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회 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남미 빈민가 사목
프란치스코 교황 개혁 이으며 갈등 봉합 예상
노동, 전쟁 등 사회문제 적극 참여

5월 8일(현지 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선출 직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강복의 발코니’에서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P G 맥스웰-스튜어트의 ‘교황의 역사’에 따르면 교황을 의미하는 포프(Pope)는 어린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에서 유래한 그리스어다. 라틴어에서 이를 차용하면서 존칭으로 바뀌었다. 3세기에는 고위 성직자 존칭으로, 8세기 이후에는 ‘로마의 주교’만을 일컫는 용어로 국한됐다.
‘성경’ 마태오 복음서에는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초대 교회가 반석(베드로) 위에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실제 성베드로성당은 베드로가 순교한 터에 세워졌으며 교황 제도는 성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현 267대 교황까지 이어진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당신 교회의 보이는 초석으로 삼으셨으며 그에게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교회의 목자이다”라고 소개한다. 교황의 문장(紋章)은 하늘나라의 열쇠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단일 종교, 단일 교단으로서는 가장 많은 14억 신자를 보유했다. 세속 국가이기도 한 바티칸은 영토 면적 기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소프트파워 면에서는 미국에 견줄 만한 영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하느님의 지상 대리인 교황은 교회의 수장이자 바티칸의 국가원수다.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역대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림자에서 현 교황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개혁을 이끌었던 전임자의 행보와 비교해 현 교황이 이끌어갈 가톨릭교회의 미래를 두고서 예측과 추측이 제기됐다. 레오 14세는 어떤 인물일까.

5월 10일(현지 시간) 페루 치클라요에서 열린 교황 레오 14세를 기리는 미사에서 교황이 새로 선출된 것을 신자들이 축하하고 있다. AP/뉴시스
① 미국 시카고 출신 혼혈인 교황
레오 14세는 첫 미국 출신 교황이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 미국 출신은 교황 선거에서 터부시해 왔다. 세속 세계질서에 이어 전 세계 14억 신자를 보유한 기독교 최대 교파 가톨릭교회까지 미국의 영향력하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교황 복장을 한 인공지능(AI) 합성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전임 교황 선종 후에는 차기 교황에 대한 선호도를 묻자 “내가 교황이 되고 싶다”며 “그게 나의 첫 번째 선택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가 교황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가톨릭 모욕이라는 비판도 받았다.본명이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인 신임 교황은 일리노이주 시카고 태생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혼혈, 어머니는 스페인계다. 부모는 모두 교사였다. 펜실베이니아주 빌라노바대학(Villanova University)과 시카고의 가톨릭신학연합대학원대학(Catholic Theological Union) 졸업 후 로마 유학 중 사제 서품을 받았다. 트럼프는 교황 선출 후 “그가 첫 번째 미국인 교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정말로 영광이다”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첫 미국 출신 교황과 트럼프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레오 14세는 기후 위기 대응, 이민자 문제 등 글로벌 현안에서 트럼프와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뉴욕타임스’는 “레오 14세는 미국인이지만 미국 가톨릭 주류와는 거리를 둬온 인물이다. 북미 출신이지만 남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를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교황 레오 14세가 5월 9일(현지 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새 교황으로 선출한 추기경들에게 “당신들은 십자가를 지고 축복을 받도록 나를 불렀다”면서 추기경들에게 가톨릭 신앙 전파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AP/뉴시스
② 페루 빈민가에서 20년 사목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남미 출신이라면 현 레오 14세는 첫 북미 출신 교황이다. 본산 유럽에서 가톨릭은 신자 수 감소, 미사 참례(參禮)율 저하, 사제 서원(誓願)자 감소 등 활력을 잃어가는 반면 미주(美洲)는 새로운 중심이다. 전체 신자의 약 절반이 거주한다. ‘교황청 2025년 연감’에 의하면 남아메리카 27.4%, 북아메리카 6.6%, 중앙아메리카 13.8%다. 그중 브라질 가톨릭 신자는 1억8200만 명으로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으며 전 세계 신자의 13%를 차지했다. 미국 가톨릭 신자 수는 브라질, 멕시코, 필리핀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점하며 약 5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내 단일 개신교단 중 가톨릭보다 많은 교인을 보유한 교단은 없다.레오 14세는 미국, 페루, 바티칸 3중 국적이다. 페루 빈민가에서 20년 사목하며 소외된 이웃을 돌봤다. 2015년 페루 시민권을 획득했다. 남미는 해방신학의 고향이다. 전임 프란치스코, 현 레오 14세 모두 공산주의와 해방신학에는 선을 그었지만, 진보적이고 사회참여적 성향은 이어받았다는 평가다.
③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가 택한 남자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의 가운데 이름 프랜시스(Francis)는 프란치스코(Franciscus)와 어원이 같다. 작은형제회 수도회를 창립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ensi)에서 유래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무너져 가는 나의 교회를 고치거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서 평생 교회를 섬기게 됐다. 평생 가난한 사람의 벗으로서 청빈한 삶을 살았다. 마리오 베르골리오(Mario Bergoglio) 추기경도 교황 선출 후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라”는 클라우디오 우메스 브라질 추기경의 말을 듣고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했다.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의 남자’다. 남미 페루에서 장기간 사역하던 그를 전임 교황이 발탁했다. 교황 즉위 다음 해인 2014년 주교에 서품됐고 2023년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했다. 같은 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주교부 장관은 전 세계 주교 후보자를 평가·추천하는 핵심 보직이다. 자연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로 거론됐다.

