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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군축, 새천년 한반도의 핫 이슈

‘가교전략’으로 단계적 군축을

군비통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황진환 육사 교수·국제관계학

‘가교전략’으로 단계적 군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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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미 제네바 합의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예를 들면 합의과정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나, 북한의 과거 핵 규명에 대한 장기간의 유예 문제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제네바 합의와 같은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의한 핵통제 방식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최선은 아니더라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조건부 합의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합의 불이행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제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가 “훌륭한 정책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나쁜 정책 중에서는 최선” 혹은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가능한 합의”라는 평가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상과 같은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군비통제의 실행과정에 반드시 유념할 점이 있다. 엄격한 지원조건의 명시와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군비통제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군사적 위협의 제거 혹은 감소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 한 정치·경제적 지원과 같은 비대칭적 통제방법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위의 ‘넌-루거 계획’도 지원금의 수혜 대상국인 러시아에 대하여 미 의회가 지원 조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금의 수혜 대상국은 미·소간 군비통제 규정에 의해 파기 혹은 해체하게 되어 있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하여 자발적인 통제 노력을 보일 것 ▲정상적인 방위소요 이상의 군 현대화 계획 추진을 포기하고 파기되는 대량살상무기의 대체 금지 ▲자금의 예산목적 외 사용금지(파기된 핵무기의 부품이나 핵물질로 새로운 핵무기 개발) ▲이에 대한 미국의 검증(verification) 허용 ▲소수민족 보호를 포함하는 국제적 인권존중 규정의 이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북·미 제네바 합의도 쌍무적인 조건부 합의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합의 불이행에 대한 상당한 견제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원하되 ‘간섭하는 지원’돼야

이상과 같은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비통제 방식을 향후 남북관계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신중하게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비료나 식량과 같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 지원 및 민간차원의 남북 경제협력을 확대 지속한다. 그러나 비록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 지원이라도 식량과 같이 전략적 목적에 사용될 우려가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지원규모에 따라서 이에 대한 목적 외 사용금지 보장 및 관련 국제기구 요원들에 의한 검증을 신중하게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지원되는 식량이 평양측의 분배제도에 의한 것이라면(즉 굶주리는 주민보다는 당원이나 군부에 일차적으로 분배되는) 지원하는 국가의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며, 지원은 하되 ‘간섭하는 지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의 대북 경제지원 및 경협시에는 이와 병행하여 남북한간에 군사적 신뢰구축 및 대남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는 조치들을 북한에 강력하게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핵화 공동선언 및 남북한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여야 한다. 양자의 합의는 현재 사문화되어 있지만 남북한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최고의 문서이며 모호하나마 미·북 제네바 합의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은 현재 미·북 중심인 한반도의 전략적 협상구조를 남북한 중심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동 합의에 포함된 제반 규정과 제도적 장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북측에 진지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평화전략으로서의 ‘대칭적 상호주의’

이제 시각을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는 단계에서의 군비통제 방안으로 돌려보자.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는 시점은 적어도 남북한간의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이 보장되고, 북·일, 북·미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며 한반도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도록 하는 시기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 단계에서 남과 북은 기본적으로 유럽식의 ‘대칭적 상호주의’ 모델에 입각하여 단순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로부터 대규모의 군사력 감축 등의 다양한 군비통제의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유럽의 군비통제 경험은 남북한 군비통제 방안을 상정하는데 중요한 원칙과 실행에 관련된 세부지침들을 제공한다. 우선 유념해야 할 큰 원칙 중 하나는 남북한 평화체제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는 쌍방간 군사적 억제(deterrence)가 유지되는 선에서 군비통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군비통제는 국가의 안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다. 군비통제를 위하여 국가안보를 저당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유럽의 ‘재래식무기 감축’협상 사례는 군비통제가 억제의 산물이라는 점을 예증한다. 이 협상의 기본합의서에 따르면 군비감축의 목표는 다음 3가지로 요약되는데 ▲한층 낮은 수준에서의 재래식무기 균형을 통한 유럽의 안보 강화 ▲안보에 저해가 되는 불균형의 제거 ▲기습공격 및 대규모 공세작전 능력의 우선적 제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세부적인 추진 방향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선 쌍방간 군사력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우선적인 노력해야 하며 이때 양적으로 적게 보유한 측과 동일한 수준으로 감축한다. 둘째, 감축대상은 상호 기습공격용 무기와 병력부터 감축한다. 특히 휴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되어 있는 북한의 공세적 전력은 주요 감축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상호 군사력 현황에 대한 자료 교환은 물론 현장사찰을 원칙으로 하는 검증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추진하여야 한다. 넷째, 쌍방간 확고한 검증체제가 존재한다면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군사적 신뢰구축→군비제한→군비감축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추진방식은 융통성있게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의 전력은 남북한의 군사력 감축안에 직접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남북한의 군비통제 진행 성과에 따라서 주한미군의 위상의 변화나 미 지상군의 부분적인 감축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군수산업의 민수 전환 지원해야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감축기준이나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자. 먼저 무기체계의 경우 유럽의 ‘재래식무기 감축조약’(CFE Treaty)과 같이 남북한 쌍방이 통제 대상무기의 보유상한선(ceiling)을 설정하고, 합의한 기간 내에 단계적으로 초과무기를 전량 감축하는 방법이 유용할 것으로 본다. 대상무기 및 장비는 5대 재래식무기로 분류되는 탱크·장갑차·야포·공격용 헬기·전투기를 기본으로 하고 해상전력인 잠수함과 전투함정을 포함한다. 특히 야포의 경우는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포(북한명은 방사포)로 세분하여 보유상한선을 설정한다.

