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태풍 앞에 선 현대車, 비상구를 찾아라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9-19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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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자동차 인수경쟁이 본격화하던 지난 봄, 현대자동차는 기관과 일반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IR(기업투자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는 대우차를 인수해도 문제, 인수 못해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현대차가 98년 말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대우차까지 인수하면 자금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인수에 실패하면 외국의 메이저 업체에 시장을 내주게 되니 진퇴양난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러자 현대차의 한 임원이 해명에 나섰다. “그 반대다. 우리는 대우차를 인수해도 문제가 없고, 인수 못해도 문제가 없다”고. 대우차를 인수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인수하지 못할 경우 몸집이 줄고 재무구조가 개선돼 해외 선진업체와 전략적 제휴가 쉬워진다는 설명이었다. 입찰에 실패해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6월29일, 포드가 대우차 인수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추후 협상결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대우차 인수는 이미 물 건너간 느낌이다. 포드가 대우차를,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해 점령군으로 진주하면 현대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업계의 판도는 어떻게 변할까. 현대차는 대우차 인수에 실패했어도 자기들 말마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국내시장 점유율 76.6%, 매출 22조1000억 원, 당기순이익 5490억 원(이상 기아차 포함·99년)의 자동차왕국 현대는 과연 수성(守城)에 성공하고, 나아가 글로벌 네트워크 연합군의 핵심 일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인가.

    자신만만한 현대



    현대측은 향후 현대-기아와 함께 한국 자동차업계의 양대 축을 형성할 ‘포드-대우號’의 파괴력을 평가절하한다. 포드가 대우를 인수해도 최소한 2∼3년간은 내수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포드가 당분간은 대우의 기존 모델을 활용해 내수시장을 공략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포드나 포드의 자회사인 마쓰다 모델을 완성차 형태로 국내로 들여올 경우 가격경쟁력이 워낙 낮아 판매고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한국에서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관세장벽과 환율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생산원가가 비싼데다 수입물량이 적어 유통단계의 마진을 높게 책정한 데 있다. 예컨대 포드의 중급 승용차인 토러스 기본형은 현대의 고급 차종인 그랜저 풀옵션과 같은 값에 팔리고 있어 가격경쟁력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포드가 현대보다 경쟁력이 높은 차종은 픽업과 미니밴 정도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조성재 연구위원은 “포드나 마쓰다 차를 들여와 대우에서 조립 생산할 경우에도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모델을 수정해야 한다. 여기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 과연 포드가 국내시장을 보고 그런 투자를 할지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GM이 카데트를 들여와 제휴사인 대우에서 르망 모델로 만들어 팔다 재미를 보지 못한 게 그 예라는 것. 르망은 독일 등 유럽에서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한국에서는 소음이 심하고 실내공간이 좁아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이들과 달리 고속으로 아우토반을 내달리며 운전 자체를 즐기는 독일인들은 소음과 좁은 공간을 단점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위원은 “포드가 대우의 기존 모델로 국내시장을 공략한다면 대우의 경영을 정상화시킨다 해도 현재 23% 수준에 머물고 있는 대우의 시장점유율을 5%포인트 이상 끌어올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를 인수한 현대가 자사 개발 모델인 비스토 카스타 옵티마를 잇따라 기아에 OEM으로 공급, 기아의 경영 정상화를 지원한 것과 같은 순발력있는 제휴관계를 포드-대우 관계에선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그 이유로 들었다.

    현대측은 포드가 제시한 대우차 인수가격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앞으로 협상과정에 가격이 다소 낮아질 가능성은 있으나, 대우를 사들이는 데 70억 달러를 쏟아붓겠다고 한 것은 상식 밖이라는 것.

    현대차 경영전략팀의 한 임원은 “지난해 포드가 스웨덴의 볼보를 인수할 때 60억 달러를 지불했는데, 대우의 매출규모가 볼보의 5분의 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대우의 적정 인수가는 높게 잡아도 40억 달러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볼보는 브랜드 가치가 대우보다 월등한 데다 피인수 시점에도 수익을 내고 있었으므로 적자와 부채가 누적된 대우의 자산가치는 이 가격보다 20% 이상 낮게 봐야 한다는 것.

