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로 피륙에 눌러쓴 살의
환자는 피를 뒤집어쓰고 실려왔다. 구급대원은 흉기에 찔린 환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구급카트는 그대로 중환자 구역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환자의 신체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옷가지가 온통 피투성이였고, 그는 양손으로 배를 가리듯 붙잡고 있었다.“환자분. 지금 여기가 어디예요?”
“병원이죠.”
“흉기를 어디에 맞았어요?”
“모르겠어요. 정신이 없어요.”
그의 손을 치우자 누더기가 된 상의가 드러났다. 나는 그의 피 묻은 상의를 걷었다. 명치에 긴 상처가 있었다.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관통 여부와 깊이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의 위와 간이 바깥에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들은 환자가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이고 있었다.
“큰 거즈를 잔뜩 줘요. 소독약이랑.”
상처는 흉기로 인한 것이었다. 흉기는 길고 원만하게 높아지는 형태로 되어 있다. 겉으로는 5cm 정도의 상처일지라도 복강을 관통했을 확률이 높았다. 상처에 손가락을 넣었지만 특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찢어진 장기와 가득 찬 혈액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즉시 CT(컴퓨터 단층촬영)로 확인이 필요했다. 소독약을 바르고 큰 거즈로 상처를 덮으며 다른 상처를 찾았다. 배 쪽의 상처 하나는 찰과상에 그쳤다. 팔에 감긴 붕대를 풀자 예리한 흉기에 베인 살이 드러났다. 생명에 지장을 줄 상처는 아니었다. 환자 옷을 제거하자 목덜미에 커다란 거즈가 붙어 있었다. 거즈를 제거하니 한없이 깊게 벌어진 상처가 나타났다. 환자가 흉기를 막으려고 발버둥 치며 손으로 막아내다가 목덜미에 흉기를 맞고 연이어 배를 찔리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곳에는 흉기를 몸으로 받아낸 사람이 너무 많이 온다. 나는 언젠가부터 상처 부위를 찾을 때마다 순간들이 연결돼 한 편의 삽화로 보였다.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겁이 났다. 환자를 잃으면 안 됐다.
“여기 혈액형 검사 빨리 나갈게요. AB형이라니까, 빨리 확인만 되면 준비할게요. 병원에 있는 보유량 체크해서 일단 모두 준비합니다. 수액 따뜻한 걸로 일단 3L 시작하고, 중심정맥관(수혈, 약물 공급을 목적으로 정맥에 넣는 관) 주세요.”
나는 정맥관을 실은 카트가 날아오는 것을 받아 그대로 환자의 쇄골 아래를 소독하고 넣었다. 환자는 아직도 의식이 있었고 그럭저럭 혈압도 유지됐다. 나쁘지 않은 신호였다. 최대한 빠르게 CT실에 준비를 부탁했다. 흉기가 배 안의 장기를 얼마나 심하게 찢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환자를 CT실로 보냈다.
살리기 위한 사투
[GettyImage]
“일단 나일론 2번 봉합사(絲) 빨리 주세요. 목덜미부터 꿰맬 준비하겠습니다.”
봉합이 준비되는 동안 CT를 확인했다. 목덜미의 자상은 뼈까지 닿을 정도로 깊었지만 상처가 하나라서 당장 봉합해서 지혈하면 될 것 같았다. 이어서 복부 CT를 살폈다. 기적적으로 대량 출혈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면밀히 CT를 들여다봤다. 위와 간 사이로 일부의 장기와 장간막이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의 대동맥에서 약간의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흉기가 대동맥까지 들어간 것이다. 대동맥은 척추뼈 바로 앞에 있다. 흉기는 환자의 복부를 관통했다.
일반외과 선생님을 호출하면서 피 웅덩이를 뒤져 급하게 환자의 목덜미를 꿰맸다. 환자는 혈압이 떨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몸을 뒤집는 일을 도울 정도의 의식이 있었다. 신속하게 봉합하느라 옷에 피가 튀었다. 원칙상 수술실에서 목뒤의 근육층을 살펴가며 봉합해야 했지만, 대동맥에서 출혈이 가속되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었다. 생명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생각해야 했다. 봉합을 마치자 목덜미에서 피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 침대 위에 흡수포를 깔았다.
