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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하버드 스님’ 현각의 스승 崇山 큰스님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진‘달마대사’

  • 허문명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진‘달마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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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인구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살아 있는 것에는 영혼, 즉 정신의 에너지가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몸이 죽는다고 함께 죽는 것이 아니여. 매일매일 이 세계에서 수십만 수백만 동물이 인간의 먹이로, 놀잇감이나 액세서리 재료가 돼 한꺼번에 죽어간다구. 동물의 몸이 죽으면 그 순간 동물의 의식은 몸에서 떨어져. 이 세상의 인과관계는 항상 명확해. 이 죽는 동물들 중에서 0.0000001%라도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이건 엄청난 이야기야. 이건 불교 얘기가 아니라 과학이야 과학, 물리학이라구.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기를 별로 즐겨 먹지 않았어. 아시아 사람들은 1년 가야 한두번, 끽해야 명절 같은 날 겨우 고기구경을 했다구. 하지만 요즘엔 하루에도 몇 번씩 고기를 먹어. 서양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사람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구. 사람들이 동물의 의식을 갖고 있어. 그들 마음속엔 인간과 동물의 의식이 섞여 있다구. 그래서 더 많은 폭력이 생겨나고 서로 싸우고 하는 거여. 원래 우리 마음은 순수하고 맑지. 조금 욕심이 있어도 그것을 지배할 수 있다구. 하지만 동물은 욕심을 지배하지 못한다구. 이것이 고통을 만들어 내는 거여.”

―옛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범죄가 나타나고 맘에 안 들면 총으로 사람 죽이는 게 예사인 현대사회에서 인간성의 상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옛날에는 땅에다 동그라미 그려놓고 죄인한테 너 여기 가만 있어 하면 있었다구. 벽이 없어도 되고. 요새는 아무리 높은 철창으로 가둬놓아도 사람 죽이고 감옥소에서 나오는 시대라고. 또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여요. 이게 동물의 마음이지.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여자 제자 중에 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던 이가 있었어. 어느날, 선방으로 그 여자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으니 빨리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거여. 그런데 그 여자는 ‘뱀을 돌볼 사람이 없다’고 안 가더라구. 그런데 며칠 후 뱀 한 마리가 병이 들었어. 그러니까 난리가 났어. 어머니가 아프다고 했을 때는 눈도 깜빡 안 하던 사람이 뱀이 병 나니까 병원을 찾아간다, 수의사를 찾아간다 법석을 떨더라구. 그 여자 의식은 인간보다는 뱀과 더 친한 거여.”

―불교에서는 이 세상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참자아, 본성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요.



“본성품을 찾는 것은 별것이 아니여. 우리 생각을 쉬는 것이여. 우리 머릿속에선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이 생각이란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고. 그런데 원래 마음이란 것이 없는거여. 내가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이 내 맘을 만들어낸다 이 말이여. 우리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아퍼짓 싱킹(opposit thinking), 즉 상대적인 생각이여. 옳다 그르다 높다 낮다 온다 간다 모두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만 진리인 상대적인 생각이여. 우리가 보는 세계는 모냥(모양)과 이름의 세계여. 그 세계는 자꾸자꾸 변해. 우리는 그 상대적인 생각을 없애서 본체로 돌아가야 혀. 그렇게 되면 우주의 본체나 인간의 본체는 하나가 된다구.

그 본체로 돌아가는 공부를 하는 것이 신앙심이여. 기독교나 불교나 다 본체로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공부여. 본체로 돌아가면 대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그러면 (배를 두드리며) 이 센터가 생겨.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 이거여.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다 진리 아닌 게 없어. 하늘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고 설탕은 달고. 우리는 진리 속에서 살면서 진리를 몰라. 말로만 진리 진리 하지 진리가 뭐냐 하면 몰라. 허허허. 진리를 깨달아 대자연과 하나 되는 공부, 그것을 수도라고도 하고 신앙이라고도 하지. 이 대자연과 하나가 됐을 때 진리도 하나가 돼. 그럴 때 대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지. 그러면 이 진리가 하나될 때 무엇을 할 것이냐. 이게 중요한 포인트여.

우리가 수도를 하고 진리를 찾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여.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주고. 그것을 보살행이라고 하는 거여.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고 하고. 어느 종교에서나 다 사랑을 얘기하지만 참말로 중생을 위한 사랑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과 생물에게 뻗어나가야 혀. 그 중생들을 위해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혀. 그것이 참사랑이요 참진리요 옳은 길이라 이 말이여.”

―스님께서는 그 본성을 과일의 ‘씨’에 비유하셨지요.

