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신년인터뷰|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동지 입장에서 대통령께 민심 전합니다”

  • 안기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동지 입장에서 대통령께 민심 전합니다”

3/3
클라라윤은 정일순씨의 남편인 정환상씨가 부도가 난 브랜드업체를 80년대 말에 인수한 것이다. 주로 보통 여자들이 입는 숙녀복 정장을 다루는데 20~30대의 미시족을 겨냥해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희호 여사가 클라라윤을 언급한 것은 라스포사 옷보다 더 싼 옷을 즐겨입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여사가 라스포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알기에, 라스포사는 신문에 난 건물을 짓기 전에 웨딩드레스를 만들었어요. 당시 충무로 4간가 5가에 있었는데 그때 한국부인회 회장을 맡았던 박금순씨가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6년 전이지요.”

─ 정일순 사장이 어려운 시절에 이 여사를 도와준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이는 아니고요. 지난 대선 때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줬어요.”

─ 지난번 모스크바 방문 때 라스포사 옷을 입고 가셨다는데….



“라스포사 옷을 한 두벌 가져 갔으니까 입기도 했죠. 그러나 다른 옷도 가져가 입었어요.”

─ 필리핀 방문 때 입은 옷도 상당히 좋아보였다는 반응이 있습니다만….

“동아일보의 어떤 분이 그걸 썼더군요. 그런데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 공항에서 손을 흔들 때 입었던 옷인데 예전에도 입던 옷이에요. 필리핀에 간다고 새로 해입은 옷이 아닙니다. 예전에 방영된 텔레비전에도 그 옷을 입은 모습이 나와요.”

옷에 관한 한 이 여사는 할 말이 많다. 이번에야 로비의혹과 관련돼 옷문제가 거론되는 바람에 당혹스러웠지만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인사’들의 재판정에서 항의하기 위해 다른 여성들과 함께 보라색 옷을 입는 등 옷으로 ‘저항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여사가 옷로비를 받거나 사치할 사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번 옷로비의혹 사건과 관련, 공직자 부인들이 수백만원대의 옷을 해입은 사실이 밝혀져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쌌다.

─ 대통령께서는 장관에게 임명장을 줄 때 부인을 배석시켰습니다. 그것은 공직자 부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으로 봅니다. 공직자 부인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직자 부인도 공인입니다. 따라서 남편의 뒷바라지 뿐만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직자 내외는 늘 공인으로서 절제하는 생활을 하여 타의 모범이 되도록 해야죠. 그것이 곧 자신과 남편을 위해서는 물론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여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공직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일 것입니다.”

“대통령과는 동지”

─ 이번 옷로비사건으로 대통령이 상당히 상심했을 터인데 어떻게 위로해드렸습니까?

“상심하셨을 때는 말이 없으시니까 위로해드리기가 힘들어요.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는 더욱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요. 그때는 나도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있어요. 뭔가 골똘히 생각하시는데 방해가 될 것도 같고요.”

─ 대통령께서는 청와대에 들어오신 후 옷로비사건으로 가장 상심한 것 같습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박주선 비서관이) 속였다는 것이 기분이 나쁘시지요. 김태정씨에게 서류를 전하는 문제는 미리 의논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제가 할 일은 먼저 말한대로 대통령이 마음 편히 국정수행을 하도록 해드리고 소외계층을 돕는 일입니다. 제가 늘 관심갖고 있는 여성·청소년·노인·장애자·문화·환경분야 등을 지원하는 역할이죠. 그리고 밖의 이야기, 즉 국민의 뜻을 가감없이 전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부부는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동지적 입장에서 모든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십니까.

“거의 모든 대화를 나누는데 제가 간섭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인사문제예요. 다만 근본적으로 성실하고 정직하고 능력있는 그런…, 어느 누구를 추천하지는 않아요. 청와대 안이고 밖이고 내가 추천해서 취직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여사는 분명히 성실하고 정직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추천한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사문제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성실하고 정직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영부인으로서 추천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사실 추천하려고 들면 그런 사람이 있지도 않지만… 다만 여성에 관한 것은 대통령께서 때로 물어보십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그러나 그런 경우도 특정인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 국민의 정부는 여성의 정치, 사회참여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과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인사에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여성의 발전을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고 성과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수십년동안 쌓여온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듯이 아직도 부족한 점은 있겠지요. 우선 여성의 정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대통령 직속의 여성특별위원회 등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을 신설했지요.