5월 12일(현지 시간) 교황 레오 14세가 바티칸의 바오로 6세 홀에서 국제 언론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 AP/뉴시스
④ 첫 아우구스티노회 수도회 출신 교황
레오 14세는 아우구스티노회 수사 신부다. ‘고백록’으로 널리 알려진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노의 삶과 신앙을 모범으로 삼고 실천하는 수도회다. 교황은 아우구스티노의 삶에 매료되어 수도회에 입회, 1981년 종신서원을 했다. 이후 페루에서 사역했고, 1998년 아우구스티노회 시카고 관구장(管區長), 2001년 총장으로 임명됐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다.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레오 14세 교황은 첫 아우구스티노스회 출신 교황이라는 기록을 썼다. 레오 14세의 교황 문장 가운데 있는 화살에 꿰뚫린 불타는 심장과 닫힌 책은 아우구스티노의 상징물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이 마니교에서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한 경험을 “하느님 당신의 말씀으로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Vulnerasti cor meum verbo tuo)”라고 표현했다. 전임 교황의 문장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리스어 ‘ΙΗΣΟΥΣ(예수)’의 첫 세 글자이자 ‘인간의 구원자 예수(Iesus Hominum Salvator)’의 첫 글자인 예수회의 상징 ‘IHS’가 새겨져 있다.
⑤ 역대 사회참여적 교황이 주로 쓴 교황명 ‘레오’
교황명 레오(Leo)는 라틴어로 사자를 의미한다. 현 교황은 14번째로 ‘레오’를 택했다. 교황명은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이상적 성인이나 전임자 이름을 택한다. 이 이름을 쓴 역대 교황은 사회참여적 개혁자의 모습을 보였다. 직전의 레오 교황은 1878~1903년 25년 재임한 레오 13세다. 그는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했다. ‘자본과 노동의 권리와 의무’라고도 하는 회칙에서는 노동계급 대다수를 부당하게 압박하는 불행과 비참함을 개선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노동조합 결정권을 지지하면서도 사회주의, 무제한적 자본주의를 거부했다. ‘새로운 사태’는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의 기본 텍스트로 평가받는다.레오 14세는 선출 후 첫 추기경단 공식 알현에서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AI)의 발전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 레오를 교황명으로 선택한 이유라고 했다. 레오 13세가 자본가들의 착취라는 현실 앞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유혹에 직면했던 노동자에게 메시지를 던졌다면 현 교황은 AI라는 신기술 앞에서 흔들리는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각별한 레오 14세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금 100달러만을 남기고 떠났다. 2013년 즉위 후 교황 월급을 받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교회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제시하고 실천했다.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포용해 온 레오 14세도 닮은꼴이다. 그는 주교이자 수도회 총장으로서 청빈과 연대, 지역사회 중심 교회의 모델을 제시했다. 교회의 권위주의에 거리감을 두고 ‘경청하는 리더십’을 실천했다.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핵심 가치인 사회 정의와 연대에 대한 지지를 보여준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찬가지로 빈자와 이주민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에딘손 파르판(Edinson Farfán) 페루 치클라요 교구장은 “학업을 마치고 페루 북부 훌루카나스에 있는 선교단에 도착했을 때 현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페루에 도착한 순간부터 페루와 사랑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⑦ 신학적으로 중도적이고 신중한 성향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중도 성향으로서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 재임 동안 이민자와 빈곤층을 보듬은 것은 물론 동성 커플 축복 허용, 교황청 고위직 여성 임명,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Synod)에 평신도 참여 허용, 기혼 사제 제한적 허용 등 교회 내 금기들을 깨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진보파의 환호를 받았지만 보수파의 반발을 샀고, 이는 교회 분열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 눈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은 주교와 추기경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약화했고 이런 불만은 콘클라베 전 열린 추기경들의 사전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레오 14세는 주교 선출을 심사하는 주교부 위원에 여성 3명을 추가하는 등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작업을 도왔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중도적이고 신중한 편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레오 14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단 4번의 투표로 선출된 건 추기경들이 그런 평가에 동의했음을 시사한다고도 했다. 페루에서 사역하던 시절 평가도 일치한다. 페루 교회는 좌파 해방신학 지지자들과 정통적 가톨릭 사이 갈등이 종종 분출되기도 했지만, 레오 14세는 흔들림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가디언’은 ”동료들로부터 파벌 간 중재에 능한 유쾌한 중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레오 14세는 선출 후 발코니 인사에서 예복인 흰색 수단 위에 붉은색 어깨 망토인 모제타를 모두 입은 전통을 따른 복장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전임 교황은 ‘화려하다’는 이유로 모제타를 착용하지 않았다. 영국 로이터는 “레오 14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통을 따르지만 자신이 새로운 다른 교황임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개혁 성향이지만 보수적 전통도 승계하겠다는 의사표시라는 분석도 있다.

