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붕괴 조짐에도 보강 못 하는 韓 건설 현장 구조적 문제”

[특집③ | ‘싱크홀 패닉’ 불안한 시민들] 대담 - 신종호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 정상섬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5-06-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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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크홀? 정확히는 ‘지하공간 붕괴’

    • 공사 시 토사 설계량과 실제 굴착량 비교해 첫 예측

    • 시추 등 검사하지만 붕괴 위험성 알려면 공사 해봐야

    • 비용·시간문제로 설계변경 못 하는 관행…“알면서 공사”

    • 日, 사고 적은 이유는 공사비와 시간 더 쓰기 때문

    • 현장 상황 맞게 설계 변경해 가며 공사 진행해야

    신종호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좌). 정상섬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우). 홍중식 기자

    신종호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좌). 정상섬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우). 홍중식 기자

    2085번. 지난 10년(2014~2023)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땅 꺼짐, 이른바 ‘싱크홀’이라 불리는 사고 발생 건수다. 올해에만 벌써 11건의 싱크홀 사고가 있었다.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서울대명초 앞 사거리에선 가로, 세로, 깊이 20m가량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4월 11일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서는 지하철 공사 현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싱크홀 사고가 빈번하자 국민적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3월 25일~4월 22일 약 한 달간 서울시가 접수한 싱크홀 관련 신고는 1450건에 달한다. 

    커지는 불안감에 정치권도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5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싱크홀과 공사장 안전사고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노후 상하수도관은 조기 정비하고 지하 공사에 대한 사전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도 4월 23일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 확대, 하수관 정비 예산 2배 증액, 지반 침하 예측 신기술 도입, 전담 조직 신설 등 전방위적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갈수록 빈번해지고 규모도 커지는 싱크홀 사고를 이 같은 대책으로 막을 수 있을까. 행정지도와 사전 점검을 강화하면 예방이 될까. 그동안 감독기관과 건설업체는 이를 몰랐을까.  

    기자는 매년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의 진짜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 대표 토목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5월 2일 신종호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와 정상섬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를 신 교수 연구실에서 함께 만났다. 기술고등고시(17회) 출신인 신 교수는 과거 서울시에서 청계천복원 담당관으로 일했고, 대통령국토해양비서관(이명박 정부)으로 재직한, 이 분야 전문가로 2016년에는 한국터널지하공간 학회장을 맡았다. 정 교수는 한국지반공학회 회장을 지낸 지반 전문가다. 

    두 전문가는 “‘싱크홀’이라는 명칭이 잘못됐다”며 “정확히는 지하공간 붕괴”라고 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그들과의 일문일답. 



    지하공간 붕괴, 예측보다 중요한 관리

    지하공간 붕괴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정상섬 교수_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자연발생이다. 지하 석회암이 물에 닿아 녹으며 지반이 가라앉는 경우가 있다. 최근 수도권에서는 자연적 이유로 지하공간이 붕괴한 사례가 적다. 두 번째는 노후 상하수도관 문제다. 노후 상하수도관에서 물이 유출되고, 그에 따라 지하 지반이 무너지는 경우다. 이 경우 무너지는 규모가 크지는 않다. 세 번째는 공사로 인한 붕괴다. 지하 공사 중에 지하수가 유출되거나 필요 이상의 토사가 유출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지반 내 공동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GPR 탐사 확대, 하수관 정비, 지반 침하 예측 기술 등으로 사전 붕괴를 예방할 수 있나.

    신종호 교수_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노후 수도관으로 인한 붕괴는 미리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형 붕괴는 이것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렵다.”

    정상섬 교수_ “GPR로 탐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GPR로는 최장지하 5m 정도의 지반 상태까지 확인할 수 있고 그 아래는 확인이 어렵다.”

    동아일보가 2016년 12월~2025년 3월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지하공간 붕괴 사고(1422건)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고의 51.4%(732건)는 상하수도관 누수로 나타났다. 지하 공사 부실 36.5%(520건), 원인 불명확 등 기타 원인이 11.9%(170건)였다. 

    그러나 깊이 5m 이상의 대형 지하공간 붕괴 사고로 한정하면 결과는 다르다. 지하 공사 부실이 15건(42.5%)으로 가장 많았고, 상하수도관 누수는 8건(22.9%)이었다. 나머지 12건은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더 깊은 곳에 붕괴 원인이 있다면 이를 알아낼 방법은 없는 건가. 

    정상섬 교수_ “통계에 기대면 일부 예측이 가능하다. 관련 통계를 보면, 지하공간 붕괴가 발생한 곳 100m 이내에서 붕괴가 다시 발생할 확률이 60~70%에 달한다. 이외에도 지하공간 분석 기술을 고도화하고 관련 관측망을 갖춘다면 붕괴 사고를 줄일 수는 있다.”

    신종호 교수_ “예측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공사 현장 토사 관리다. 특히 지하 공사로 생기는 침하의 경우 관리만으로도 일부 예측이 가능하다.”

    토사 확인하면 붕괴 조짐 확인 가능

    어떻게 예측할 수 있나.

    신종호 교수_ “지하 공사를 할 때는 필연적으로 땅을 파 들어가야 한다. 이때 나오는 토사의 양을 확인해야 한다. 파 들어간 공간보다 토사의 양이 많으면 어디선가 토사가 유출된다는 의미다. 즉 지하에 빈 공간이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 이를 통해 붕괴 조짐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8월) 서울 송파구 싱크홀 사고도 토사를 관리하지 못해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다.” 

