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성장신화는 이제 그만, 그늘의 진실’을 보자

  • 이정우 철학자·시인

    입력2007-01-17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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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기보다는, 특정한 발견이나 발명을 통해 대중 위에 우뚝 서려고 애쓰기보다는, 20세기의 화려한 문명이 남겨놓은 그 숱한 쓰레기, 상처, 고통을 돌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이제 그만! 제발 그만 가자고, 잠시 숨을 돌리고 성장에로의 질주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 돌아보자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20세기는 성장의 세기였고, 또 (발전이 아닌) 발달의 시기였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강하게”를 추구한 세기였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사회와 20세기의 현대 사회를 가르는 차이는 이런 급격한 성장·발달의 도래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이 올라간 성장의 수치 아래에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물질문명의 일방적 확대, 제국주의, 파시즘, 좌우 대립이 남긴 상처, 인간의 대상화, 소외, 규격화, 그리고 문화와 교육의 황폐화 같은 쓰레기 말이다.

    앞으로의 시대에 던져진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것,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거대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새로운 창조에 몰두하기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배태한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것, 요컨대 성장의 빛보다 그 빛이 만들어낸 그늘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리라. 우리 시대는 성장보다 치유를 갈구한다.

    모든 것을 해체시킨 디지털 기술

    20세기는 무엇보다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이 현저하게 달라진 시대였다. 17세기에 형성된 새로운 세계 인식이 19세기에 이르러 실질적인 물질적 변화를 야기시킨 것이다. 17세기 과학 혁명은 ‘함수’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과학은 사물의 운동에서 양화(量化)가 가능한 측면만을 뽑아낸다. 그 기법으로서 분석과 측정이 동원된다. 이렇게 추상화된 양들 사이에 성립하는 일정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과학적 세계 인식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때의 관계란 정적인 공간의 관계가 아니라 동적인 시간의 관계다. 즉, 함수란 서로 상관적으로 변화하는 양들 사이에 시간을 매개변수로 해서 관계를 설정하는 기법이다.

    함수는 시간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 시간에 일정한 함수값을 대입하면 그 시간에서의 운동 상태가 도출된다. 이것이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근대 과학은 사물을 양화·분석하고, 그 결과를 함수로 표시하고, 함수를 사용해 사물의 운동을 예측하게 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제어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19세기에 이르러 17세기의 과학 혁명이 기계 조작에 직접 응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의 기계화에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얄궂게도 19세기의 기계 문명은 차라리 낭만적으로 보인다. 초보적인 기계들을 사용한 자동차나 배, 농기구 등을 보면서 우리는 일종의 향수마저 느낀다.

    20세기에 이루어진 기술 문명은 19세기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편으로 현대 기술문명은 기계적 차원이 아니라 전자적(電子的) 차원의 기술이며, 다른 한편으로 물체를 조작하는 기술이 아니라 생명체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전자적 조작은 디지털 혁명에 의해서 선명하게 그 얼굴을 드러냈다. 디지털 기술은 모든 사물을 가루로 만들어 다시 배합한다. 모든 것이, 레고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듯이 재편성된다. 인류가 몇 만년, 몇 십만년 동안 친숙하게 보아왔던, 그리고 그와 달리 존재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이 세계, 각자의 정체성을 가진 개체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이제 산산이 해체되려 하고 있다.

    이제 하나하나의 개체가 각자의 본질·정체성을 가지고서 영원의 상하에서 존재한다고 믿었던 생각은 무너진다. 모든 형태의 배합과 조작이 가능해진다. 하늘의 섭리라고 생각했던 이(理)의 체계는 와해되고 모든 것이 기(氣)의 바다로 녹아들어갔다가 다시 재편성된다. 이러한 기술이 시뮬레이션이나 영상(映像)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 사물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때 생겨날 가공할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바야흐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욕망의 삼각형’을 제어하라

    기계는 인간의 바깥에 있다. 인간이 아무리 기계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해도, 기계들이 자신의 바깥에 있는 한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대상, 환경, 도구의 차원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생명체 자체가 기계처럼 측정되고 조작되고 해체되고 재조립되기 시작한 오늘날, 생명과 물질을 가르던 오래된 분절선은 흐려지고 개체의 내면성은 흐트러진다. 인간 복제는 이런 흐름의 극한이다. 생명 조작이 무책임한 자들의 손에 내맡겨질 때, 이제 한 인간의 정체성, 기억, 감정, 사랑, 요컨대 삶과 죽음을 수놓는 모든 것이 와해될 것이다.

