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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연구|‘워크아웃 1호’

동아그룹은 회생할 것인가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동아그룹은 회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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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목표는 지난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고회장이 취임하기 전에 채권금융단이 넘겨준 자료에는 동아의 부채비율이 373%로 나와 있었다. 고회장은 당시 10대 재벌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500%를 넘었으니만큼 자금사정만 좀 풀리면 이를 200% 이하로 낮추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사정은 딴판이었다.

“재무상태를 실사했더니 숨겨진 빚이 1조6000억원이나 됐다. 실제 부채비율이 1000%를 넘었던 것이다. 이런 부채율을 가진 회사라면 없어지는 게 당연했다. 주변에서는 ‘분식결산한 사실이 밝혀졌으니 스톡옵션 계약서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내가 373%를 200%로 만들겠다고 했는지, 1000%를 200%로 만들겠다고 했는지 누가 기억해 주겠는가.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하면 ‘저 사람, 이제 와서 자신 없으니 저런다’고 하지 않겠나. 그러니 스톡옵션을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계약조건을 바꾸진 않겠다. 경영혁신을 통해 임기 안에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동아건설이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은 공사 원가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었다. 97년까지만 해도 평균 공사 원가가 공사 수주가격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익을 내려면 원가가 수주가격보다 한 푼이라도 적어야 하는 게 상식이건만, 원가율이 100%였다는 것은 결국 그때껏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먹고 살았다는 얘기였다.

높은 원가의 주원인은 부실한 외주 관리에 있었다. 하도급 공사를 맡는 협력업체가 600여개나 난립해 있었는데, 회장실에서 넣으라면 넣고 빼라면 빼라는 식이어서 업체들의 기술수준이나 공사 실적이 제각각이었다. 더욱이 업체 선정과 도급 가격은 현장 소장이 알아서 정하는 게 관행이어서 원가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무원칙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업체 선정과 도급 가격 결정권을 외주관리부로 일원화했다. 외주관리부가 결정한 내용은 토목 플랜트 건축 등 공사관련 부서는 물론, 노조와 감사실까지 거쳐 이의가 없어야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또한 기존 협력업체들 가운데 현장 소장들의 의견을 물어 실적과 재무구조가 우수한 150개사를 추려내고 나머지 회사들은 탈락시켰다. 그러나 이들에게만 공사를 맡길 경우 자칫 담합할 가능성이 있어 그간 동아와 함께 일한 적이 없는 회사 150개를 협력업체로 추가 선정했다. ‘신참 반, 고참 반’의 경쟁체제를 유도한 것.

공사가 있을 경우 이들 가운데 분야별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5개사를 공개입찰에 참여시켜 시공사를 선정한다. 입찰장에도 공사 관련부서들과 노조 대표 등이 참가해 공정을 기한다. 외주관리부 김한회 과장은 “건설회사는 전통적으로 반(半) 군대조직이다. 그러나 이제는 입찰과 관련된 어떤 절차에도 회장의 입김이 미치지 못한다. 회장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라도 예외없이 자료를 제출하고 담당자와 마주앉아야 한다”고 변화상을 전한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평균 원가율이 98년에 94%, 99년에는 88% 수준으로 낮아졌다. 앞으로는 원가율을 80%까지 떨어뜨릴 계획이다. “마진이 20%는 돼야 우리도 빚 안 지고 먹고 살 수 있을 것 아니냐”며 뒤늦게 장삿속을 차리고 나선 것이다.

‘톱다운’에서 ‘바텀업’으로

이와 같은 시스템 정비는 경영진이 독단으로 추진하는 게 아니다. 과거 오너지배체제에서는 주요 의사결정권이 회장의 몫이었다. 바깥에서 공사를 수주해 오는 사람도 회장이었다. 임직원들은 그저 회장이 따온 공사만 받아다 일하면 그만이었다. 철저한 상명하달 계통에 임직원들의 능동적·자발적인 참여의식이 발휘될 여지가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이른바 ‘바텀업(Bottom-up)’ 경영이다. 기존의 ‘톱다운(Top-down)’ 경영과는 반대로 직원들의 의견을 아래로부터 적극 수렴하고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그 매개역할을 하는 것이 ‘TOP(any Time, any Occasion, any Place) 미팅’이다. 전 조직원은 대리, 과장급 가운데서 선출된 ‘TCA(Team Change Agent)’들의 주도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TOP 미팅을 갖는다. 이를 통해 직원 각자가 당면한 문제를 ‘TOP’, 즉 최고경영자가 돼 주도적으로 해결하게 하고, 이 수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전산망을 통해 회장과 임원에게 건의하게 한다. 임원들은 이들의 건의사항을 처리한 후 회장에게 결과를 보고하게 돼 있어 직원이 임원에게 직접 문제 해결을 건의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TOP 미팅을 통해 수렴된 아이디어 중에는 비용 절감과 직결된 것도 많다. 임금을 깎고, 복지제도를 없애고, 사무용품 지급을 중단하는 식으로 ‘몸을 팔아’ 하는 비용 절감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독창적·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도입해 낭비 요인을 근원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99년 여름 서해안의 한 공사 현장에서는 지역주민들의 민원(民願)을 줄이는 방안을 찾기 위해 직원들의 요구로 TOP미팅이 열렸다. 주민들이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비산 먼지나 소음을 이유로 관청에 민원을 내거나 현장에 몰려와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며칠씩 공사를 못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 이럴 경우 값비싼 임대 장비 등을 놀리게 돼 하루에도 수억원의 낭비요인이 생긴다.

