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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교전략’으로 단계적 군축을

군비통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가교전략’으로 단계적 군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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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한의 군비통제 문제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뚜껑을 열면 다양한 방안과 모델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군비통제가 허상의 그늘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는 필요성이 없어서도 방안이 없어서도 아니다. 남북관계의 역학과 통일문제, 한·미 관계와 주변국의 한반도 정책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분단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 채 새천년을 맞았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도 우리의 그늘진 마음 한편에는 남북의 군사적 대치라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 상존해온 냉전구조를 허무는 일은 우리 민족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관계를 조성하기 위하여 남북한 군비통제(軍備統制)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비통제가 그 자체로서 국가안보를 위한 목적은 될 수 없지만 남북한이 협력하여 공동의 안보를 추구함으로써 민족 전체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군비통제 문제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뚜껑을 열면 다양한 방안과 모델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군비통제가 허상의 그늘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는 필요성이 없어서도 방안이 없어서도 아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의 역학과 통일문제, 한·미 관계와 주변국의 한반도 정책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도외시한 단순한 기계론적 방안은 군비통제 실현의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선 과거 미·소와 유럽의 군비통제 경험이 주는 시사점과 이를 한반도에 적용할 경우 한계가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논의해 온 군비통제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나 형태에 대한 각론의 대부분은 과거 동서간의 군비통제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 군비통제 사례, 한반도 적용엔 한계

과거 미·소와 유럽의 경험이 남북한의 군비통제에 시사해 주는 바는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군비통제에 관한 한 맹아(盲兒)적 상태에 있는 남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필요 조건과 전개방식에 대한 교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과거 미·소 혹은 유럽의 경험은 관련국간에 군비통제 논의가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들간에 정치·군사적 현상유지에 대한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유럽에서 재래식 군비통제를 가능하게 한 시금석이 된 1975년 ‘헬싱키 최종합의서’에서 참가국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제원칙으로 주권의 평등과 주권의 인정, 국경 불가침, 국가의 영토보존 존중 등을 일차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군비통제 논의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군비통제 당사국간에 가능하면 군사적 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 유리하다. 군사적 대칭성이란 보유한 병력의 구조나 무기체계의 종류, 동맹구조 등이 서로 대등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군비통제 대상이 되는 병력과 무기 및 장비들을 산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의 ‘재래식 무기 감축협상’(CFE)을 보면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과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국가들 간에 전차, 장갑차, 화포, 전투기, 공격용 헬기 등 5대 재래식 무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미·소간의 핵무기 통제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같은 핵전력이라도 미국은 주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소련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양무기체계는 모두 군사적 효과 면에서 대등성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 군비통제 방식은 ‘대칭적 상호주의’(symmetrical recip-rocity) 모델이라 규정할 수 있다. 즉 군비를 통제하는 방법에 있어서 상호 대등한 전력에 대하여 대칭적으로 통제하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통제 수단도 당사국간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사적 수단으로 한정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유의할 때 당장에 전통적 방식의 군비통제 모델을 남북한에 적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한간에 뚜렷한 냉전적 대결 구도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전통적 군비통제 방식이 상정하고 있는 전제조건 및 구조와는 매우 상이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남북한 쌍방간 정치·군사적 현상유지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상이한 위협인식 구조, 비대칭적인 쌍무적 군사동맹관계, 군사력의 구조의 비대칭성 등의 제반 요인들은 결국 남북한의 군비통제를 위한 당국자간의 진지한 논의조차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남북한간에 이미 합의된 ‘기본합의서’나 ‘비핵화 공동선언’이 한치의 진전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상당 부분은 이러한 요인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일단 ‘두고 보는’ 전략도 유용한 방법

그렇다면 남북한의 군비통제에는 일단 ‘두고 보는’(wait and see) 전략도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남북한 군비통제 논의와 관련한 두 가지의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대량살상무기를 중심으로 북한의 군사능력이 강화됨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대북 경제지원 및 협력의 필요성은 오히려 증대되는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정작 평화와 협력을 강구해야 하는 남북한 당사자간의 군비통제 논의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한반도 군사문제의 논의가 미·북한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하면 평화를 위해 던진 경협의 씨앗이 한반도 안보 불안을 전혀 감소시키지 못한 채 향후 대북 협상에서 주도권을 상실케 할 우려마저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군비통제 기제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 정부는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 양상에 따라 다음 두 가지의 군비통제 방식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노력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일종의 ‘가교전략’(bridging strategy)으로서 ‘비대칭적 상호주의’ 모델에 입각한 군비통제를 실시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남북한 평화전략으로 ‘대칭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비통제를 추진하는 것이다. 전자는 남북관계가 현재처럼 군사적 대결국면을 보이는 가운데 부분적인 경제협력 및 교류가 이루어지는 국면에 적합한 방안이며, 후자는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는, 즉 남북한의 ‘기본합의서’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점에서 상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부연하면 ‘대칭적 상호주의’ 방식이 전통적인 군비통제 모델이 지향하는 방법이라면 ‘비대칭적 상호주의’ 방식은 탈냉전 시대에 부각되고 있는 방안이다.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비통제는 통제대상을 선정하는 데 군비통제 관련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특정 군사력만을 통제대상으로 하는 비대칭적 방법을 채택하며, 통제수단도 비단 군사적 수단만이 아닌 정치·경제적 기제와 같은 비군사적 수단이 동원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전통적 군비통제 방식이 관련국간 군사적 측면의 통제와 제한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전쟁의 위험을 방지하고자 하였다면, 비대칭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비통제는 군사적 측면은 물론 비군사적 차원에서의 무력사용 동기 자체를 감소시키려는 데 있다.

