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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안이영노의 공간탐험

유동인구 30만 거대 지하도시 코엑스 몰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기획된 해방구

  • 안이영노 문화평론가

유동인구 30만 거대 지하도시 코엑스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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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원리는 박물관학에 바탕을 둔다. 만물을 모아 놓는 것은 분류와 분석에 더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것은 근대성의 산물로, 동물원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살아 있는 동물원은 관객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과 같은 불안 심리를 일으킬 때가 있다. 한편 도심의 유흥가로 나갈 때 우리는 다른 관객을 엿보려는 관광 심리를 갖기도 한다.

우리는 다양한 만물상과 쇼윈도 외에도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코엑스 몰에 간다. 사람이 거기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철 지난 해수욕장이나 스키장에 가지 않는 것은 계절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가서 즐길 맛이 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러 가면서도 우리는 그곳의 인테리어와 몰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내가 엿보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날 피곤하게 만드는 인파다. 노는 시간에까지 부딪쳐야 하는 나의 경쟁자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관음증을 유발하지 않는가. 나에게는 훔쳐보는 즐거움이 있다.

굳이 인터넷 카페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상 현실 속에서 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를 과잉 소비하면서 거기 온 사람들의 외모와 유행과 패션과 젊음과 ‘방송 연예적인’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때로는 지나가는 아이의 바지나 구두 상표를 살피거나 앞사람의 굽힌 허리 사이로 속옷을 훔쳐보면서 자신이 올 가치가 있는 곳임을 확인한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현실 공간인 코엑스 몰은 가상적인 아름다움 혹은 상품 포장지, 브랜드, 그리고 소비할 이미지가 된다. 압구정동과 명동, 신촌, 홍대 앞, 그리고 롯데 월드와 코엑스 몰에도 가상 현실이 넘쳐 흐른다.

과거를 떠올려보라. 여기는 그저 삼성역 무역 센터였지 고유의 이름을 갖지 못했다. 삼성역이 코엑스 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바로 메가박스 시네플렉스 덕분이다. 아셈 회의장도 신축 인터콘티넨탈 호텔도 아니다.



영화관 입구는 눈이 아플 지경으로 현란한 보라색 네온 등이 온통 천장을 덮고 바닥까지 반사되고 있다. 이것은 시각 디자인 면에서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영화관을 다 모아 놓는다는 개념 역시 한때는 비상식이었다. 그런 난센스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을 극복할 정도의 자본을 들인 규모의 경제다. 이곳은 그야말로 비상식의 공간이다. 모두 질끈 눈을 감고 그 보라색 공간을 통과해야만, 이미지의 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모든 패스트푸드점이 극장 주변에 들어오고, 위층에는 12관에서 16관까지, 아래층은 1관에서 11관까지 총 16관에서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한다. 아무도 이 극장에서 뭘 하는지 미리 알고 오지 않는다. 상영관을 1에서 16까지 번호를 매기고 예약하면 그뿐이다. 이제 마음 먹은 영화 마니아는 하루 종일 이 코엑스 몰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모든 물질을 땅 밑에서 해결해준다고 해서 지하족이 되지는 않는다. 땅 속에서 온전하게 마니아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진실한 의미의 지하족이 탄생할 수 있다.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이 지하에만 사는 마니아도 생길 것이다.

지하철 역이나 몰 입구로부터 영화관까지는 구매욕을 자극하는 동선이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보라색이 빨아들인 거창한 입구와 달리 나가는 출구는 작은 글씨로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뿐이다.

수족관과 통조림 공장

구매의 동선은 수족관에도 있다. 아쿠아리엄은 가족 동반족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타듯 아셈 빌딩 입구로부터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가면, 몰 입구로부터 아쿠아리엄에 도달한다. 길게 늘어선 줄을 견디고 티켓을 끊으면 가족 관객은 생선 통조림처럼 한 선을 따라 보게 된다.

바다와 어패류에 대한 동영상을 본 후 처음 들어간 곳은 인공 바위와 폭포가 흐르는 지하 세계를 연상케 한다. 통로를 따라 나오면 유리 수족관이 보인다. 체험관은 조개류를 중심으로 만지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청소년 아동을 위한 학습 현장이다.

에스컬레이터 자동 보도는 고객 중심의 안락한 보행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지만, 입장객이라는 상품을 실어나르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케 한다. 어쩌면 동물원처럼 여기서는 인간이야말로 ‘볼거리-상품’인지 모른다.

나오는 길 역시 판매라는 목적에 맞추어 고안되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물을 주제로 한 봉제 인형, 목걸이, 가방 등이 발걸음과 눈길을 붙잡는다. 악어, 거북, 상어 등 과거에는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귀여운 캐릭터로 디자인되어 사람들을 부른다. 안 사고는 못 배길 연인과 아이들이 많다.

1990년대는 죽지 않았다

1990년대는 시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코엑스 몰을 걸어 정처없이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여기는 2000년대도, 밀레니엄도 아니다. 우리가 떠나보냈다고 생각하는 1990년대는 아직 죽지 않았다. 넌덜머리나는 IMF의 실패라든지, 무너진 산업화의 대교, 산업화의 백화점, 산업화의 지하철, 그리고 거식증 환자가 갑자기 대식가로 돌변한 것 같았던 소비 축제, 졸부의 풍요…. 시행착오 때문에 은근히 잊고 싶은 1990년대.

코엑스 몰도 우리가 떠나보냈다고 생각하는 유흥과 풍요의 공간, 그리고 ‘일찍 딴’ 샴페인의 공간이다. 1990년대부터 확산되고 발전해온 소비 문화 공간의 집대성이고, 그 첨병의 하나다. 이곳은 너무 ‘1990년대적’이다. 지난 10년의 대중 문화 산업과 신세대 기호와 유행 소비가 녹아 있다. 지식 정보나 국제성이나 독창성을 지닌 대체 문화 생산을 지시하는 2000이라는 숫자가 연상되기보다는 1990년대의 산물로 보인다.

나는 이곳을 걸으면서 10년 전의 롯데 월드와 부산 광안리에 번창한 카페 숲을 떠올렸고 88 올림픽이 벌어지던 시절의 대도시 서울을 연상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현대백화점, 공항터미널을 아우르는 코엑스 무역센터의 지하 쇼핑센터는 그 당시에도 하나의 소비 도시를 지향했다. 규모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지금처럼 코엑스 몰이 인구에 회자되어도 그 주소지는 여전히 1990년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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