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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그룹은 회생할 것인가

동아그룹은 회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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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건설 문화홍보실 T과장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정기적으로 인근 서점을 찾는 일이다. 매주, 그리고 매월 발행되는 각종 시사잡지들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무실로 배달되는 잡지들을 편하게 받아보며 기사를 챙겼다. 그러나 자금난에 허덕이던 회사가 마침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뼈를 깎는 원가절감 한파가 불어닥쳤고, 그 와중에 정기구독하던 잡지를 모두 끊어야 했다.

서점 주인의 떨떠름한 눈총을 받으며 기사를 베껴쓰다 보면 명색이 대한민국 재계랭킹 11위 그룹 홍보실 사원의 자존심은 볼썽사납게 구겨진다. 하지만 회사의 명줄을 쥔 채권단으로부터 피 같은 돈을 꾸어다 쓰고 있는 형편에 자존심이 무슨 호사인가 싶어 이내 마음을 추스른다. ‘산소 마스크’ 신세를 지고 있는 회사부터 살려놓고 볼 일 아닌가.

“바가지로 물을 달라”

동아그룹은 한국 최초의 워크아웃 기업. 방만한 사업 확장과 차입 경영으로 부채가 4조원대를 넘어선 97년 말 IMF사태를 맞으면서 부도위기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모기업이자 주력계열사인 동아건설이 도급순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

다른 그룹 계열 건설회사들이 아파트 건축과 그룹 자체 공사로 상당한 양의 일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리비아 대수로와 발전소 등 해외 토목공사에 주력했던 동아건설은 국내 공사실적을 올리기 위해 재개발과 재건축 공사를 따내는 데 급급했다. 이 때문에 이주비 등을 지급하느라 종금사 등 제2금융권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단기 자금을 차입할 수밖에 없었고, 외환위기로 국내외 금융사정이 악화되면서 금리가 폭등하고 만기 연장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동아는 98년 초 5개 은행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3600억원의 협조융자를 받았으나, 이 돈으로는 유동성 회복은커녕 단기 차입금을 상환하기에도 모자랐다. 최원석(崔元碩) 회장이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직후인 그해 5월, 53개 금융기관이 다시 6000억원의 3차 협조융자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재계 7위의 기아에 이어 10위권의 동아마저 무너지면 한국 경제의 신인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정책적 배려가 작용했다.

하지만 이 돈은 한꺼번에 지급되지 않고 매일 금융기관에 어음이 돌아오는 대로 조금씩 내주는 형태여서 경영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단비가 되진 못했다.

6월 금융감독위원회는 각 금융기관에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설치,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 워크아웃을 실시하도록 했는데, 이를 계기로 동아그룹의 워크아웃 계획이 가시화했다. 경제관료와 기업인을 지낸 고병우씨(高炳佑·67)가 채권은행단 추천으로 6월5일 동아그룹 경영총괄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은행장들을 찾아다니며 3차 협조융자금을 한꺼번에 달라고 사정했다. “바싹 물이 마른 펌프에 바가지로 물을 퍼부어야 다시 물을 뿜어올리지, 주전자로 졸졸 부어서야 물이 올라오겠느냐”고 설득해 은행장과 금감위의 승인을 얻어냈다.

이어 7월에는 새로운 경영진이 구성됐다. 97년 말 129명이던 임원진은 42명으로 축소됐다. 이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을 검토한 채권단은 8월31일 동아그룹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최종 확정했다. ‘동아건설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매각해 경영을 정상화하라’는 조건이었다. 이로써 동아그룹은 금감위의 ‘기업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금융기관 협약’ 지침에 따른 국내 1호 워크아웃 기업이 됐다.

그 후 동아의 자구 노력이 시작된 지 1년 반. 중간성적표는 어떤 내용일까. 구조조정, 부채 축소, 영업수익 증대를 통해 내실 있는 건설전문그룹으로 거듭나겠다고 한 그들의 약속은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99년 상반기 흑자 전환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엇갈린다. 99년 4월 청와대는 당시 워크아웃이 진행중이던 89개 업체 가운데 동아건설 등 8개사 대표를 ‘격려 오찬’에 초청했다. 동아건설은 금감위와 기업구조조정위원회로부터 ‘전문경영인체제로 경영지배구조를 바꾼 후 각종 자구 노력을 통해 성공적인 기업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초청기업에 선정됐다.

