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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악기 유통 대부 된 낙원상가 터줏대감

코스모스악기 민명술 사장

  • 장인석 < CEO 전문 리포터 > jis1029@hanmail.net

악기 유통 대부 된 낙원상가 터줏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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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들어가 머슴처럼 일하며 어찌어찌 중학교를 마쳤어요. 하지만 고등학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상황이었죠. 서울 가면 공부할 길이 있겠지 싶어 17세인가 18세 때, 거기 사는 친구 하나만 믿고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그러나 친구 역시 고학을 하던 터라 그를 도와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는 서울역에서 지게도 지고, 용산역 앞에서 장작도 패주고, 때로는 껌팔이, 구두닦기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럴수록 돈을 모아 학교에 가겠다는 결심은 단단해져 갔다.

“그러다 명동의 한 악기점 일을 잠깐 보게 됐는데 사장님이 절 부르시는 거예요. ‘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냐’시며, 먹이고 재워주고 학교도 보내준다고 하셨습니다.”

월급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숙식만 해결돼도 좋은데 야간학교까지 보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일했다.

그가 근무한 한국악기(수도피아노사의 전신)는 피아노 부품을 수입해 조립·판매하는 회사였다. 처음 주어진 일은 청소와 심부름. 남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는 등 남다른 성실성을 발휘한 덕분에 차츰 중요한 일을 맡게 됐다. 나중에는 음악회 티켓 판매며 은행 심부름까지 도맡아 하게 됐다.



주경야독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일하고 공부하며 저축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날 입대영장이 나왔다. 비둘기부대 의무병이 된 그는 베트남 첫 파병부대에 끼어 바다를 건넜다.

“입대할 때 사장님께선, 제대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신임해 주시니 기쁜 마음으로 입대할 수 있었죠. 고생이야 그저 남들 하는 만큼 했고, 오히려 제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파병 군인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고국에서 오는 위문편지였다. 그에게도 수십통의 편지가 날아왔는데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필체가 야무진 것이 성실한 여성으로 보였다. 답장을 보내자 다시 편지가 왔다. 그렇게 1년여 서신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민사장이 제대한 후에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여성이 현재 코스모스악기 감사로 재직중인 부인 정진숙 씨다.

정씨는 지금도 민사장과의 첫 대면을 떠올리면 웃음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때 전 여상을 졸업하고 교학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었어요. 회사에서 단체로 월남 파병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낸다기에 저도 썼어요. 그런데 저만 답장이 와서 화제가 좀 됐지요. 그렇게 1년인가 지났을 때 저이가 갑자기 회사로 찾아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오라며 막무가내로 우기는 거예요.”

그때 교학사는 새학기 교과서 준비로 무척 바빴다고 한다. 그런데 웬 새까맣게 탄 군인이 정문에서 “정진숙 나오라”고 냅다 소리를 질러댔으니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정씨는 무일푼이었지만 근면한 자세와 씩씩한 행동이 맘에 들어 민사장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제대 후 수도피아노사에 재입사한 민사장이 부장으로 승진한 1967년, 두 사람은 마침내 혼례식을 올렸다. 정씨는 남편 못지 않은 성실성과 경영 수완으로 오늘의 코스모스악기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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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석 < CEO 전문 리포터 > jis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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