    현대차 재경본부 관계자도 “현대차 주가가 저평가돼 있어 계산상으로는 10억 달러 정도면 현대차 지분 30%를 사들여 적대적 M·A가 가능한데, 포드가 왜 70억 달러나 주고 대우를 사겠느냐”며 “포드가 그 가격에 대우를 인수하고서도 이익을 내겠다면 대우차를 대당 150만 원은 더 받고 팔아야 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동유럽 교두보 놓치다

    그러나 포드의 자금력과 대우의 영업력이 조화를 이루면 사실상 현대-기아가 독점하고 있는 국내시장 판도에 무시 못할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드는 생산대수나 매출액은 세계 최대 규모인 GM에 다소 뒤지지만 순이익은 GM을 능가할 만큼 실속있는 경영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은 72억 달러로 현대와 기아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15배나 많다. 또한 포드는 현대보다 연 4%나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할부판매 같은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 경우 현대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또 대우는 회사가 흔들리면서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생산되지 않을 때도 시장점유율이 2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만큼 뛰어난 영업력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포드가 가세해 회사가 정상화 단계로 접어들면 빠른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회복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대우차의 한 임원은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는 현재의 자산과 부채보다 향후 수익전망에 더 비중을 둔다”며 “2조4000억 원을 들여 만든 삼성차를 르노가 1조 원도 안 주고 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포드가 대우를 고가에 사려는 것은 대우의 비즈니즈 플랜과 성장 잠재력을 그만큼 긍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현대차의 자체평가와 달리 현대는 대우차 인수에 실패함으로써 잃은 것이 적지 않다. 대우는 폴란드 FSO공장을 비롯,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동유럽에 핵심 생산설비와 판매망, 부품 조달망을 갖추고 있다.

    대우가 인수한 영국의 워딩연구소는 대우의 첫 독자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레간자, 라노스, 누비라를 탄생시킨 산실이었다. 현대가 대우를 인수해 이런 연구·생산기반을 확보했다면 동유럽 및 서유럽 시장 진출을 향한 든든한 교두보를 마련했을 것이다.

    80년대 들어 잇따라 독자 모델과 독자 엔진을 개발하면서 자체기술 발전에 크게 고무된 현대는 89년 북미시장을 겨냥, 캐나다 브루몽에 공장을 설립했다. 브루몽 공장은 연 10만 대의 쏘나타 생산설비를 갖췄는데, 판매부진이 거듭되면서 생산대수가 급감, 불과 수년 만에 연 2만 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공장은 93년부터 사실상 가동이 중단됐고, 96년에는 결국 매각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되자 이후 현대차 임원들은 해외 현지생산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기술력은 낮아도 외형을 키우는 데 열심이었던 대우가 유럽에 잇따라 공장을 설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대가 이 지역에 취약했던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대가 대우의 유럽 기반을 차지했다면 두 회사의 약점을 서로 보완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지난 6월 현대와의 전략적 제휴에 합의한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동유럽 시장에 이렇다 할 기반이 없기 때문에 현대가 대우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면 현대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제휴관계에서도 좀더 강한 협상력과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현대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효과가 대우차 인수 실패에 따른 손실을 커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다.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투자자들로부터 취약점으로 지적받은 것은 동유럽 지역의 기반 미비가 아니라 소형 승용차 부문의 노하우 부족이었기 때문에 현대와의 제휴는 대우 인수와 관계없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

    다임러 벤츠는 대형 승용차와 상용차 부문에서, 크라이슬러는 미니밴과 SUV(Sports Utility Vehicle), 소형 트럭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두 회사의 합병은 여러 모로 상호보완 효과가 있었지만, 소형 승용차 부문은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 있었다.

