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사업 로비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짚기 위해선 린다 김은 린다 김대로, 백두는 백두대로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백두사업=린다 김’이라는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린다 김이 로비한 사업이므로 백두사업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백두사업은 린다 김의 로비와 별개로 그 자체로 평가받고 비판받아야 한다. 백두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군관계자들이 린다 김 사건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는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
냉정히 말하면 린다 김은 다른 로비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던 백두사업에 뛰어들어 장비 및 기종 선정과정에 자신을 고용한 회사를 위해 로비한 죄밖에 없다. 대형 국책사업 수주전에 로비스트가 개입하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린다 김은 1996년 6월 그 로비전에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승리했다.
말할 것도 없이 로비 자체는 죄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로비의 행태, 곧 ‘부적절한 관계’로 상징되는 부당한 로비다. 거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그 로비로 엉터리 장비와 기종이 선정돼 한국의 국익을 손상시켰는지 여부다. 이제껏 드러난 바에 따르면 린다 김은 이 두 가지 혐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렇긴 해도 모든 비난을 그녀에게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제 발이 저린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뇌물이 오갔다면 준 사람보다는 받은 사람에게 더 문제가 있다는 건 상식이다. 또 린다 김의 로비로 ‘부적절한’ 장비와 기종이 선정돼 국익에 해를 끼쳤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장사꾼인 로비스트보다 그 제품을 사들인 구매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구매자란 바로 무기도입사업에 관여한 정책 결정권자들이다.
린다 김과 백두사업을 구분해 비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백두사업의 문제점을 린다 김 탓으로만 돌리는 시각은 한국군의 자주정보력 확보에 이바지할 백두사업을 필요 이상으로 매도하는 데도 한몫한다. “모든 건 린다 김, 그 여자 때문이야!” 책임을 회피하는 데 그보다 더 편한 말은 없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국방부 정책결정권자들과 백두사업 추진 실무자들을 그보다 더 모욕하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 여자한테 놀아났어!”라고 고백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과연 백두사업은 ‘한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망쳐버린 사업인가.
[ 1부 린다 김 옥중인터뷰 ]
지 난 5월15일 ‘신동아’(6월호)와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린다 김이 가장 난처해한 질문은 기무사 내사기록에 있는 이화수 예비역 대령(백두사업 전주미사업단장)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린다 김은 “귀국 후 검찰에서 6일 동안 조사 받을 때도 이런 식으로 취조 당하진 않았다”며 화를 냈다. 워낙 그녀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한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 질문은 사생활 침해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호텔방에서 미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이화수 대령과 새벽까지 술을 마신 일을 두고 그러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사생활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7월7일 법원은 린다 김을 법정구속하며 이화수 예비역 대령과의 관계를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린다 김)은 동인(이화수)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동인으로부터 백두사업 관련 군사정보를 제공받아 온 것으로 보여져 그 범정(범죄의 정황)이 극히 불량한 점, 피고인에게 뚜렷한 개전의 정상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린다 김은 그동안 입버릇처럼 “재판이 끝나면 모든 것을 다 말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엔, 그동안 그녀가 간간이 언급해왔듯, 권영해 전 안기부장, 임재문 전 기무사령관, 무기중개상 조풍언씨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법정구속은 그녀가 폭로할 기회를 앗아가버렸다. 법조계 주변에서 그녀가 구속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웬만한 기자들은 검찰의 ‘3년 구형’을 집행유예로 가기 위한 수순으로 판단했다.
린다 김은 선고공판 다음날인 7월8일 다시 한번 ‘신동아’와 인터뷰를 갖기로 하고 시간과 장소까지 약속한 상태였다. 지난 5월 ‘신동아’ 인터뷰 후 자신의 사생활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룬 여성지들 때문에 “스타일 구겼다”고 불만이던 그녀는 사생활 영역에서 벗어난 인터뷰를 원했다. 그에 따라 예정됐던 인터뷰에서는 백두사업 관련 비화, 무기도입사업을 둘러싼 군내 파워게임 실상과 군수비리 등을 숨김없이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조짐은 지난번 ‘신동아’ 인터뷰 때 어느 정도 나타났다. 당시 린다 김은 “나중에 내 재판이 깨끗이 끝나면 군비리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라며 ‘결전’ 의지를 다졌다.
