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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형제’ 권노갑·한화갑의 분열

  • 천영식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30년 형제’ 권노갑·한화갑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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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문과 한의원의 첫번째 갈등은 95년 전남도지사 선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한의원은 92년 14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성공, 95년 전남도지사 선거에 나설 결심을 했다. 한의원이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첫번째 시도인 셈. 한의원의 출마는 “호남사람이 바깥에 나가서도 ‘내가 호남사람이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호남을 만들고 싶다”는 소신에서 비롯됐다.

한의원은 대의원의 70% 이상을 장악하며 승리를 낙관했는데 막판에 김성훈교수(현 농림부장관)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동교동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장관 카드는 당시 도지사 꿈을 갖고 있던 김영진 의원 등 몇몇 의원이 한의원 출마를 막으려고 내놓은 것이었다. 김의원 등은 초선인 한의원이 도지사에 나서면 자신들이 지역구에서 힘들어진다고 판단해 ‘농도인 전남에 농민을 대표하는 지사를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와, 목포가 지역구인 한의원이 당선되면 도청 이전 문제로 전남이 양분된다는 논리로 한화갑 불가론을 폈다. 귀가 솔깃해진 김대통령은 이를 권고문과 상의했고, 권고문은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한의원 출마 브레이크에 일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번째 양 갑 갈등은 국민의 정부가 집권한 이후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구주류와 신주류의 대립이 벌어질 당시 한의원이 신주류에 가까웠다는 의혹 때문이다.



권고문은 대선 직전인 97년 한보비리사건으로 구속돼 97년 대선과 집권 초반기에 2년 가까이 소외돼 있었다. 98년 일본으로 유학갔다가 98년 12월30일 귀국한 권고문은 99년 2월 당고문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권고문이 귀국하던 무렵 동교동에선 한의원이 총무직을 맡다가 특보단장으로 옮겨가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99년 상반기 정국은 이른바 ‘김영배대행-한화갑-김중권실장’ 체제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권고문의 정계복귀 이후 김실장으로 대표되는 신주류는 권고문을 강하게 제어, 이른바 ‘신-구주류 갈등’이 표출됐다. 신주류에 의한 ‘권노갑 제치기’시도 기류를 한의원이 방조하고 있다는 섭섭함이 권고문측에서 제기됐다.

양 갑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4월 총선 공천 때였다. 한의원 주도로 이뤄지던 공천작업이 선거 막바지에 권고문의 수중으로 넘어가면서 감정에 앙금이 쌓였다. 특히 한의원 계보로 분류됐던 장성민 의원의 공천을 두고 권고문과 한의원은 심각하게 대립했다. 장의원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권고문과 김옥두 총장은 절대로 장의원을 공천할 수 없다고 버텼다. 실제 공천발표 전날까지 공천자명단에 장의원은 없었다. 그것이 한의원에 의해 밤 사이에 뒤집혀 버렸다.

옮아가는 무게중심

전면적으로 갈등이 심화된 것은 총선후 한의원의 최고위원 출마 때였다. 한의원은 동교동의 대표주자로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했다. 한의원 측근들은 단순한 킹메이커가 아닌 ‘호남지역 차세대 인물론’을 내세우며 한의원의 대권도전 의사까지 흘렸다. 한의원도 정권출범 초기 주장했던 ‘호남후보 불가론’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동교동의 분화가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권고문과 김옥두 총장은 크게 화를 내며 한의원의 최고위원 출마에 반대했다.

권고문은 우선 전당대회 연기론을 들고나왔다. 대권경쟁이 조기에 가시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한의원을 견제하는 카드로 해석됐다.

이에 맞서 한의원은 오히려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양 갑의 갈등은 심각해졌으며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권고문은 청와대를 찾아갔지만 한의원의 출마를 만류하라는 김대통령의 의사를 받아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한의원에 가까운 사람으로 분류됐던 서영훈 대표는 6월19일 “최고위원 경선은 9월 정기국회 이전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8월 전당대회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김옥두 총장은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6월21일 청와대 당무보고에서 김옥두총장이 “전당대회 과열이 우려된다”며 다시 한번 뒤집기를 시도했으나 김대통령은 “어차피 경쟁인데 신경쓰지 말라”며 8월 대회를 지시, 한의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5월 청와대에서 한의원을 만나 최고위원 출마를 권유했다. 비슷한 시기 김대통령은 박상천 의원의 최고위원 출마도 ‘윤허’했다.

청와대의 무게중심이 한의원으로 옮겨졌다는 분석이 집중 제기됐다. 권고문도 “동교동계 후보는 한의원과 박상천 의원”이라고 말하며 대세를 수긍하는 쪽으로 변했다.

하지만 권고문은 최고위원출마의사를 피력하며 다시 한번 반전을 시도했다. 권고문은 6월22일 김대통령을 독대한 뒤 경선 불출마 입장을 번복했다. 권고문은 “이인제 고문도 출마할 것으로 안다”며 이고문과의 연대를 경선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권고문의 경선 출마에는 한광옥 비서실장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갑 의원의 독주에 우려감을 갖고 있던 한실장은 “한화갑 의원이 동교동계 대표로 최고위원이 되면 한의원 우산 아래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동교동 결속력에 지장이 생긴다”는 논리를 펴며 권고문과 한의원의 동시 출마를 김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고문도 6월23일 “93년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나와 한광옥 실장이 동교동대표로 출마해 동반 당선된 적이 있다”며 “이번에 한화갑 의원과 같이 진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이 논리를 뒷바침했다. 대세는 다시 권고문쪽으로 쏠리는 듯했다.

