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문태준의 시는 비 온 다음 뻘밭을 기는 지렁이인가 싶더니, 어느새 뿌연 수면을 내리찍는 물총새 부리처럼 날카롭다. 아니다.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달빛 없는 밤, 세상의 갈라터진 껍질 사이로 배어나오는 수액을 느리게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외롭지만 깊고 맑고 투명하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우리 참 많이 외롭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깊은 새벽에 헤어져 새벽에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문태준(文泰俊·37) 시인과 약속한 장소에서 잠시 졸았다. 그를 만났다. 그 역시 어제는 피곤한 하루였다고 한다. 피곤한 두 남자가 만났다. 그에게서 몇 마디 들은 것 같지 않은데 돌아와 생각하니 옥수수 알처럼 많은 것이 내 마음에 박혀 있다.
서재에서 그의 시집을 다시 펼쳐 들고 읽다가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 갈 곳이 멀리 /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자꾸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항상 멈추어 있는 내 몸을 보고 슬퍼한다. 외롭다. 슬프다. 이런 추상적인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자꾸 거기에 머물고자 한다.
요즘은 누가 그리운 것인가. 나도 문태준처럼 ‘너무 먼 바깥까지’ 가버린 것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시인 문태준이 문득 이런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시 쓰는 일도 쓰면 쓸수록 외로운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점점 더 외로운 곳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견디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듯 마는 듯한 향기
삶이 동굴 같을 때가 있다. 멀리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동굴, 그러나 걸어 들어갈수록 점점 더 그 빛이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 어둠 속에서 호롱불 하나 들고 사방을 가늠하면서 되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은 혼란스럽다. 우리의 생은 되돌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다가 쓰러져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릴지라도 계속 가야만 한다.
마치 한 발자국을 옮기면 그 뒷자리는 바로 절벽으로 변해버리는 그런 동굴과 같은 삶일 수도 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시는 그런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인간의 평범한 삶이 비범해지는 순간에 시는 탄생한다. 그런데 시의 모습은 평범함 그 자체다. 쉬운 말로 다룰수록 더 깊은 비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외로운 곳으로 가는 것과 그것을 견디는 것이 시 쓰는 일이라는 말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 셈이다. 그의 외로움은 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두꺼비가 고요한 절간의 앞마당을 건너가듯이,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깊은 우물 속으로 낙하하듯이. 그는 뚜벅뚜벅 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시인 문태준이 근무하는 불교방송에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소리보살’ 같은 불교방송 아나운서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녀가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다시 약속을 정하고, 잠시 그의 작은 책상 위를 보았다. 주인 없는 책상에는 불교 관련 서적과 시집을 포함한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의 직업은 방송국 PD다. 그것도 12년차 되는 고참 PD다. 그의 책상 위치는 다른 PD를 통솔하는 높은 자리였다. 입사 이후 불교방송 라디오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거쳐 지금은 편성부에 근무한다. 불교방송국 지하에 있는 허름한 찻집에서 만나, 우리들은 지상으로 나가자고 했다.
오전의 마포 인도는 사람들로 붐볐고, 차도에는 크고 작은 차들이 즐비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우리는 실외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얼굴을 응시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자세히 보니 여전하다. 가끔 본 얼굴인데 그의 얼굴에는 중심이 확실한 안정감이 머문다. 나보다도 젊은 시인인데 성숙한 사람의 향내가 난다. 그 향기는 내 책상 위에 피어 있는 치자나무의 꽃처럼 강한 향이 아니다. 풀잎이거나, 뿌리에서 나는 듯 마는 듯하는 마음의 향기, 사람의 향기다.
문태준은 깊은 사람이다. 그 깊이는 맑고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 맑은 것의 뿌리를 나는 그의 유년에서 더듬어보았다. 눈먼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유년시절로 들어가본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뿌리는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어 파 들어가기가 수월하다.
뽕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김천, 정확하게 금릉군 봉산면 태화2리다. 직지사가 있는 황학산을 배경으로 한 태준의 시골집은 산이 크게 들어오는 곳에 있다. 산이 크게 들어온다, 라는 설명을 하면서 두 손으로 산 모양의 제스처를 취한다.
말을 할 때 몸짓이 거의 없는데 그런 동작을 취하는 것으로 보아 그 산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문태준을 자연물에 비교하라면 산 같은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산을 보고 자라면서 그도 그 산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사시사철 변하는 산을 보면, 송충이가 나비로 변하는 것 같은, 장구벌레가 잠자리로 변하는 것 같은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연초록의 산은 그것이 송충이에서 나비로 변하는 것 같은 황홀함이 있는 것이다. 시도 태어나거나 깨어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모습이 변하면서 태어나는 나비 같은 것인가.
