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취약지 경북, ‘지역 책임지는 국립의대’ 필요”

[실태 보고 | 끝나지 않은 ‘의료대란’] 위기의 경북, 정태주 국립경국대 총장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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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5-12-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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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소멸위험지수·치료 가능 사망률 모두 ‘위험’

    •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경북엔 단 한 곳도…

    • 李 대통령 고향이 ‘의료취약지’라니…경북도민 절규

    • 지역 소멸 가속화하는 경북·전남, 특단의 대책 필요

    • ‘의사 구하기’ 어려움 겪는 지역 병원들…의대 절실

    • 의료 인프라 정상화 없인 지역균형발전도 없다

    정태주 국립경국대 총장이 12월 3일 경북 안동 국립경국대 총장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정태주 국립경국대 총장이 12월 3일 경북 안동 국립경국대 총장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방이 소멸하는 순서대로 그 지역의 대학이 문을 닫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경북의 소멸위험지수는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소멸위험지수와 치료 가능 사망률 두 지표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의 위기는 지역에 상급종합병원과 국립 의대가 부재한 구조적 현실과 깊이 연결돼 있다. 경북에는 국립의대가 필요하다.”

    정태주 국립경국대 총장은 2025년 12월 3일 경북 안동 국립경국대 총장실에서 진행한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총장은 “의료 격차는 지역의 운명을 결정짓는 문제”라며 “의료 기반이 붕괴된 지역은 인구·산업·교육도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경북은 △치료 가능 사망률 △분만 취약지 △중증 응급환자 이송 거리 △소아청소년과 취약지 등 거의 모든 의료 지표에서 전국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의료 인프라 정상화 없이는 지역균형발전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경북엔 단 한 곳도…

    총장실 맞은편 벽에는 국립의대 설립을 바라는 경북도민의 간절한 바람이 적힌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상급종합병원까지 왕복 서너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현실을 적었고, 누군가는 아이가 아플 때 갈 병원이 없다는 절박함을 남겼다. “경북에서 병원 다니기 너무 힘들어요.” “아플 때마다 대구까지 가기 힘들어요.” “대통령님, 안동에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이 같은 외침은 경북이 처한 의료 공백을 여실히 보여줬다. 인터뷰는 경북의 의료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경북 지역의 의료 인프라는 어느 정도로 취약한가.

    “경북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46명(2025년 2분기 기준)으로 전국 최저 수준이다. 내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과 전문의 수도 전국에서 가장 부족한 편이다. 전국에 47개가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경북에는 단 한 곳도 없고, 응급의료취약지역도 15곳에 달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일본은 지역 의료 격차 완화를 위한 대책의 하나로 ‘1현 1의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현마다 국립의대를 둬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온 것이다. 일본 현의 평균 면적은 경북의 3분의 1 수준이다. 경북의 의료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경북도민의 기대가 상당한 것 같다.

    총장실 맞은편 벽에는 국립의대 설립을 바라는 경북도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적힌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홍중식 기자

    총장실 맞은편 벽에는 국립의대 설립을 바라는 경북도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적힌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홍중식 기자

    “결국 국립의대가 설립되려면 대통령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립경국대가 위치한 안동은 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경북도민들은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이 언제까지 의료취약지역으로 남지 않도록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국립의대가 없는 경북과 전남은 의료취약도 측면에서 전국 선두를 다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역 소멸도 가속되고 있다. 두 지역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의료환경의 낙후는 결국 지역 소멸로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인재전형’ ‘지역의사제’ 등을 통해 지역의료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데.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방 의대는 선발 인원의 40%를 지역인재로 의무 선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지역인재 비중을 60%까지 확대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북이나 전남처럼 애초에 국립의대가 없는 지역에서는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최근 지역의사제 도입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지역에 의대가 없다’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취지가 퇴색된다.”

    경북 경주에 동국대 의대가 있는데 의료 공백 해소에 큰 도움은 되지 않나.

    “5년(2018~2022)간 경북 지역 의대 졸업생 가운데 경북에 취업한 사람 수는 17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마저 집계 실수로 대구에 위치한 영남대 의대와 대구가톨릭대 의대 졸업생 수를 포함한 결과다. 실제로는 17명보다 적을 것이다. 동국대 의대의 경우 주요 실습을 경기 고양에 위치한 일산병원에서 해오다 보니 이렇게 된 측면이 있다. 사립대인 만큼 ‘지역의료에 대한 기여’를 크게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경북 지역은 사실상 의대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결국 국립의대가 있어야 경북의 의료 공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국립대는 지역에 대한 책무가 있다. 지역에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고, 그 인재가 다시 지역발전에 기여하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국립대에 부여한 공적 사명이기도 하다. 경북은 오랫동안 필수 의료 기반이 취약한 지역이었고, 이는 ‘지역을 책임지는 의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북에 의대를 설립한다면 국립대에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의료취약지인 경북에는 지역을 책임지는 국립의대가 필요하다.”