    기술 문명의 이러한 폭풍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기술 자체이기보다는 자본이다. 자본이 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욕망이며, 그 도구는 상품이다. 자본은 대중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자극해 일으키고, 그 욕망을 채워줄 상품을 만들어낸다. 기술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바람이나 어떤 가치, 도덕이 아니라 자본이 제시하는 ‘프로젝트’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엄연히 구분됐던 과학과 기술은 오늘날 이런 와류 속에 들어가 한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에 매스미디어가 가세한다. 상품의 가치는 기술에 의한 사용 가치만이 아니라 광고에 의한 상징적 가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본과 과학기술,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형성하는 욕망의 삼각형은 확대 재생산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안고서 질주한다.

    이러한 현대의 상황은 바로 몇십 년 전까지의 우리 삶의 풍경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뒷동산에서 꽃을 키우고,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을 퍼먹고, 앞개울에서 가재를 잡던 그 풍경들, 대나무 빗자루로 고추잠자리를 잡고, 겨울에 토끼를 쫓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모여 이야기 잔치를 벌이던 그 풍경들 말이다. 하긴, 세상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사람들의 심성 또한 변한다. 문제는 그 변화의 폭이 세상과 심성의 자연스러운 성숙을 훨씬 넘어서 가속도를 붙여서 증폭할 때, 인간의 정체성이 분쇄기에 들어간 바위처럼 산산이 부서진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은 그 폭을 더 넓히기 위해 계속 질주하기보다는 거꾸로 방향을 돌려 그 넓어진 폭이 배태한 숱한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돼야 하지 않을까? 화학 약품들이 버려놓은 물과 공기, 고엽제에 고통받는 상이 군인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숱한 지역에서 마루타가 돼야 했던 사람들, 기계에 손이 잘려나가고 허리가 부러진 그 많은 노동자들…. 20세기의 기술 문명이 가져온 상처를 어떻게 일일이 나열할 수 있으리. 이 무수한 상처를 뒤로 한 채 오로지 성장 제일주의의 페달을 밟고 또 밟는다면, 우리 앞에는 단말마의 고통만이 쌓여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술 자체만은 아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과 매스미디어로 형성된 삼각형을 제어할 수 있는 사상적·제도적 장치일 것이다.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의 술책, 기술 문명이 가져올 가공할 결과들,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환상들을 대중에게 일깨워줄 수 있는 사상의 창출과 이 삼각형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창출. 물질의 가공이 더 이상 기술·자본의 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인문적 사상과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 = 짓밟힌 시절

    물질 문명에서의 상처 못지않게 역사에서의 상처 또한 깊다. 크고 작은 전쟁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제국과 식민지, 이런 식의 양분법이 20세기 전체를 수놓아왔다. 우리는 이 시대를 분열의 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는 늘 분열된 집단들의 싸움으로 점철됐으며, 전쟁이 없는 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분열은 인류 전체를 양분한 심각한 분열이었으며, 20세기의 전쟁은 고도화된 기술에 의해 치러진 잔혹한 전쟁이었다. 역으로 숱한 전쟁들 자체가 기술 문명을 배태했다. 이런 식의 갈등이 남긴 후유증은 지금도 우리 삶 곳곳에 배어 있다.

    이런 비극의 씨앗 역시 구체적으로는 19세기에 뿌려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있기 전까지 대다수 문명들은 각자의 코드를 통해 삶을 영위했으며, 각자의 이념(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힌두교, 불교 등등)에 입각해 살아왔다. 그러나 19세기에 형성된 물질적 힘은 각 문화 사이에 그어졌던 선을 지워버렸으며, 이후 세계사는 유럽과 미국의 세계 지배와 이들에 동화(同化)되려는 식민지들의 맹목적 근대화로 치달았다.

    20세기는 제국주의와 더불어 시작됐던 것이다. 프랑스는 이 시절을 ‘아름다운 시절’이라 부르지만, 유럽 바깥의 식민지들은 바로 그들이 수천년, 수만년 동안 살아 왔던 문화적 토대가 깡그리 짓밟힌 시대였다. 우리의 문화에서도 서낭당이 교회로, 의원이 병원으로, 서당이 학교로, 엿이 사탕으로 바뀌었다. 비서구 지역은 서구가 이룩한 근대성을 삶의 모델로 삼았으며, 따라서 비서구 지역들은 서구의 재현으로서 존재해온 것이다.