    소형 승용차는 조만간 황금어장으로 떠오를 아시아 등의 신흥 시장을 겨냥한 전략 차종일 뿐 아니라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기존 대형차 판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갈수록 강화되는 자동차 환경규제는 특정 업체가 생산하는 전체 차종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대형차 메이커들도 연비가 높은 소형차를 만들어 배출량 평균치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독자적으로 소형차를 만들 경우 고비용과 ‘과잉품질’ 때문에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더욱이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어렵사리 개발한 2인승 스마트카가 테스트 도중 뒤집혀 벤츠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결국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소형차 개발을 위해 일본의 미쓰비시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는데, 미쓰비시 역시 생산비가 만만치 않은데다 재무상태도 취약했다. 더구나 미쓰비시는 신흥시장 중에서도 핵심지역이라 할 중국과 인도에는 사업기반이 없었다. 이 때문에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생산비와 기술 면에서 소형 승용차 부문의 톱 메이커일 뿐 아니라, 중국·인도와도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에 손을 내밀게 된 것. 3사는 소형 승용차(월드카) 공통 플랫폼(엔진, 트랜스미션 등 차체를 제외한 차의 중요부분)을 함께 개발하는 것은 물론 생산과 판매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는 이와 같은 제휴관계를 통해 기술이전, 판매망 확대, 브랜드 가치 상승 등을 기대하고 있다. 현대는 오는 연말께부터 미국에 수출할 예정인 그랜저 XG를 최근 미국에 가져가 현대 로고를 뗀 상태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차를 몰아본 운전자들은 대당 3만5000달러 수준의 승용차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차에 현대 로고를 붙이고 테스트했더니 평가가격이 7000∼8000달러나 떨어졌다. 미국 소비자들이 현대라는 이름을 아직도 값싼 소형차 메이커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테스트에 참가했던 현대 간부는 “이는 현대가 만든 승용차에 벤츠 로고를 붙여 팔 경우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주는 게 있어야 받는다

    현대가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제휴한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각은 특정 기업 주식의 미래 가치를 분석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증권가에서도 볼 수 있다. 굿모닝증권 기업분석부의 손종원 애널리스트는 “3월까지만 해도 현대차에 대해 매도의견을 냈으나,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제휴설이 알려진 3월말부터 매수의견으로 돌아섰다”고 전한다.

    “그 이전에는 중·장기적으로 현대의 생존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봤다. 현대가 ‘빅 5(GM·포드·다임러 크라이슬러·도요타·폴크스바겐)’의 우산 아래 편입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데, 이런 제휴는 합리적인 전문경영인이 최고경영자로 있는 기업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오너는 제휴에 따르는 구속이나 불편을 싫어하기 때문에 현대도 무모하게 ‘독자생존’을 고집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면서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어깨에서 힘을 빼고 전략적 제휴에 적극 나선 것 같다.”

    부자,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 오히려 현대차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아이러니다. 한국의 자동차회사 주식을 사라고 하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외국인 투자자들도 현대-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제휴논의가 본격화된 6월부터는 꾸준히 현대차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우는 포드로부터 동유럽과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저가형 브랜드 역할을 부여받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현대는 자립성을 훼손받지 않는 전략적 제휴를 택했기 때문에 저가형 브랜드에 머무르지 않고 중·대형 고급차로 사업 중심을 옮겨갈 수 있게 됐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현대가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이런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기술이든 경영이든 마케팅이든 어느 한 분야에서 확실한 ‘주특기’가 있어야 한다. 제휴란 서로 주고 받는 것이지,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메이저들을 중핵으로 합종연횡하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당당한 주력군 지휘관으로 대접받으려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장기 하나쯤은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R·D와 플랫폼 개발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하청 조립생산에나 급급한 ‘변방의 용병’ 신세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일본 혼다가 그 좋은 예다. 혼다의 연 생산대수는 약 200만 대. 업계에서는 1년에 400만∼500만 대 이상을 생산하지 못하는 회사는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하지만, 누구도 혼다가 메이저들과 경쟁해 무릎 꿇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진국 업체들이 대개 매출액의 4∼5%를 R·D에 투자하는데 비해 혼다는 무려 8%를 쏟아붓는다. 오토바이 엔진 제작에서 출발한 창업주 혼다 기이치로의 장인정신이 이어져오면서 기술제일주의 뿌리내린 것. 그 결과 혼다는 엔진 분야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게 돼 톱 메이커 GM이 혼다로부터 엔진을 공급받고 있을 정도다. 혼다가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알루미늄 차체 기술도 실용화될 경우 차체 생산비용을 크게 낮추고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표준화 기술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현대는 이처럼 메이저들에게 큰소리 치며 내세울 만한 주특기를 갖고 있을까. 당장 내세울 만한 게 없다면 주특기를 키울 만한 기반과 여건은 갖추고 있는 것일까.

