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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취재|박종철 고문경관 12년 만의 회한토로

“두 번 자살 시도했죠 이름도 바꿨습니다”

  • 하종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두 번 자살 시도했죠 이름도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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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고문주범이 된 겁니까.

“저는 종철이를 살리려고 의사를 부르고 병원으로 데려가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의사가 사망판정을 내리고 사무실로 보고하러 돌아와보니 이미 시나리오가 짜여 있더라고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시나리오는 여기서 나온 겁니다. 그 시나리오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제가 잘 아는데, 나중에 보니 훈장까지 받았더라구요.”

배반감만 안겨준 그들에게 그는 아직도 지켜야 할 신의가 남아 있는 것일까. 계속된 질문에도 그는 문제의 시나리오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까 내가 주범으로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 이게 나냐’며 고문치사 주범을 나로 한 데 대해 항의를 했죠. 그랬더니 과장과 계장이 나를 불러 ‘그나마 신임받고 촉망받는 사람은 너뿐이다. 그래야 위에 있는 놈들이 우리를 위해 뛰어줄 것 아니냐. 네가 아니면 그냥 밟아버리고 말지 누가 뒤처리를 해주겠냐’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제가 보안사 대공 분야에서 7년동안 근무하다가 73년 경력자 공채 때 수석으로 경찰에 들어왔거든요. 또 한편으론 사건이 터지자 아랫놈은 아랫놈대로 ‘조반장이 시켜서 조사한 거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냐’라며 떠넘기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졸지에 주범이 돼버린 겁니다.”

― 구속될 것을 각오했습니까.



“아니죠. 처음엔 걱정하지 말고 감찰조사만 간단히 받고 오면 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감찰조사를 받으러 갔죠. 그런데 돌아오긴 누가 돌아옵니까. 조사받고 바로 구속된 거죠. 결국 찔끔찔끔 밀려서 구속까지 가게 된 겁니다.”

당시 조씨는 자신을 주범으로 만든 시나리오를 서랍에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적힌 행정보고서에는 ‘네가 책임을 져라. 그래야만 사건이 해결된다’라는 내용이 모두 들어 있어 자신이 실제 주범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줄 수 있는 결정적인 문서였다. 그러나 이 문서는 햇빛을 보지 못했다. 조씨가 구속된 뒤 집으로 개인물품이 돌아왔는데, 작업복만 달랑 보내주고 나머지 서류는 모두 없애버렸더라는 것.

― 대가로 뭘 받았습니까.

“치안본부 말단인 경위가 고문치사사건의 주범이란 게 말이 됩니까. 그렇지만 내 부하들이 죽였는데 설령 내가 현장에 없었어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벌을 받은 것입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모시던 박처원씨가 고문사건의 대가로 10억원을 받아 갖고 있으면서 나를 그렇게 대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분통이 터집니다.”

조씨는 상급자로 모신 박처원씨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털어놓은 박씨에 대한 얘기.

“박처원씨는 원래 북한에서 지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씨를 비롯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집 마당에서 공산당한테 총살을 당했습니다. 박씨는 이후 남한으로 도망쳐 내려와 20대 초반의 나이로 경찰에 투신했고, 남대문 서장 등 좋은 자리 다 준다 해도 사양하고 대공에만 매달린 사람입니다.

박씨는 또 막무가내식으로 공안사건을 처리한 사람도 아닙니다. 예전에 ‘막걸리 반공법’이란 게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술 마시고 취중에 ‘에이 XX, X 같네, 김일성 세상이 더 좋겠다’고 혼잣말이라도 하면 그 말을 들은 택시운전사가 곧바로 경찰서로 신고하고 경찰은 택시운전사 진술서만 받으면 곧바로 당사자를 구속했습니다. 술 깨고 나면 빨갱이가 돼 있으니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그런데도 3명만 구속하면 곧바로 특진을 하던 시절이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애매한 이유로 구속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체제에 대한 적만 양산하는 꼴이 됐습니다. 그런데 박씨는 치안본부 5조정관으로 있을 때 이런 지시를 내렸습니다.