    따라서 서구적 사유가 공산·사회주의와 자본·자유주의로 갈라졌을 때, 서구의 재현으로서 존재했던 비서구 지역들도 그렇게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선택’은 제국주의의 연장선 상에서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서구 지역 국가들은 삶의 유형을 자생적으로 구성했던 것이 아니며, 이미 작성된 두 답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시즘 역시 제국들의 전선(戰線)에서 형성된 군사적 지배 양태로서,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얄궂은 것은 이 파시즘이 패배하고 비서구 지역들에 ‘해방’이 찾아왔을 때, 그 혼란을 틈타 서구 파시즘이 이들 비서구 지역에서 재현됐다는 점이다. 마치 나열된 성냥들에 연달아 불이 붙듯이, 현대사는 19세기가 뿌린 재앙의 불씨를 활활 일으켜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고통과 상처는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역사에 각인된 것이다.

    1968년을 분기점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일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혁명들은 결국 19세기 후반 이래 진행돼온 숱한 이념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제국주의와 파시즘, 공산·사회주의와 자본·자유주의, 이 모두는 특정 이념에 입각한 위로부터의 통치 형태였을 뿐 삶의 밑바닥에서 웅얼거리는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중의 삶은 마치 주물에 찍히는 밀가루처럼 국가가 제시하는 ‘○○주의’에 의해 구성돼왔다. 1968년 이래의 사상들(편의상 ‘68사상’이라 부르자)은 이 모든 ‘국가 철학’들을 거부함으로써, 국가와 이념의 주물이 찍어내기를 원했으나 결코 완전히 틀지울 수 없었던 욕망과 저항의 몸짓들을 담론화했다.

    우리는 68사상을 ‘타자(他者)’의 사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타자란 누구인가? 타자는 스스로의 욕망에 입각해 삶을 설계하기보다는 위에서 내려온 주물에 의해 설계되는 존재들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설계는 특정 집단의 욕망을 대변하는 설계이고, 따라서 그 설계는 다른 집단들의 욕망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타자란 이 설계, 이 중심의 바깥에 서 있는 존재들, 그 중심의 빛 아래에 들어서지 못하는 그늘에 놓인 존재들이다. 이 타자란 마르크스가 코기토, 선험적 주체 등의 일반화된 주체 아래에서, 그 일반성으로 결코 완전히 용해될 수 없는 두 집단을 변별해냈을 때 처음으로 그 선명한 얼굴을 드러낸 존재다.

    이 타자는 68년 이후 이제 타자들이 된다. 흑인, 여성, 어린이, 학생, 동성애자, 제3세계…, 무수한 타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스스로의 욕망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우리는 이 시점을 ‘현대성’이 탄생한 시점으로 잡아야 하리라.

    68사상은 모든 형태의 국가 철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무정부주의다. 따라서 그것은 ‘다원화 사회’의 요청에 응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파시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이제 막 이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68사상이 이런 벗어남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이런 벗어남이 68사상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켰다고 해야 하리라. 다시 말해, 68사상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에 68사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이다. 이 점에서 서구와 달리 제3세계에서는 68사상이 현실 변화의 원동력으로서 작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변해 버린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68사상이 창출한 개념들과 사유들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68사상 이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분법이 동시에 비판됐다고 하지만, 결국 주도권을 쥔 것은 자본주의다. 68사상이 위로부터의 구성이 아니라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욕망을 긍정했던 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됐다. 대중의 욕망을 긍정했을 때, 그 욕망을 보장해줄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그랬듯이 68사상도 대중을 너무 순진한 눈으로 보았던 것일까? 대중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대중의 욕망을 흡수할 수 있었을 정도로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 것일까? 결국 현대는 비판적 욕망이 아닌 소비적 욕망으로 흘렀고, 이제 자본주의는 그것을 비판했던 사상들까지도 빨아들일 정도로 강력해졌다. 변혁에의 열정은 ‘젊은날의 꿈’으로 화했고, 고도의 기술 문명과 살아남으려는 초라한 몸부림만이 세상을 수놓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연 ‘양심’은 있는가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비판 의식의 고취와 광범위한 연대라는 두 가지 가능성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욕망을 만족시키는 상품들 너머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읽어낼 수 있도록 대중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대중들이 자신의 이해(利害)를 넘어 이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존재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

