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후 6시 30분, 나의 길티 플레저
몇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가끔 글쓰기나 에세이 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의뢰받을 때가 있다. 1시간 정도 내가 준비해 간 내용을 이야기하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현장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데 그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글은 쓰고…
이유미 작가2022년 10월 12일[에세이] NOT TODAY : 아직은 아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이라는 영화가 인기몰이하고 있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지만 톰 크루즈는 이번 영화에서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내가 대학 시절 좋아하는 외국 배우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시절 남자들이 다…
강민 작가2022년 09월 12일[에세이] 희망이라는 우량주
아침부터 친구 녀석이 전화를 했다. 받지 못했다. 휴대전화 메시지 창에는 단어 한 개와 그 뒤로 점 여러 개가 찍혀 있었다. 며칠 전 그 녀석에게 얘기한 주식이었다. 나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그 주식을 샀다. 녀석에게 전화를 바로…
양동혁 작가2022년 07월 15일[에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볼 미래
서른이 넘어가면서 주변인들이 직장인 5년차, 7년차 정도에 접어들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어떨 때는 직군도 회사도 다른 그들의 상사란 너무나 비슷하게 구린…
임지은 작가2022년 06월 14일[에세이] 내 인생 엔딩 크레디트
새벽 4시의 냄새는 특별하다. 낮 동안 내리쬐던 태양의 뜨거움이 식어 묘한 냄새가 난다. 밤새 바닥에 켜켜이 쌓인 자동차 매연이 새벽 찬 공기에 밀려 콧속으로 들어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
김도영 작가2022년 05월 11일[에세이] 왈츠를 추듯이
연말연시에는 새 수첩을 마련하곤 한다. 요즘엔 휴대전화에 메모장과 달력 기능이 있어 예전만큼 수첩을 자주 쓰게 되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해가 되면 새 수첩에 365일치의 날짜를 적고, 소소한 목표나 허황된 계획을 즐겨 적는다. …
백수린 소설가2022년 02월 10일[에세이] 내 마음의 보청기
“이번에 CT 검사한 것이 많이 안 좋네요.”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선생님, 내가 귀가 잘 안 들려요. 좀 크게 이야기해 줘요.”할아버지는 내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2022년 01월 09일[신동아 에세이]‘위드 코로나’의 어색한 표정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간만에 평일 오전 강남역에서 약속을 잡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에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만남을 자제하고자 여러 명이 모이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단계적 일상회복 조…
이재범 투자전문가 겸 작가2021년 12월 12일‘존재’의 소음[에세이]
우리 집은 안방의 방음이 유난히 허술해서 옆집 안방 소리가 종종 넘어온다. 그동안의 측(側)간 소음 내용으로 추측해 보면, 옆집에는 부모와 장성한 두 딸과 비교적 어린 아들이 사는 것 같다. 그리 화목한 가족은 아니다. 벽을 넘어오…
김경빈 작가2021년 11월 15일공부하지 않는 당신, 내일의 꼰대[신동아 에세이]
좌절과 결핍의 삶이었다. 달릴 때마다 고꾸라졌고, 벌이는 일마다 실패했다. 특정한 시기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성년 이후 내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글쟁이로 사는 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냐’며 대학을 뛰쳐나와 고생을 자초했…
최준영 작가2021년 10월 11일[신동아 에세이] 내일이 없어도 모레가 있는 것처럼
1980년대만 해도 한집에 다른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도 지붕과 마당을 ‘재희네’와 함께 쓰며 살았다. 두 집 모두 개를 키웠다. 밤 기온이 제법 쌀쌀해지는 늦가을 무렵이었다. 재희 아버지는 어디선가 짚단을 가져…
김정호 청주동물원 수의사·‘코끼리 없는 동물원’ 저자2021년 09월 11일아프리카의 시지프
나는 지옥을 보았다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연민과 혐오, 공포와 절망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 전부를 합친 것이기도 했다. 2014년 12월, 에볼라가 창궐하던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한 에볼라 관리센터에 중…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2021년 08월 08일[신동아 에세이] 시간 도둑을 찾아서
시간이 사라졌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바쁘지?”라는 의례적인 질문에도 “너무 바빠서 죽겠어요”라며 자꾸 진심을 드러낸다. 간단한 약속 하나를 잡을 때도 마음속으로는 질문이 서너 개다. ‘이때쯤이면 바쁜 일이 끝이 날까? 이 정도 …
김민철 TBWA KOREA 카피라이터 겸 작가2021년 07월 10일살인? 살인 미수? 응급실에서 갈린다[신동아 에세이]
공단 근처의 숙소에서 폭행 사건이 있었다. A씨는 평소에도 술만 마시면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수면을 방해하는 B씨가 못마땅했다. 둘은 직장 동료였지만 옆방에 살면서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건 당일 B씨는 술을 많이 마셨다. A씨는…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2021년 05월 11일회사에서 잘리던 날
회사에서 잘리던 날, 광화문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망원시장으로 향했다. 늘 다니던 출퇴근길 그대로 버스도 전철도 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동족발에 들러 족발 1인분과 막걸리 한 병을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좁은 방 한가운데…
최고운 작가2020년 10월 11일[에세이] 우리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봄치고 한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고, 이상하고 집요한 피로에 휩싸인 채 마음속으로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생활을 되찾는 거야’라고 자주 되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떠올려보니 도대체 되…
우다영 소설가2020년 09월 04일여름 그 맛
봄치고 춥다 싶더니 성큼 여름이다. 무엇이든 미루고 보는 나는 아직 계절이 뒤섞인 옷장에서 옷을 뽑아 입고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잔다. 그래도 올여름 첫 콩국수는 먹었다. 설컹설컹 씹히는 오이소박이도, 신 김치 쫑쫑 썰어 넣고 참기름…
이진송 작가2020년 07월 27일[정여울 에세이] 내 안의 눈부신 사랑에 눈뜰 때
오래전에 사랑했던 노래의 가사가 마음속에서 다시 예전과는 다른 울림으로 메아리쳐 올 때가 있다. “오래전에 결정해 버렸지요. 나는 결코 누군가의 그늘 아래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그 누구도 나의 …
정여울 문학평론가2020년 07월 12일망고땡과 萬苦땡
하늘이 이렇듯 말짱한 봄날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씨 화창’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서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화 제작을 업으로 삼아서일까. 요즘에는 뉴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
엄주영 영화제작프로듀서2020년 05월 07일너도 나도 전문가 행세하는 사회
사춘기 때, 동네 재개봉관 극장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지금도 잠시 눈을 감으면 동네극장의 풍경이, 냄새가, 사람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인근 동네의 양복점·금은방·예식장 광고가 이어지는데, 굵고 진하게 그린 …
정윤수 문화평론가·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2020년 0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