남북한이 보유대상 무기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데는 보유 수량에서 더 낮은 쪽을 기준으로 동일상한선(common ceilings)을 설정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다만 어느 일방이 무기의 질적 차이를 들어 단순한 수량적 평가에 의한 감축을 거부한다면 쌍방간 해당 무기의 화력지수(Weapons Effectiveness Indices)를 감안한 상한선의 설정도 가능하리라 본다. 단, 이 경우라도 휴전선에 전진배치시 남한의 수도권까지 기습공격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북한의 240mm 방사포와 170mm 장사거리포는 후방으로의 이동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무기 및 장비의 감축은 감축협정 발효 후 일정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행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CFE 협정은 발효 후 감축시기를 3단계로 나누어 16개월 이내에 감축의무 대상의 25%, 28개월 이내에 60%, 그리고 40개월 이내에 100% 감축을 완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남북한의 경우도 이러한 방식을 원용하되 감축에 소요되는 재정적 부담과 기술적 문제 등을 고려하여 기간과 비율은 조정이 가능하리라 본다.

구체적인 감축 방법에는 다양한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절단이나 폭파 및 분쇄와 같이 대상무기를 폐기하는 방법, 민간용 용도로 전환하는 방법, 전시 및 교육용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장비를 한 지역에서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금지하여야 한다.

무기 및 장비의 감축과 관련하여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은 북한 군수산업의 민수 전환을 강구하는 일이다. 만약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군수산업 기반을 지니고 있다면 단순히 현존하는 노후 무기 및 장비를 감축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북한 군수산업의 정확한 규모는 북한 공업 분야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생산규모는 전체 북한 경제의 25∼40%를 점유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군산복합체로 보인다. 비록 최근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으로 이들 시설의 가동률이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회복 여하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재가동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이 원할 경우 군수산업의 민수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탈군사화를 촉진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최근 미국의 대러시아 민수전환 지원에서도 나타난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 미국은 ‘미·러 군수산업 민수전환위원회’(The U.S.-Russian Committee on Conversion of the Defense Industry)를 설치하고 러시아 군수산업의 민수전환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러시아 민수전환에 대한 양국 고위관리간 조정과 협조를 통하여 전환에 따른 재정적·구조적 문제와 효과적인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경제지원 문제를 협의하게 되어 있다.

남북한 병력감축의 외교적 지렛대 활용

무기 및 장비를 감축하는 것에 병행하여 고려할 것은 병력 감축의 문제다. 병력감축 규모와 관련하여 남북한 쌍방은 매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남한의 기본입장은 먼저 단계적 감축으로 상호 동수균형을 이룬 다음, 통일국가로서의 적정군사력 수준으로 상호균형 감축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합의 후 3∼4년내에 3단계 감축을 통하여 각각 30만, 20만, 그리고 최종 10만으로의 획기적인 병력 감축을 주장해 오고 있다.

북한의 ‘10만으로의 감축’ 주장은 아주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미약하다고 판단된다. 혹자는 10만의 병력 규모란 상대방을 공격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전제하에 남북한 병력감축의 적정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남북한이 합의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실현 가능성에서 의심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북한 체제의 성격상 남한보다 신속한 동원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10만 감축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현역군인은 ‘제복을 입은 민간인’(uniformed civilian)에 불과하다. 역으로 훈련된 민간인은 무기와 장비, 그리고 신속한 동원체제만 유지한다면 언제든지 정규군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제도적·사회경제적 이유에서 병력을 10만 수준까지 그것도 3∼4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감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상비병력을 이 정도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남북한 모두 병역제도 자체를 바꾸어야 하며 이행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급격한 병력 감축으로 사회에 방출될 엄청난 유휴 인력자원을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가 여부도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병력감축에 따른 무기 및 장비의 처리 문제이다. 잉여 장비를 그대로 가져다 버릴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면 엄청난 비용과 인력, 그리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무기와 장비를 존치한 채 병력만 줄인다면 10만 감축안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병력감축의 적정선은 얼마인가. 여기에서 구체적인 규모를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통일 이전 단계에서는 대체로 남과 북이 각각의 무기 및 장비의 감축에 상응하는 수준 이상의 병력감축이 타당하리라 본다. 다만 이때의 병력규모는 통일단계의 그것보다는 훨씬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남북한의 통일에는 주변국의 협조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남북한의 대규모 병력감축을 이들의 동의를 유도하는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 군비통제 접근 방법을 남북관계의 진전 양상에 따라 2단계로 구분하여 융통성있게 적용할 것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가교전략으로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기초한 군비통제 방안이며,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는 단계에서 ‘대칭적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방안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당장에 유용한 방식은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비통제 방안이라 생각된다. 물론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 군비통제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북한이 당장에 이를 수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북한이 원하는 것이 경제적 수혈이고 남한이 원하는 것이 대남 군사 위협의 감소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방안의 추진은 잠재적 유용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방안은 우선 대규모 남북경협 과정에 파생될 수도 있는 우리 안보에 대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으며,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북한이 남북 화해와 군사적 위협의 감소 기회를 거부할 경우 받을 것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학습 효과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장점은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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