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봉의 경우는 대부분 3~5피치이고 인수봉은 4피치부터 9피치까지 다양하다. 후등자는 선등자가 연결된 자일을 몸에 묶고 있기 때문에 등반중 추락해도 1m 이상 떨어질 수가 없다. 따라서 선등자보다 안전하므로 보다 과감해질 수 있다. 하지만 후등만 하다 보면 바위의 미묘한 감각에 둔감해지므로 선등을 한다는 기분으로 등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컨이 올라오면 그 다음 서드, 말번의 순으로 등반한다. 선등자는 세 번째 등반자가 올라와야 다음 피치 등반에 나설 수 있으므로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때 바위절벽에 매달려 태우는 담배맛은 천하의 일품이다. 저 멀리 서울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보이고 바로 발 밑으로 녹음 짙은 숲들이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바람은 산들거려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거나 기성을 질러대는 산꾼도 있다. 이때만큼은 누구나 열린 마음, 자연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후등이 선등보다는 쉽다 해도 실력 이상으로 어려운 코스를 만났거나 트레이닝이 부족한 경우에는 ‘버벅거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용을 쓰고 난리를 쳐도 자일을 팽팽하게 당겨주지 않으면 올라갈 수가 없다. 이 때문에 평소의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에도 그는 그 코스를 돌파할 수가 없다.
실력이 뛰어난 등반가가 암벽을 오르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는 듯 경쾌하고 아름답다. 암벽등반을 발레와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듯하다. 암벽등반을 손 힘만으로 잡고 오르거나 혹은 자일을 잡고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암벽등반은 거의 발로 올라가는 것이다. 손은 미세한 홀드를 잡고 중심을 유지하거나 지지를 얻을 뿐, 몸을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결국 암벽화 밑창의 고무 마찰력을 이용해 밸런스를 잃지 않은 상태에서 발 힘으로 중력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셸 위 댄스’를 바위에서?

선인봉을 예로 들면 초보자들에게 ‘표범길’은 베테랑 바위꾼이 되는 자격증 같은 곳이다. 훼이스(경사가 80도 이상 되는 직벽)와 슬랩(경사가 80도 이하인 완만한 벽), 크랙(바위에 틈새가 벌어진 곳) 등 여러 종류의 바위 상태가 혼합된 루트인데다 완력과 담력 균형감각 등이 고루 요구되는 곳이어서, 이곳을 선등한다면 바위꾼으로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는다. 인수봉에서는 ‘하늘길’이 초보 클라이머들의 제1차 목표가 되고 있다.
주말 클라이머들의 한계는 5.11d 정도이며, 5.13 단계는 프로 중에서도 대회에서 우승을 다투는 실력이다. 5.9급을 완벽하게 선등할 수 있는 실력이면 선인봉과 인수봉의 어지간한 코스는 다 오를 수 있다. 쉽게 바둑에 비유하자면 5.10급이면 1급이고 5.13이면 프로 7∼8단, 5.14면 프로 9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5.14a를 해낸 클라이머가 탄생했으나 미국이나 프랑스 등 암벽 선진국에서는 5.15a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5.9급까지는 운동신경이 좀 있거나 완력이 센 사람이 6개월 정도 암벽경험만 쌓으면 돌파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실력을 얻으려면 등반경험이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트레이닝도 필요하다. 트레이닝은 체력과 근(筋)지구력 근력을 단련하고, 실내암벽장에서 균형감각과 유연성 순발력 등을 키워야 하는데, 한 등급 올리려면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실내암벽장은 요즘 새로운 트레이닝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 서울을 비롯, 전국의 대도시에 고루 분포돼 있을 정도다. 특히 운동부족으로 고민하는 직장인이 많이 찾는데, 그리 큰 힘을 요구하지도 않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에 스릴과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 하루 1시간씩 3개월만 꾸준히 연습하면 순발력과 유연성, 근력이 강화됨은 물론 상당한 체중감량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목적했던 피치를 끝내면 그곳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거나 바로 하강해서 휴식을 취한다. 선인봉은 코스가 짧은데다 정상 부근에 낙석이 심해 올라간 코스에서 바로 하강한다. 선인봉에서는 하루에 보통 두세 코스 이상 등반한다. 하지만 인수봉은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므로 정상에서 식사 겸 휴식시간을 갖고 서면 쪽에서 하강한다.
인수봉 등반시에는 하강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10~20m짜리 짧은 피치에서 볼더링을 한다. 볼더링은 특정한 등반동작이나 밸런스 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개척된 짧은 피치의 암벽에서 등반훈련을 하는 것이다. 볼더링은 특히 ‘하드프리’라고 해서 난이도가 높은 암벽등반을 선호하는 바위꾼들이 즐기는데, 서울의 불암산과 관악산을 비롯, 전북 선운산, 원주 간현암, 부산 금정산 등 전국 각지에 고루 개척돼 있다. 특히 볼더링장은 접근이 용이한 데다 등반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장으로도 적격이다.