    제도와 생활 양태의 변화가 가능하려면 의식과 문화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물질을 변형시키는 것은 결국 의식·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의식과 문화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20세기의 아팠던 삶을 일깨워줄 역사, 세계와 인간을 깊은 눈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줄 철학, 사회의 모순을 분석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줄 사회과학, 나아가 각종 형태의 문화들은 이런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이며 담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현대 사회의 근본 문제는 정치적·경제적 모순들에 있다기보다는 그 모순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눈길 자체가 결여돼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학문이나 예술이 초근대적 질서를 비판하는 세력으로서 존재하기보다는 그 질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들이 한 사회에 있어 양심의 중심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대 대학의 이념은 순수한 진리의 갈구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의 이념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기업과 대학을 구분짓던 경계선은 지워졌다. 대학, 대학생, 교수, 캠퍼스, 학문…. 이 모든 말들에 붙어 있던 광휘는 이제 사라져버렸다. 생산성, 효율, 경영 마인드 같은 말들이 최상의 가치로서 인구에 회자된다.

    대학이 기업이 되었다면, 대학의 중심은 당연히 경영학이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순수 학문이나 인문학은 한없이 위축되어 간다. 사상, 지식인, 비판 같은 말들은 조금씩 사라져간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변화의 씨앗은 이미 대학 설립의 맥락 자체에 뿌려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면세를 위해서, 가문의 위용을 위해서, 또 제국주의적 질서의 맥락에서 세워졌던 대학들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학자, 전문가, 교수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상가, 지식인들은 얼마나 존재하는가? 대학이라는 공간이 기업이 되면서 이제 교수들은 그 기업에 취직한 직장인으로 전락했다. 교수들은 거대한 행정과 자본의 위력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깨어 있는 양심으로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출신 학교, 전공을 둘러싼 그 숱한 암투들, 연구비를 타내기 위한 초라한 몸부림들, 심지어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젊은 학자들을 온갖 음모와 모략을 동원해 린치를 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면, 이제 대학에서 사회 변혁의 원동력을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부실한 기초, 성급한 응용…

    그러면 지식의 심장부에 존재하는 철학의 상황은 어떤가. 오늘날의 철학은 68사상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했는가? 이런 물음은 어리석다. 한국 철학사에 아직 68사상은 도착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을 읽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읽었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담론사적 상황은 68사상을 이미 소화하고 그 한계를 넘어 이제 우리 자신의 사유를 펼쳤어야 할 단계다. 동북아 사상의 잠재력을 과학이라는 문턱과 현대라는 문턱을 넘어 다시 부활시켰어야 할 단계다.

    그러나 한국의 철학은 68사상을 넘어서기는커녕 아직 68사상에 입문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현재 젊은이들이 그를 소화하고 넘어서려 애쓰고 있는 들뢰즈는 한국의 철학 교수들에게는 아직 낯설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이다. 더 불행한 것은, 기성 교수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현대 사유를 매도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대학에서의 철학은 이미 죽은 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숨결을 읽어내고 살아 있는 언어, 살아 있는 사유를 펼쳤던 작업들이 거의 대학 바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90년대 사유를 읽기 위해 우리는 학자들이 쓴 책이 아니라 각종 잡지나 특강 주제들, 학생들이 만든 전단을 참조해야 한다. 철학 잡지가 아니라 대중 잡지들이, 정규 과목이 아니라 특강들이, 교수들이 아니라 학생들이, 대학이 아니라 각종 매스미디어들이, 학문이 아니라 각종 문화 행사들이 90년대 사유를 담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랬기에 생겨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학문 세계라는 거대한 관료 조직 바깥에서 이루어진 문화 게릴라적 분투(奮鬪)는 우리의 사상적 지형을 얼마나 바꾸어놓은 것일까?

