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한민족, DNA에 산림 관리의 전통과 노하우 담겨”

[Interview] 유네스코 산림유산 첫 등재 숨은 공로자 배수호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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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5-06-0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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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림녹화기록물 9619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4월 등재

    • 조선시대 민중, 산림계 꾸려 나무 관리…‘사회적 자본’ 형성

    • 산림계 전통, 인센티브 갖춘 정책 만나자 시너지

    • 한국이 개발도상국 때 산림녹화 성공한 이유

    • 정책 성공하려면? 결국은 사람…공동체문화 도움 절실

    배수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가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산림계 기록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배수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가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산림계 기록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1982년 보고서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는 독일·영국·뉴질랜드·한국뿐이다.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 기후 위기로 인해 탄소중립이 부상하면서 산림의 역할이 조명받고 있다.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 경험은 여타 나라에 실천적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배수호(54)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최근 산림녹화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산림녹화기록물은 6·25전쟁으로 훼손된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추진한 산림녹화사업에 대한 자료로 법령, 공문서, 사진, 필름 등 9619건으로 구성돼 있다. 배 교수는 관련 분야 전문가로 이번 등재의 숨은 공로자다. 산림녹화사업은 산림청이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본격화됐으며, 산사태 및 가뭄 예방 등에 기여해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관협력’이 산림녹화 성공 이끌어

    배 교수는 환경 거버넌스 및 환경정책 전문가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산림 정책 및 문화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산림관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을 자치조직 ‘산림계(山林契)’가 그의 주된 관심사다. 배 교수의 저서 ‘진안군 중평 마을 공동체’는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번에 전북 진안군 중평 마을의 산림계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날 배 교수는 “그간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한국의 산림관리 기록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한국식 공유자원 관리가 제대로 이해될 수 있도록 통시적 차원에서 기록물이 보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림녹화기록물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한반도는 조선 후기만 하더라도 산림 보존에 미비한 지점이 있었다. 인구가 급증한 데다 온돌 문화까지 확산하면서 막대한 양의 나무가 필요했던  탓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국토가 거의 민둥산이 된다. 과거 미군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재생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산사태가 증가하는 등 많은 문제가 생기자 1951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하는 등 대응에 나섰으나 성과가 좋지 않았다. 이에 1961년 박정희 정권에서 산림법을 제정하며 산림녹화사업을 본격화했다. 당시 민관이 협력하며 산림녹화를 추진했는데, 이번에 등재된 기록물은 당시 자료다.”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1975년 발행된 국민식수기간 특별우표. 국가유산청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1975년 발행된 국민식수기간 특별우표. 국가유산청

    산림녹화가 성공할 수 있던 배경은 무엇인가.

    “1960~80년대 산림녹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민관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수립한 데 있다.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는 방식이 아닌, 산림계 등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시행했다. 지역사회가 산림녹화에 따른 혜택을 받도록 인센티브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다. 양묘 사업과 분수림 제도에서 이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해당 정책은 어떤 식으로 추진됐나.

    “정부는 각 지역에 양묘 기술자를 파견하며 지역민에게 관련 기술을 가르쳤고, 묘목이 자라면 시장가격 이상으로 구매하는 등 양묘 사업을 육성했다. 산림자원이 지역사회의 소득원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인센티브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됐다. 1960년 전체 산림 면적의 60%가 사유림이었는데, 당시 산주(山主)들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임업 투자를 꺼렸다. 분수림 제도는 임업 투자에 따른 수익을 산주와 산림계가 나눠 갖도록 한 제도다. 정부는 산림계가 임업 투자에 따른 수익의 90%를 가져가도록 분수 비율을 확정해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무를 심도록 만들었다. 산주 역시 별다른 노력 없이 10%의 이익을 얻게 되니 딱히 손해가 없었다.”

    2017년 산림녹화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재도전 끝에 성공했는데 당시와 차이가 있다면. 

    “첫 도전 당시 산림녹화와 관련된 정부 기록물만으로 도전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에서 ‘어떻게 정부 노력만으로 산림녹화가 성공했겠느냐’며 ‘민간 부문의 노력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후 학계는 머리를 맞대며 협력적 거버넌스, 즉 민관 협력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관련 자료가 보강되면서 등재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 산에 의지하며 살다 죽으면 산으로 가

    산림녹화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한국식 공유자원 관리’를 세계에 알렸다는 의의를 갖는다. 그간 공유자원 연구 부문에서 한국은 좀처럼 조명받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관련 분야의 대가인 고(故) 엘리너 오스트럼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의 저서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 한국 사례가 다뤄지지 않은 것이 대표적 예다. 배 교수는 “오스트럼 교수는 전 세계 200여 개의 사례를 귀납적으로 연구해 관련 이론을 정립했는데, 여기에 한국 사례가 없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배 교수가 보기에 이는 상식적이지 않았다. 오스트럼 교수는 공유자원 관리에서 공동체의 역할에 주목했는데, 한국만큼 공동체 문화가 발전한 나라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배 교수는 오스트럼 교수 아래에서 수학한 이명석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와 한국의 공유자원 관리 문화를 연구했다. 주말과 방학마다 전국을 수소문한 지 수년여, 두 사람은 산림계의 모태가 되는 한국의 송계(松契), 금송계(禁松契) 전통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 저서 ‘산림공유자원관리로서 금송계 연구’ ‘한국적 지역공동체 사례연구’ 등은 그 결과물이다. 배 교수는 최근 그간의 연구를 영어로 번역하는 등 관련 내용을 해외에 알리려 힘쓰고 있다. 