    ‘의사 구하기’ 어려움 겪는 지역 병원들…의대 절실

    그간 국립의대 유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나.

    “국립대 총장이라는 신분상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경북에 국립의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여러 경로로 꾸준히 활동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을 비롯해 정부 부처 관계자, 의료계와 지자체 인사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경북의 의료 현실과 국립의대 설립 필요성을 설명해 왔다. ‘경북 국립·공공의대 설립’을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열어 지역의료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책임 있게 논의를 이어가도록 촉구해 왔다.” 

    이날 받은 정 총장의 명함 뒷면에는 “경북 의료 불평등 해소, 경상북도 국립의대 설립으로!”라는 문구와 함께 경북의 열악한 의료 현실이 표로 정리돼 있었다. 표에는 경북에 상급종합병원이 단 한 곳도 없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전국 최하위라는 사실 등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뒷면에 기업 로고나 영문 버전이 담긴 통상의 명함과는 결이 달랐다. 

    대학병원이나 부속병원 확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의대 관련 비용의 대부분이 대학병원 운영에 들어간다. 법적으로 국립대는 사립대와 달리 부속병원을 반드시 갖도록 돼 있다. 이에 안동병원, 안동성소병원, 안동의료원 등 지역 병원들과 협력해 부속병원을 운영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안동의 병원들도 ‘의사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선 협력으로 지역 병원들은 의료 인력을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어 ‘윈윈’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외에도 제주의료원을 흡수한 제주대의 사례도 참고하고 있다.”

    경북은 의대 졸업생의 지역 근무 비율이 전국 최하위권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보나.

    “가장 큰 이유는 경북에 상급종합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는 데 있다. 사실상 졸업생이 지역에 정착할 수 없는 구조다. 국립경국대에 의대가 신설되면 협력병원 체제 구축, 부속병원 설립, 안동의료원 흡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안에서 진료·수련·연구가 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려 한다. 지역의료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 모델로 평가받는 정책이 일본의 ‘자치의과대학’이다. 학생들은 교육 기간 동안 지역자치단체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대신, 졸업 후 지자체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9년간 근무한다. 한국도 지역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유사한 구조를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 19위…제대로 교육하는 대학

    경북 지역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방 소멸과 지방대 소멸은 맞닿아 있다. 대학 따로, 지자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국립경국대가 ‘공공형 대학’을 표방하며 지자체 및 지역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을 살리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다. 현재까지 7개 공공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학생들이 지역 공공기관에 취업할 기회를 더욱 넓히고, 대학 역시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립경국대는 2023년 글로컬(global+local)대학 사업에 선정됐다. 글로컬대학이란 지산학 협력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대학을 육성하는 교육부 사업이다. 글로컬대학으로 지정되면서 국립경국대는 5년간 국비 약 1000억 원과 지방비 1150억 원의 재정을 확보했다. 해당 재원은 △인공지능(AI) 기반 학생 성공지원 시스템 구축 △지역 산업 맞춤형 인재 육성 프로그램 △K-인문 세계화 사업 등에 투자되고 있다.

    글로컬대학 사업 선정 이후 주요 성과를 꼽는다면.

    “글로컬대학이 되려면 지역의 고유한 강점과 대학 혁신 전략이 맞물리도록 해야 한다. 안동은 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세계유산·인류무형유산·세계기록유산)를 모두 보유한 도시다. 연장선상에서 K-콘텐츠 산업을 선도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학진흥원과 협업해 한류문화전문대학원을 개원했다. 또한 융합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인문대와 사회대, 공대의 정보통신(IT) 부문을 융합해 ‘인문사회IT대학’을 만들었다. 경북 거점 국립대로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비 신입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많은 학생이 대학의 이름값이나 주변 환경을 기준으로 대학 진학을 고민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학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지표는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다. 국립경국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2463만 원으로 전국 19위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대학이다. 상위권 대학 대부분이 의대를 보유해 교육비가 높게 책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립경국대의 교육 투자 수준은 실질적으로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지방 사립대 중에는 학생 1인당 교육비가 1000만 원 안팎인 곳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 한명 한명에게 충분히 투자하는 국립대, 특히 국립경국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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