    MK·MH 지분 경쟁설

    현대차의 계열분리를 둘러싼 정주영·몽구·몽헌 3부자의 갈등은 아직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대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퇴진 선언 후 오히려 현대차 지분을 추가 매입, 보유지분을 9.1%로 늘렸다. 개인으로선 몽구 회장(MK)을 제치고 최대 주주가 된 셈이다. 정 전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몽헌 전 회장(MH)의 우호지분, 다시 말해 몽구 회장의 적대지분으로 파악된다.

    MK측은 경영권 방어를 자신하고 있다. MK의 개인 지분은 4%에 불과하지만, 현대정공 7.8%, 우리사주 12%, 다임러 크라이슬러 10%, 미쓰비시 4.8% 등 우호지분이 39%에 육박한다는 것. 현대차측은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주주협약서에서 현 경영진에 대한 지지를 약속한 것은 물론, 현대차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경우 현대차와 공동 대응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못박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MK측은 여전히 MH측의 현대차 경영권 장악 의도를 경계하는 눈치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MH측이 역외펀드를 이용해 현대차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또한 현대차 주변에서는 ‘아직 현대차와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제휴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다임러 크라이슬러는 현대차 재무실사가 끝나는 8월에나 현대차 지분을 받게 된다) MH측이 그 전에 안정 지분을 확보, 임시주총을 소집해 반전을 노린다’는 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를 그룹에 남겨놓고 MH 계열사를 분리한다는, 이른바 역계열분리안이 나온 것은 현대전자가 현대차 전장품을 만들고, 현대종합상사가 현대차 수출업무를 대행하고, 현대상선이 현대차를 수송하고, 현대건설이 현대차 설비공사를 맡고 있는 현실에 MH가 현대차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억측”이라며 “스스로 경영권 방어를 자신한다는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대차측의 ‘불안감’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현대차 임원 출신이 많은 현대산업개발이 현대차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든가 현대차 협력업체들이 지분경쟁에 동원됐다는 설 등이 그것. 실제로 동해전장과 화신은 6월말과 7월초 각 34만 주, 14만 주의 현대차 주식을 ‘투자목적’으로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두 회사는 생산 부품 전량을 현대차에 납품하며 현대차를 ‘모기업’이라고 부를 만큼 현대차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 MK 지원에 ‘성의’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불안감이 기업의 내실있고 장기적인 발전을 추구하기보다는 외형과 실적 위주의 단기적인 경영전략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는 점. ‘안정적인 입지를 다지려면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연구소 출신인 A씨는 “현대차 수준의 연구소라면 상당수 인력이 적어도 3∼4년 뒤 실용화될 기술 연구에 힘을 쏟아야 할 텐데, 거의 모든 연구인력이 올해, 기껏해야 내년에 나올 차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연료전지 자동차 같은 첨단 연구는 고사하고, 조만간 시행될 선진국의 각종 환경·안전법규를 만족시키는 기술에 대해서도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유럽에 수출되는 자동차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평균 165∼170g/km 이하여야 된다(2009년부터는 140g/km 이하). 소형차인 아반떼와 세피아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195g/km 안팎. 따라서 새 법규에 맞추려면 가솔린 엔진의 경우 GDI(가솔린 직접분사방식) 엔진, 디젤 엔진의 경우 커먼레일(전자식 제어) 엔진이 표준이 될 전망이다. 엔진을 개선하지 않고 법규를 만족시키려면 차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충돌에 강하면서도 가벼운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업체들은 이미 GDI 엔진과 디젤 커먼레일 엔진의 연구를 끝내고 제품화 단계에 들어섰으나, 현대는 아직 기초연구 단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와 오랜 제휴관계를 지속해온 미쓰비시가 GDI 개발분야에서 일찌감치 선두주자로 나섰기 때문에 현대로선 단계적으로 기술을 이전받기에 유리했는데도 몇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해 실기(失機)하고 말았다는 것.

    그 결과 비싼 돈을 주고 관련기술 모두를 사오거나 완제품을 통째로 수입해 조립하는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됐다. 현대는 에쿠스 4.5에 미쓰비시의 GDI 엔진을 채용했는데, 애프터 서비스 의뢰가 들어오면 고칠 자신이 없어 아예 통째로 바꿔 달아주고 있는 실정이다.