이 미팅에서는 직원들이 아침마다 돌아가며 마을을 청소하고, 주머니를 털어 결식아동 돕기운동을 벌이며, 주민들과 카풀을 하는 방안들이 제기돼 실천에 옮겨졌다. 그 결과 주민들이 동아 직원들에게 친밀감을 갖게 됐고, 덕분에 민원 걱정 없이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해 가을에는 동대문에서 상가 건축공사를 하고 있던 동아 직원들이 TOP 미팅을 통해 준공기일을 앞당기라고 건의했다. 당초에는 추석 이후에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상인들을 추석 이전에 입주시켜 대목을 챙기게 해줌으로써 동아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이것도 그대로 수용됐다. 당시 공사 현장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과거에는 본사가 현장 위에 군림하는 ‘상전’이었다. 그저 잘못을 찾아내 깨기만 하는 곳이어서 현장 직원들이 본사에다 대고 공사일정을 당기라 말라 요구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외이사제 활성화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도 강화했다. 17명의 이사 중 6명을 금융 법률 세무 분야 전문가인 사외이사로 구성했다.

황창기 전 은행감독원장, 장철훈 전 조흥은행장, 김현철 변호사(전 서울고검 검사장), 김상수 세무사(전 국세청 부이사관), 홍성주 서울투자신탁 사장, 정광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그 면면. 공인회계사협회장을 지낸 김두황 회계사는 사외감사로 초빙됐다.

“누구 하나 대충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다”는 게 동아 관계자의 설명. 이들은 월 1회 정기 이사회를 갖고, 현안이 있을 경우 정기 이사회와 관계없이 수시로 이사회를 갖는다. 고병우 회장은 “조만간 본격화할 한국 사외이사제의 전범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들이 이사회에서 토론하는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할 만큼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동아건설이 99년 상반기 결산에서 흑자로 돌아선 데는 물론 이와 같은 경영혁신도 한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인천 매립지 매각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천 매립지는 70년대 후반 정부가 현대그룹의 서산 간척지와 함께 당시 중동에서 돌아온 건설인력과 장비를 식량 증산에 활용하기 위해 동아건설에 매립을 맡긴 373만평의 땅. 동아는 91년 준공허가를 받았으나, 농업용 도수로를 낼 방법이 없자 준공 직후부터 줄기차게 용도 변경을 요구해왔다.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던 끝에 고회장이 취임 후 김성훈(金成勳) 농림부 장관을 만나 “더 이상 용도 변경을 요구하지 않을 테니 정부가 인천 매립지를 매입해 용도를 결정하라”고 제의했다. 매각대금은 전액 은행 부채 상환에 쓰겠다고 했다. 또 향후 이 매립지와 관련된 공사는 동아에 맡겨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99년 3월, 정부는 이 제의를 수락했다. 당시 동아의 주채권은행인 서울은행을 영국의 HSBC에 매각하는 논의가 진행중이었던 터라 정부의 매입 결정은 서울은행의 부채 정리를 겨냥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왔다.

매립지 매각대금은 6350억원으로 결정됐다. 공시지가(96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었지만, 동아가 이 매립지를 조성하는 데 들인 비용(장부가격)은 1000억원 남짓했기 때문에 부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층 긍정적인 조짐은 해외에서 감지됐다. 해외 공사 수주가 줄을 이은 것. 99년 6월 동아는 국내 건설업체 가운데 최초로 일본의 공공 건설시장에 진출, 후쿠오카 고속철도 등 6건, 3480만달러 규모의 토목공사를 수주했다. 당시 일본 건설시장에 참여하고 있던 외국 건설업체 중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결과였다.

7월에는 캐나다 최대의 건설업체인 SNC와 새만금 지역 환경설비 및 수도권 매립지 가수발전소를 함께 건설하기로 하고 SNC로부터 1억5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어 8월에는 말레이시아 재무성이 발주한 바쿤 수력발전소 유로전환 공사를 따냈고, 9월에는 유럽시장에서 6000만달러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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