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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꿈꾼 시간의 지배자들

  • 권삼윤 문명비평가

영원을 꿈꾼 시간의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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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정말 피라미드 천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생긴 것은 카리브해로 튀어나온 유카탄 반도 한복판을 지키고 선 ‘쿠쿨칸’이란 이름의 피라미드다. 쿠쿨칸 또한 단순한 것이 아니다. 마야의 역법(曆法)을 건축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았다.

9층 구조의 쿠쿨칸은 높이가 30m다. 밑바닥은 가로, 세로 각기 55.5m의 정사각형을 그리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 있다. 그 한 면의 계단수가 91개라 네 방향의 것을 합치면 364개이고, 여기에 정상의 제단을 더하면 태양력의 1년 날수가 된다. 그리고 각면은 9층인데, 그 한가운데로 계단이 나 있어 2분되므로 이를 합치면 18이다. 이는 마야의 1년 달수. 1년 18개월은 360일이고, 나머지 5일은 액일로 새해의 제례일이었다. 이는 정상의 계단으로 표현돼 있다. 또 네 방향은 사계절을 뜻한다.

이 축조물에 쿠쿨칸이란 이름을 안겨준 큰 뱀(마야어로 ‘쿠쿨칸’)은 피라미드 정면 입구에 조각되어 있는데, 태양이 그 위를 비추는 춘분·추분날 오후 4시경이면 그 뱀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춤을 춘다. 그 날이 되면 환상적인 뱀춤을 구경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마야인들이 천문학과 건축술을 동원해 역법을 건축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시간의 지배자가 되려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최고 권력자에게나 해당되는 얘기겠지만.

쿠쿨칸이 있는 치첸이차에는 공놀이 경기장이 있고 성스러운 샘 ‘시노테’가 있다. 오늘날의 럭비와 비슷한 경기인 마야의 공놀이는 선수들의 체력을 다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건강하고 힘센 선수를 골라 그의 건강한 심장과 뜨거운 피를 지배자와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태양께 바쳤던 것이다. 그때 심장과 피를 올렸던 접시 모양 인물조각인 ‘차크몰’은 쿠쿨칸 앞의 ‘전사(戰士)의 신전’에 아직도 남아 있다.

마야라고 하면 떠오르는 남미대륙의 잉카 또한 태양숭배 신앙이 무척이나 두터웠던 곳이다. 그곳에는 태양의 신전, 태양의 처녀, 태양제, 해시계 등이 있었다.



태양의 신전이란 잉카의 수도 쿠스코 한가운데에 있는 최고의 신전이자 왕궁으로 한 장의 무게가 2kg에 이르는 순금 700여장으로 뒤덮인 ‘코리칸차’, 즉 황금신전이었다. 그 안에 있는 정원은 갖가지 동물과 식물 형상의 황금조각으로 장식했다.

황금문명 꽃피운 빛의 민족들

황금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거나 부식되지 않고 찬란하게 빛난다. 그래서 영원을 향한 바람을 담기에 안성맞춤이라 고대부터 태양을 상징했다. 어둠을 좋아할 민족이 어디 있었을까마는 빛, 그것도 그저 평범한 빛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밝혀주는, 그리고 모든 것에 고유한 색을 입혀주는 광원(光源)인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이라면 당연히 찬연한 빛을 뿜어내는 황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피라미드를 만들고 파라오를 태양의 화신 또는 그의 아들이라 불렀던 고대 이집트인들, 그들에 못지않은 방대한 양의 황금유물을 남긴 트라키아·스키타이 등 알타이·투르크 계열의 중앙아시아 기마민족, 인도유럽계지만 불(火)을 신성시했던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도들, 그리고 자신의 왕을 태양신의 아들이라 했던 안데스 민족이 다 그랬다.

우리 민족 또한 태초로부터 빛을 숭상한 민족이었다. 100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햇빛을 보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됐고 후일 민족의 시조 단군을 낳았다는 웅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태양의 민족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만광의 빛인 ‘’이 단군이 태어난 백두산 천지에서 나왔다면서 불함(不咸) 문화론을 외치지 않았던가.

어디 그뿐인가. 북부여의 해모수(解慕漱)와 그의 아들 해부루(解夫婁)만 해도 그렇다. ‘해(解)’는 태양을 뜻하는 우리말 ‘해’를 한자를 빌려 표현한 것이고, ‘부루’는 ‘불(火)’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 우리였기에 일찍부터 황금문화를 일궈낼 수 있었다. 고대 신라인들이 남겨놓은 금관총 서봉총 금녕총 천마총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5대 금관은 그 대표작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起源)을 밝히는 데에도 귀중한 단서가 되고 있다.

