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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군축, 새천년 한반도의 핫 이슈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꿔야

  • 이철기 동국대 교수·국제관계학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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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은 주한미군을 ‘북한에 위협적이지 않은 미군’으로 변화시키는 선에서 존재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두 가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유엔사령부의 해체를 통해 주한미군의 성격과 지위를 중립적으로 전환시키려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이 자신을 군사적으로 크게 위협하지 않는 수준, 다시 말해서 지상병력의 일부 철수와 후방으로의 재배치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주한미군의 장래에 대한 한국의 입장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변하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것조차 거부하는 경직되고 비현실적인 자세로 일관해 온 과거 정권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우선 작년 4월 파문을 일으켰던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는 김대통령의 발언은 달라진 우리 정부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 뒤에야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종래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입장은 그 후 보다 더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작년 4월 대통령 발언 파문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잘 나타나 있다.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때, 한반도 모든 군대의 구조나 배치문제에 대해 논의가 가능하다. 이때에 남북한의 군사력과 주한미군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4자회담에 임하는 한국과 미국의 공동 입장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이라도 한반도 전체 군대의 감축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지위 변경, 재배치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평화체제 논의과정에서 한반도에 존재하는 전체 군사력인 인민군과 국군, 주한미군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튼 우리 정부의 이러한 유연하고 열린 시각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문제 진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남북한 당국의 입장을 종합해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남북한의 군축문제와 함께 주한미군 문제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 3자간에 주한미군의 장래에 대해 어떤 합의점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협상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와 신경전이 예상된다. 북한은 협상테이블에 나와서는 계속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북한이 쓸 수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어떤 형태로든 타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과 감축 그리고 재배치 선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를 양해할 가능성이 있다. 북·미관계 개선이 최우선적 목표인 현실에서,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미국과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고, 북한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상징적으로 일부 지상전력만 유지해야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장래와 관련해 어떤 대안이 있고, 어떠한 타협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몇 가지 대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완전 철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미국의 세계전략 및 동북아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98년에 발표된 미국의 새로운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R)는 주한미군을 비롯해 동아시아 미군의 유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을 한국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는 안전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현실에서, 남북한과 미국 3자 가운데 누구도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원치 않고 있다.

둘째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통해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꾀하면서, 지상전력의 일부만을 철수하는 선에서 현 수준의 전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이며,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군축을 진행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는 상징적 의미의 일부 지상전력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존의 한미 군사동맹조약 유지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용인하는 것이 포함된다. 미국의 상당한 정책 변경을 필요로 하지만 3자간에 타협 가능성이 있는 방안이다.

주한미군의 장래와 개편은 군축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해 한국의 군사주권을 회복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북한의 수용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긴장완화에 이바지하도록 하면서도 중립적인 지위와 성격으로 개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을 상징적인 의미의 일부 지상전력만을 유지하는 선에서 평화유지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90년대부터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변화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평화유지군이 단순히 주한미군의 중립적인 성격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유엔평화유지군 형태를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 정부에서도 비무장지대(DMZ) 내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는 방안에 대해 내부적인 검토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튼 현재 중무장지대화되어 있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하고 여기에 주한미군이 일부 참여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주한미군의 다국적 평화유지군 개편을 주도적으로 제기해야

평화유지군은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유엔과는 별도로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구성하는 것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유엔의 결의에 따라 탄생하며, ‘안보리결의 341’에 의해 유엔 사무총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형태이다. 반면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남북한과 미국 그리고 관련국가들간의 합의에 의해 탄생한 독립적인 다국적 군대이다. 한반도에서는 후자의 형태가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유지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며, 그 법적 근거는 앞으로 체결될 ‘평화협정’에 마련하면 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군대로 구성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비무장지대에 주둔하면서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 역할과 평화체제의 유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게 될 비무장지대는 평화지대화한다. 구체적으로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중무기들의 철수와 진지들의 폐쇄를 통한 완전한 비무장지대화 ▲대인지뢰의 전면 폐기를 규정한 ‘오타와협약’에의 남북한 동시 가입을 통한 비무장지대 내 지뢰의 완전 제거 ▲비무장지대를 ‘생태보존지역’으로 설정하여 국제적인 관광지역화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공동자유이용지역’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감군이 이루어졌다. 한때 32만7000명이던 것이 지금은 약 3만7000명 수준으로 감축된 상태다. 주한미군의 감축이 이루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문제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간의 군사적 문제의 해결이며, 그것은 주한미군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에 달려 있다. 주한미군과 한반도 군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의 해결 없이 군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한미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과 미국간의 비밀협상에 의해 주한미군의 장래와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주한미군의 다국적 평화유지군으로의 개편을 주도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새천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성역’이자 ‘아킬레스건’인 주한미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달려 있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꾸자.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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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기 동국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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