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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종美軍 찾기 반세기

  • 변홍진 재미언론인

미국의 실종美軍 찾기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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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96년 6월 평양회담에서 얻은 최대의 성과 중 하나는 6·25전쟁 당시의 군사기록 열람을 허가받은 점이다. 그때까지 미국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북한을 방문해 기념관 등에서 한국전 관계자료를 관람한 적은 있으나 미 국방부 관계자들이 평양의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에서 북한의 군사기록을 열람하기는 처음이었다. 미측은 89개 전시실로 된 기념관의 39개 전시실을 일차로 열람했다. 북한은 이곳에서 대공포에 격추된 미군기 기록과 부대활동 그리고 전투상황 등 6·25전쟁 당시 기록 열람을 미측에 허가했다. 북한에서 미 조사팀이 전쟁기록 관계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은 포로나 실종자들의 신원확인과 생사확인에 큰 진전이 있음을 의미한다. 96년부터 99년까지 북한은 유해 공동발굴의 일환으로 6·25전쟁 군사기록 열람을 계속 미측에 허가했다. 그 결과 미측은 100명 이상의 실종미군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얻어냈다고 라이오타 부국장은 밝혔다. 그는 지난해 의회 전문위원들에게 “우리 조사단이 평양의 전쟁기념관 사진과 문서 등 자료를 조사한 결과 소수의 실종미군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실종미군의 가족들에게도 통보해 자료분석 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나 실종자 파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미국인들이 과거 기념관을 제한적으로 방문한 적은 있지만 89개 진열실의 소장자료를 상세히 조사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에 참여한 미 국방부의 엘리자베스 체치아 육군중령은 기자회견에서 “조사단은 인식표와 운전면허증을 비롯해 실종미군의 이름과 군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관계자료들을 열람했다”면서 “100여명의 실종미군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북한측의 전폭적인 협조 아래 소장 자료를 촬영하거나 복사할 수 있었다”면서 “그중에는 미군이 세균전쟁을 일으켰다고 인정하는 내용의 미군 진술서도 있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실종된 총 8100여명의 미군 가운데 3000여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추정해왔다. 당시 실종된 미군 중 일부가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관측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간간이 흘러나왔다. 포로 및 실종자와 관련한 유해발굴작업차 북한을 방문한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북한내 생존 미군포로나 실종자의 생사확인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북한측이 비협조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1953년 휴전협정 후 포로교환 때 미국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했던 21명의 미군병사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역시 비협조적이라는 것이다.

60년부터 80년대까지 월북한 미군병사 6명에 대해서도 미국은 그들 가족의 요청으로 북한측에 면담을 주선해달라고 했으나 이 역시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의 마틴 위스다 중령은 “북한에 망명한 6명의 미군 중 4명의 생존을 확인했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4명의 미군 망명자들은 북한에서 잡지나 영상물에 선전용으로 출연한 것이 확인됐으며 북한군 자문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것은 79년 6월에 북쪽으로 망명한 로이 정(Roy Chung) 일등병이 동양계 이름이라는 것이다. 한편 미 국방부 DPMO 관계자들이 작성한 96∼97 방북 보고서에서 “북한은 일부 미국인이 망명자건 아니건 신분에 관계없이 북한 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북한 내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억류당하고 있는 미국인의 존재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측이 우리의 미군 망명자 면담 요청에 차후 논의 대상이라고 동의한 점은 유익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각적인 정보수집

미국은 북한 내에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미군포로나 실종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국인들로부터도 도움을 얻어 왔다. 94년 3월 한국으로 탈출했던 국군포로 조창호 중위 소식을 접한 미 국방부 DPMO 관계자들은 무척 흥분했다. 미국측은 이듬해 2월14일 조창호 중위로부터 북한내 사정과 미군포로에 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이 자리에서 조중위는 52년 말 동료 국군포로들로부터 여러 곳의 포로수용소에 미군포로들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미측은 조중위로부터 전사한 미군포로들이 가매장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조중위는 미 조사관들에게 북한에 생존해 있는 노인들을 통해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포로 합동무덤들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란 점도 상기시켰다. 미국은 그후 조창호 중위처럼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인 양순용씨, 서병렬씨, 박홍길씨, 장무환씨 그리고 손재술씨 등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99년 3월 귀환한 국군포로 손재술씨(67)는 “북한에 억류중인 10여명의 국군포로를 알고 있다”고 진술했는데 미국 관계기관에서 간접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귀환 국군포로들뿐만 아니라 망명자들이나 귀순자 또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해 왔다. 미 국방부 DPMO 지침서에는 이들 귀순자, 망명자 그리고 탈북자들을 어떤 형태로든 접촉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적어놓고 있다.