“과일이라는 것이 말이지. 봄에 꽃이 펴서 쬐그만 열매가 된다구. 그 열매가 가을에 잘 익어서 색깔이 붙게 되거든. 노랗고 빨갛게 되는데 색깔이 좋다고 해서 다 익은 게 아니여. 말랑말랑 맛이 들어. 맛이 들 때 나무에서 뚝 떨어지면 썩는다구. 이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돼 있어. 우리 인간들이 최고로 발전을 한다고 하지만 최고로 발전을 한다는 것이 무슨 소리여, 썩는다는 증거라고. 썩어 문드러져 뚝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썩어 없어진다구. 그걸 말세라고 하지. 말세가 가까이 왔어.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말이지, 귀신들이 나와서 막 설치는데 이제 그런 시대가 온다구. 지금부터 50년 후 10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정신세계하고 과학의 세계가 싸움을 벌여. 그러면서 인간사회가 망하는 것이지. 완전히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人情)이 많이 없어지는 것이지. 말세가 반드시 온다고. 와요.”

―그럼 무서워지겠네요.

“하하하. 무서울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센터가 탄탄하면 불 속에 들어가서도 문제가 없어. 참선혀야 혀 참선. 과일이 썩어도 그 속에 있는 ‘씨’는 다시 땅으로 들어가 싹을 내잖아.”

미국사람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는데 왜 세상은 이 모양이에요 ?

“그 사람들은 말로는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거여. 정치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 하지만 ‘나’ ‘나’ ‘나’만 자꾸 올라가. 죽을 때까지 ‘나’ ‘나’ ‘나’ 하다 죽는 거여. 정작 자기자신은 모르면서 말이여. 본래 불교에서는 나가 없는 거여. 무아를 깨달을 때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거여. (옆에 앉아 있는 무심 스님을 가리키며) 우리 무심 스님 이름처럼 무아라 이 말이야. 허허허.”

―그런데 요즘 교육은 ‘나’를 강조하는 교육이잖아요. 배워서 남 주냐 하는 말도 있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그렇지. 교육이 잘못됐어. 요새 학교에서나 모든 사람들이 강의하는 거 들으면 뭔가 절름발이여. 옛날엔 수신(修身)이란 것이 있었는데 요즘은 수신이란 것이 없어. 지식만 자꾸자꾸 높아져. 머리는 커지는데 인간성이라는 것이 없어졌어.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면 나중에 인간들이 인간이 만든 로봇한테 지배당하는 거라구.”

―사람까지 복제한다고 하는 판인데요, 뭐.

“사람 몸뚱어리 복제하는 것은 괜찮아. 그런데 식(識), 컨셔스니스(consciousness)는 어디서 오는 거냐? 이것이 중요하다구. 보라구, 똑같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이라도 행동이나 생각이 다 다르잖아. 식이 다르기 때문이여. 사람을 복제하고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 식을 어디서 갖다 집어 넣느냐에 따라 그 복제한 인간이 달라. 그것이 문제여.”

―주제를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오랫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포교를 하셨는데요. 요즘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미국식을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세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가만히 보면 절름발이여.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민주당 공화당 두 정당만 존재하지 공산당이라는 것은 붙어서 살 수가 없어. 영국이나 독일처럼 여러 생각을 가진 정당이 연립해서 만든 나라가 아니여. 미국은 생각이 한쪽으로만 치우친 나라라 이 말이여. 미국에 가면 사람 살기는 좋지만 완전한 나라라고는 할 수가 없어.”

―불완전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이여. 미국식으로만 생각한다 이거지. 뭐든지 미국식으로만 생각하고 미국 주장대로만 밀고 나가는 게 미국이지.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나’만 강해지는 나라, 나만을 생각하는 나라, 미국만을 생각하는 나라가 미국이여. 미국을 좇아가지 못해 안달이지만 미국의 리더십이라는 것도 돈 때문에 나오는 거잖아. 그런데 실상 돈 가지고도 잘 안 돼요. 국제 회의를 봐요. 아무리 미국식으로 하고 싶어도 쉽게 깨지거든.”

세탁소에서 시작한 미국생활

―기독교의 나라에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미국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언뜻 이해가 안 됩니다.

“시대가 바뀌다 보니 서양 사람들이 더 열심히 마음공부를 해요. 서양 사람 머리라는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보다 앞을 내다보는 정신이 있어요 .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그것을 내다 보니까 불교밖에 없거든. 대개 박사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불교를 많이 좋아해. 지금까지 인간 사회가 걸어온 길을 쳐다보고 또 앞으로 세상을 쳐다보니까 더 이상 바깥을 바꿔 봐야 끝이 없거든. 안에서 찾아야지. 기독교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밖에 없어. 과거라는 게 없거든. 불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뚜렷하면서도 찰나에 과거 현재 미래의 근본으로 돌아가라고 하잖아.

본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교여. 시간 공간을 초월하지 않고는 본바탕으로 돌아갈 수 없어. 똑바른 시간과 공간을 가르쳐 줄 때에 공의 사상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여. 비웠다는 사상 말이여.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거여.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잖아. 나 자신을 찾는 길, 그 방법을 뚜렷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한국 불교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서양사람들이 한국불교에 몰려들고 있어. 한국불교는 포교를 늦게 시작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왜냐? 참선을 가르치는 불교가 한국 불교밖에 없어.”

