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다시 찾아온 ‘엄숙한 낮, 잔치의 밤’ 라마단

[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신도 멈추지 못한 전쟁

  • 이세형 채널A 기자·前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입력2024-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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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라마단에도 바람 잘 날 없는 중동

    • 이슬람 최대 명절에도 이-팔 전쟁 계속

    • 2018년 라마단에는 美 대사관 예루살렘行

    • IS, 라마단 기간에 테러 부추기기도

    2월 1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초토화된 건물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2월 1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초토화된 건물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모스크(이슬람교 회당)에서 아잔(기도 시간을 알리는 육성)이 울려 퍼진다. 정확히는 무슬림의 하루 5번 기도 중 4번째 기도 시간(오후 6시경)을 의미하는 ‘마그리브’를 알리는 아잔이다.

    무슬림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이슬람의 최대 성지) 방향으로 절하며 마그리브 기도를 한다. 기도가 끝나자 무슬림들의 표정은 환하게 바뀐다. 조용하던 분위기는 금세 잔칫집처럼 시끌벅적해진다.

    식탁에는 만디(양고기나 닭고기를 쌀, 향신료와 함께 찐 요리), 채소 수프, 케밥, 말린 대추야자 열매, 후무스(병아리콩을 삶아 만드는 중동 향토 음식), 샐러드, 과일 등이 가득 놓여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추야자 열매부터 먹는다. 긴 시간 금식을 한 위와 장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소화기관에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단맛으로 식욕을 돋우는 효과도 있다.

    이슬람 최대 명절

    2월 21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교외에 있는 레합 전통시장. 라마단을 맞아 식료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이른 시간부터 북적이고 있다. [동아DB]

    2월 21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교외에 있는 레합 전통시장. 라마단을 맞아 식료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이른 시간부터 북적이고 있다. [동아DB]

    올해도 어김없이 엄숙한 낮, 시끌벅적한 밤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슬람의 최대 명절이며 동시에 성스러운 시간으로 여겨지는 ‘라마단’이다. 이슬람의 성월(聖月)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이란 뜻이다. 이슬람력에선 9번째 달을 의미한다. 이슬람의 창시자이며 동시에 선지자로 여겨지는 무함마드가 알라(신)로부터 ‘쿠란(이슬람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시간이다.



    한국 시간으로 이번 라마단은 3월 10일부터 4월 8일까지다. 라마단의 시작과 종료 시기는 나라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시차와 달의 모양에 따라 시작과 종료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슬람력에선 1년이 354일 또는 355일이다. 이를 기준으로 날짜를 계산하며 매년 10일 정도씩 앞당겨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非)무슬림이 떠올리는 라마단의 이미지는 ‘금식’일 것이다. 라마단 기간 중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어선 안 된다. 물을 마시는 것도 안 된다. 라마단 때 금식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들 중에는 침을 삼키는 것도 자제하는 이들이 많다.

    라마단 기간 중 금식(사움)은 이슬람 신앙을 이루는 다섯 기둥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건강에 문제가 없는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낮에는 금식해야 하지만 해가 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야말로 성대한 잔치의 시간이다.

    ‘이프타르’라고 하는 라마단 저녁 식사는 푸짐하다. 또 사람들로 북적인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가족, 친지, 이웃, 친구, 직장 동료들을 초대해 이프타르를 즐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어려운 이웃과 이프타르를 나눈다. 주로 모스크에 돈이나 음식을 기부하는 형태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산유국에선 라마단 기간 중 금식이 풀리는 시간에 맞춰 길거리에서 물과 간식을 공짜로 나눠주는 경우도 많다. 한 달 내내 밤마다 도시 전체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셈이다. 기독교와 가톨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트리를 장식하듯, 무슬림들도 라마단 때는 집 앞에 전등을 달고, 초승달과 등불 모양의 장신구를 단다.

    라마단 인사말도 있다. 라마단 기간에는 ‘라마단 카림’과 ‘라마단 무바라크’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전자는 ‘너그러운 라마단’, 후자는 ‘축복의 라마단’이라는 뜻이다.

    팔레스타인에 유독 가혹했던 라마단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라마단의 가장 큰 특징으로 금식 못지않게 ‘평화’와 ‘화해’를 꼽는다. 라마단 기간에는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다툼, 질투, 시기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가족이나 이웃과 사소한 갈등도 피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한창 진행 중인 전쟁도 멈춰야 한다.

    올해 라마단에는 많은 무슬림이 안타까운 눈으로 가자지구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라마단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휴전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은 반년이 넘도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마스의 일격으로 1300여 명이 사망한 이스라엘은 곧바로 대대적인 반격에 들어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시티는 물론이고 가자지구 전체를 초토화했다. 하마스가 워낙 광범위하게 점조직 형태로 퍼져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마스의 군사시설 중 상당수는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하마스의 가자시티 내 지하 터널은 500㎞에 육박한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민간인 방패 작전’을 자주 써온 하마스는 병원, 모스크, 학교 같은 민간인 시설을 군사시설로 이용해 왔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만 3월 초까지 3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상당수는 여성, 어린이, 청소년 등 민간인이다. 이스라엘은 시가전 대비, 하마스 잔당 공격, 지하 터널 파괴 등과 같은 명분 아래 지금도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있다. 피란민들의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이집트 국경 인근(가자지구 남단) 라파 지역에도 최근에는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라마단이 평화로운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2021년 라마단도 ‘비극의 라마단’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벌어지자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일명 템플마운튼) 방문을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고, 100명 이상이 숨졌다.