야영장으로 돌아오면 장비정리를 하고 철수준비를 한다. 배낭을 싸고 주변 쓰레기를 깨끗이 모아 비닐봉투에 담는다. 대개 하산시간은 저녁 6시경. 적당히 배도 고프고 갈증도 나, 한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다. 하산주를 마시지 않으면 ‘등반을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산주는 산꾼들에게 중요한 행사다. 등반중 재미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누가 실력이 많이 늘었느니, 어디서 버벅거렸느니’ 하는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등’이나 ‘코락’ 등에서 바위 배워
어떻게 하면 산악회에 가입할 수 있을까는 어떻게 하면 암벽등반을 배울 수 있을까와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암벽등반이란 앞서 말했듯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취미생활이므로 반드시 산악회에 가입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대개 산악회에는 연중 무휴로 신입회원을 모집하는데, 뚜렷한 자격조건은 없지만 대부분 30세 이하를 원하고 있어 나이 많은 사람은 들어가기 어렵다.
30세 이상이거나 좀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은 한국등산학교(한등)나 코오롱등산학교(코락), 정승권등산학교 등에 입학하면 된다. 토털 클라이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악인 정승권씨가 운영하는 정승권등산학교는 소수정예에 나이 제한이 없다. 필자도 33세가 돼서야 암벽등반에 입문했지만 해외원정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산악인은 56세의 나이에 암벽등반 학교를 마치고 산악회에 가입했다. 그분은 처음에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쩌면 저렇게 못할 수 있나’ 생각될 정도로 겁도 많고 감각도 없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같이 산에 다니는 것만도 영광이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산에 다녔고 틈틈이 트레이닝에 전념해 지금은 ‘선인봉의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분이 지난해 가을 인수봉 정상에서 회갑잔치를 연 것이 문화방송 등에 방송돼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겨울철 구곡폭포를 등반하는 그분 모습도 역시 방송을 탄 바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대머리였던 그분의 머리에 지금은 몰라볼 정도로 머리털이 많이 자랐다는 것이다.
클라이밍, 그 무심의 행위
정작 산악회에 필요한 인력인 젊은 사람들의 가입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스포츠나 취미생활에도 3D종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감각적인 생활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암벽등반은 다소 힘들고 거칠고 더러운 일인가 보다.
산악회에 가입할 때는 다소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암벽등반이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여가활동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거나 질서체계가 어느 정도 잡힌 산악회를 골라야 한다. 해외원정 경험이 풍부한 회원들이 많이 포진한 산악회도 좋지만, 그보다는 산악회 리더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곳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등반중 사고가 나더라도 체계적인 수습을 통해 산악회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교육비는 20만원 내외, 교육기간은 대개 한 달이다. 하지만 교육을 받으려면 최소한 개인장비를 갖춰야 하는데 이 돈이 만만치 않다. 물론 한 번 구입하면 오래도록 쓸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는 큰 비용이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좀 부담스럽다. 4만원에서 7만원 하는 암벽화, 5만~6만원 하는 안전벨트, 1만원 정도 하는 퀵드로 서너 개, 2만~3만원짜리 초크통, 5만~6만원짜리 작은 배낭은 필수여서 최소한 20만원은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등반을 하려면 20만원짜리 자일 한 동과 30만~40만원 하는 확보장비, 야영을 하는 데 필요한 풀 배낭과 매트리스, 침낭, 코펠, 버너 등등 구입해야 할 장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겨울철에 적설기 산행을 하거나 빙벽등반까지 하려면 100만원을 들여도 빠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장비를 한꺼번에 구입할 필요는 없다. 서서히 갖춰나가거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는다면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산에 가려는 마음가짐이지 장비가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서서히 ‘자유등반’이란 개념이 형성되면서 우리나라도 암벽등반만 하려는 산악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유등반이란 모든 장비를 활용해서 올라가는 인공등반에 반대해 인위적인 수단은 ‘추락방지용’만 인정할 뿐, 손과 발의 힘으로만 올라가자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고난도 루트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고, 트레이닝을 위한 실내암벽장이 곳곳에 설립됐다.
자유등반 혹은 스포츠 클라이밍을 즐기는 클라이머들은 더 어려운 등반을 위해 극도로 체중을 감량하게 된다. 미세한 홀드에 체중을 실어야 하니 체조선수 같은 어려운 동작과 체격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시간만 나면 실내암벽장이나 볼더링장에 붙느라 등산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인 워킹에는 관심이 없다.
등반이 장비의 발전과 기술 향상으로 인해 세분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산악인들은 어느 한 가지만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알피니즘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등반의 궁극적인 목적은 ‘높은 산’ ‘어려운 산’을 올라가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지 남과 경쟁하거나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 산악인은 “등반의 전과정을 고루 익히려는 토털 클라이밍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디지털이니 뉴밀레니엄이니 하면서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의 생활도 극도의 편리함을 위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자연은 오염되고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지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무심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이다. 건강도 얻고 좋은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곳이 암벽등반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