    아마도 90년대 사유의 한계는 기초의 부족과 성급한 응용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교육제도 속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식으로 사상적·철학적 훈련을 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그저 대학에 들어와 억지로 들어야 하는 상투적이고 따분한 철학개론, 철학사를 한두 번 들은 것이 고작이다. 그런 학생들이 전세계적으로도 제대로 소화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현대 철학의 대작들을 읽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스 철학조차 소화해본 적이 없는, ‘성찰’이나 ‘순수이성비판’도 숙독해본 적이 없는, 아니 정식으로 철학적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는 학생들이 ‘말과 사물’ ‘안티오이디푸스’ 같은 책을 읽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아마도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 속으로 갑작스럽게 들어온 현대 사상들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던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대 사유의 개념들은 명료한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막연한 이마주로 이해됐다. 여기저기에 떠돌아 다니는 개념들은 근거 없는 억측의 대상이 됐으며, 각자의 머리 속에서 제멋대로 이를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사유의 탄탄한 토대를 다지기보다는 당장에 시사적 의미를 가지는 문제들, 비평이나 다른 여러 작업들에 ‘써먹을 수 있는’ 개념들을 적당한 수준에서 이해한 후 재빨리 사용하는 광경이 90년대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현대 사유를 응용하려는 성급함이 많은 졸작을 양산해냈다. 우리 담론계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못지않게 90년대가 남긴 거품들, 쓰레기들을 걷어내고 치우는 작업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만! 숨 좀 돌리자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우리는 80년대의 민중 예술로부터 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급격한 단절을 본다. 기묘하고 자극적인 이마주를 생산해내려는 예술가들이 역사로부터 단절된 채 맥락 없는 작품들을 양산해냈다. 민중 예술과 현대 예술이 차원 높게 종합되기보다는 양자택일의 대상으로서 병치됐던 것이다. 수많은 기교가 삶의 현실이 배태한 숱한 모순을 응시하기보다는 기교 자체를 위한 기교로 흐름으로써, 얄팍한 심미안을 부추겼다.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매체들이 대중의 의식을 고양시키기보다는 상업성에 영합함으로써, 기교 위주의 예술과 상업 매체의 제휴를 가져왔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심미안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영상들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기술 발달에 의한 물질 문명의 변화에 있어서나, 분열과 대립으로 일관된 사회·역사적 삶에 있어서나, 이 상처들을 치유해줘야 할 문화와 교육에 있어서나, 20세기는 무수한 쓰레기를 만들어냈다. 모든 차들이 앞만 보고 질주한다. 다른 차들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리고 이 질주는 지표면의 파괴, 차들이 흘리는 쓰레기, 충돌이 만들어낸 상흔(傷痕)들, 이런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낸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 쓰레기들을 줍고, 파괴된 흙을 다시 다지고, 커다란 상처를 메우려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일들이 귀찮고 힘들기도 하거니와 앞서서 질주하는 것보다 더 알아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결정적인 것은 그렇게 하는 동안 다른 차들은 훨씬 앞서 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무수한 문화적 성과를 배출해냈다. 화려한 기술 문명, 우주의 비밀을 밝힌 과학적 발견들, 담론사를 수놓은 위대한 저작들, 각종 새로운 예술적 실험들, 그러나 이 문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뒤틀리고 찢어진 모습으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 하게 됐다. 다양한 영역에서 놀랍도록 뛰어난 성취가 이뤄졌지만, 우리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 왜인가? 그 누구도 자신이 하는 작업이 세계 전체, 인류 전체에게 미칠 의미를 반추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분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성과가 전체 속에서 조화롭게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키는 삐죽 커버렸지만 다른 부분들이 따라가지 못해 엉거주춤한 10대 아이들처럼.

    이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기보다는, 특정한 발견이나 발명을 통해 대중 위에 우뚝 서려고 애쓰기보다는, 20세기의 화려한 문명이 남겨놓은 그 숱한 쓰레기, 상처, 고통을 돌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광포하게 질주하는 기술 문명이 삶의 현실 속에서 제어되고, 철학자, 예술가들이 이룩한 높은 경지가 대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분열과 대립이 만들어놓은 숱한 골을 메우는 그런 작업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이제 생산성, 효율, 성장을 위한 삶에서 치유와 조화를 위한 삶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만! 잠시 숨을 돌리고 성장으로의 질주가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남겼는지 돌아보자며 제발 그만 가자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의 시대는 앞만 보고서 질주하는 성장의 가치가 아니라 근대성이 남겨 놓은 숱한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가치가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의 질주를 계속한다면, 어쩌면 인류는 22세기를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여부는 지금 우리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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