레오 14세 교황(가운데)이 2002년 한국을 방문해 이기훈 신부(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촬영한 사진.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한국지부

레오 14세 교황이 2002년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해 인천 전동수도원에서 수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한국지부
“주교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고난 함께 나눠야”
레오 14세는 지난해 10월 바티칸 뉴스 인터뷰에서는 “주교는 자신만의 왕국에 머무는 작은 왕자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걷고, 고난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참여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빈곤, 이민자 문제 최전선에서 사목했던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4월 당시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자신의 SNS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주자 추방 정책에 대한 비판 논평을 공유한 뒤 이를 옹호하고자 J D 밴스 부통령이 들고나온 가톨릭 교리 해석에 “틀렸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5월 11일 성베드로 성당에서 행한 부활절 삼종기도에서 “세계 강대국에 다시 한번 호소한다.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레오 14세는 한국과 인연이 있다. 아우구스티노회 총장 시절인 2002년, 2003년, 2005년, 2008년, 2010년 총 다섯 차례 방한했다. 그를 만났던 사제·수사들은 ‘작은 캐리어 가방에 옷 몇 벌만 넣어와서 세탁도 남에게 맡기지 않던 분’으로 기억한다. 아우구스티노회 한국지부 조우형 신부는 “언제나 따듯한 미소로 형제들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형제들의 물음에 귀 기울이시고 답해 주시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그는 2027년 한국 방문이 예정돼 있다.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모이는 세계청년대회(WYD)가 그해 8월 서울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