기자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7월3일 오전 서울 아미가호텔 커피숍에서였다. 그날 린다 김은 4일 후 법정에 입고 나왔던 검정 치마를 입고 나타났다. 이날 그녀의 입에서는 임재문 전 기무사령관과 윤종호 전 국방부 제2차관보의 이름이 나왔다.
이틀 후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든 기자는 린다 김에게 전화를 걸어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걸로 가정하고 미리 인터뷰를 갖자”고 제안했다. 린다 김은 “지금 얘기할 수도 있지만 진짜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다면 며칠만 참아달라”고 했다. 그녀는 선고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짐짓 여유를 부리긴 했지만 말투엔 긴장감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동안 통화할 때마다 했던 질문을 또 했다. “기자들은 어떻게 예상하냐.”
린다 김은 “변호사들이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재판 때 와서 위로해 달라”는 것이었다.
“언론이 나를 죽였다”
구속된 지 4일이 지난 7월11일 오전 기자는 린다 김을 면회했다. 애초 그녀와 가족들과 협의해 함께 면회하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몰래’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면회가 끝난 후 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린다 김은 원하지 않으면 면회를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의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아니었다. 표정엔 공포와 불안의 기색이 역력했다. 빗질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인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푸석했다.
―지내기가 어떻습니까.
“….”
린다 김은 잠시 아무 말 없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어깨를 떨 정도로 격렬하게 흐느꼈다.
―잠은 어떻게….
“통 못 자고 있어요.”
―혈압이 원래 좋지 않잖아요?
“예. 그런데 누구한테 부탁하기도 미안해서 그냥 참고 있어요.”
린다 김은 오랫동안 저혈압으로 고생해 왔다. 재판을 앞두고 매일같이 병원을 드나들고 심지어 몇 차례나 입원했던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까.
“….”
―잘못된 로비가 있었다면 그 로비를 받고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린다 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자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판결이었습니다.
“… 언론과 기자들이 그렇게 만든 것 아니에요? 기자분들이 저를 이렇게 죽였잖아요?”
린다 김의 말투가 격해졌다.
―구치소에서 많은 생각을 할 텐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 보다시피 이런 모습으로 있어요.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요(이 말을 하며 린다 김은 또 한차례 흐느꼈다).”
기자는 준비해온 질문을 계속 삼켜야 했다. 린다 김은 “(인터뷰)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고 말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고의가 아니라는 건 아시잖아요…. 권기대 장군님 만나면요, 꼭 전해주세요. 절대 제가 한 짓이 아니에요.”
권기대씨를 언급하며 린다 김은 또다시 울먹거렸다. 예비역 육군 준장인 권씨는 1998년 백두사업에 대한 기무사 수사 당시 린다 김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권씨는 6월23일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린다 김이 나를 함정에 빠트렸다”고 주장했다. 기무사 수사 당시 권씨가 순순히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한 것은 ‘녹취록’ 때문이다. 그 녹취록은 린다 김과 여직원의 통화 내용을 담은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린다 김은 여직원에게 “권장군 때문에 큰일이야.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1000만원을 찾아놓으라”고 말했다는 것.
“조풍언을 기억하세요!”
권씨는 법정에서 “기무사 수사가 벌어지자 린다 김이 자신의 불법로비실태를 감추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의도적으로 통화를 녹음한 뒤 기무사에 녹음테이프를 넘겨준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판사의 질문에 린다 김은 “왜 이런 오해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녹음테이프를 만들어 권장군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답변했다.
린다 김은 정말 억울하고 결백하다는 표정이었다. 권기대씨를 만나 오해를 풀어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 그녀의 입에서, 발작적이고 격렬한 어조로, 조풍언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조풍언이라는 이름을 꼭 기억하세요. 모든 건 조풍언 짓이에요.”
‘조·풍·언’을 언급하며 그녀는 거의 울부짖었다. 단단히 한이 맺혀 있는 듯싶었다. 조씨는 현 정권 출범 후 무기중개업계에서 상당한 영역을 확보한 무기중개상으로 알려져 있다.
―근거가 있습니까. 근거 없이 함부로 얘기할 순 없지 않습니까.