    2018년 라마단은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 나아가 무슬림에게는 ‘잊을 수 없는 분노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라마단 시작 이틀 전인 5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이슬람권 나라들이 모두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이스라엘이 건국 뒤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삼은 것도 이곳이 성지라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팔레스타인을 존중하고, 이스라엘과 이슬람권의 갈등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취지에서 대사관을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 설치했다.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도 텔아비브에 자리 잡고 있다.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 건국일인 5월 14일에 맞춰 보낸 일종의 ‘축하 선물’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게는 주적의 건국일과 최대 명절인 라마단 직전에 벌어진 ‘나크바’였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대재앙을 의미한다.

    보통 아랍권에선 이스라엘 건국 다음 날인 1948년 5월 15일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된 사건을 나크바라고 표현해 왔다. 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과 공격, 이로 인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도 나크바라고 표현하곤 한다.

    2018년 5월 14일 트럼프 행정부의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이 이전했을 때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스라엘군은 강경하게 대응했고 40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사우디, UAE, 카타르 같은 걸프 산유국들과 이집트와 요르단 등 미국과 가까운 아랍 국가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굳이 라마단 직전에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저의가 궁금하다”며 “이는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이슬람권 전체를 자극하는 도발이나 다름없다”란 불만이 강하게 제기됐다.

    IS가 주도한 ‘피의 라마단’

    2023년 3월 23일 무슬림들이 서울 용산구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2023년 3월 23일 무슬림들이 서울 용산구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2010년대 들어 라마단을 피로 얼룩지게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선 집단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다. 2014~2017년까지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 자체적으로 국가를 선포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른 IS는 탈레반, 하마스, 헤즈볼라 같은 극단주의 성향 무장정파들에게서조차 ‘상종할 수 없는 잔인한 테러 집단’ 취급을 받았다.

    IS는 이슬람의 라마단이 종교적으로 특별한 시기라며 테러와 도발을 집중적으로 수행했다. ‘라마단 때 벌이는 지하드(성전)는 신이 허락한다’ ‘이교도는 라마단 때 공격해도 된다’ ‘라마단 때 이교도를 공격하면 더 큰 축복을 받는다’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 라마단 기간에 테러를 부추긴 것이다.

    특히 IS는 2016년 라마단 때 다양한 테러를 저지르며 전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어 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하나로 통하는 사우디 메디나의 ‘예언자 모스크’에서 별인 자살 폭탄 테러가 대표적 예다. 당시 사망자는 4명이었다. 테러로 인한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성지의 대형 모스크까지 테러 대상으로 삼는 IS의 잔혹함에 무슬림들은 치를 떨었다.

    같은 시기 IS는 자신들이 적대시하는 사우디의 시아파 거주 지역인 카티프와 제다(사우디의 제2도시)의 미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같이 세속주의 이슬람이 뿌리내린 나라에서도 IS와 이들의 추종 세력이 저지르는 테러로 라마단 기간 중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당시 IS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지만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거나 힌두교,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도 별다른 반감이 없는 동남아와 서남아 국가를 타깃으로 삼으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전략을 취했다.

    경제위기와 종파 갈등 등으로 정국이 불안정한 나라에서 라마단은 집권 세력과 정부가 긴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자리에 사람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명절 뒤 여론조사에 정치권과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

    라마단 기간에는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식탁에 오른다.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2020년 라마단은 4월 23일~5월 23일까지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던 시기다. 이집트도 난리였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이동을 전면 금지하는 ‘록다운(Lockdown) 정책’을 시행했다. 당연히 모임도 제한했다. 모스크도 폐쇄했다. 낙후된 보건의료 인프라를 감안해 최대한 적극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이집트 사람들 사이에선 “코로나19가 이집트 정부를 도와주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를 핑계로 라마단 모임을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란 반응도 나왔다. 당시 이집트의 상황은 나빴다. 물가상승과 취업난이 계속되고 있었고, 마스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럴 때 라마단 모임이 이어지면 결국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임이 제한되며 이를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당시 이집트에선 2019년 9월에 발생했던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 여파로 정부에 비판적 메시지나 활동에 대한 단속도 심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당선 시 중동 분위기 더 나빠져

    한국에서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중동 식당과 한국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모스크)에서 라마단을 체험할 수 있다.

    무슬림들이 운영하고 주로 이용하는 중동 식당을 저녁에 방문하면 이프타르를 기다리는 이들의 엄숙하면서도 살짝 배고파 보이는 표정을 볼 수 있다. 라마단 때 중동 식당 대부분은 평소와 달리 뷔페로 운영된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좋은 기회다. 라마단 때 중동 식당 인심은 평소보다 후하다. 커피와 홍차, 디저트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중앙성원에서도 대규모 이프타르가 펼쳐진다. 모스크에서 제공하는 이프타르답게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무슬림을 볼 수 있다. 라마단 때는 전통의상을 입고 모스크와 식당을 방문하는 무슬림도 많다. 평소에도 꽤나 이국적인 이태원 일대가 더욱 이국적으로 바뀐다.

    다만, 이번 라마단 기간에 편한 마음으로 라마단을 즐길 수 있는 무슬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가자지구 전쟁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에 열리는 미국 대선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꼽힌다는 것도 무슬림에게 ‘반가운 뉴스’가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중동 정책 책사인 재러드 쿠슈너. [ 블룸버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중동 정책 책사인 재러드 쿠슈너. [ 블룸버그]

    지난 재임 기간(2017년 1월~2021년 1월) 중 철저히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동 정책 책사는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쿠슈너는 정통 유대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쿠슈너와 결혼하며 유대교로 개종했을 정도다. 그리고 쿠슈너 가문은 강경보수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가깝다. 여전히 쿠슈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 못지않게 미국 대선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과 이로 인한 우려도 라마단 기간 중 대화에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라마단의 분위기가 밝지만은 않을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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