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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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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의 발목을 잡는 이런 사정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99년 가을 금값이 갑작스레 뛰어오른 것은 왜일까.

이것 역시 유럽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9월26일 유럽 15개 중앙은행이 금의 대량 매각을 자제하기로 했다는 합의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향후 5년 동안 매각할 금의 양을 총 2000t 이하로 제한하고, 연간 판매량은 400t을 넘기지 않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이 기간에 중앙은행들이 리스나 선물, 옵션으로 활용하는 금의 양도 더 늘리지 않기로 했다.

자신들의 금 매각 방침 발표와 함께 국제 금 가격이 폭락을 거듭하자 서둘러 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과거 금본위제 시절에 세계 경제를 주도한 나라들인지라 지금도 각자 수백t에 달하는 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 금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자국 대외준비자산의 가치도 함께 하락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금을 지니고 있자니 부담스러운 ‘그림에 떡’이고, 내다팔자니 ‘헐값 처분’으로 국부의 손실을 감수해야 된다는 데 이들의 고민이 있다.

어쨌든 이들이 금 매각을 자제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만에 국제 금 가격은 18%나 치솟았다.

IMF도 당초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섰다. 국제 금 공급업계 조직인 월드 골드 카운실(WGC) 등이 “IMF가 빈곤국들을 돕기 위해 보유 금을 매각한다면 국제 금 가격이 폭락해 금 수출국인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최빈국들이 피해를 본다”며 비난하고 나서자 IMF는 9월30일 이사회를 열고 매각 방침을 철회했다.



IMF는 최대 435t의 금을 금 시장이 아닌 장외(off-market)에서 중앙은행들에 매각함으로써 국제 금 가격에 충격을 주지 않기로 했다. 중앙은행들이 IMF로부터 현시세대로 금을 매입하되, 필요시 이를 IMF에 대한 지급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IMF가 보유한 금의 장부가격은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금 거래는 결국 IMF 보유 금의 가치를 평가절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IMF는 이렇게 조달한 자금 일부를 최빈국 부채 탕감 등을 위해 쓰겠다는 것.

사실 IMF의 금 매각 계획은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의심됐다. G7 국가 중 독일과 프랑스가 금 매각에 소극적인데다, 미국도 정부는 매각에 적극적이었지만 의회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네바다주 등 금 생산지역 출신 의원들은 IMF의 금 매각방안에 대한 거부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IMF가 금을 매각하려면 이사회 회원국 의결권 지분 중 8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미국은 의결권 지분의 17.5%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미 정부가 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IMF의 금 매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모처럼 찾아온 금값 상승세가 앞으로도 지속될지, 아니면 ‘반짝이’에 그치고 말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가격상승 전망에 회의적인 시각은 ‘대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나 달러화 약세 조짐이 보이지 않는데다, 새로 생산되는 금이 늘고 있으며, 냉전체제의 종식과 국제적 긴장의 완화로 금이 지닌 도피수단(escape money)으로서의 가치도 빛이 바랬다는 것.

금, 부활이냐 퇴역이냐

또한 유럽 중앙은행들이 금 매각 자제에 합의하긴 했지만, 기왕 잡혀 있던 매각일정은 그대로 추진되기 때문에 상당량의 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산 운용 수익을 높이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금을 팔려고 안달해온 중앙은행들이 과연 합의를 제대로 지킬지부터 의문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을 시장에 내다팔려는 계획은 일단 무산됐지만, IMF가 금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 자체가 대외준비자산으로서의 금의 입지를 축소하려는 ‘시그널’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유럽 중앙은행들의 매각 자제 발표 후 상승세를 타던 국제 금 가격은 열흘 만인 10월5일 온스당 325달러 50센트(런던 금 시장 기준)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하락세로 돌아섰고, 10월29일 이후로는 하루도 300달러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12월13일 현재 가격은 279달러 50센트.

금값이 장기적으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은 보유 금을 팔려야 팔 수 없는 중앙은행들과 IMF의 딜레마에 우선 근거를 둔다. 설령 IMF가 300t의 금을 시장에 내놓는다 해도 이는 연간 세계 금 생산량의 12∼13%에 불과하고, 게다가 여러 차례에 나눠 매각할 것이기 때문에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폭은 크지 않으리라고 내다본다.

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 로버트 먼델 교수는 “현재 2조달러에 달하는 각국 중앙은행의 대외준비자산은 향후 12년 동안 두 배로 증가할 것이며,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달러화가 아니라 유로화와 금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의 양은 그대로겠지만, 대외준비자산 증가율이 지금처럼 6%를 유지하고 달러화와 유로화의 교환비율이 유지된다면 2010년 금값은 온스당 600달러대로 오를 전망이며, 이에 따라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의 가치가 지금의 두 배로 뛰어오르리라는 것.

WGC는 최근의 금 수요 증가세도 ‘금의 부활’을 예고한다고 주장한다. 99년 3/4분기 세계의 금 수요는 98년 같은 기간보다 장신구 부문에서 22%, 투자 부문에서 19%의 급성장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파키스탄(102%), 동남아 및 한국(70%), 일본(64%), 인도(38%) 등 아시아 지역의 금 수요 증가율이 높았다. 전통적으로 금을 선호해온 이들 국가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금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WGC의 조사에 따르면 금값에 대한 금 구매량의 탄력도는 -0.8이라고 한다. 금값이 1% 오르면 금 구매량은 0.8% 떨어진다는 것. 그런데 소득에 대한 금 구매량의 탄력도는 +2.0이라고 한다. 즉 소득이 1% 증가하면 금 구매량은 2% 증가한다는 것이다. 금 구매량은 금값보다 소득에 더 예민하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소득이 늘면 금값이 올라도 적극적으로 금을 사들인다는 얘기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상품

금 수요의 85%를 차지하는 장신구 부문에서 순금(24K) 보다 가공하기 쉬운 18K(금의 순도가 24분의 18, 즉 75%의 순금에 은 동 아연 등을 섞어 합금한 것)나 14K를 선호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산업 부문에서도 값비싼 금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속속 개발됨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금 수요가 감소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WGC 이규현 한국지사장은 의견을 달리 한다.

