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과학자 홍욱희의 새천년 세상읽기

국가를 바로 세우는 시스템 연구를 아십니까?

  •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환경학박사

국가를 바로 세우는 시스템 연구를 아십니까?

2/2
시스템이 공학적으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된 복잡한 통신망의 구현에서 처음 연구되기 시작했다면, 과학적으로는 생물체의 특성을 구명하는 과정에 시스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세기 초엽에 들어서면서 일단의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생물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진지하게 대두됐는데,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던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생물과 생명을 탐구하는 관점은 크게 생기론과 기계론으로 나뉜다. 생기론이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16, 17세기에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기까지 과학계를 풍미했던 관점으로,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생명체와 비생명체는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과 비생물은 구성물질이 다르며, 이들 구성물질은 다른 쪽의 재료로부터 얻을 수도 없고, 다른 재료로 환원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생물은 물질적인 재료 외에 생명성을 지닌 독특한 재료가 첨가되지만, 비생물의 구성에는 그런 생명성을 지닌 재료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것이 생기론의 기본 개념이다.

그런데 생명성을 지닌 재료가 구성한다는 생기론적 주장은 진화론의 대두와 함께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됐다. 진화론은 무생물에서 생물이 탄생하는 기적을 기정 사실로 인정해버렸기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생명성의 재료는 그 기원을 무생물에서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생명성을 지닌 재료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나타난 것이 생물 기계론이다. 생물을 자동인형이나 시계에 비유할 수 있는 아주 복잡한 기계로 간주하는 순간 생명물질의 필요성은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혁명은 기계론의 사조와 함께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찍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신이 창조한 거대한 기계장치에 비유했던 데카르트가 보기에는 생물체도 당연히 하나의 복잡한 기계일 뿐이었다. 16, 17세기 베이컨, 갈릴레이, 데카르트 등 선구적 과학자들에 의해 다듬어진 기계론적 사고에 바탕을 둔 자연과학은 이후 실험과 관찰에 입각하여 자연 법칙을 밝히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일반적으로 생물 기계론은 두 가지 개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모든 과학은 역학에서 유도될 수 있다는 믿음이요, 다른 하나는 생물 개체를 단순한 기계로 취급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계론적 사고는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다윈의 진화론이 이런 기계론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20세기 들어 생화학과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특히 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기계론적 사고가 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계론의 약점은 생물체가 지니는 통일성, 질서, 조직과 자율성 등을 설명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생물은 가장 하찮은 박테리아나 아메바까지도 고도의 복잡성을 지니지만 결코 항상성을 잃지 않는다. 항상성이란 주변 환경이 변해도 그 자신은 항상 평온함을 유지하는 기능을 말한다. 예컨대 생물은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는 생물은 겨울잠을 자거나 일시적으로 생장을 중지한다).

[ 가장 완벽한 시스템은 생물 ]

생물은 또 자신을 닮았지만 자신과 절대로 똑같지는 않은 자식을 생산하여 번식과 진화를 동시에 수행한다. 생물은 살아 있는 동안 매순간 세포 내에서 2000여 가지의 물질대사를 수행하면서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지만,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그런 고도의 조직성은 순식간에 와해돼버린다. 그런데 생명을 복잡한 자동기계에 비교하는 기계론적 사고로는 이런 생명의 특성을 담아내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따라서 생기론과 기계론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관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버트란피(1901∼1972)가 발전시킨 생물유기체론이다.

유기체론에서 생물체는 하나의 독특한 시스템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조사하는 것으로 생명 현상의 전모를 규명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각각의 부분과 사건은 그것에 내재하는 조건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다소간은 그 시스템 전체에 내재하는 조건 및 그 시스템을 포함하는 더 큰 시스템에 내재하는 조건에도 의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론에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각 부분이 나타내는 특성은 전체 시스템에서 그것들이 보이는 특성과 전혀 다를 수 있다.

개별적인 현상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유기물 분자는 무기물 분자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하지만, 그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작용이 발현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생물 고유의 과정들, 예컨대 호흡이라든지 소화, 형태 형성(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하고 점차 자라면서 성체의 모양을 형성하기까지의 메커니즘), 신경 활동 등 생물 특유의 작용은 기계론적인 도식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또 그 대부분은 무생물적 모델로 모방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각각의 부분이나 각각의 과정을 한데 모아놓는다고 해서 우리가 생물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포를 구성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서 만족할 정도의 지식을 축적한다고 해서 세포가 갖는 생물적 특성을 이해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장 간단한 구조의 박테리아 세포조차 무한대의 복잡성을 지닌 조직체로 비유돼야 하는 것이다. 버트란피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유기체의 기본 특징은 조직화다. 따라서 유기체의 각 부분과 각 과정에 대한 전통적인 연구방법으로는 생명현상을 전반적으로 묘사할 수 없다. 그런 연구는 우리에게 각 부분과 각 과정이 조화되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때문에 현대 생물학의 주요 과제는 생물 시스템에서 조직화의 모든 단계에 기능하는 일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

유기체론에서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전체는 그 각각의 부분이 지니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성질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생물이란 바로 조직화된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시스템을 구성하는 ‘생명물질’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 속의 생명물질은 시스템 밖의 비생명물질과 전혀 다를 바가 없고, 이런 관점은 시스템이 와해될 때(즉 생물이 죽을 때) 극명하게 나타난다. 생물체는 가장 하등한 박테리아에서부터 가장 고등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가 완벽한 시스템인 것이다.

