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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정형근 의혹’의 증언자들

“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고문을 지시했다”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고문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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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형근이 2~3일에 한번씩 들러 뒷짐진 채로 파이프 담배를 물고 나타나 ‘심진구! 이제 간첩이라고 불 때가 되었는데’라며 그뒤에 있을 고문을 ‘예고’하곤 했다. 그가 들렀다 간 다음에는 더 강도 높은 고문이 어김없이 가해졌다.”》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정형근 의원(부산 북·강서갑)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의원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은 많으나 이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언론뿐만 아니라 검찰도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원 관련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의원의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는 만큼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전제하고 “고문 의혹 등 정의원을 둘러싼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12월14일 현재 정의원에게 5차 소환장을 보내 놓은 상태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서도 “이번만큼은 정의원이 검찰의 포위망을 빠져 나가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신동아’는 이미 99년 1월호에 ‘정형근을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정의원의 과거 행적을 추적취재한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신동아’는 이 기사에서 ▲홍사덕 후보 비방 유인물 살포사건(92년 3월)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89년 6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87년 1월) 등에서 정의원이 당시 안기부 수사단장·국장으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도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해서는 당시 정의원이 안기부 수사단장으로서 이 사건의 축소·은폐를 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서의원 밀입북사건과 관련해서는 “정형근은 ‘DJ와 북한을 엮기’ 위해 직접 나를 고문했다”는 서씨의 증언을 통해 고문 의혹을 폭로했다.

특히 “92년 총선 흑백 선전물 사건 총감독은 정형근 대공수사국장이었다”라는 전직 안기부 간부 K씨의 직격 폭로는 홍사덕 의원 비방 유인물사건에 관해 처음 밝혀진 충격적인 증언이었다.

그러나 정형근 의원은 세 사건에 대해 각각 ▲“흑색 유인물사건은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 ▲“국회의원을 어떻게 고문했겠나” ▲“박종철군 아버님도 오해 푸셨다”라는 말로 의혹의 핵심을 피하거나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또 최근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만달러 수수 및 고문 여부가 자신의 부산 집회 발언을 계기로 다시 문제가 되었으나, 정의원은 여전히 “나는 정치공작한 적도 고문한 적도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의원은 나아가 “현 정권이 ‘고정간첩’(서경원 전 의원)을 앞세워 ‘정형근 죽이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역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와 국정원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정의원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동아’는 이와 같은 취재결과를 토대로 지난 11∼12월 두번에 걸쳐 인터뷰 및 서면 답변을 요청했으나 정의원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정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인터뷰 및 서면 답변을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 국정원 ‘정형근 파일’에 담긴 4대 비리유형 ]

정치공작·용공조작·축소은폐·직권남용

한 나라당 기획위원장 정형근 의원(부산 북·강서갑)은 매우 독특한 이력과 멘탈리티의 소유자다. 그는 1945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수재였던 그는 경남중·경남고(64년)·서울대 법대(68년)를 졸업하고 70년 사법시험(12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군법무관 생활을 거쳐 75년 부산에서 처음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검사나 법조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검사(8년)나 변호사(5개월) 생활이 짧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의 안기부 경력이 강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의원은 83년 서울지검 검사를 끝으로 그해 안기부 대공수사국 법률담당관으로 파견나가 대공수사국 수사2단장(85년), 대공수사국장(88), 기획판단국장(93년), 1차장(94년) 등을 거쳐 95년 안기부의 ‘지방자치단체 선거 연기 검토 문건’이 폭로되어 옷을 벗기까지 13년 동안 안기부에서 근무했다. 정의원처럼 검사로 안기부에 파견나가 그토록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정의원의 안기부 경력은 공안검사들의 ‘경력 관리’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의 독특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잘 나가던 정씨의 안기부 경력은 95년 지자체 선거 연기 검토 문건 폭로를 계기로 끝났다. 안기부의 2인자인 국내담당 차장까지 오른 그가 야당의 문건 폭로로 일격을 맞았으니 그로서는 야당의 ‘정치 공세’에 의해 안기부장을 눈앞에 두고 물러났다는 ‘피해의식’을 가졌을 법하다. 국민회의에서는 정형근 의원의 ‘사설 정보팀 운영’ 건도 이런 피해의식의 발로로 보고 있다.

정권 바뀌면 국정원장 영순위?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정형근 의원의 사설 정보팀 활동은 한나라당의 단순한 일상적 정보수집 활동이 아니다. ‘3년만 있으면 정권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누가 신임 국정원장이 되는지 영순위가 정해져 있다’는 공공연한 말로 퇴직한 국정원 직원들을 끌어모으는 등 정권탈취를 위한 공작기구의 성격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공작에 유능한 사람이라도 흔적은 남기기 마련이다. 특히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그 ‘현장’에는 ‘업적’ 못지 않게 ‘과오’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정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듯, 그가 몸 담았던 안기부와 그 조직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안기부통’이지만, 역으로 그의 ‘어두운 과거 행적’을 가장 훤히 꿰뚫고 있는 ‘정형근통’은 그가 몸 담았던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이다. 안기부 시절 그의 흔적들이 국정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구미유학생 간첩사건(85년) ▲반제동맹 및 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86년) ▲문익환·임수경·문규현 방북사건(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89년) ▲화가 홍성담 사건(89년)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91년)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92년) ▲김낙중― 손병선 간첩사건(92년) ▲남한조선노동당 및 거물간첩 이선실 사건(92년) ▲구국전위 사건(94년) 등이 국정원에 남아 있는 정형근씨의 ‘업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씨가 수사를 지휘한 이 굵직굵직한 공안사건에서 문익환·임수경·문규현 방북사건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고문·가혹행위나 용공조작 시비가 일었다는 점이다. 정의원 본인은 ‘간첩 잡은 훈장’을 왜 이제 와서 문제삼냐고 항변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당시 언론이 공(功)만 보도했을 뿐 과(過)를 문제삼지 않았을 뿐이다.