한편 최근 재미동포가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미군 유해발굴에 협조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5월23일자 미주중앙일보는 LA 거주 미주동포 유용수씨(67)가 49년 전 매장된 미군포로 유해발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정치범 수용소에서 미군포로의 시체를 묻었던 그는 미 국방부의 요청으로 49년 만에 유해발굴을 위해 5월29일 한국에 왔다.

유씨는 51년 6·25전쟁 당시 인민군 징집을 피해 토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발각돼 철원군 노동당사 근처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는데 이때 같은 방에 있던 미군 조종사를 만나게 됐다.

문제의 미군 조종사는 식중독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유씨는 수용소 간수와 함께 미군 시체를 수용소 인근에 묻었고 그후 유씨는 북으로 호송중 탈출했다. 그는 훗날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갔으며 87년 미국에 이민했다. 은퇴후 문필활동중인 유씨는 미군 조종사의 무덤에 대한 기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98년 5월 남가주 미수복 강원도민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 당국에 그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미군 당국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유씨의 진술이 당시 미군 조종사의 실종과 연관된 기록임을 밝혀냈다.

최근 유씨는 미 국방부로부터 하와이에 있는 육군중앙신원확인소(CILHI) 관계자들과 함께 유해발굴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귀국했다. 유씨 부부의 왕복여비는 미 국방부가 제공했다. 그런데 유씨에게 문제가 생겼다. 최근에야 미국 시민권 선서를 했기에 미국 여권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 사정을 들은 DPMO측은 미 국무부에 협조를 요청해 유씨에게 24시간만에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이런 점도 미국정부가 참전군인들의 유해발굴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미국의 사망미군 찾기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포로나 실종자를 찾으려는 미국정부의 노력은 남한이나 북한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무대로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도 클린턴 대통령이 한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중국의 주룽지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클린턴 대통령은 주총리에게 특별한 요청을 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중공군의 군사기록을 통해 미군포로들이나 실종자들의 수색작업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중공군은 장진호 등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특히 중공군은 미군포로들을 수용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소련으로 후송까지 했던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미 국무부나 국방 관계자들이 중국정부측과 이 문제에 교섭을 벌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주룽지 총리는 협력을 약속했고 그후 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려 나가고 있다. 미 국방부 DPMO의 로버트 존스 부차관보는 1월31일 베이징을 방문, 첸밍밍 중국외교부 북미 및 오세아니아 부국장과 만나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 자리에서 중국측은 한국전에 참가했던 중공군의 군사기록 열람을 포함해 6·25전쟁에서 미군포로들을 다루었던 참전 중공군 병사들과 미측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협조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첸 부국장이 남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해발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남한땅에 묻힌 중공군 병사의 유해발굴에 미측의 협조를 요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 재임시에도 6·25전쟁 미군포로와 실종자 문제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미 92년 옐친 대통령과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포로 및 실종자 문제를 위한 미·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옐친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에 전폭적인 협력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미국측에 약 1500페이지에 달하는 6·25전쟁 참전 관계 자료와 사진들을 제공했다. 6·25전쟁 당시 구소련은 미그 전투기들을 대량 참전시켜 미군 조종사들과 공중전을 벌였다. 러시아측은 포돌스크 국립문서보관소에 비밀보관된 6·25전쟁 참전문서들에 대해 미국측 조사반의 열람을 허가했다. 이들 자료에는 6·25전쟁에서 포로가 된 미군병사들이 구소련으로 후송된 사실도 포함되어 있어 미국측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러시아측이 미국에 건네준 자료에는 국군포로들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련의 통제를 받은 일부 미군포로들과 한국군 포로들은 소련의 핵전쟁, 화생방 그리고 세균전 등의 실험용으로 이용됐다는 정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 DPMO 관계자들의 추적작업에는 과거 동구권 국가들도 들어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관리들은 불가리아를 방문해 과거 한국전에 의무관으로 파견된 전직 군의관들을 만났다. 이들 외에도 미국 관리들은 체코와 유고 등도 방문해 휴전회담에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으로 활동했던 사람들과 정부 관계 문서들을 수집했다. 또한 미국은 과거 공산권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동구권 인사들과도 광범위하게 접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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