동아건설은 워크아웃 10개월 만인 99년 상반기 결산에서 2500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내고 흑자로 돌아섰다. 인천 매립지 등 자산 매각을 통한 특별이익을 제외하면 여전히 적자였지만, 당시 건설경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당기 영업이익이 250억원 적자에서 440억원 흑자로 전환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반기엔 경상부문에서도 흑자로 돌아서리라는 게 동아측의 전망이다.

그러나 금감위는 6월 말 기준으로 동아의 자구계획 이행률이 21%밖에 되지 않았다고 상반된 평가를 내리며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워크아웃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니만큼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분명한 것은 동아가 건설 하나만은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 상당한 대가를 치렀으며,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경영혁신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는 21개 계열사 가운데 동아증권 동아TV 공영토건 서원레저 등 13개사를 매각하거나 정리·합병했다. 동아건설을 제외하면 남은 회사는 대한통운 계열 3개사를 비롯, 대전축구팀과 대둔산레저(골프장), 동아주택할부금융 등 가격조건이 맞지 않거나 원매자가 나서지 않아 매각이 쉽지 않은 업체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문제는 대한통운이다.

금감위가 동아의 자구계획 이행실적이 부진하다고 지적한 것은 대한통운을 아직 매각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워크아웃 계획에서 채권은행단이 99년 3월까지로 시한까지 못박아가며 대한통운의 매각을 조건으로 달았기 때문. 동아는 이 조건을 지키지 않은 탓에 신규 융자금에 대해 페널티 금리(16%)를 적용받아야 했다.

팔 만한 건 다 팔았다

이에 대해 동아측은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며 대한통운을 사겠다고 나선 곳이 없어 못 팔고 있을 뿐이다. 흑자를 내고 있는 대한통운을 1조원 아래의 가격으로 팔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고병우 회장은 “잘 되는 회사를 제값 받고 팔아서 빚을 갚고 주력기업(동아건설) 살리자는 게 워크아웃인데, 알토란 같은 회사를 헐값에 팔아서 어떻게 부채를 줄이라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동아가 이처럼 대한통운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자구계획에 따라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 워크아웃 기업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빚 갚을 돈을 마련하느라 급급했던데다 경기침체로 원매자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매각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팔다 보니 매각가격이 장부가격보다 훨씬 낮아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할수록 오히려 적자 규모가 더 커졌다.

예컨대 아파트를 지으려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포기한 땅을 IMF체제 이전에 매입한 가격의 절반 값에 팔게 되니 기업결손은 그만큼 더 늘었고, 매각대금은 땅을 담보자산으로 갖고 있는 은행으로 고스란히 들어갔으며, 매각에 따른 세금은 세금대로 내야 했다. 그렇다고 밑천 생각에 마냥 떠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각종 경비와 세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 이사장 출신인 고병우 회장은 특히 동아증권 지분을 98년 7월 주당 1500원의 헐값에 팔아치운 데 대해 아쉬움이 컸다. 증권인으로서 ‘전공과목’을 팔아치운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동아건설을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아증권은 매각된 지 불과 몇 달 후에 기업가치가 열 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런 뼈아픈 경험 때문에 대한통운만은 값을 제대로 받고 팔겠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

이렇게 형제들이 팔려나가는 마당에 동아건설이라고 구조조정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노동조합의 워크아웃 동의서에는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을 포함한 비용절감 방안이 명문화돼 있었다. 혹독한 군살빼기가 시작됐다. 97년 말 6500여명이던 직원은 99년 9월 3900명으로 40%나 줄었다. 당장 퇴직금으로 줄 돈이 없어 퇴사 후 직장을 구한 사람에게는 6개월 후,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3개월 후에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살아남은 자’들도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민주노총에서도 강성 노조로 분류되던 동아건설 노조는 2000년 말까지 상여금 800% 중 600%를 반납하기로 하는 등 임금과 각종 복리후생비 반납을 통해 2400억원의 경비를 절감하기로 결의했다. 장원윤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간에는 ‘그렇게 다 내줄 바에야 차라리 부도 내고 법정관리로 가자’는 반발도 있었지만, ‘부실 경영을 방관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설득해 어렵사리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회사측은 이와 같은 고통 분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전 임직원에게 1인당 평균 1200주씩의 스톡옵션을 주기로 했다.

고병우 회장 또한 상여금과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대신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기로 채권금융단과 계약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고회장이 스톡옵션을 받으려면 3가지 경영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즉 계약기간(3년) 안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고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며 ▲주가가 액면가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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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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