린다 김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나름대로 계산을 하는 것일까. 뭔가를 얘기할 듯하면서도 시원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백두·금강이 한 세트인 것 아시잖아요. 왜 조풍언이 에이전트였던 금강은 아무 일 없다고 보세요?”
―금강을 어떻게 조풍언씨가 맡게 됐지요?
“제가 따내 넘겨준 것이잖아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기는 걸까. 아니면 증거가 없어서일까. 조풍언씨에 관한 얘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황명수씨나 윤종호씨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없습니까. 백두사업 사업자 선정과정에 두 사람이 상당한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질문 하지 마세요. 이 안에서 그런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들한테 말하기도 싫고.”
―백두사업 운용부대가 추천한 장비와 비행기가 탈락했는데요.
“OO부대가 선호한 TRW사 장비와 펠콘은 가격이 너무 셌어요. 백두사업, 그렇게 엉터리로 하지 않았어요. 미국 회사들, 그렇게 부도덕하지 않습니다. 한국만 보고 한 사업이 아니에요. 한국에 잘 들어가야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도 진출할 수 있죠.”
―98년 기무사 수사 때 사전에 낌새를 챘습니까.
“전 처음부터 (수사가) 그렇게 진행될 줄 알고 있었어요.”
―정권 교체와 관련된 것입니까.
“자꾸 그런 얘기하는 게 저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현 정권에서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까.
7분이라는 짧은 면회에서 이런 ‘잔인한’ 얘기만 늘어놓은 기자가 원망스러울 법도 했다. 린다 김은 “그런 얘기하지 말자”며 눈시울을 붉혔다.
입회 교도관이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다음에 다시 들르겠습니다”라고 인사하자 린다 김은 “예, 그러세요” 하며 안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그동안 기자가 린다 김과 통화하거나 만나면서 나눴던 대화를 날짜에 상관없이 정리한 것이다.
―권기대씨는 린다 김이 녹음테이프를 조작했다고 믿고 있어요.
“권장군은 기무사 유도신문에 걸려든 거예요. 권장군이나 이화수 대령 같은 분들, 참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에요. 백두사업 진행과정에 반대의견을 내긴 했지만 사업이 잘 되려면 그런 분들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왜 그렇게 나를 오해하게 됐는지,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아마도 내가 여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을 수는 있을 겁니다. ‘권장군 그 양반 때문에 큰일이야’라고. 그러나 전화로 돈을 얼마 찾아 놓으라, 이런 얘기는 한 적 없어요. 돈을 찾으면 그냥 찾지, 뭣하러 여직원에게 돈 줄 사람 이름까지 얘기하겠어요? 그 여직원이 전해줄 돈도 아닌데. 외국 같으면 법정에서 권장군처럼 얘기하면 판사가 당장 제지해요. 그런데 한국 법정에선 판사가 그냥 내버려두더라구요.”
―권기대씨는 “린다 김이 나한테 미안해 한다면 이제까지 전화 한 통화 없었겠냐”고 하던데요.
“재판이 끝나면 권장군한테 위로전화 드리려고 했어요. 그분도 참 억울할 거예요. 그 돈은 정말 뇌물이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명예회복시켜 드릴 방법이 없을까요.”
―96년부터 기무사가 추적을 시작했는데, 뭣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당한 건 육군 것까지―백두사업은 공군과 관련돼 있지만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사업은 육군 것이잖아요―건드렸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당시 군부 실세였던 L장군은 프랑스 톰슨사 것을,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문민정부 실세 K씨는 독일 것을 지원했어요. 그 사람은 프랑스제 미스트랄 미사일 등 몇 가지 무기도입사업에 관여했어요. 왜 그런 사람은 가만히 놔두는지 모르겠어요. 미스트랄 미사일,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잘 아시잖아요. 또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도 엉망이라고 들었어요. 그때 꼭 이스라엘 것을 들여왔어야 했는데… 스위스 정부가 보증까지 할 정도로 훌륭한 장비였는데, 지금도 아쉽습니다.”
