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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혁명을 넘어서

  • 피터 F. 드러커

정보혁명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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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전의 산업혁명처럼 정보혁명도 아직까지는―1940년대 중반에 컴퓨터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우리 주변에 늘 존재해왔던 정보처리의 과정만 바꾸어 놓았다. 사실 정보혁명의 진정한 영향은 ‘정보’의 형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40년 전에 예상했던 정보 측면에의 파급효과는 완전히 빗나갔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업계나 정부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에는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정보혁명은 수많은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행하던 과정을 정형화시킨 데 불과하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프트웨어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3시간 걸리던 일을 20분 과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임금계산, 재고조사, 물품배달 일정짜기,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상적 반복업무를 위한 소프트웨어도 있다. 25명의 뛰어난 전문 제도사가 50일 정도 걸릴 교도소나 병원 같은 건물의 내부배치도(난방, 상하수 배관처리 등) 제도 업무를 2∼3일 안에 뚝딱 해치워내는 프로그램이 있다. 비용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세금정산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는가 하면, 병원의 레지던트 의사들에게 쓸개 적출 기술을 가르치는 소프트웨어까지 있다. 증권투자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1920년대의 선배들이 증권회사 사무실에 틀어박혀 매일 몇 시간씩 허비하던 것과 똑같은 일을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과정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단지 점차 정형화됨으로써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였을 뿐이다.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정보화혁명이 주는 심리적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아동의 학습방법에 던진 영향이 아마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살 정도 되면 (혹은 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컴퓨터 기술을 눈 깜빡할 사이에 익혀서 곧 어른들을 앞서게 된다. 컴퓨터는 이 또래의 장난감인 동시에 학습도구가 됐다. 앞으로 50년 후 사람들은 “20세기 말에 ‘미국 교육의 위기’는 없었다. 단지 20세기 학교의 지도방법과 20세기 말 학생들의 학습방법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뿐”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인쇄기와 그에 맞는 활자의 발명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16세기의 대학 교육에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정보혁명은 여태껏 해온 우리의 일상활동을 그대로 정형화했을 뿐이다. 20여 년 전 오페라나 대학 교과과정, 작가 전집 등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선보이기 위해 발명된 CD-ROM이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증기선의 경우처럼 CD-ROM도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전자상거래의 의미

정보혁명과 전자상거래의 관계는 산업혁명과 철도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둘 다 전혀 새롭고, 듣거나 보기는커녕 상상도 못 했던 진전이다. 170년 전 철도의 경우처럼 전자상거래는 새로운 붐을 일으키며 우리의 경제·사회 그리고 정치에 눈에 띄게 빠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중서부 산업지대에는 1920년대에 문을 연 중소기업이 있다. 지금은 창립자의 손자들이 꾸려가는데, 공장을 중심으로 100마일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학교나 회사의 구내식당, 병원 등에 값싼 식기류를 납품해 시장점유율이 60%에 이르렀다. 도자기는 무겁고 깨지기 쉬워 생산자로부터 멀지 않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이 과거의 통례였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어느 병원 구내식당이 인터넷을 검색해 유럽에 있는 제작자를 알게 됐다. 이 유럽 회사가 질이 훨씬 좋은 제품을 더 싼 값에 항공편으로 배달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지역의 다른 고객들도 거래선을 이 유럽 회사 쪽으로 옮겨갔다. 고객들은 그 물건이 유럽에서 오는지도 모를 것이고, 설령 안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철도가 창조한 새로운 심리적 거리감으로 ‘먼 거리’를 지배하게 됐고, 전자상거래가 창조한 심리적 거리감을 통해서 이제 ‘먼 거리’라는 것은 사라졌다. 단 하나의 경제, 단 하나의 시장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 결과 국내 시장이나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제작 판매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일지라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제 경쟁은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국경은 사라지게 됐다. 모든 회사가 국제화한 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와 더불어 종래의 다국적기업은 구식이 될지 모른다. 다국적기업은 세계 여러 곳에 ‘지역’ 회사를 두고 한정된 지역에서 생산 및 유통활동을 하는데, 전자상거래는 지역 회사나 한정된 지역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 제작하고 어디서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하는 것은 사업상의 중요한 결정사항이다. 하지만 앞으로 20년 안에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을 회사가 내릴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팔고, 어떤 상품이 이 새로운 방식에 맞을까 하는 것은 아직 분명치 않다. 이는 새로운 유통 채널이 등장할 때마다 겪던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철도는 어떻게 서방세계의 심리적·경제적 지도를 바꾸었을까? 세계무역과 승객 수송에 똑같이 영향을 준 증기선은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지 않았는가? 왜 ‘증기선 건조 붐’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동네 잡화점이 슈퍼마켓으로 바뀌고, 개인 슈퍼마켓이 슈퍼마켓 체인으로 대체되고, 그 슈퍼마켓 체인이 월마트나 다른 할인점 체인으로 옮겨간 유통산업의 변화도 그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전자상거래로의 이행도 마찬가지로 선택적이며 예측이 불가능할 것이 틀림없다.