‘신동아’가 입수한 국정원의 ‘정형근 파일’에 따르면, 정형근씨의 안기부 재직중 비리나 물의를 빚은 사건의 유형은 크게 ▲정치공작 ▲용공조작 ▲축소은폐 ▲직권남용의 네 가지다.

국정원의 정형근 파일은 이 네 유형의 대표적 사례로 각각 ▲홍사덕 후보 비방 흑색유인물 살포 사건(92년 3월) ▲서경원 의원 ‘간첩’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87.1) ▲직원을 동원한 사적 업무 수행 등을 들고 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홍사덕 의원 ‘흑색유인물’ 살포지시

92년 3월 14대 총선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재임중 강남을 선거구에서 여당인 민자당 김만제 후보와 민주당 홍사덕 후보가 경합하게 되자, 홍사덕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상부 지시도 없이 당시 수사과장에게 홍사덕 후보의 여성편력 비방 유인물을 제작해 살포토록 지시하여 ▲당시 수사계장 한기용 등 4명이 홍후보의 축첩 관련 비방유인물을 제작해 3월21일 야간에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에 살포하던 중 홍후보 선거운동원에게 발각되어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혐의(후보자 비방)로 구속되자 ▲부하 직원 한기용이 민자당원인 친구의 부탁으로 행한 개인적인 사건으로 축소조작 후 직속상관인 소속 과장과 단장을 견책 등 징계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사건 직후 소속 직원들로부터 갹출한 격려금을 자신의 명의로 관련자 한기용 등 4명의 순화 및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활용했는 바 ▲그 결과 유인물 살포를 지시받은 한기용 등 부하 직원 4명은 사법처리(각각 징역 1년6월∼8월, 집행유예 1년6월∼3년)되어 직장을 떠났음에도 ▲정형근 자신은 동 사건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은폐조작 후 충성심을 인정받아 수사차장보로 영전함으로써 직원들로부터 지탄을 받음.

서경원 의원 간첩사건 및 가혹행위

89년 6월 당시 평민당 국회의원 서경원(62)은 85년 4월경 서독 여행중 북한공작원 성낙영에게 포섭되어 88년 8월 체코 프라하에서 북한 특별기편으로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되었는 바(서경원은 그후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98년 3월 특별사면 때 잔형집행면제로 출소) ▲김일성과 허담 접촉 및 공작금 미화 5만달러를 수수하고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국회와 가톨릭농민회 등을 기반으로 간첩활동을 자행한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정형근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서경원 간첩사건과 연계시킬 목적으로 ▲직접 조사에 참여하여 주먹과 발로 서경원의 머리, 가슴, 얼굴 등을 무차별 구타하고 구두를 신은 채 발등을 짓밟는 등 가혹한 고문을 통해 ▲허담으로부터 받은 5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김대중 총재에게 건네준 사실과 김총재가 김일성에게 친서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는 것처럼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등 가혹행위를 통해 김대중 총재에 대한 용공조작을 자행했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민추위’ 사건 관련 박종철(언어학과 3년)을 연행해 조사시 물고문 등으로 치사사건이 발생하자 치안본부로부터 관계기관 긴급대책회의 소집 등 지원을 요청받고, 당시 대공수사국 수사단장 정형근은 ▲1월14일 심야에 당시 광화문에 있는 서린호텔에서 개최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검찰·경찰·청와대 관계자 등 10여명과 함께 참석하여 ▲사건 처리방향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내용의 발표문 작성에 참여하였으며 ▲그후 수차례 시내 앰버서더호텔(1817호)에서 검찰·경찰·청와대 등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소집하여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 정부가 견디기 힘들다, 5공 정권 출범 이래 최대 위기인만큼 사건이 절대 깨져서는 안 되며, 이대로 묻혀야 한다”며 사건 처리방안을 제시하고 ▲담당검사 안상수에게 고문경찰관의 구형량을 낮추도록 요구하는 등 고문치사사건 은폐 및 축소조작에 개입하였고 ▲당시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조한경 경위를 직접 찾아가 “두 사람만 관련된 것으로 하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어 달라”면서 금품을 제공해 회유하고 검찰·교도소측에 각종 편의를 제공토록 하였음.

위에서 인용한 ‘정형근 파일’의 일부는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일 뿐이지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또 이것이 그의 ‘전력’의 전부도 아니다.

이를테면 ▲구미 유학생 간첩사건 ▲반제동맹 및 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 ▲화가 홍성담 사건 ▲사노맹 사건 ▲김낙중―손병선 간첩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등에서 하나같이 고문 및 가혹행위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국정원의 정형근 파일에는 고문·가혹행위 유형과 사례를 따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 용공조작 유형 사례로 예시한 서경원 간첩사건에서만,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련성 때문인지 몰라도 일부 가혹행위를 적시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고문·가혹행위의 경우 당시 정형근 수사국장(단장)의 지휘 아래 가담했던 관련 당사자들이 상당수 현직에 있기 때문에 이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누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형근 파일’에 담긴 정보는 부분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실 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히 구체성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정원 내부에서 수집한 정보라는 점에서 일단 이를 공개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그 사실 여부를 면밀히 검증해 보았다(물론 정형근 의원에게도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보냈다). 아울러 ‘정형근 파일’에는 없지만 고문·가혹행위를 호소하는 피해자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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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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