    디젤 커먼레일도 현대의 제휴사인 다임러 벤츠가 제품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기술이전이 매끄럽게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다임러 벤츠가, 대우 계열인 쌍용차와의 제휴관계가 아직 청산되지 않은데다, 현대에 이 기술을 줄 경우 자신의 텃밭인 유럽시장에서 피해를 볼지 모른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

    A씨는 “현대의 마북리 연구소에 선행 기술을 연구하는 팀이 있었는데, 지난해 조직 개편 때 이쪽 인력을 대거 양산차 개발쪽으로 내모는 바람에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며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눈앞의 과시용 경영성과에 급급했던 나머지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현대측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반박논리를 편다. 자신에게 유리한 분야만 골라 역량을 집중 투입하는 게 낫지, 모든 첨단기술 연구에 다 뛰어들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오랜 연구기간과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소요되는 신기술은 돈을 내고 컨소시엄에 참가해 ‘입장권’을 확보해 두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핵심 부품 메이커에서 완제품을 사다 조립해 쓰면 된다는 것.

    현대가 메이저 업체들과 똑같이 매출의 4%를 R·D에 투자한다 해도 그 액수는 10분의 1 수준밖에 안된다는 원천적 한계가 있으므로 무작정 고급 기술 연구에 투자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반론이다. 가령 현대가 강점을 지닌 양산 소형차 부문을 ‘선택’하고 ‘집중’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

    실속보다 겉치레

    그러나 소형차의 경쟁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 자동차업체가 소형차에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선진국 업체에 비해 생산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의 인건비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어 국내 업체엔 ‘전가의 보도’였던 ‘비용절감’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형차는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이 적기 때문에 메이커에 돌아가는 이윤이 매우 박해 비용이 올라가면 곧장 압박요인이 된다. 물론 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미쓰비시의 3각 월드카 사업이 제시한 청사진처럼 한 플랫폼에서 100만 대를 생산해 내다팔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대우자동차 관계자는 “5년쯤 뒤에는 국내 경·소형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생산비가 크게 올라 일부 내수용과 미국 수출용을 제외한 생산설비는 동유럽이나 아시아 개도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전망한다. 소형차를 만들더라도 비용보다는 품질이나 애프터 서비스 등 비가격 요인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그는 “잘 나가던 일본 업체들이 도요타와 혼다만 빼고 다 무너진 것도 비용절감의 한계 때문이었다”며 “그나마 일본은 브랜드 파워라도 있었기에 그 만큼이라도 버텼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한 현대는 미쓰비시나 마쓰다보다 더 빨리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비용 외의 분야에서 현대의 경쟁우위를 찾아야 한다는 충고다.

    기아차와 현대차에서 연구직으로 근무한 바 있는 B씨는 “기아차는 차의 내구성을 우선시하는데 비해 현대차는 외형과 성능의 극대화 및 신기술 적용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현대의 그런 관심은 장래성과 방향성이 확고한 기술축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주로 ‘홍보성 이벤트’로 반짝거리다 마는 느낌이다”고 두 회사의 상이한 분위기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미니밴 트라제에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를 장착했다며 ‘신기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운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기본적인 성능은 제쳐놓고 설익은 신기술에 신경을 쓰다 보니 트라제는 나오자 마자 몇차례나 리콜 대상이 되는 수모를 당했다.

    현대는 광고나 카탈로그에 엔진 마력이나 토크 수치를 명기할 때도 경쟁사를 의식해 항상 이론적 최대치를 써넣는다. 실제로 엔진이 그렇게 회전할 경우 엔진의 내구성에 어떤 영향을 주고 연료는 또 얼마나 소비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건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의욕만 앞선 ‘한국최고주의’가 드리운 그늘이다.