정책결정과정에서는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여성위원이 2002년까지 30% 이상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공무원채용목표제도를 도입하여 신규채용시 20%를 여성으로 뽑도록 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후보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하고 지역구 진출도 늘리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능력있는 많은 여성들의 창업과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있지요. 그러나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법 개정도 정치권의 합의를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듯이 정부만이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제도 개선 못지 않게 여성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봐달라는 사람도 많고”

─ 어머니로서 자녀들 교육문제나 성장과정에 대해 아쉬운 점이나 보람된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죠.

“걔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 아이들도 같이 겪어야 했어요. 막내아이가 국민학교 다닐 때였으니까 아마 71년 대통령선거가 있던 해였을 거예요. 그때 우리가 미국에 잠시 있었는데 우리집에 폭발물 사건이 일어났어요. 막내아이가 사람들이 몰려오고 조사하는 것을 다 보고 자랐어요.

그리고 납치사건을 당했죠. 우리집으로 돌아오신 후에는 연금을 당했으니까 막내아이를 경찰들이 데리고 학교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3·1구국사건으로 구속되시는 바람에 막내아이가 중학교 교복을 입는 것도 못 보셨어요. 고등학생 때는 80년 사건이 났죠. 그러니까 남들처럼 호화롭게 과외공부시키는 것은 없었어요. 큰 아이들도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할 수 있어요, 사업을 할 수 있어요. 아무 것도 못해요. 더구나 큰 아이는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아버지 직업난에 쓸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들의 고통은 보통이 아니었죠. 젊은 나이에….”

자녀들에 관한 한 보람된 것보다 아픈 기억이 많았던 이 여사의 목소리는 한없이 잦아들었다. 특히 막내아들 홍걸씨에 대한 안타까움은 목소리에 절절히 녹아 있었다.

─ 청와대에 들어온 후 가족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문제는 야당 때보다 지금이 아이들이나 우리들 자신이 더욱 힘이 들어요. 우리들 모두 언행을 조심해야죠. 봐달라는 사람도 많고…. 너무 조심해야 하니까 둘째 아이는 어디 숨어 있을 때가 있으면 숨었으면 좋겠대요. 여기는 오히려 나아요.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러나 걔들이 있는 곳은 자유롭잖아요. 이리 가면 이미 사람들이 알고 만나려고 지켜서 있고 저리 가면 저리 가서 서 있으니… 걔들 뿐만 아니라 저를 좀 아는 사람도 제가 어디에 왔다는 것을 알면 그쪽을 통해서 뭔가 부탁을 하려고 하고, 이력서를 줘보려고 하는데…. 저는 이력서를 받지 않지만 갖다주면 그것을 그냥 놓아둬요. 그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리고 나를 통해 누가 취직을 했다고 하면 그 사람 입을 통해 나가지 비밀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나가면 또 딴 사람도 원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일체 그런 부탁에는 응하지 않아야 ‘부탁해봐야 소용이 없더라’고 하지 않겠어요.”

아마 이 여사의 발언은 그의 속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일 것이다. 가난할 때는 서로 도와주는 마음만으로도 배부르지만 부자만 되면 이런 저런 옛 인연을 들먹이며 손 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오죽 많을까. 특히 어려웠던 시절에 안 사람들의 부탁은 거절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 민주화의 동지로서 볼 때 대통령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돕도록 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 계시다가 내려올 적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아주 고민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여야 총재회담이 있을 때 노대통령이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혹시라도 전두환 대통령이 사가로 돌아오면 야당에서 들고 나올 것이 아닌가 해서… .

그런데 그때도 쾌히 승낙했어요. 염려마시고 오시도록 하라고… 여하간 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대통령의 그런 점을 존경해요. 그리고 말로만 기독교인이 아니라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죠. 예수님께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나를 괴롭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다기에) 처음에는 저도 깜짝 놀라긴 했어요. 그러나 다 용서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가 남긴 공적도 있으니까…. 그런데 제가 어제 신문을 보니 민주화를 위해 가장 애쓴 대통령이 현 대통령이고 다음이 박정희 대통령이래요. 놀랐어요.

그래서 나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유신 시절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에 가고 했는데, 얼마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은데, 두번째로 지목되다니요. 물론 점수는 낮은데 그래도 2등이잖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첫번째 지도자로 박정희 전대통령을 꼽는다면서요. 그것도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국민들이 그렇다면 따르는 거죠.”

─ 정치인으로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부군으로서의 김대중 대통령을 평가하신다면?

“대통령은 일생동안 그 숱한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민주주의의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용기로 숱한 역경을 헤쳐온 데 대해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제가 숱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남편이 걷고 있는 길이 분명 옳은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다음 손님을 맞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78세의 ‘할머니 영부인’은 육중한 문으로 다시 사라졌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여운을 남겼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3/3
안기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목록 닫기

“동지 입장에서 대통령께 민심 전합니다”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