태양과 황금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은 안데스를 지배한 잉카인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났는데, 불행하게도 16세기에 황금에 눈이 어두워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던 유럽의 정복자들이 금을 모두 가져가는 바람에 지금은 석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정복자들은 황금 신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종교인 가톨릭 대성당을 세웠다.

황금의 제국 잉카에선 매년 6월24일, 그 해에 수확된 옥수수로 담근 ‘치차’란 술을 황금병에 담아 태양신께 바치는 인티라미 축제, 즉 태양제가 거행됐다. 옛 잉카제국에서는 그 해의 모든 수확은 황제의 책임이었으며, 태양제도 황제가 직접 제사장이 되어 주관했다.

황제는 축일 전 7일 동안 단식하고, 목욕재계한 후 신성한 신전에서 태양제를 성대하게 치렀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해가 지는 저녁 무렵 황제가 잉카의 제의용 칼인 ‘투미(Tumi)’로 그날을 위해 특별히 엄선한 제물인 살아 있는 라마의 심장을 도려내 그것을 태양께 바치는 장면이었다. 그 심장 표면에 나타난 혈관의 모양을 보고 다음해의 수확을 점치고는 태양제를 끝냈다.

생매장된 태양의 처녀들

잉카에는 또 태양의 처녀라는 것이 있었다. 1911년 미국인 하이람 빙엄이 쿠스코에서 115km 떨어진 마추픽추 유적을 발굴하다 150구에 이르는 젊은 여자들의 유체(遺體)를 발견하면서 그 존재가 밝혀졌다.

잉카제국 각지 수장들의 딸 가운데서 선발된, 미모가 빼어난 소녀들은 수도원 같은 특별시설에 들어가 신에게 봉사하는 교육과 신주(神酒)인 치차주를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14세가 되면 쿠스코로 보내져 잉카황제의 심사를 거쳐 ‘태양의 처녀’가 됐다. 다시 말하면 태양신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머지 일생을 오로지 태양을 위해 바쳤다.

그들이 행하는 노동이란 단 한 가지, 태양에게, 그리고 황제에게 바칠 옷을 짜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잉카는 우수한 직조술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불륜을 저지르다 발각되면 생매장되는 벌을 받았다.

태양의 처녀가 살았던 마추픽추의 정상에는 돌을 막대처럼 깎아 세운 뒤 이것이 햇빛을 받아 생기는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측정했다는 해시계 ‘인티우아타나’가 있다. 이것 또한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이 남긴 유적이다. 잉카인들도 태양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으며, 잉카의 왕들은 늘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영생을 누리고 싶어 자신의 무덤 속에 많은 양의 황금 장식물을 묻었다.

마추픽추에서 그리 멀지 않은 티티카카 호수변, 지금은 별다른 인공물이 없는 티와나코 유적에는 진한 밤색 안산암 통돌을 다듬어 만든, 높이 3m에 폭 3.75m 크기인 ‘태양의 문’이 있다.

티와나코란 잉카 이전 시대의 도시유적으로 추측될 뿐 누가, 언제 그 도시를 건설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어떤 학자는 기원전 1000년경이라고 하고, 티와나코 유적발굴 조사에 50년을 바친 폴란드 출신의 아루투르 포즈난스키는 1만7000년 전에 이룩된 초고대문명 유적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티와나코 유적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태양의 문 상단에는 태양의 신이자 창조신인 비라코차 신상이 새겨져 있고,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기 3단 8열, 총 48개의 동물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 아래 긴 띠에는 12개의 신상 얼굴과 장식 문양이 펼쳐져 있는데, 전문가들은 12개의 신상은 열두 달을, 48개의 동물상은 날짜를 나타낸다며 부조(浮彫) 전체를 하나의 달력으로 해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비를 상징하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두 손에는 불멸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기다란 벼락화살을 들고 있으며, 얼굴 옆으로는 햇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형상이 그려져 있는 비라코차상이 고대 이집트의 방첨탑(方尖塔)인 오벨리스크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해 달 별 강 산 등을 창조하였으며, 석상에 기를 불어넣어 인간을 탄생시킨 비라코차가 신상으로 남아 있는 티와나코에는 남미대륙에선 그 예가 흔치 않은 피라미드가 있다. 그것은 티와나코인들이, 태양을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과 같은 정신세계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아파가나’란 이름의 이 피라미드는 한 변이 210m인 정사각형 평면 위에 세워졌으며, 원래의 높이 150m는 세월 탓에 지금은 15m쯤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덤덤한 스톤헨지에 담긴 철학

