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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작성한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비밀 파일

  • 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미국이 작성한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비밀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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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1월15일)

1971년 1월15일자 미 국무부의 비밀 대화 비망록은 3개월 후에 치러질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국무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한국과 미 의회의 관계, 정일권의 방문 일정 가운데 하나인 미국 농업용 관개수로 시찰 및 세미나 참석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 대한 평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일권은 김대중 후보를 명석하고 활력있는 사람으로 평가함. 그러나 김에게는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함. 1950년 한국전 당시에 김대중은 20세였으나 군 복무를 하지 않았음. 한국의 안전은 군에 의지하고 있음. ‘김이 어떻게 그들(군부)을 컨트롤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더욱이 김대중은 학자 같아서 이론과 원칙에만 치중하고 실제에는 취약함. ‘임금은 올리고 세금은 낮추면서 예산을 짜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할 수 있는가?’ 한국은 ‘실무에 밝은 사람’, 즉 박대통령 같은 사람이 필요함. 정일권이 생각하기에 박대통령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임.

박대통령이 한 번만 더 임기를 채우면 한국은 북한보다 우위에 설 것이며 통일에도 대비할 수 있을 것임. 박대통령의 통일관이 김대중보다 훨씬 나음. 박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도발 행위를 중단하라, 그러면 교류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김대중은 반대로 ‘지금 북한과 서신왕래, 인적 교류 등 모든 것을 열겠다’는 것이다.’

정일권은 김대중 후보를 이렇게 평한 다음,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물어본다. 미국의 대답은 이렇다. “베스트 맨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 김종필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 ]

1969년의 3선개헌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김종필은 개인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인 헨리 키신저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70년 12월의 일이다. 국무부는 즉각 김종필의 최근 활동 및 정치적 입지, 방미 목적 등을 작성해 키신저에게 보고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권좌에 오르게 만든 쿠데타의 설계사 김종필 씨가 현재 개인 업무로 미국을 방문중인 바, 한국 대사관을 통해 키신저 보좌관과의 면담 약속을 신청했음. 김종필 씨는 1963년 언젠가 하버드 국제 세미나에서 키신저 보좌관 밑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말했음.

현재는 활동하지 않고 있지만, 김은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 계산에 넣지 않을 수 없는 인물임. 그의 비상한 재주(야망이 있고, 아주 지적이며 조리 있음)를 감안할 때, 44세의 나이에 정치 생활에서 영원히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


[ 국무부의 이후락 파일 ]

(70년 2월 20일)


1970년대 초 주한 미 대사관 관리들이 가장 빈번하게 접촉했던 한국 인사 중에는 이후락도 있었다. 당시 ‘박정희교의 신봉자’라 불릴 만큼 권력의 핵심에 속했던 인물인 데다가, 그를 접촉해본 미국측 인사들의 공통된 표현대로 ‘미국인과 아주 잘 어울리고 판세를 잘 읽어내는,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후락은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있으면서 1969년 3선 개헌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끝난 나흘 후인 69년 10월21일, 이후락은 비서실장에서 물러난다. 63년 12월부터 69년 10월까지 6년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한 끝이었다. 3선 개헌의 1등 공신이나 마찬가지인 그를 김형욱과 함께 박 대통령이 물리친 것이다. 이후락은 아무 말 없이 비서실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을 여기저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 김형욱과는 달랐다. 그리고 비서실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채 석 달도 안 된 70년 1월, 이후락은 주일 대사로 임명된다.

주한 미 대사관은 이후락 신임 주일 대사의 신상기록과 함께 당시의 활동 상황 등을 미 국무부에 타전한다. 이씨가 주일 대사로 임명된 지 한 달 후인 70년 2월20일이다. 이 비밀 전문은 이후락의 과거 정치적 입지 및 향후 거취 문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며, 간략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인물평도 덧붙여 놓고 있다.

‘최근 다년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는 동안 이후락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되었음. 그 과정에 그는 대통령 측근이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치부를 했다는 이유로 많은 적을 만들어냈음.

3선 개헌에 앞장서 박 대통령을 도왔으나 박 대통령은 마침내 이후락을 물리치고 말았음. 그러나 이후락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포착되지 않고 있음.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합류하기 전부터 그는 재치 있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음. 자신이 맡은 업무는 무엇이든 잘 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며, 정치적 입지를 이용해 개인의 이득도 아주 잘 챙기는 것으로 평이 나 있음. 미국인 동료들과 꾸준히 협조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

대부분의 한국인 정치 관찰자들은 이후락이 곧 주일 대사 자리를 떠나 내년(1971년) 봄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요 직책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음.’


이후락은 이 비밀 전문이 예견한 대로 10개월 후인 70년 12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다. 비서실장에서 해임된 지 1년 2개월 만에 권력의 중추로 복귀한 것이다. 그 후 이후락은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유신과 7·4 남북 공동성명이라는 박정희 정권의 핵심적인 두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이후락의 권력 내부 복귀를 예측했던 70년 2월10일자 주한 미 대사관의 비밀 전문 끝부분에는 이후락의 개인 사정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다.

‘최근 이후락의 부인이 자녀의 가정교사와 모종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이후락이 알게 된 다음 남편인 이후락에게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서울에 나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 부인도 그와 함께 도쿄로 갔음. 도쿄로 떠나기 직전, 이후락은 자청해서 소문을 부인했음.

이후락은 영어와 일본어가 유창함. 미국인과 쉽게 잘 어울리기는 하나 술을 몇 잔 마시고 나면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함. 난 기르기가 취미이며 골프도 즐김. 불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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