―큰스님이 미국 가신 게 1972년이지요. 그때는 한국 스님으로 미국 가서 포교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렇지. 그때는 한국 사람으로 미국 가서 포교한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없지. 허허허.”

―처음 미국에 가셔서는 세탁소에서 일하셨다면서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돈벌이는 없고 언어는 안 통하고. 세탁소는 그저 일만 하면 됐거든. 힘들었지. 그런데 해야만 했어.”

여기서 잠깐 큰스님이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1972년으로 거슬러가보자. 그때 스님 나이 마흔여섯살이었다. 당시 큰스님은 조계종 청담 종정스님과 함께 조계종단을 이끌고 있었다. 1950년대부터 70년까지 그는 한국의 유명한 선승이었다.

제자의 초청으로 미국에 첫발을 디뎠다가 아예 미국을 근거지로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큰스님은 미국에 도착해 로드 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에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이웃은 대부분 가난한 흑인들이었다. 작은 불상, 목탁, 죽비, 향만 들고 미국으로 간 큰스님은 아파트에 작은 법당을 꾸미고 혼자서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하고 참선수련을 했다.

한국에서 그는 존경받는 선승이었다. 그를 위해 요리해주고 빨래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미국에선 철저히 혼자였다. 게다가 영어도 전혀 못했고 무일푼이었다.

미국에서 스님이 처음으로 한 일은 앞서 말한 대로 세탁소의 세탁기계 수리공이었다. 아침예불과 참선이 끝나면 사복으로 갈아입고 세탁소로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고장난 세탁기들을 수리하고 청소를 하고 온갖 잡일을 했다. 고된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혼자 저녁밥을 짓고 저녁예불을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어느날 한 남자가 세탁소에 빨랫감을 맡기러 들어왔다가 허름한 차림에 머리 깎은 한국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난히 맑게 빛나는 눈동자가 그의 시선을 잡아당긴 것이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한국의 숭산 스님 아니십니까?”

그는 근처 브라운 대학에서 동양문명사를 가르치는 리오 프루덴(Leo Pruden) 교수였다. 불교 문화 연구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그동안 숭산 스님을 사진에서만 뵙고도 대뜸 알아본 것이었다. 작은 키에 삭발한 머리, 기름때 묻은 작업복, 가슴에는 ‘미스터 리’라는 명찰뿐이었지만, 프루덴 교수는 그가 숭산 스님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루덴 교수의 놀라움에 큰스님은 ‘잉글리시 노노’만 연발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일본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어 프루덴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을 큰스님께 소개했다. 큰스님은 항상 밝은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고 직접 된장찌개와 칼국수 김치를 만들어 대접했다. 큰스님의 첫 법문은 프루덴 교수의 통역으로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한 법회는 정례적인 예불과 강연으로 이어졌으며 2년 뒤 드디어 예일대학 졸업생 두 명이 승려가 되면서 비로소 큰스님 제자들이 탄생했다. 바야흐로 한국 선불교가 미국에 뿌리 내리는 순간이었다.

―최근 조계종 분규를 둘러싸고 한국 불교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이 살다 보니까 모기 물려 긁을 때도 있고 다리가 아파 두들길 때도 있고, 다 과정이여 과정. 우리 한국 불교가 정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35년밖에 안 됐어. 처음 정화할 때에 대처승이 2500명이고 비구승이 600명밖에 없었어. 그 600명이 대처승을 다 쫓아냈는데 비구승수가 모자라잖여. 자꾸자꾸 불어 몇 천명이 됐어. 그래서 급조승이란 게 생겨났다구. 스님 수가 한꺼번에 늘어나니까 그중에는 사기꾼 협잡꾼 깡패 별것이 다 머리 깎고 중이 됐다구. 그런 사람들을 옳게 가르쳐야 했는데 능력이 없었어. 우리 노장님들이 안목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힘이 모자랐던 거여. 갑자기 사람수가 늘어나니까 균형을 잃어버렸어요. 그때 중이 된 사기꾼 깡패 협잡꾼들이 요새 큰스님들이여. 종단을 휘어잡고, 싸움질하고, 협박질하고, 이 물이 다 지나가려면 한 20년은 지나야 혀.”

―20년이나 걸려요? 그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해요.

“산에 얼마든지 공부 잘하는 스님이 많아. 그 스님들은 이 세상에 나와 설치는 사람들이 아녀. 겉만 보고, 명예나 돈만 보고 집착한 스님들 따라가면 안 되지. 그네들은 스님네 탈을 쓰고 안에는 스님 마음이 아닌데 스님입네 한다구. 그런 사람들을 또 좋다고 좇는 사람들도 있고. 산에는 얼마든지 공부 열심히 하는 스님들이 많으니까 겉만 볼 일이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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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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