“이 정도의 피 웅덩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어느덧 외과 당직 선생님이 응급실에 내려왔다. 다행히 외과의 많은 파트 중 유일한 혈관외과 교수님이었다. 즉시 수술이 가능할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목덜미를 봉합하자 혈압은 약간 높은 선에서 유지됐다. 하지만 대동맥 출혈을 확인한 이상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외과 교수님은 즉시 수술을 준비하면서 말했다.
“흉기가 여기까지 닿았네. 나 원 참. 진짜로 사람 배에 흉기를 넣어서…이걸 어떻게 하려고.” 수술방이 준비될 때까지 외과 교수님은 환자 옆에 서서 수혈되는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살점이 잘려나간 팔 뒤의 상처를 봉합했다.
살인과 미수를 가르는 것은 우연
[GettyImage]
팔의 봉합까지 마친 내가 답했다. 조용히 누워 있던 환자는 수술실로 올라갔다. 급박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피 웅덩이에서 떨어진 핏자국을 닦고 치웠다.
그의 수술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술을 마친 외과 교수님은 응급실로 내려와서 나를 찾았다. 이미 해가 뜰 무렵이었다. “대동맥이 찢어져 있었습니다. 배를 열고 손상을 파악하다가 가해자가 배에 흉기를 넣은 채로 뽑아 두 번 더 찔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동맥에 닿았지만 흘러나오는 피가 근육에 막히는 자리였습니다. 조금만 더 찢었어도 즉사였지만 마침 근육으로 막혀서 지혈되고 있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다급하게 처치하느라 응급실에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전해 들은 수술방 상황은 기적적이면서도 끔찍했다. 그럼에도 환자가 살아났으니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피를 뒤집어쓰면서 노력했고 기막히게 운도 따른 것이었다.
아침까지 환자는 살아 있었다. 우리는 어제 목숨을 하나 건져낸 셈이었다. 아침의 퇴근길, 정체된 도로에서 생각했다. 간밤에 우리는 살인 사건도 하나 막았다. 하지만 과연 상대방의 목덜미를 벤 다음 배에 흉기를 넣고 세 번쯤 찌른 사람의 죄목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그 자체로는 살인죄가 아닐까. 조금만 흉기를 왼쪽으로 찔렀으면 환자는 현장에서 죽었거나 병원에 와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백한 살인죄가 성립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그는 살인죄가 아니다. 우리는 그를 살렸으므로 살인죄도 막았다. 한데 그 흉기를 조금 오른쪽으로 찌른 것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 의도는 사람을 흉기로 찌르는 것이었고, 대동맥을 조금 비껴가게 한 것은 운명일 뿐이다.
죽지 않았다고 살인이 아닐까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종종 나온다.“폭행의 피해자 C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기사도 접한다.
“폭행의 피해자 D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타깝게 사망했다.”
두 이야기는 모두 생사를 단정 짓고 있다. 그 근거는 의사의 발언이다. 이 문장들을 읽는 사람은 일종의 명확함마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간은 있다. 누군가가 죽을 사람을 각고의 노력으로 살려내거나 순전히 운이 그를 살려내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벌은 너무나 다르다. C를 찌른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지만 D를 찌른 사람은 살인자다. 그렇다면 어제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저지른 죄와 벌은 일대일로 대칭되지 않는다. 생사 또한 불분명한 경계에서 결정된다. 그 세계에서는 미세한 운과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럼에도 명백한 생과 사의 차이만큼이나 법 또한 단호하다. 살인과 살인미수는 너무나 다르다. 가끔 의사는 생사를 다루기에 이를 결정하도록 강요받는다. 가끔씩 열린 배와 찢어진 장기를 보며 나는 불분명한 경계를 느낀다. 어떤 처벌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인간 사회에서 사람을 죽이면 처벌하는 법이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을 막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살인죄를 막아내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살려야 하니까 살릴 뿐이다. 궁극적으로 살인이었지만 피해자가 살아난다면 살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죄와 벌은 무엇으로 연결돼 있는가. 단순한 규정과 개입하는 누군가의 노력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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