‘앞으로 국가보안법 7조(찬양 고무)를 적용해 사람을 구속하려면 모두 상부의 지휘를 받아라. 그 사람이 한 행태만을 가지고 사람을 처벌하지 말고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떤지, 다시 말해 남북간에 전쟁이 난다면 과연 어느 쪽에 총부리를 댈 사람인지를 가려서 구속하라. 설령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했다 하더라도 사상이 그렇지 않으면 구류나 며칠 살리고 내보내라.’ 당시 박씨의 지시에 많은 부하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특진할 기회가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씨가 전혀 대가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범으로 총대를 매준 대가로 경찰은 조씨와 강진규(姜鎭圭) 경사에게 위로금 300만원과 매달 30만∼50만원씩 생활비를 대준 사실이 검찰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름 바꾸고 살아

조씨가 구속된 후 가족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남편이 구속되자 부인은 봉제공장에 다녔지만 생활비가 모자라 1600만원짜리 집도 팔아넘겼다. 그 집이 지금은 2억~3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94년 4월 가석방으로 출소한 조씨는 얼마 뒤에 경찰공제회에 특채됐다. 월급은 70만원. 그런데 이것도 얼마 못 갔다. 4개월 만에 언론에 들통이 나는 바람에 쫓겨난 것이다. 최근엔 친척 형님의 건물관리인으로 취직했다. 매달 형님으로부터 받는 8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조씨는 최근 4000여만원짜리 지하 전셋방을 가압류당했다. 법무부가 구상권을 행사한다며 조씨 등 고문치사사건 관련자 9명을 상대로 2억4000여만원을 청구하는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재산을 가압류했기 때문이다.

― 십자가를 진 데 대해 후회는 없습니까.

“나는 이렇게 심하게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박군의 고문치사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지 단순 고문사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작 이를 알았다면 내 꼴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스스로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별 일도 안 하면서 ‘빽’을 동원해 승진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부하 위에서 공치사해서 알겨먹는 사람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 같은 사람은 ‘일벌’입니다. 일하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일벌한테는 ‘너희가 없으면 국가가 무너진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죽도록 일만 하다 죽는 거죠. 당시엔 부당한 명령일지라도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그리고 조직을 위한 것이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우직한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런 십자가를 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가 보호하려고 했던 조직은 박살이 났고 국가도 더이상 나를 보호하지 않고….”

조씨는 고문치사사건의 주범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일조한 것에 대한 회한이 크다.

“생명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는 것입니다. 생명을 빼앗는 일은 인간이 하면 안 됩니다.”

번번이 실패하긴 했지만, 조씨는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이 고문치사범이 된 사실을 참지 못한 나머지 2번이나 자살을 기도했고 호적에서 자신의 이름을 파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름도 바꿔버렸다. 정식으로 법원에서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조씨의 이름은 조한경이 아니다. 조한평이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조한평이라는 이름을 써두었다.

“나는 두 번 용서를 받아야 해요. 한 번은 국가로부터, 또 한 번은 피해자로부터….”

7년 반 동안의 감옥생활을 통해 그는 국가에는 어느 정도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로부터는 여전히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두 차례 보냈다. 그러나 편지는 겉봉도 뜯기지 않은 채 조씨에게 되돌아왔다. 박씨가 편지를 보고 싶지 않다며 되부쳤던 것.

겉봉엔 박씨가 쓴 ‘편지를 받고 싶지도 않고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는 내용의 한시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감옥에 있을 때 많이 도와준 함세웅 신부를 통해 화해를 청했다. 조씨에 따르면 함신부가 “이젠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중재를 했으나 박씨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관련자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사실 나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종철아, 네가 평범한 인간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일찍 죽음으로 인해 이 땅의 고문받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됐다면 너는 행복한 놈 아니냐. 예수가 죽어 역사가 이뤄진 것처럼 네가 죽어 이 땅의 민주화가 앞당겨진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뭡니까. 나는 예수를 죽인 빌라도입니까. 저는 빌라도가 맞을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빌라도 노릇을 해야 했다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빌라도를 필요로 했다면, 그래서 내가 그 노릇을 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모두가 역사의 희생물인 셈이죠.”

조씨는 얘기를 마치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자세히 얘기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조씨는 이후 생각이 바뀌었는지 연락을 끊어버렸다. 여러 차례 보내 만나자고 제의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어도 고문치사사건의 멍에가 아직도 그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일까.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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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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