틀린 예측들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25년 전 사람들은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인쇄물이 각 구독자의 컴퓨터 화면으로 전송될 것이라고 믿었다. 구독자들은 그것을 컴퓨터 화면에서 읽거나 다운로드 받아서 프린트를 한 다음 읽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CD-ROM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에 따라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신문과 잡지사들이 너도나도 온라인망을 깔곤 했는데, 여태껏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20년 전에 누군가 Amaz on.com이나 barnesandnoble.com처럼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팔고, 활자로 인쇄된 무거운 책을 배달해줄 거라고 요즘 상황을 예고했다면, 사람들은 그냥 웃어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Amazon.com과 barnesand noble.com이 바로 그 사업을, 그것도 범세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나의 책 ‘21세기 경영의 위기’(1999)는 첫 주문이 Amazon. com으로 들어왔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온 것이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보자. 10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떤 자동차 회사가 당시 막 선을 보인 인터넷이 자동차 판매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 조사는 인터넷이 중고차 거래에는 주요 채널이 되겠지만, 새 차 고객들은 여전히 자동차를 직접 만져보고, 시운전해보기를 원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의 실정은, 대부분의 중고차가 인터넷이 아니라 중개인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판매되는 새 차의 (고급 승용차를 제외하면) 절반 가량이 인터넷상에서 ‘구매’되고 있다. 자동차 딜러들은 고객이 이미 선택해 놓은 차량을 단지 배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게 고작이다. 이런 현실이 20세기에 가장 수지맞던 소규모 사업인 자동차 딜러들의 앞날에 대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는 또 있다. 미국에서 증권 투자 붐이 일었던 1998년과 1999년에 온라인을 통해 주식 매매를 하는 투자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온라인을 통한 매입을 줄이려는 것 같다. 미국에서 주요 투자 대상은 뮤추얼 펀드다. 몇 년 전만 해도 투자자들이 매입한 뮤추얼 펀드의 거의 절반이 온라인을 통해 거래됐는데, 이 온라인 매입 비율이 내년에는 35%, 그리고 2005년 무렵에는 20%까지 떨어지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10년이나 15년 전에 ‘모든 이들이 예측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미국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전자상거래 분야는 전문 직업인이나 경영인을 위한 일자리 알선이라는, 여태까지는 ‘상거래’로 분류되지 않던 영역이다. 세계적인 대기업의 거의 절반이 웹사이트를 통해 직원을 뽑고, 약 250만의 전문 직업인이나 경영인이 (이들 가운데 3분의 2는 엔지니어나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다) 이력서를 인터넷에 띄워놓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구인광고를 검색한다. 완전히 새로운 인력시장이 등장한 것이다.

이 현상은 전자상거래의 의미심장한 영향을 대변해준다. 새로운 유통 채널이 고객층을 바꾼 것이다. 전자상거래는 고객의 구매방법뿐만 아니라 구매상품에까지 변화를 가져온다. 소비자 행위와 저축성향은 물론 산업구조까지, 한 마디로 경제 전체에 변화를 주고 있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 그리고 중국 대륙을 포함한 신흥국가에서 이런 변화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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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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