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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군축, 새천년 한반도의 핫 이슈

‘협상 통한 군축’으로 신뢰 쌓아야

  • 지만원 군사평론가

‘협상 통한 군축’으로 신뢰 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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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8일 전쟁 시나리오 시대였지만, 지금은 3일 전쟁 시나리오 시대다. 3일 전쟁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전쟁은 일시적 오기나 끓어오르는 사명감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석한 두뇌들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스템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

인민군의 전략은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배합, 대도시에서의 공포 조성, 한국군 전방 병력의 조기 포위, 전 국토의 동시 전장화 등의 작전으로 전쟁을 3일에서 1주일 이내에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에 6·25전쟁식 선방어로 대처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에 맞서 보겠다는 무모한 행위다. 6·25 때에 초전 양상은 어떠했는가. 간단한 무기와 장비마저 챙길 틈 없이 맨몸으로 한강을 헤엄치지 않았던가.

전쟁이 나는 순간 김포와 의정부에는 마치 홍수가 터진 것처럼 인민군이 진격할 수 있다. 이들은 우리 병사들이 미처 진지를 점령할 틈도 없이 제1방어선을 유린할 수 있다. 김포와 의정부로 밀어닥치는 두 줄기의 홍수 중 50%는 제1방어선에 있는 우리 병사들을 빠른 속도로 포위할 수 있다. 그중 20%는 서울 북방에 있는 우리 병사들을 포위할 수 있다. 나머지 30%는 한강 이남을 포위할 수 있다. 이것이 6·25 때에 보여준 중공군의 전술이었다.

우리 병사는 250km에 걸쳐 일렬로 늘어서 있지만 인민군은 몇 군데를 선택해서 집중 공격하기 때문에 공격받은 우리 병사는 대책 없이 무너져내리는 반면, 공격을 받지 않은 대부분의 전선에 고착돼 있는 병사들은 전방만 응시하고 있다가 포위되고 만다.



남북한간에 긴장을 없애려면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남북한이 평화롭게 같이 살려면 상대방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에 두 개의 독립국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평화공존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평화공존을 지지한다. 이들은 평화공존을 ‘통일을 이루기 위한 통과단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평화공존이 통일을 이루기 위한 의 ‘수단’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공존은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논리적 함정이 있다. 평화공존이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라고 정의하는 한 평화공존은 이룩될 수 없다. 한시적인 평화공존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통일로 이어질 테니 양측은 평화공존 기간에 부지런히 자기 진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 은밀한 경쟁을 추구할 것이다. 평화공존 기간은 바로 은밀한 경쟁을 추구하는 기간이며 따라서 긴장 기간인 것이다. 그러나 평화공존은 그 자체가 목표가 돼야지 통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평화공존은 곧 통일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평화공존에 대해서는 분석되지 못한 시각을, 통일에 대해서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인들이 바라는 정치적 통일은 긴장을 수반하고 전쟁까지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노선이다. 이러한 통일은 이뤄질 수도 없지만 유익한 것도 아니다.

한국이 독일식의 정치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는 엄청난 긴장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럽식 통일은 긴장도 비용도 수반되지 않는다. 남북한이 유럽대륙의 이웃 국가들처럼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이좋은 이웃국가’로 공존하면 남북한도 유럽식으로 통일될 수 있다.

남북한 신뢰의 군사력은 10만

남북한 주민이 간첩 혐의를 받지 않고도 국경선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이 바라는 모든 것이다. 정치적 통일과 다른 점은 오직 평양에 중앙정부가 하나 더 있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를 통일 대치품(unification equiva lent)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독일식 통일은 불가능하더라도 ‘사이좋은 이웃국가’로 같이 사는 것은 지금이라도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평화공존 체제하에서의 군사력과 대결 체제하에서의 군사력은 판이하다. 평화공존은 두 가지 시스템상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현재의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UN 감시하의 상호감군이다. 이는 엄청난 변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서로를 불신해온 남북한 당국이 이 엄청난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UN과 주변국의 중재와 보장이 필요한 것이다.

평화적으로 공존하려는 남북한에 필요한 군사력은 얼마나 되는가. 각기 10만 정도다. 10만으로는 무슨 장비로 무장한다 해도 상대방을 기습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통일 이후의 군사력이 주변국에 어울릴 만큼 막강해야 하기 때문에 감군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통일 이전의 군사력과 통일 이후의 군사력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 이전의 군사력과 통일 이후의 군사력은 달라져야 한다.

통일 이전의 군사력은 통일을 앞당기는 군사력이고, 통일 이후의 군사력은 주변국에 어울리는 군사력이어야 한다. 통일 이전의 군사력이 막강하다면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지 않을까 긴장하게 된다. 남북한간에 긴장이 흐르는데 어떻게 통일이 오겠는가.

따라서 통일 이전의 군사력은 상대방을 안심시킬 만큼 작아야 한다. 30만 대군은 상대방을 기습할 수 있는 군사력이다. 20만은 반신반의의 군사력이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상대방을 안심시켜 줄 수 있는 군사력은 10만 정도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남북한이 각기 10만의 군사력만 가지면 남북한 공히 주변 군사대국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 질서하에서는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군사력이 약한 나라를 함부로 빼앗거나 복종시킬 수 없다. 설사 남북한이 모두 무장을 해제했다 해도 한국의 안보는 유지될 수 있다. 어느 주변국이 한국을 점령하는 것을 다른 주변국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축이 신뢰의 전제조건

통일 이전의 군사력 문제는 1km 앞의 토끼요, 통일 이후의 군사력 문제는 10km 앞의 토끼다. 누구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지 못한다. 통일 이후에 막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면 그때 군사력을 키워도 늦지 않다. 군사력을 줄이기는 어려워도 키우는 것은 매우 쉽다. 통일 이후를 위해, 통일 이전에도 막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면 남북한간에는 불신과 긴장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각기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외치는 통일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은 신뢰구축이 군축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군축이 신뢰의 전제조건이다. 상대방의 군사력이 막강한데 어찌 그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군축은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신뢰는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없다. 신뢰는 오직 주권 분리와 군축이라는 객관적인 시스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협상을 통해 군축을 이룩하고 군축의 바탕 위에 신뢰를 쌓아야 남북한이 ‘사이 좋은 이웃국가’로 전진할 수 있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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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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