    출혈 마케팅

    몇 년 전 얘기지만, 특정 도시에 택시 증차계획이 새로 마련되고 증차댓수가 정해지면 자동차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해 사양과 가격을 조율했다. 기아차에서는 이 자리에 주로 이사급 임원을 보냈는데, 현대차에서 입찰가를 낮추려는 눈치가 보여도 그에게는 이를 맞받아 가격을 낮출 권한이 없었다고 한다. 당초의 회사안을 변경하려면 회장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경쟁사에서 낮은 가격을 써낼 것으로 판단되면 대리급이 자기 판단에 따라 그 자리에서 더 낮은 가격을 써냈다. 더구나 벨트, 스파크 플러그 같은 소모품은 원래 차량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데도 현대 직원들은 이런 부품까지 얼마씩 주겠다며 현장에서 이면계약을 하기도 했다. 기아로선 꿈도 못꿀 일이었다. 현대는 실적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말단 직원에게도 전권을 휘두르게 한 것이다. 어느 면에서는 현대다운 저돌적인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는 여전한 듯하다. 최근 미국에서 EF쏘나타 판매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차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강력한 흡인요인은 현대가 미국시장에 내건 ‘10년-10만 마일(16만 km)’이라는 초유의 파격적 보증조건이라는 지적이다. 요즘 국내에서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데서 보듯, 10년-10만 마일 보증은 사실상 평생보증과 다를 바 없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비용부담이 발생한다. 현지 애프터 서비스센터의 공임이 국내보다 훨씬 비쌀 뿐 아니라 부품도 태평양을 건너가면서 중간마진과 물류비용이 보태져 값이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당장은 차가 많이 팔려 좋겠지만 몇 년 후부터는 버거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 리콜을 할 경우에는 해당 차량 구매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통보해 부품을 교체해줘야 하므로 업체로선 죽을 맛이라고 한다. 10만 대만 리콜해도 미국에서 1년동안 판 차값을 다 날리게 될 판이라는 것.

    업계에서는 현대가 새 보증조건을 내놓기 전에 이런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교한 손익계산을 해봤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전문경영인으로서 MK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외형과 실적 우선의 물량공세를 펴고 있다”고 본다.

    “현대차가 수출목표를 과도하게 늘려잡고 몰아붙이다 보니 본사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일부 해외 법인에서는 과잉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할인판매로 등이 휘고 있다. 이런 마케팅전략의 성과는 한두 해 반짝하다 말지,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한다. 대우차도 이런 식으로 하다 무너진 것 아닌가.”

    확인되지 않은 얘기이고 현대측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에서는 일단 MK의 사인이 떨어진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도 ‘안된다’고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 크다.

    ‘자동차맨’이 없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 해도 지금의 격변기를 헤쳐나가는 데 정몽구 회장만한 대안이 없다는 게 현대차의 딜레마”라고 말한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제휴작업이 내년 3월까지 계속되는데다 기아차가 아직 정상화 단계에 들어서지 못한 상황이라 당분간은 카리스마에 바탕한 MK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MK가 조정기능을 못할 경우 차종 라인업(line-up)이 중복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우려가 있다는 것.

    그러나 이대로는 안된다. 태풍 앞에 선 현대는 시장이 요구하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변화의 주역은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 “요즘 현대차엔 자동차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자동차 전문가였던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회장의 측근 중에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맨’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몽구 회장이 숙부인 정 전회장과 현대차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빚은 끝에 현대차를 장악하자 이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몽구 회장은 그 자리에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 시절 함께 일한 측근들을 앉혔다는 것.

    그후 현대차와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가 합병하는 과정에 현대차 출신들은 또 한 번 물을 먹었다. 기아차를 인수한 뒤에도 자동차와 무관한 인사들을 상당수 중요 포스트에 앉혔다. 조직을 장악하는 것도 좋지만, 조직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때 ‘적진’에 섰다 해도 유능한 전문가들은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였어야 했다.

    MK가 인맥과 학맥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렇다 보니 회사 내부에 파벌이 조성되고, ‘핵심라인’에 들지 못한 직원들은 패배의식에 빠지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 사장이 인맥, 학맥을 찾아도 문제지만 오너 경영인이 이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기업 발전에 더 큰 걸림돌이 되게 마련. 핵심라인이 영구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핵심라인에 진입하기만 하면 안정적으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으니 모험과 승부를 꺼리게 되고 조직내 경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된다.