6월25일 서영훈 대표 경질론이 흘러나오면서 권고문측의 세과시가 본격화됐다. 경선에서 1등한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는 권고문이 직접 당권을 거머쥐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됐다.

누가 동교동계 1인자인가

6월29일 권고문과 한의원, 김옥두 총장 등 3인의 회동이 있었고 권고문 중심의 동교동 단결론이 천명됐다. 한의원은 회동 후 “동교동은 김대통령 임기 후에도 영원한 형제애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데 합의했다”며 “특히 권고문을 우리 조직의 영원한 장형으로 모실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서대표 경질론을 부인하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서대표의 유임은 한의원측 시나리오였고 권고문은 서대표를 경질해야 한다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권고문의 세과시에 당 안팎에서 역풍이 거세게 일었다. 불공정 경선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안동선 의원은 권고문을 찾아가 아예 “경선에 나서지 말고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나가라”고 건의했다. 전당대회가 ‘동교동계의 축제냐’는 비난여론이 계속되자 7월7일 권고문은 마침내 경선불출마를 선언했다. 경선 출마선언 뒤 정확히 2주일만의 번복이었다. 역시 김대통령을 만난 뒤 나온 결정이었다.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권고문은 다시한번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존재가치를 부각시킴에 따라 큰 손해는 보지않았다는 손익계산서가 나왔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미 대세가 한의원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라며 “하지만 권고문은 가만히 있으면 위상이 더욱 좁아들 것이 뻔한 상태에서 최고위원 경선파동으로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여당 안팎에선 김대통령이 권고문을 버릴 거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대통령이 이번 경선을 대권이나 당권과 연결짓지 말라고 한 것은 한의원을 견제하는 의미가 크다는 지적이다. 한의원이 당권을 의식, 1위 득표에 집착한다면 또다른 폐해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여진다.

사실 김대통령은 한의원과는 달리 권고문에게는 빚이 많은 편이다. 김대통령은 85년 2·12총선에 나가려던 권고문에게 출마포기를 지시했다. 권고문은 15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홍일씨에게 물려줘야 했고, 16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대문 출마를 준비하다 김대통령으로부터 제지당했다. 또 최근 최고위원 경선을 앞두고도 출마를 포기하는 등 ‘주인’의 뜻에 따라 여러번 날개를 꺾었다. 제2인자의 비운 같은 것일까. 대신 권고문은 이러한 고비마다 군소리없이 김대통령의 뜻을 따르면서 오히려 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지는 계기로 삼았다.

김대통령과 권고문의 특수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김대통령이 한의원보다 권고문에게 킹메이커 역을 맡길 것으로 본다. 권고문은 그 자체가 김대통령의 ‘히든카드’이기 때문이다. 권고문이 최근 “이인제 고문에 대한 지지는 덕담 수준이었다”며 이고문 지지대열에서 한발 뺀 것도 킹메이커로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또 한의원이 킹메이커든 킹이든 자신의 입지를 스스로 쟁취해가는 과정을 막겠다는 생각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 한의원의 이러한 행보는 이고문이 가장 경계하고있다.

민주당에선 이런 상황이 된 원인을 김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서 찾는다. 1명에게 절대로 많은 권한을 주지 않는 스타일상 김대통령은 당분한 권고문과 한의원을 모두 껴안고 갈 것이며 결정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부경쟁도 용인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꺼지지 않는 불씨

권고문과 한의원의 영토확장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권고문은 최고위원을 포기했지만 한의원의 1위 당선은 막으려 애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의원의 1위 당선은 권고문의 입지를 축소시키킬 터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번 양 갑의 갈등이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항간에는 김옥두 총장을 지명직으로 진출시켜 최고위원의 격을 떨어뜨리면서 한의원을 견제할 것이란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현재 세력분포는 백중지세다. 최근 최재승 의원이 권고문 대열을 이탈하면서 한의원쪽이 탄력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의원 캠프에는 문희상 의원을 비롯해설훈, 정동채, 김덕배의원 등 동교동계 소장파가 집중 포진하고 있다. 최재승 의원도 조만간 합류하리라는 예상이다.

반면 권고문 진영에는 김옥두 총장, 윤철상, 이훈평, 조재환의원 등이 ‘의리’로 뭉쳐 있다. 이들은 전당대회 이후 당직 인선에서도 또한번 대결할 것이다. 한의원측에서는 벌써부터 문희상 의원이 차기 사무총장감으로 거론되고있다.

현재 권고문 측근들로 포진된 사무처 중하위직 당직에도 변화가 보인다. 부대변인의 경우 권고문측은 박홍엽씨를, 한의원측은 구해우씨를 기용하려 하고 있다.

최근 동교동 사람들은 “동교동은 상도동과 다르다”는 말을 부쩍 자주한다. 상도동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실제 동교동이 상도동처럼 사분오열될 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조직의 보스가 결정되면 그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데 별어려움이 없다는 전망이다. 권고문이든 한의원이든 구심점이 확보되면 밑에서는 따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 갑의 소모적 갈등과 대결이 오래 지속된다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식으로 아랫사람들은 커다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김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형상 이른 시일내 양 갑갈등이 정리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2002년 전당대회 때까지 내부갈등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신동아 200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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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식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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