가교전략으로서의 ‘비대칭적 상호주의’

탈냉전 시대에 들어 이러한 방법이 주목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군비통제 대상지역으로 남북한과 같은 지역분쟁국가들이 대두되는 가운데, 이들 국가간에 군비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핵심전력에 대한 대칭성이 미약하고, 이들 분쟁국가간에 형성되어 있는 복잡한 갈등구조 등은 냉전하의 대칭적 상호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군비통제의 전제조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학자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이들 국가간 군비통제에는 먼저 군사적 비대칭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가교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가교전략의 핵심은 복잡한 갈등구조와 함께 상이한 군사력의 구조를 지닌 지역분쟁 국가간 혹은 특정 지역분쟁 국가와 강대국간에 군비통제를 위한 협상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인 협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쌍방간 군사적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군비통제가 이루어지려면 어느 일방의 군사적 양보가 필수적이고 이러한 양보는 이에 상응하는 정치 혹은 경제적 보상이 수반될 때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대칭적 상호주의’ 방식을 적용한 군비통제 사례로는 미국의 대러시아 안보지원 정책이나 제네바 합의를 통한 대북 핵통제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991년부터 구소련의 해체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취지하에 구소련의 대량살상무기 해체에 대한 지원을 골자로 하는 ‘넌-루거 법안’(Nunn-Lugar legislation)을 실행중이다. ‘협력적 위협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 정책 혹은 제안자의 이름을 따서 ‘넌-루거 계획’(Nunn-Lugar Program)으로 명명되는데 이 계획은 크게 2개 영역으로 나뉘어 수행되고 있다.

첫째는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대량살상무기의 해체와 폐기 지원이다. 구소련의 대량살상무기를 인도받은 4개의 신생 독립국들에게 대량살상무기, 발사장치, 관련 장비들의 폐기작업에 요구되는 장비와 기술, 그리고 용역 일체를 제공함으로써 보유무기의 폐기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 의한 구체적인 성과는 다음과 같다 ▲1997년 4월로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가 보유하고 있던 약 3400개의 핵탄두를 모두 철거해 러시아로 이전(향후 폐기 예정)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에 의거, 러시아의 배치된 핵미사일 중 1200여 개의 전략 핵탄두 제거 ▲대륙간탄도탄(ICBM) 150기와 격납고(Silo)의 폐기처분 ▲핵잠수함 8척의 퇴역을 포함해 총 128기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장치 철거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1997년 11월 러시아가 화학무기금지협정에 조인함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가 보유한 4만여t의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지원방안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는 러시아의 핵무기와 핵물질의 안전한 저장과 관리능력 향상, 핵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원조이다. 우선 핵무기와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러시아의 핵무기 관리능력 개선을 위한 컴퓨터 및 컴퓨터 기술훈련의 제공 ▲핵물질 저장고 건립에 필요한 설계 및 건축 지원업무를 담당할 용역업체 선정 지원 ▲핵물질 저장소에 대한 지원사항을 감독할 파견팀 지원 ▲핵무기 운송차량에 대한 장갑장치 설치, 운송열차에 대한 안전장비의 설치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위해 채택한 대북 경수로 지원정책도 비대칭적 군비통제 방식이 적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핵통제의 바탕이 되는 제네바 합의의 요체는 미국측이 확약한 경제·정치적 보상의 반대급부로 북한이 자신들의 핵시설 동결 및 궁극적인 해체에 동의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측은 북한이 자신들의 핵활동 동결, 즉 가동중인 5MW 흑연감속 원자로의 가동 중단과 건설중인 50MW·200MW 원자로 건설 중단, 방사화학실험실 봉인 및 추후 해체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대북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지원, 미·북한 관계개선, 북한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제공 등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의 보상책을 강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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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환 육사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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