    책에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민족의 ‘애림사상’에 대해 다뤘다. 

    “한민족의 DNA에 산림관리의 전통과 노하우가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과거 사람들은 산에 의지하며 살다가, 죽으면 산으로 갔다. 한민족에게 산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산 덕분에 수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산이 너무 많다 보니 농경지 확보가 어려워지는 등 문제도 있었다. 그러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산림의 중요성이 점점 커졌다.”

    왜 변화가 나타났나.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유교가 주류 사상이 되면서 자연 개발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인구가 증가했고 목재 사용량도 늘어났다. 자연스레 산림 확보 및 관리가 중요해졌다. 왕족이나 토호 세력의 산림 침탈 역시 관련 흐름에 불을 붙였다. 당시 양반이나 왕족은 산에 무덤을 만들면 일대에 대한 사용권을 가졌다. 결국 백성이 사용할 수 있는 산림이 점차 줄어들었고, 산림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치 조직이 각 마을에서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관청에 ‘마을 주변의 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겠다’고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산림이 지역민의 생계에 필수적이었겠다.

    “산림은 마을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나무를 팔아 번 돈으로 쌀을 구매하는 것은 물론 서당 훈장을 초빙하는 데 보태는 등 지역 교육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직접 양동이를 지고 산을 올라 나무마다 물을 주는 등 관리에도 열심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순번을 정해 외부인이 나무를 베지 못 하도록 감시하는 순산(巡山) 활동도 했다. 지게에 표지(標識)를 남겨 표지가 있는 사람만 벌목을 허락하는 등 방법이 다양했다. 공동 작업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매겼다. 심한 경우 산에서 땔감을 구하는 것을 막거나 공동체에서 쫓아냈다.” 

    관련 공동체문화가 유독 1960년대 빛을 발한 이유가 있나.

    “일관성 및 인센티브를 갖춘 정책을 만나 시너지효과가 나타난 덕분이다. 조선시대에도 송계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산림정책은 비일관적인 데다 인센티브가 없어 한계가 있었다. 규제와 처벌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돼 민간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유도하지 못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실학자인 정약전은 ‘송정사의’라는 책에서 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산림녹화 성공, 공동체문화의 도움 절실

    공동체문화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 한국의 산림정책 차용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 산림녹화 사업이 성공하려면 공동체문화의 도움이 절실하다.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해외의 경우 이 지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산림청이 한국의 성공 모델을 다른 나라에 이식하려고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여러 번 했는데, 결과가 좋지만은 않았다. 공동체 차원에서 산림을 가꾸는 경험을 축적한 나라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동체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관련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사실 지금의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산림계 기록물에는 계원 명부와 장부 등 계 운영에 필요한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지호영 기자

    산림계 기록물에는 계원 명부와 장부 등 계 운영에 필요한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지호영 기자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산림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관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결국 ‘사회적 자본’에 주목해야 한다. 공동체 차원에서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경험을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이 과정에서 효능감을 맛보게 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야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는데, 이를 정책에 연결할 때 정책의 성공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단순히 정부 재정을 많이 투입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경우도 숱하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제안서만 제출될 뿐 실상은 속 빈 강정인 식이다.”

    연장선상에서 산림녹화기록물 역시 공동체문화에 관한 내용이 강조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서도 이 부분이 아쉬웠다. 1960~80년대 자료만 등재 대상에  포함되다 보니 산림계의 모태인 송계 전통에 대한 통시적 논의가 사라졌다. 내용 혹은 의도가 좋다고 반드시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산림녹화 사업은 송계로부터 이어져 온 공동체문화가 있어 가능했다.”

    향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기록물 역시 해당 부분이 보완될 필요가 있겠다.

    “1960~1970년대 학자들은 오랜 기간 형성된 송계 문화에 힘입어 산림녹화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산림녹화기록물과 관련해서도 민관 협력에 대한 자료가 보충될 필요가 있다. 산림계 외에도 지역사회를 무대로 나타난 다양한 민관협력 사례가 함께 다뤄졌으면 한다. 통시적 차원에서 정보가 기록돼야 제대로 전승될 수 있다. 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는 문화는 1960년대 뚝딱 생긴 것이 아니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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