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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동지 입장에서 대통령께 민심 전합니다”

  • 안기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동지 입장에서 대통령께 민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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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하지 않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아니면 독신으로 남았더라면 이 여사는 외무부장관이나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정도는 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마이 웨이’를 걷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습니까.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어요. 이미 책에서도 썼지만 결혼한 지 9일만에 남편이 경찰에 잡혀가는 등 계속 어려운 일에 부닥치니까….”

책 얘기를 꺼내면서 이 여사는 고생했던 옛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다른 여성보다는 늦은 40대에 결혼을 했으니까 아기자기한 결혼생활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그때 남편은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어요.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낭인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정치하는 사람은 굴곡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졌어요. 그래서 불행한 일이 닥쳐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이 어려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이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일제가 지배하던 시대인 1922년에 태어난 이희호 여사에게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전주 이씨 의사 집안의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문과에 입학한 재원이었지만 일제 말기에 그가 했던 일은 충남 예산 삽교국민학교에 부설된 ‘여자청년연성소’에서 오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함께 논밭 매고 보리 베고 산으로 송탄유를 따러가는 것이었다.

23세 때 해방을 맞은 이 여사는 여자사범대학교 임시 중등교원 양성소에서 국문과 3개월을 마치고 중등교사 자격증을 얻었지만 한번도 활용하지는 못했다. 1946년 9월에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다가 교육학과로 전과하여 1950년에 졸업했다.

이 여사는 졸업후 미 문화원의 부설기관에서 계속 공부를 하다가 한달도 되지 않아 6·25전쟁을 맞았다. 전쟁의 와중에 이 여사는 김정례, 박기순, 장옥분씨 등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 총본부를 조직, 외교국장을 맡았다. 당시 단장은 모윤숙씨였고 김정례씨는 조직국장이었다.

1952년에는 부산에서 황신덕, 이예행, 이태영, 박순천씨 등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사단법인 ‘여성문제연구원’을 창립했고, 이 단체의 상임간사로 일했다.

이 단체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여성문제연구회’로 개칭하고 남녀가 동등한 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했다.

대구 미 공군 정훈국의 군목 소개로 1954년에 도미 유학한 이 여사는 램버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미국 스카렛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58년 귀국후에는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59년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한 62년까지 YWCA연합회 총무로 일했다.

─ 김대중 대통령과의 결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을텐데요. 그 당시 YWCA 총무로 재직하고 있었잖습니까. 독신도 생각했을 법합니다만….

“독신도 생각해죠. 주위에서 반대가 많아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인간 자체에 여러 가지로 끌리는 점이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것이 깊고 책을 많이 읽고 얘기해주는 것이 좋았아요. 제 책에도 썼지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좋았어요.”

─ 외모가 잘 생긴 점도 한몫 했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이미지와 영 달라졌어요. 지금은 살이 많이 찌셨죠. 그때는 살찐 형이 아니었거든요. 거기다가 눈도 상당히 컸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다지 크지 않거든요. 살이 쪄서 그렇게 보이는가 봐요.”

이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살찐 모습이 영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에 비하면 이 여사는 몸매 관리를 잘했는지 호리호리해 보이는 모습이 그다지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여사는 청와대에 들어온 뒤 “체중이 좀 늘었다”고 한다.

첫 대화가 건강이나 음식 이야기부터 옛날 이야기까지 비교적 가볍고 부드러운 주제로 이어지자 이희호 여사는 엄숙한 청와대의 분위기와는 달리 소리를 내 웃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제스처도 취하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기분도 무척 좋아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옷로비사건의 관련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 시중의 궁금증까지 더하면 이 여사가 즐겨 입는 옷의 종류와 구입처일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인터뷰를 하기 전에 옷로비사건과 관련해서는 질문을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일일이 해명해봐야 더 큰 의혹만 증폭시킨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가 옷로비사건으로 얼마나 골머리를 앓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러가기 전에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옷로비와 관련된 질문을 꼭 해야 한다며 노골적인 ‘압력’을 넣었다.

“이형자씨 면담 요청 거절”

─ 청와대에 들어오신 뒤 가장 기뻤던 일은 대통령께서 미국 필라델피아시의 자유메달을 수상한 것이겠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옷로비사건이었죠. 특히 대통령께서 아끼던 김태정 전법무장관이 구속되고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는데….

“참 안됐지만 옷로비사건에 대해서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다만 일부 언론에 내 얼굴이 나오기에 보니까 추측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자꾸 문제를 삼아요. (옷로비사건과 관련) 대통령도 그런 말씀(‘실패한 로비’가 본질)을 하셨지만 나한테도 접근하려고 했어요. 지난 9월인가 이형자씨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해왔어요. 나는 상대편이 누구든간에 돈 있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다고 거절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날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이를 공식석상에서 만났을 때 옆에 있던 사람이 ‘저 사람이 63빌딩 회장 부인의 동생’이라고 하기에 (이형자씨가) 동생인 줄만 알고 있었어요.”

그동안 세간에는 이희호 여사가 소속된 창천감리교회의 황용배 장로가 최순영 회장의 구속을 막기 위해 이 여사에게 로비를 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현재 마사회 감사로 있는 황장로는 신동아 인터뷰(본지 238페이지 참조)에서 “청와대에 들어가 이 여사에게 최 회장 구속과 관련, 교계 목사들의 비판적인 여론을 전했다”고 했다. 이때 이 여사의 입장은 “법적인 문제에 목사들이 나서서는 안된다”며 단호했다는 것.

창천감리교회측에 의하면 이 여사와 황장로는 오래전부터 창천감리교회에 같이 다닌 신앙적 동지일 뿐 아니라 군사독재 시절에는 동교동에 경찰이나 정보요원들이 밀어닥치면 바로 옆집에 있던 황장로 집으로 중요한 서류나 자료 등을 옮겨놓을 정도로 신뢰가 깊은 사이였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는 현재 창천감리교회 은퇴 장로인데 청와대에 들어간 직후에는 신앙의 문제라며 매주일 교회에 출석했으나 경호원들이 쉬지 못하고 경호상의 어려움도 있어 지금은 매주일 참석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 신동아측에서 이 여사께 로비를 하려다가 접근도 못했습니까?

“그렇죠. 신문을 보면 ‘내일을 위한 기도’ 출판 기념회를 63빌딩에서 가진 것에 대해 말들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신문사에서 주최해서 내가 참석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때 63빌딩의 (주인) 내외가 저를 만나려고 했다는 것은 나중에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내일을 위한 기도’는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이희호 여사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구중궁궐’에 있는 이 여사에게 시중의 궁금증을 한번 물어보았다.

─ 라스포사 옷은 몇 벌 가지고 계십니까.

“몇 벌이라고 누가 세고 있나요. 저는 라스포사 옷보다는 클라라윤 옷을….”

이 여사는 라스포사 옷도 입지만 클라라윤 옷을 더 즐겨 입는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러나 최근 옷로비사건의 파문 때문에 옷과 관련된 발언은 몹시 조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언론에 오르내려 유명 부티크(매장)가 된 라스포사의 옷은 중가 이상이긴 하지만 최고급 의류는 아니다. 80년대에 결혼예복업체로 출발한 라스포사는 현재 일반 정장까지 판매하는 업체로 성장했는데 정일순씨가 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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