태양숭배 신앙과 해맞이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거석기념물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스톤헨지다. 스톤헨지는 아무런 인공축조물이 없는 광활한 들판에 ‘날 좀 보소’ 하면서 서 있긴 하나 무언가를 시위하거나 자랑하려는 모습이 아니다. 인공의 냄새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씻겨 사라진 것인지, 그저 거기에 있구나 하는 느낌만 줄 뿐 자연과 일체가 되어버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누런 지평선의 고요를 깨뜨리며 서 있는 5~6m 높이의 돌기둥을 바라보아도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키를 맞춘 듯 높이가 같은 두 개의 돌기둥 위에 그보다 가는 석재도리가 얹혀 있는데, 그 셋은 하나의 독립된 형체가 된다. 이런 3석 구조체들이 지름 30m쯤 되는 커다란 원을 그린다. 그 안에 이보다 키가 작은 돌기둥이 또 하나의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없어지고 쓰러진 것이 있어 더러 이가 빠졌으나 원래 형태가 둥근 원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천문학과 고고학의 접목을 통해 선사유적의 신비를 풀어보려는 천문고고학의 창시자 제럴드 호킨스는 “스톤헨지에 나타난 돌의 배열은 하지나 동지 등 특정한 날에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키며, 이를 통해 일식·월식을 예측하고 하늘에 있는 12궁 신들의 축일을 알려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들은 자연에 있는 것들을 그저 취하기만 하던 수렵·채취인들이 아니었다. 씨앗을 뿌려 수확할 수 있는 농경과 가축사육 방법을 터득하고 지상주거 가옥을 지을 줄 알았던 정착인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 좇는 생활에서 수확을 위해 일정 기간 한곳에 정착해야 하는 생활로 바뀌게 되면서 자기 주위에만 머물던 그들의 관심은 그들이 어찌하지 못하는 대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풍년과 흉년을 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하늘이라는 사실, 그리고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 같은 것이 그들의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돌이 갖는 견고성과 항구성·조야성 등과 어울리면서 영원을 상징하게 됐다.

그렇게 영원성을 표현하기 위해 돌을 세웠다면 그 돌은 곧 하늘이 된다. 그것은 항상 인간의 머리 위에 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해와 달이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톤헨지가 천체를 관측하던 신전이었다고 하는 호킨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또 진다. 그러니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오히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처럼 일상적인 일을 일상적인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삶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 속에서 대수로운 것을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한 것처럼.

시간의 주체로 거듭나야

‘일상에서 탈출하자’고 외치며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는 몸부림도 따지고 보면 늘 그렇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따분한 시간들, 그리고 그것에 둘러싸인 자신을 때로는 높은 곳에서, 때로는 그 바닥에서부터 새롭게 바라보고자 함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해맞이는 인류에게 ‘일상 탈출’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 지배다. 고대 세계에선 최고의 권력자들만 그것을 화두로 삼았고, 또 그걸 위해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웠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황금으로 자신의 무덤을 채우기도 했다. 중세에도 권력과 종교가 일반 백성들의 시간을 지배했다.

시민의 발언권이 강화된 근대에 들어서는 권력자의 시간 지배권은 축소된 반면, 시민의 그것이 커졌다. 시민들이 무엇보다 귀중한 자신의 생명을 내걸고 쟁취하고자 한 자유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영생에 대한 꿈이 줄어든 만큼, 현실 세계에서 누리는 자유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로, 또 근대·현대로 넘어오면서 영생을 그리는 욕망은 엷어졌는데, 그와 같은 흐름을 주도한 것은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이었다. 현대인들은 논증되지 않는 사후세계와 영생은 종교의 영역이라 치부하고, 오로지 논리적 접근이 가능한 과학의 세계만 현실의 전부인 양 떠들어왔다. 그런만큼 현실의 시간 지배가 더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내가 생각하는 가치, 내가 만든 사고의 체계를 남에게 강요함으로써 시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래서 지난 20세기는 그런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시간을 무참히도 짓밟은 시대였다. 전반기에는 일제에 의해, 후반기에는 “이것이 새것이고 좋은 것이다”며 손을 잡아끄는 미국에 의해서 말이다.

21세기에는 그 치욕의 역사를 마감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내가 만든 가치, 내가 세운 기준, 내 몸의 질서와 이 땅의 풍토에 맞는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밀레니엄의 첫날, 바다를 뚫고 찬연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려고 동해안으로 나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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