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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찾아 떠나는 한여름 풍류여행

문배주에서 강쇠주까지 민속주 베스트10

  • 허시명 여행칼럼니스트

문배주에서 강쇠주까지 민속주 베스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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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태어난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고, 그러다 보면 경쟁도 치열해져 좋은 술이 등장하게 된다. 요즘은 유원지를 끼고 있는 곳의 술도가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포천의 막걸리와 동래의 산성 막걸리가 대표적이다. 주천의 동강 더덕주도 영월 동강을 찾는 사람들을 겨냥한 상호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주막이 있었고 좋은 술이 있었다. 한강의 마포나루에서 가까운 공덕동에서는 공덕리 소주가 유명했고, 남한강 탄금대 아래의 창동리에서는 청명주가 유명했다.

청명주(淸明酒)의 역사는 300년쯤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월 초에 담가서 4월 청명일에 마시는 술이었다. 그 술을 빚는 곳은 충주 탄금대에서 탑평리 중앙탑 방향으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나오는 첫째 마을 가금면 창동리다. 예전에 조창(漕倉)이 있던 마을이라 창동리(倉洞里)라 부르는데, 조세를 거두는 선박들이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었다. 특히 이곳은 문경새재를 넘어와 남한강에서 배를 타고 과거를 보러 가던 경상도 선비들이 거쳐가던 곳이다.

그러니 목 축일 술 한 잔이 그리운 동네였다. 청명주는 뱃길 나그네에게 사랑받았고, 그 맛이 한양까지 퍼져 마침내는 임금에게까지 진상되었다고 한다.

그 술이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오래도록 묻혀 있었다. 게다가 술 빚던 사람들이 세상을 뜨면서 아예 잊혀버렸다. 그런데 충주시에서 나서서 복원을 서두르고, 창동 마을에서 청명주를 빚을 줄 아는 사람을 찾다가 적임자로 떠오른 게 박영아씨(99년에 86세로 작고)와 박씨 조카인 김영기씨(80)였다.



이들은 김해 김씨 집안에서 전해오는 ‘향전록’을 참고하여, 술을 복원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애를 썼다. 무던히 노력한 결과 1986년에 술이 완성되었고, 1993년 6월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되면서 1994년부터 시판하게 되었다.

청명주는 순 찹쌀로 빚는 술이다. 찹쌀만 쓰는 이유는, 그래야 맑고 고운 술이 나오고 술량도 많기 때문이다. 예전엔 청명일(양력 4월5일경) 100일 전 추울 때 담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요즘은 온도 조절을 할 수 있어 한 달이면 술을 빚을 수 있다. 물도 예전엔 창동리 뒷산에서 한강으로 합류하는 물을 수면의 석 자 3치 밑에서 길어다 썼다. 그러나 그 물이 오염되어 이제는 100m 가량 파고들어간 지하 암반수를 사용한다.

요즘은 탁약주협회에서 공급하는 누룩을 사용한다. 밑술은 누룩과 물과 찹쌀을 항아리에 담아 3일 간 발효시키면 완성된다. 밑술에 두 번에 걸쳐 술밥을 넣는데, 처음에는 찹쌀과 누룩과 물을 넣는다. 하루가 지난 뒤에 두 번째로 찹쌀과 누룩과 물을 넣고 엿기름을 추가한다. 이 상태로 15일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 술밥을 넣을 때마다 누룩을 넣고, 마지막에는 엿기름을 넣는 것이 특징이다. 겨울에는 온풍기를 틀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서 술 도수와 비슷한 18도를 유지하며 발효시킨다.

발효가 완료되면 1차 여과를 하고 나서 다섯 가지 약재, 인삼, 구기자, 갈근, 더덕, 탱자를 달여서 넣는데 누룩내를 희석시키기 위해서다. 약재를 넣고 일주일쯤 지나 살균하면 침전물이 생긴다. 그러면 한 번 더 여과해서 병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65도의 온도에서 병째 10분 정도 살균한다.

이렇게 하면 17도짜리 술이 되는데, 700㎖ 한 병에 소비자가격이 9000원이다. 청명주를 처음 시판하던 5년 전에 찹쌀 한 가마니 가격이 10만원 했는데, 지금은 30만원 한다. 재료값은 3배가 올랐는데 술 출고가격은 6500원 그대로다.

술 맛은 좋다. 약재 향이 진한 편인데, 찹쌀 곡주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고 단맛이 적은 데다 잡스러운 맛이 없다. 더욱이 값이 싼 편이다. 전화(043-842-5005)로 택배 주문도 할 수 있다.

여든 나이에 술을 빚느라, 김영기옹은 몸도 곧추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이 떨어진 상태다. 사업을 확장하기도, 새로운 디자인을 하기도, 영업망을 넓히기도 어려워 보인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갓 졸업한 김영섭씨(26)가 아버지 일을 돕고 있는데, 술도가 일을 도맡아 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적고 여려 보인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안주인(60)은 술을 빚느라 진 빚을 감당할 수가 없어 남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 내준 200평짜리 음식점을 빨리 팔고 싶어 애를 태운다.