    두 전문가는 2014년 8월 5일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 싱크홀 사고를 예로 들었다. 당시 석촌지하차도 인근 도로에서 가로 1m, 세로 1.5m, 깊이 3m가량의 싱크홀이 발생했는데, 흙을 부어 구멍을 메웠지만 같은 지점에서 깊이 4~5m 길이 80m의 거대 공동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싱크홀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약 800억 원을 들여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구축했지만 땅속 공동, 지반침하 이력, 지하수 흐름 같은 정보가 포함되지 않아 지도는 무용지물이 됐다. 

    신 교수는 당시 공사 현장에서도 설계 굴착량과 실제 굴착한 토사량의 차이가 컸다고 지적한다. ‘석촌지하차도 동공 발생원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설계 굴착량은 2만3842㎥. 실제 굴착 토사량은 2만7159㎥였다. 14% ‘과굴착’이 있었다. 설계량 이상 토사가 나왔다면 어딘가에는 공동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설계량만큼 토사가 나와야 하는데 땅 꺼짐 현상으로 지표면에 있던 토사가 지하공간으로 흘러와 그만큼을 토사를 더 파냈다는 뜻이 된다.   

    공사 전에 붕괴 조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나.

    정상섬 교수_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에 의거해 공사 전 지반 조사를 거쳐야 한다. 이를 통과해야 공사를 할 수 있다.”

    신종호 교수_ “문제는 지반 조사만으로는 붕괴 위험을 완전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반 조사만으로는 붕괴 조짐을 확인하기 어려운 이유가 궁금하다.

    신종호 교수_ “설계 전 단계에서 지반 조사를 하는데, 보통 공사할 곳 근처를 시추해 지반을 확인한다. 공사하는 곳과는 조금은 떨어져 있는 곳이기에 지반 성질이 다르다. 지하 공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땅은 파봐야 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반 조사를 마치고 공사를 시작했어도 붕괴 조짐이 있다면 공사를 멈춰야 하는 거 아닌가.

    신종호 교수_ “통상 보강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설계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보강은 쉬운 편인가.

    신종호 교수_ “어렵다. 보강을 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추가 비용을 산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이 지난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지하에 공기가 닿는 순간 풍화가 시작된다. 지하 공사에서 속도가 중요한 이유다. 공사가 늦어질수록 공사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보강이 필요하더라도 쉽사리 보강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2014년 8월 5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배명사거리 왕복 6차선도로 한복판에 발생한 싱크홀을 메우는 모습, 동아DB

    2014년 8월 5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배명사거리 왕복 6차선도로 한복판에 발생한 싱크홀을 메우는 모습, 동아DB

    설계-감리-시공 공사 체계 전반이 문제

    그렇다면 기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설계를 바꾸는 일이 더 어려울 것 같다. 

    정상섬 교수_ “사실은 설계-감리-시공으로 이어지는 공사 체계 전반에 문제가 있다.”

    신종호 교수_ “앞서 설명했듯 사전 지반 조사를 바탕으로 설계를 하지만 조사한 지반과 공사 지역의 지반이 다를 경우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 보강 허가도 어려운데 설계변경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지반과 다른 설계로 공사를 하게 되니 지하공간이 점차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하 공사를 담당했던 업계 관계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30년 경력의 한 토목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 “설계만 바꿀 수 있다면 싱크홀 붕괴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과거 지하철 공사장 붕괴 사고 등도 설계와 현장 상황이 동떨어진 경우가 많지만 설계변경이 거의 불가해 그대로 공사를 밀고 나가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공사 체계가 문제라는 이야기인데, 이를 고칠 방안은 없나.

    정상섬 교수_ “2022년부터 지하안전법이 시행되며 사고를 예방하는 제도는 갖춰졌다. 문제는 사람과 기술이다. 아직은 사전 검사만으로는 완벽하게 지하 붕괴 사고를 예측할 수 없다.”

    신종호 교수_ “특히 설계-감리 과정에 변화가 필요하다. 지상에 올라오는 건축물이라면 감리와 설계 과정에서 붕괴 위험성을 대부분 잡아낼 수 있지만 지하는 다르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설계-감리 담당자들이 현장에 직접 찾아와 실태를 확인하고 설계를 고치거나, 감리 내용을 듣고 설계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설업체가 현장 상황에 맞게 보강하고 설계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정상섬 교수_ “그렇다. 가까운 일본은 지진이 많아 (지하 공사를 하기엔) 한국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사고 빈도수는 훨씬 적다. 이유는 하나다. 공사비와 시간을 더 쓴다. 시간과 비용을 들인 만큼 지하 공간은 안전해진다.”

    신종호 교수_ “안전을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긴 기간 보면 비용도 크게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계와 감리 단계에서 수정을 거치며 그만큼 설계, 감리 기술이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경직된 지하 건설 계약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다.”

    신 교수는 1990년~1996년 6년여간 진행된 서울 지하철 5~8호선 공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공사 당시 감리를 맡았던 회사는 오스트리아의 지리 공간 전문 감리 업체 지오컨설트(GC)였다. 당시 내가 이 회사에서 파견된 인력을 관리했다. 이들은 감리 업무만 하는 사람들이었는데도 공사 현장에 익숙했다. 현장을 찾아보고 취약점을 바로 파악해 알려줬다. 이 공사를 경험하며 한국의 지하 터널 공사 기술은 크게 성장했다. 설계·감리 인력을 공사 현장에 파견 및 상주시킨다면 한국 지하 공사 기술력 전체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사 체계를 고치는 것 외에 방안이 있다면?

    정상섬 교수_ “공사 전반에 대한 관리 체계를 갖추는 방법도 있다. 지하안전법에 따르면 착공 직후와 공사 중에도 안전 조사를 하게 돼 있다. 중간 검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공사 중 문제가 되는 지점을 잡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최근 혐오시설 지하화, 지하주차장 추가 건설 등 지하 공사가 늘어나며 조사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 공사 조사 인력과 기술을 확충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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