서와 취향에 맞는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스모스악기는 가와이 악기의 국내 독점 공급권을 갖고 있다.
국내 악기 유통 분야에서 코스모스악기는 경쟁자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피아노· 바이올린을 제외한 모든 악기의 70% 이상이 코스모스악기를 거쳐 판매된다. 지난해 매출액은 378억원. 가와이 외에도 ‘로랜드’ ‘로저스’ ‘피베이’ ‘반도렌’ ‘바하’ 등 유명악기 제조업체의 한국 독점 판권을 갖고 있으며 100여 군데의 악기 및 부품 제조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서초동 사옥과 낙원상가에 위치한 4개 직영점을 비롯, 전국에 12개의 직영점을 갖고 있으며, 6개 지사와 3개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음악잡지 ‘The Music Traders’가 세계 악기업체를 대상으로 선정한 200대 업체 중 46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고향은 전남 해남군 황산면이다. 목포와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되기 전만 해도 섬이나 진배없을 만큼 후미지고 낙후한 시골이었다. 할아버지 대에는 제법 부농 축에 끼던 집안은 아버지 대에 기울어 중학교도 다니기 힘들 만큼 곤궁한 처지가 됐다. 어린 시절 곧잘 ‘총명하다’는 칭찬을 들었던 그는 공부를 더하고 싶은 마음에 남의집살이를 하러 목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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