10대째 창동리에 살고 있는 김영기옹의 집안은 천석꾼으로 부유하게 살았다. 폐교가 된 동네 초등학교 부지도 그의 집안에서 기증한 것이다. 지금도 술도가 600평에 강가의 음식점 200평 해서 800평 대지에 살고 있는 괜찮은 외형이지만, 이제는 집까지 팔아서 빚을 갚고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당장 밑지더라도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술 빚는 일을 중단할 수 없어, 김영기옹은 다시금 술밥으로 찔 찹쌀을 물에 담근다.

4. 앉은뱅이 술, 한산 소곡주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술로 한산 소곡주와 면천 두견주를 꼽는다. 소곡주는 조선시대에도 유명해서 경상도 영양에 살던 안동 장씨(1598∼1681년)가 지은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에 빚는 법이 소개되었고, 정약용의 둘째아들 정학유(1786∼1855년)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의 정월 편에는 “며느리 잊지 말고 소곡주 밑하여라, 삼춘(三春) 백화시(百花時)에 화전(花前) 일취(一醉)하여 보자”라는 표현이 있다.

한산 지방에서는 아직도 소곡주를 많이 빚어 먹는데, 허가받은 곳은 한산 모시관 맞은편에 있는 한산 소곡주 양조장(041-951-0290)뿐이다. 양조장 대표 나장연씨는 충남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된 어머니 우희열씨(61)와 함께 술을 빚는다.

1979년에 처음 문화재로 지정받은 나씨의 할머니 김영신씨(97년 작고)의 친정은 대대로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에 살면서 술을 빚어왔다. 그 집안에 전해오는 내력만도 300년을 거슬러 1664년생인 전주 이씨 할머니까지 가닿는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는 나장연씨는 만나자마자 음식점으로 이끌더니 소곡주 한 잔을 권했다. 잘 익은 벼이삭처럼 노릇한 술은 그윽한 누룩 내음을 풍겼다. 요새 사람들은 시원한 맥주나 독한 소주 양주에 익숙하지만, 이 누룩 내음이 본디 우리 선조들의 코끝에 맴돌던 술 내음이다. 술잔을 기울이니 입안에 달콤쌉싸래한 맛이 감돌고, 술잔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혀에 알알한 기운이 돌았다.

술 맛을 좌우하는 것은 첫째가 물이고, 둘째가 누룩, 셋째가 온도다. 소곡주는 염분이 없고 철분이 약간 함유된 한산의 건지산 물로 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건지산 물이 좋다는 얘기는 양조장에서 고개 하나 너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년)의 묘와 사당이 있는 문헌서원 관리인에게서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여름에 모기 물려 가려워도 그 물에 목욕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진짜 약수’라고 했다.

누룩은 계약 재배한 통밀을 원료로 쓴다. 누룩을 만드는 데는 6개월 이상 걸리는데, 잘 띄운 누룩은 절구에 빻아 가을 이슬에 너더댓새 바래 잡냄새를 제거한 뒤에 사용한다. 누룩이 준비되면 비로소 술 빚기에 들어간다. 밑술은 물에 불린 누룩에, 쌀을 가루내 찐 흰무리 떡을 넣어 만든다. 3일 동안 발효시킨 뒤, 찹쌀 고두밥을 넣고 잘 저어 덧술을 만든다. 소곡주는 밑술 할 때만 누룩을 넣는데, 누룩을 적게 쓴다 하여 소곡주 혹은 소국주(少麴酒)라 부른다.

덧술을 발효시킬 때 들국화 메주콩 엿기름을 넣는데, 이들이 독특한 향과 맛의 원천이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술이 잘 빚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붉은 고추를 술항아리에 꽂고 뚜껑을 덮어 낮은 온도에서 숙성시킨다. 100일이 지난 뒤에 술항아리를 열고 대나무 용수를 박아 떠내는데, 그 술이 18도의 한산 소곡주다.

제조장 지하실엔 스테인리스 술통도 있고, 땅에 묻은 술독도 있었다. 저온에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하니 지하실은 서늘했다. 요즘은 대량 생산에 살균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용수를 박아서 술을 떠낼 수가 없다. 여과기와 살균기의 힘을 빌려야 한다.

나장연씨는 똑같은 공정과 정성으로 술을 빚어도, 한 배에서 나온 형제보다 더 제각각인 것이 술 맛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땅에 묻은 술항아리를 열고 술국자로 떠준 술 맛이 모두 달랐다. 단맛에서부터 상쾌하고 개운한 맛까지 조금씩 차이가 났다.

이 술 맛을 보려고 며느리가 홀짝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취하여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었다는 얘기가 있고, 또 과객이 한두 잔씩 맛보다가 그 맛에 취해 일어날 줄 몰랐다는 얘기가 있어서, 앉은뱅이 술이라고 부른다.

1990년부터 시판된 소곡주는 인터넷 홈페이지(www.sogokju.co.kr)에 들어가면 상세한 정보와 구입처를 알 수 있는데, 젊은 사장은 조만간 43도의 증류주도 시판할 예정이라며 강한 의욕을 보인다.

술도가를 둘러보며 야금야금 술을 받아 먹었더니 취기가 돌았다. 청량한 바람이 그리웠다. 술기운에 올라간 곳은 흙으로 쌓은 건지산성이었다. 백제의 유민들이 울분을 삼키며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주류산성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산정에는 끊어진 그네와 누각이 있었다. 누각에 오르자 한산벌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였다. 멀리 금강 줄기가 노랫가락처럼 에돌아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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