린다 김의 말대로 미스트랄 미사일과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는 도입 후 그 성능을 두고 잡음이 뒤따랐다. 백두사업(신호정보수집 정찰기)을 비롯해 금강사업(영상정보수집 정찰기) 하피사업(공격용 무인항공기) 포파이사업(공대지미사일) 등 린다 김이 따냈던 사업들은 대부분 공군과 관련돼 있다.
―98년 기무사 수사 배경으로 짚이는 게 있습니까.
“기무사가 수사에 착수하기 전 몇 가지 새로운 사업을 거의 손에 넣은 상태였습니다. 어떤 무기와 관련해 이스라엘 IAI사와 로비스트 계약을 맺었어요. 또 차세대전투기사업(FX)과 관련해 미국 보잉―맥도날드사와 계약 직전까지 갔습니다. 조기경보기도 제 손에 있었어요. 누군가 경쟁에서 나를 배제하기 위해 음해한 겁니다. 백두사업 운영부대장으로 사업을 중단시키려 했던 P장군이 기무사 출신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겁니다. 누군가, 아마도 조풍언이 기무사와 (현 정권 사이에) 연결고리가 됐을 거예요.”
“왜 금강은 문제 안 삼나”
지난 5월17일 국회 국방위에서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은 린다 김과 조풍언씨의 관계를 언급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의원은 “린다 김의 활동이 부자연스럽게 된 시점에 대통령과 특별한 친분이 있는 재미교포 조풍언씨가 무기구매사업의 일부를 인수하기 시작한 정황이 있다”며 조씨가 미국 방산업체와 거래를 계약한 서류 사본을 제시했다. 그는 또 “조씨가 미국 록히드마틴사(금강사업 사업자)와 계약할 수 있도록 린다 김이 도와주고 조씨는 현 정권 출범 후 무기거래 쪽에서 크게 성장했다”는 주장을 폈다.
린다 김은 조풍언씨에 대해 아주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신동아’ 6월호 인터뷰에서 그녀는 “한때 내 밑에서 에이전트 일을 하며 내 덕을 봤던 조풍언씨가 정권이 바뀐 뒤 나를 배신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조씨가 대통령 부부와 친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실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후로도 린다 김은 기자에게 조씨 얘기를 여러번 했다.
“왜 금강은 문제삼지 않습니까. 언론도 참 이상해요. 금강도 백두와 똑같이 호커800(백두사업 기종)을 사용하는 겁니다. 백두가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금강도 마찬가지지요. 백두는 이준영씨(린다 김이 회장인 IMCL 부사장·사장 역임)가 에이전트였고 금강은 조풍언씨가 에이전트였어요. 둘 다 제가 따내서 넘겨준 겁니다.”
숙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은 린다 김과 조풍언씨의 관계. 린다 김의 얘기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LA에 있는 조씨의 사무실과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무실의 여직원은 “회장님은 유럽 출장중”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용건을 말하고 조씨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기사 마감 마지막날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음은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한 몇 가지 의혹에 대한 린다 김의 해명.
―미국에 건너간 시기와 연예계 활동경력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제가 얘기했잖아요. 그 시기는 제가 아주 힘들었던 때라고.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는 겁니다. 도미 시기는 맞아요. 다만 미국에 간 후에도 한국을 자주 들락거렸어요.”
―부모가 몹시 어렵게 살고 있는데요. 친부모가 아니라는 얘기는 또 뭡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예요. 그동안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기자들 만난다고 돈을 요구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오죽하면 그러겠나, 생각해보세요.”
―전 남편의 형으로부터 몇 해 전 미국에서 보증 피해와 관련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고 얼마 전엔 국내에서도 고소를 당했지요?
“미국에선 변호사 실수로 궐석재판으로 처리돼 패소한 것입니다. 판사가 괘씸죄를 적용했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에요. 보증 피해인데 나도 2차 보증인으로 나섰다 피해를 입었어요. 이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국내에서 내 사건이 터지자 고소한 의도가 뻔하지 않습니까.”
린다 김의 설명이야 어쨌든 검찰 주변에선 그녀가 이 사건으로 추가기소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7월3일 아미가호텔에서 만났을때 린다 김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임재문(전기무사령관)과 권영태(전안기부장) 커넥션을 추적해 보라”는 것이었다. 한편 린다 김의 가족들은 기자에게 면회 때 나눈 얘기를 기사화하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어찌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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