[ 시스템은 살아서 움직인다 ]

이제까지 우리는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이 시스템이고, 특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복잡하게 통합된 조직이 시스템 연구의 주요 대상이 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또 가장 완벽한 시스템의 전형은 생물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밝혔다. 생물체가 신체라는 아주 복잡한 하드웨어와 그 하드웨어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정보를 원활하게 처리하는 내부의 신경 네트워크를 지닌 존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생물이 시스템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 몇 가지 속성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모든 시스템은 유한하다. 세상만사가 다 유한한 것이지만 구체적인 시스템은 시공간적으로 유한하기 마련이다. 생물체도 수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고, 시계, 건물, 정부, 국가도 모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실재하는 시스템은 그 요소들의 수량도 제한되어 있다. 컴퓨터 속에 내장되는 운영시스템(OS)처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특정한 컴퓨터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므로 유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의 유한성은 시스템이 경계를 지닌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시스템의 경계란 시스템의 유한성을 보여주는 특정한 부위 또는 특정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다고 하면 그 경계가 제대로 구획돼 있고 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으로 입증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만약 어느 회사가 도산할 기미가 있다면 가장 먼저 그 회사의 경비체제가 불안해진다는 보고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창고 관리가 허술해서 상품을 도난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망해가는 회사일수록 경비가 허술해서 도난당하기 쉬운 것이라고 시스템 이론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의 시스템들은 모두 특정한 구조와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 전통적인 기계론은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스템 이론에서는 구조와 기능이 사실은 같은 성질이며 따라서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리나 책상과 같은 간단한 구조물을 생각해보면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공물이라 하더라도 빌딩이나 공장, 컴퓨터 등의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 때는 - 이것들이 바로 시스템학이 주목하는 시스템 연구의 대상이다 - 구조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기능을 고려해서 구조를 결정한다.

기업이나 국가, 생물체도 일단 구조가 정해지면 그 기능도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시스템이 최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조를 최적화해 나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버트란피는 시스템의 이런 특성을 직시해서 “기능은 시스템의 일시적이고 신속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구조는 장기적이고 완만한 과정”이라고 지적했으며 결국 구조(부분의 질서)와 기능(과정의 질서)는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설파했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시스템은 국가일 것이다. 그런데 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구조와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서 정부의 구조조정을 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시스템 이론은 공무원 조직이라는 완강한 구조를 깨는 것과, 그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기능을 축소 또는 변화시키는 노력이 결국은 동전의 양면이며, 반드시 병행해서 추진해야만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은 그 내부에 소규모의 시스템을 구성 요소로 포함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통신시스템을 보더라도 그것은 시내전화망과 시외전화망, 국제전화망으로 구분돼 있는가 하면, 또 유선전화망과 휴대용 무선전화망도 공존하고 있다. 이런 각각의 전화 네트워크는, 한편으로는 독립된 시스템으로 작용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통신시스템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이나 정부 같은 단체들에는 부(部)니 과(課)니 하는 소규모 시스템들이 모여서 큰 규모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큰 시스템 속에 작은 시스템들이 자리하고, 다시 그 작은 시스템들 속에 그보다 더 작은 시스템들이 자리하는 다층화된 시스템에서는 어떤 한 시스템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그 영향이 전체 시스템으로 퍼져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 시스템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칫 전체 시스템으로 전파돼 미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시스템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을 운영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 또는 최고 경영자가 자칫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 나라가 외환위기를 자초해서 IMF 사태에 이르게 된 경위도 결국 따지고 보면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관료와 실무 경영자들이 이런 거대 시스템 운영에 미숙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스템은 마치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시스템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의해서나 또 내부적인 필요에 의해서 항상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스템이 변화를 멈춘다면 그 시스템은 죽은 시스템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 살아서 움직이는 시스템을 가능한 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렇다.

