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인숙
인왕산을 내려오는 길에 기러기를 만났다. 노부부가 사는 숲 속 오두막에 물을 얻어먹으려고 들렀다가 우연히 본 기러기였다. 오리도 아니고 기러기가 왜 민가에서 오리처럼 살고 있나 싶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러기였다. 기러기에게…
2008102008년 10월 06일‘글밭 일구는 호미’ 소설가 박상우
요즘 서점가에 작가들의 여행과 관련된 탁월한 산문집이 눈에 띈다. 우선 김연수의 ‘여행을 할 권리’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나온 김인숙의 ‘제국의 뒷길을 걷다’가 눈에 밟혔다. 박상우를 만나게 된 것도 서점에서 그의 산문집을…
2008082008년 08월 01일‘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시인 김선우(金宣佑·38)를 만날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중국으로 일주일간 답사여행을 떠났다. 중국 여행을 함께 할 일행 둘은 큰 여행가방을 들고 공항에 나타났다. 나는 여행가방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평소 메고 다니던 베낭에 옷…
2008072008년 07월 09일상처의 거울, 고통의 예방주사 공지영
공지영(孔枝泳·45)을 만났다. 아주 오랜만이다. 우린 딱히 약속을 해서 만나는 사이가 아니어서, 이런저런 모임에서 어울리다가 잠시 합석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수년 전, 누군가의 출판기념회 아니면 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자리였던 …
2008062008년 06월 10일‘이른 봄, 얼음 밑을 흐르는 물’ 구효서
구효서(具孝書·50)는 좀처럼 남에게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곁을 준다는 건 정이 많다는 거다. 그런데 구효서는 겉으로는 곁을 잘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속정은 깊은 사람이다.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곁…
2008052008년 05월 07일음예(陰톣)공간에서 펄떡이는 물고기 조경란
광화문 하늘을 구름이 덮어 어둡다. 음예공간이다. ‘음예(陰·#53667;)’는 구름이 하늘을 덮어 어둡다는 말인데,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 전통 건축 공간을 음예로 설명한다. 그리고 일본의 된장국에서부터 변소, 칠기, 일본…
2008042008년 04월 05일‘詩 완벽주의자’ 정현종
내겐 수십 년을 형제처럼 지낸 친구가 있다. 참 소중한 인연이다. 간혹 만나 별말을 나누지 않아도 영감을 얻고, 사소한 일상을 얘기해도 별을 보고 오는 기분이 드는 그런 친구다.그 친구 역시 수십 년을 형제처럼 지내온 선배가 있었다…
2008032008년 03월 06일‘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이순원(50·李舜源) 형 집에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여서 반가운 마음에 덜컥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느끼기 시작한 건데, 그동안 내가 바쁘게 살아서인지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다. 주위…
2008022008년 02월 11일‘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는 큰 나무가 있다. 이 마을의 수백년 지킴이인데 그 모양이 기괴하게 휘어 있고, 혹덩어리 같은 큰 옹이가 가는 줄기에 붙어 있다. 나무 기둥은 썩어들어가 텅 비어 흡사 동굴 같다.한때 그 안에 들어가…
2008012008년 01월 08일‘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몰아닥친다. 좋은 일은 몰라도 나쁜 일의 경우 이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2007년 11월8일 목요일 오전과 오후는 정말 개 같은 날이었다. 오래전에 도착한 우편물인 ‘자동차 정기검사 통지서’를 그날 아침에야…
2007122007년 12월 10일인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시인 정호승
초가을 즈음에 새벽기도를 다닌 적이 있다. 새벽잠을 꿀처럼 빨아먹고 살던 내가,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 새벽길을 나서면 무척 피곤했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몸을 이끌고 예배당에 가고, 거기에…
2007112007년 11월 08일수성(水性)의 시인 조정권
나는 지금 일산 정발산공원의 작은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연못은 조용히 고여 있는 세상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시라고 해도 될까 싶다.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음으로 시끄러운데 이 작은 산의 연못은…
2007102007년 10월 09일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7월28일 토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윤후명(尹厚明·61) 선생과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선생의 마음이 고여 있는 소설집을 기쁘게 받아들고 마치 목마른 이가 샘물을 마시듯 읽어 나가던 중이었다. 소설 속에서 선…
2007092007년 09월 10일‘살청(殺靑)’의 작가 성석제
‘살청(殺靑)’이라는 말이 있다. 죽일 ‘살’자에 푸를 ‘청’자. 푸른 것을 죽인다는 뜻인데, 대나무를 불에 쬐어 대나무의 푸른빛을 빼는 일을 살청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의미로는 사서나 기록, 또 서적을 이렇게도 부른다고 ‘이희승 …
2007082007년 08월 08일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시를 읽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시를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도 외로울 때가 있다. 아니 사람을 만나면 더 외로워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차라리 덜 외롭다. 어…
2007072007년 07월 06일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소설가 은희경(殷熙耕·48)을 처음 본 게 그가 등단한 직후니까 벌써 12년이 지났다. 소설이야 이미 평단이나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고, 외모도 건강하고 매력적이다. 그는 행복해서 시계를 보지 않을 것 같다. 다운타운을 활기차…
2007062007년 06월 07일흙 씻어주는 ‘詩 배달부’ 도종환
살다가 시가 된 사람들이 있다. 시를 읽다보면 한 인간이, 구체적인 한 인물이 시 속에서 살아 숨쉬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 친구,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 평범하게 살았지만 비범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
2007052007년 05월 04일‘공감’으로 타인에 다가가는 사람 김형경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그 이미지가 한 장의 풍경화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그 그림은 움직이는 그림이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살아 있는 풍경화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 풍경화의 밑그림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
2007042007년 04월 10일소설가 윤대녕
우리는 낡고 허름한 바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체코산 고급 맥주와 값싼 양주를 번갈아가면서 마셨다. 조금 전까지 윤대녕과 인터뷰를 했고, 목이 말랐다. 인터뷰를 하기 몇 시간 전, 나는 그의 새 책 ‘제비를 기르…
2007032007년 03월 08일소설가 신경숙
‘오늘이…, 신경숙을 만나는 날이지’라고 되뇌면서 창문을 여니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야기들이 잠시 멈추었다 떨어진다. 꽤 오랜 시간 그를 알고 지냈는데, 뭘 물어보나 하는…
2007022007년 02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