    위기를 기회로 살려내는 탁월한 전략은 무엇보다 현명한 용인술에서 비롯된다. 현대차로선 조직을 전문성 중심으로 개편하고, 독단과 첨언을 경계하고, ‘안된다’고 하는 소수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우차, 삼성차, 기아차 몰락의 과정은 바로 그 반면교사라 할 것이다.

    자동차 IT 표준화 경쟁의 최후 승자는?

    자동차는 지난 150년 동안 단순한 공간이동 수단에서 다양한 부가기능을 갖춘, 가장 값비싼 소비재의 하나로 뛰어올랐다. 앞으로도 정보혁명이 가속되면서 자동차의 기능은 더욱 발전할 전망이다. 공상과학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손목시계나 단말기에 명령을 내리면 자동차가 스스로 달려오는 장면은 더 이상 상상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 단말기를 통해 자동차를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이제 음성통신 수단에서 벗어나 문자를 활용하는 인터넷의 중요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IMT-2000 등 차세대 무선통신 수단이 등장하면 데이터와 음성, 그리고 영상이 하나의 방식으로 교환되는 무선 컨버전스(convergence)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GPS(위성 위치정보시스템)는 운전자에게 위치와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도난 방지나 사고 및 고장 처리, 음성 E메일 전송, 인터넷 검색 등도 가능케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는 가까운 장래에 진정한 의미의 ‘이동 사무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세계의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이 부분의 선두주자인 GM과 포드뿐 아니라 일본업체들까지 ITS(고도 정보화 교통시스템), VICS(차량 정보통신시스템) 등의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사용할 종합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어떤 솔루션으로 구현될 것인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형태의 솔루션이 그 표준으로 채택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GM, 포드 등 각사의 솔루션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할 경우 위성망이나 중계기지 등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는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자동차 시장이 통합되고 있는 상황에 국가별, 지역별로 서로 다른 솔루션이 채용될 가능성은 낮다. 현재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 IT 관련기술은 결국 하나의 표준으로 통합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전산업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표준화 경쟁이 자동차산업에서도 전개될 것이다.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자동차 IT 관련 표준화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산업에서 거대 글로벌 네트워크가 등장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표준화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므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제품과 가격경쟁력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삼성전자 등 국내 전자업체들이 이동통신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원천기술 보유사인 미국 퀄컴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지난해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CDMA에 대한 로열티로 3억5000만 달러를 퀄컴에 갖다바쳤다.

    지금까지 VCR나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크) 등 가전산업에서 벌어졌던 표준화 경쟁의 양상을 보면 우월한 기술력이 반드시 승부를 좌우하는 절대적 요인은 아님을 보여준다. 기술적으로 열세였던 마쓰시타의 VHS 방식이 소니의 베타 방식을 누른 이후 경쟁사간의 전략적 제휴는 표준화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됐다.

    이렇게 본다면 GM이 자동차 IT 부문에서 일본의 도요타와 전반적 제휴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향후 표준화 경쟁 구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스즈키 사브 피아트 등을 아우르는 GM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이미 세계시장의 25%를 점유하고 있으며, 도요타의 점유율은 10%에 달한다. 둘을 합치면 시장 점유율은 35%를 훌쩍 넘어선다. 이는 GM의 솔루션이 자동차 IT 표준화에 실질적 주역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비해 포드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대우자동차를 인수한다 해도 시장 점유율이 18.5% 정도에 불과해 포드 혼자서 GM-도요타의 제휴효과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GM과 포드의 경쟁은 세계 3위인 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의 글로벌 네트워크(세계시장 점유율 15.6%)에 대단히 중요한 캐스팅 보트를 제공할 수 있다. GM-도요타와 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가 연계한다면 세계시장의 50% 이상이 GM의 솔루션을 사용하게 된다.

    또한 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가 포드와 연계할 경우에도 포드-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의 점유율이 34%에 달해 GM-도요타의 35%에 충분히 맞설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 이는 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자동차 IT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현재 한국의 IT 관련 기술력은 매우 높은 수준에 달해 있다. 휴대폰 보급률이 25%에 이를 뿐 아니라, 전자상거래 규모도 아시아 2위,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뿐만 아니라 무선통신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업체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강점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현대자동차와 한국의 전자산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 향후 자동차 IT 분야에서 매우 의미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 손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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