“24K는 대개 퇴장용이다. 돈이 필요하면 장롱에서 꺼내 팔기 때문에 시장에서 돌고 돈다. 그러나 18K, 14K는 재산이라기보다 패션 소비재에 가깝다. 한 번 팔면 여간해선 다시 공급자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순도가 낮아 제 값 받고 되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18K, 14K 장신구는 유행과 계절에 따라 디자인이 다양하게 바뀐다. 그래서 24K 장신구 한 개 살 사람도 18K, 14K는 여러 개 장만한다. 금 장신구의 순도가 낮아지면 오히려 금 수요가 늘게 되는 셈이다.

또한 산업용 금 대체재의 개발 속도는 금을 필요로 하는 첨단산업의 확산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금을 재료로 사용하는 산업이 늘고 있고, 이런 산업이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때 일본이 주도했던 전자산업이 한국을 거쳐 이제 중국과 동남아에 상륙하지 않았나. 그러니 산업용 금 수요도 계속 증가하게 마련이다.”

금값이 더 오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예측하는 데는 이렇듯 수많은 변수가 고려돼야 한다. ‘통화로는 지위를 잃었지만, 실물 자산으로는 가치가 여전하다’는 정도가 양측의 공박을 피할 수 있는 중립적 표현이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금을 과거처럼 ‘가장 안정된 자산’이라고 말하긴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다. 갖가지 변수 때문에 웬만한 투자수단 못지 않게 가격 변동폭이 큰 ‘고위험 고수익’ 상품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 하나. 한국은행의 금 보유고는 99년 4월 현재 14t쯤 된다. 외환보유고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0.2%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전통적인 금 부국은 물론, 세계 중앙은행 평균(4%)에도 훨씬 못 미친다. 한국은행 외화자금실 이문형 조사역은 “금은 가격변동 위험이 커 국가 예산으로 함부로 사고 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최소한의 준비자산으로만 금을 보유할 뿐 수익성 제고를 위해 매입·매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한다.

경희대 김신 교수(국제경영학부)도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 경우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는 적지만, 금 선호 관습 때문에 민간의 금 보유량은 꽤 많은 편이다. 금 매장량도 적지 않다. ‘비상상황’이 닥치면 금 모으기 운동에서 그랬던 것처럼 상당한 양의 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은행이 리스크 비용까지 들여가며 금을 보유할 필요가 있겠는가.”

금 밀수 부추기는 부가세

국내에서 생산되는 금은 연 15t 안팎. 그러나 이는 동을 제련하는 과정에 부산물로 생산되는 금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상당한 양의 금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98년에 4kg의 금을 캐낸 것을 마지막으로 금 생산이 중단됐다. 97년까지는 무극광산에서 연 1t 정도의 금을 생산했지만 매장량이 고갈된 것. 해마다 더 깊이 파내려가다 보니 경제성이 맞지 않아 광산을 임시 폐쇄했다.

1910년대만 해도 극히 원시적인 채광기술로 남한에서만 10t 남짓한 금을 생산했으나, 일제가 전쟁 수요를 충족시킬 철광석 등을 우선적으로 파내느라 금 채광을 금지하면서 많은 금광이 폐쇄됐다. 광복 후에도 채광비용이 많이 드는 금 대신 철 아연 중석 석회석 위주의 광업정책을 펴는 바람에 금광에 대한 탐사와 채광 여건이 열악했다.

광업진흥공사 장병두 자원탐사처장은 “자료가 확보돼 있는 기존 광산 등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남한지역의 금광석 매장량은 약 550만t으로 추정된다”며 “금광석 1t에 평균 7.4g의 금이 함유돼 있기 때문에 순수한 금 매장량은 41t쯤 된다”고 밝혔다.

아직 조사된 적이 없는 지역까지 포함하면 매장된 금의 추정치는 그 몇 배에 달한다는 것. 광업진흥공사는 99년 6월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서 금광석 가채매장량 184만t 규모의 금광맥을 발견, 경제성 검토를 거쳐 2001년부터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금 수급상황은 기형적이다. 금의 수요는 연 120∼140t으로 추정된다. 세계 10위권 규모의 금 시장이다. 이 중 100t 정도가 장신구 소재로 쓰인다.

수요를 연 120t으로 잡고 국내에서 15t의 금이 생산된다면, 나머지 105t은 약간의 고금(古金) 거래분 외에는 모두 해외에서 수입되는 금이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금은 한 해 20t 남짓하다. 수요의 약 70%를 차지하는 이 ‘베일 속의 금’은 다름아닌 밀수 금이다. 한국은 오래 전부터 금 밀수 천국으로 오명을 떨쳐왔다.

그 배경은 불합리한 세금체계에 있다.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수입된 금에 대해 3%의 관세와 10%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관세에 대해서도 별도의 부가세가 붙어 전체 세 부담은 13.3%가 된다. 즉 국제 시세가 100원인 금을 수입할 경우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113.3원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금을 밀수로 들여온다면 리스크 비용을 붙여도 108원 정도를 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금 가공업자와 도·산매상들이 값비싼 정식 수입 금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밀수 금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WGC 이규현 지사장은 “원자재이자 화폐나 다름없는 금괴(地金)에 아무런 부가가치도 창출되지 않은 수입단계에서부터 부가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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