[ 전문가의 세 유형 ]

중국 후단 대학교에서 시스템 연구로 많은 업적을 쌓고 있는 박창범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시스템학’에서 현대의 전문가상을 다음과 같이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

먼저, 우리 시대에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전문가 유형은 평생을 한 분야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이다(편의상 이들을 A형 전문가라고 하자).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전문지식을 유일한 무기로 삼으며, 오직 그 분야에서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는 명실공히 전문가임이 분명하다. 또 현대사회는 이런 전문가들이 없이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귀중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특히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사회의 구석구석이 모두 변모하는 시대에는 이런 A형 전문가가 자기 분야에서 계속 전문가로 살아남기는 어려워진다. 컴퓨터 분야를 예로 들어본다면 70년대에 대형 컴퓨터를 다루었던 전문가들은 80년대에 들어서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문가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이들은 다시 90년대에 들어서 인터넷 전문가들에게 밀려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초과학이나 공학, 심지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이제 A형 전문가는 더 이상 안전한 직업인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 새 기술이 도입되고, 또 사회적으로 각광받던 자기 분야가 순식간에 전락해 언제 자신의 지위를 박탈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증권전문가들이 부침을 거듭했던 것이나 의료계에서 전공 과목의 인기도가 매년 바뀌는 현상은, 이런 A형 전문가들의 입지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유형의 전문가는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관해 상당한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어느 분야에서도 A형 전문가들에는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B형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의 분화와 업종 전문화가 가속되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탁월한 업적을 성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B형 전문가는 A형 전문가보다 현실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격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오히려 생존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IMF 사태로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기업들은 가장 먼저 연구소를 축소하거나 폐쇄했던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본사 기획실이나 품질개발실에 포진하고 있던 B형 전문가들이 주로 연구소에 몸담고 있던 A형 전문가들보다 이직률이 훨씬 적었다. 현대 사회에서 B형 전문가가 더 선호되고 있는 이유는, 전문 분야는 점점 더 세분되고 있는 반면 각 분야들 사이에서 협력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분야에는 A형 전문가에 못지않게 유능하지만, 이웃한 다른 분야까지 폭넓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C형 전문가형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 C형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관련 분야도 상당히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지식을 자신의 전문 분야에 이식함으로써 때로는 A형 전문가보다 더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또 자신의 전문분야가 쇠퇴할 경우에는 쉽게 다른 분야로 전환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유형의 전문가들이 탁월한 성취를 보였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C형 전문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C형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경향은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IMF 사태로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도산하고 합병하는 과정에 외국 기업에 인수된 회사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에 넘겨진 기업 대부분에는 이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최고 경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내 회사에 진주한 외국인 최고 경영자들은 C형 전문가임이 분명하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A형 전문가로서 기업에 입사해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은 후 그리 늦지 않은 나이에 C형 전문가로 변신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기업의 구석구석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한 한편 그 기업이 주력으로 하는 사업에는 전문가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나라 최고 경영자들의 대부분이 기껏해야 B형 전문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들 외국계 회사들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 중국은 왜 시스템을 연구했나 ]

이제 다시 처음의 중국 문제로 돌아가 보자. 중국에 시스템학이 처음 소개된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그 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시스템학을 연구하는 수많은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을 설립했는데, 특히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밀어닥쳤던 80년대에는 시스템 과학이 전성기를 누렸다.

이 시기에 시스템 과학이 환영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중국사회가 개혁과 개방을 달성하기 위한 과학적인 이론과 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창범 교수는, 당시 중국의 최고층 지도자들은 중국 사회의 개혁·개방과 발전을 거대한 ‘시스템 공정’으로 이해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도층의 격려에 힘입어 오늘날 중국은 시스템 연구가 가장 활발한 나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 연구는 중국에서 무엇을 이룩했을까?

아마도 중국 시스템 과학의 가장 커다란 업적은, 12억 인구를 포용하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개혁·개방의 과정을 일사불란하게 집행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한 국가관리 능력을 단기간에 배양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중앙정부의 고위 관리와 지방정부 간부, 기업 경영진과 대학과 연구소의 최고 관리자 등 중국 사회의 지도자들은 시스템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또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줄 아는 기본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창범 교수는 시스템 연구가 C형 전문가를 양성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는데, 중국은 바로 시스템 교육을 통해서 사회 지도층을 길러내는 나라인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의 경험 한 가지를 이야기하기로 하자. 필자는 8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중국 유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국이 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내보낸 국비 유학생들이었다.

나중에 그들과 친해지고 나서 필자는 놀라운 말을 들었다. 그들은 유학을 떠날 때 정부로부터 전공과목을 부여았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개혁과 개방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이미 결정해놓고 있었다는 말이다. 당시 한국 정부의 국비유학생 정책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유명 대학교의 입학허가서만 받아오면 전공이 무엇이든 5년간 국비지원을 하는 것, 그 뿐이었다. 필자가 중국을 부러워하고 또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족 한 가지. 21세기의 벽두에 서 있는 지금 우리 나라에는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이 단 한 곳도 없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2/2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환경학박사
목록 닫기

국가를 바로 세우는 시스템 연구를 아십니까?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