그 산이 보이는 흙담집에 문태준의 가족이 있다. 모두 이 마을의 토박이들이다. 문태준 부친의 형제는 모두 9남매인데, 그 식구들이 모두 그 마을에서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결혼하면서 분가할 때 구입한 저수지 밑에 있는 작은 논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77년까지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식구들은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호롱불은 전등과 다르다. 전기는 온통 환하게 밝히기 때문에 좁은 방안은 온통 밝음뿐이다. 하지만 촛불이나 호롱불은 적당히 머물고 있는 어둠의 치마자리를 보여준다. 어미의 품에 드는 새끼처럼 우리는 어둠에서 편안하다.
어둠이 빛 속에 숨어 있다가 걸어 나오는 그림자가 너울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빛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하지만 전등은 모든 것을 밝히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호롱불이나 촛불 아래에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독자도 가끔 그런 정서를 즐기길 바란다. 여럿이 아니라면 혼자라도 촛불을 켜놓고 잠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덜어내지길 바란다. 그것도 일종의 시를 읽는 것이다.
문태준의 어린 시절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엔 꿈틀거리는 누에가 있었다. 그가 살던 흙담으로 만든 집에 방이 두 칸 있었는데 안방에는 잠박(누에치는 것)을 들여놓고 그 방에서 살았다면서 웃었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그의 유년시절은 연초록으로 풍성하다. 소년 문태준은 초여름이 되면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였다.
“누에에게 젖은 뽕잎을 먹이면 안 돼요. 설사를 하거든요. 비가 내려 뽕잎을 따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 빗방울이 뽕잎에 떨어지면 아주 듣기 좋은 소리가 나요.”
수십년 전에 들었을 그 빗방울소리를 마치 지금 듣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특별한 문학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문학교육을 더 잘 받았다고나 할까. 그는 책에서 배운 것보다 자연에서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갔거나 혹은 그전에 들었을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구쟁이 시골아이인 태준은 그 뽕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시를 쓴다. 그의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은 그래서 촉촉해진다.
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살이여서 아이들에게 우산이나 우비를 사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못자리용 비닐을 잘라 머리와 허리에 감는 간이 우비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그 비닐 우비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은 소리가 되어 문태준에게 스민다.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음악소리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같기도 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 피곤한 몸에 생기가 돌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서의 그런 개운함 같은 것이 온몸에 감돌았다.
극성스러운 염소새끼
“아이들하고 전쟁놀이를 하고 놀 때 쓰는 멋진 나무칼을 갖고 싶어서 아버지를 졸랐지요. 아버지는 목각 재주는 전혀 없는 분이어서, 부엌 부뚜막에 긴 나무를 올려놓고 내가 한쪽 발로 고정해, 낫으로 나무칼 길이로 다듬어준 것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유일한 나무칼이었지요.”
나무칼을 들고 동네를 아이들과 어울려 쏘다닌다. 세계 명작동화와 같은 동화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다. 공부보다는 놀고,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던 유년시절이다. 마을을 벗어나는 일도 드물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경주에 갔다. 화랑백일장에서 장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정말일까, 아니면 문학적인 수사인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형사가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교실에서 ‘어린 왕자’를 읽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린 왕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친구가 보고 있는 그 책의 표지만을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지금의 시인이 말이다. 이것이 문태준이라는 시인을 형성하는 데 어떤 요소일까 싶었다. 보통의 글쟁이들은 통과의례처럼 카뮈나 지드, 미시마 유키오와 이광수, ‘어린 왕자’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책들을 ‘보고’ 있던 시절에 그는 교과서만 보고, 대신에 논일과 밭일을 했다고 한다.
“꼴 베고, 쇠죽 끓이고, 소 먹이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지요.”
각각 자기 집의 소를 끌고 나온 친구들과 들판을 쏘다닌다. 소는 소대로 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았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숨을 곳이 참 많았던 문태준의 마을이었다. 한번은 염소를 몰고 아이들과 나갔다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염소를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혼나고, 온 식구가 염소를 찾으러 마을을 뒤졌지만 결국 염소를 찾은 곳은 다른 마을에서였다고 한다.
염소는 ‘음메에에’ 하는 소리를 내면 그 소리에 응답을 한다고 한다. 문태준과 그 식구들이 ‘음메에에’ 하면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염소는 극성맞다. 김용택 선생의 말에 의하면 염소새끼는 솥뚜껑의 손잡이 부분, 그러니까 겨우 간장종지만한 그 꼭지에 올라가서 울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극성스러운 염소새끼 같은 동네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시와 독자가 만나는 것이 염소 울음소리로 서로 소통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인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로 소리를 내고, 독자 역시 자신만의 소리로 소리를 낸다. 그것이 만나는 자리에 진정으로 완성된 한 편의 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마치 장인의 도자기가 감상자와 만나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소, 염소, 토끼, 개, 닭 등을 키웠는데 특히 토끼를 잘 키운 모양이다. 자신이 기른 토끼를 김천장에서 팔아 개와 바꿔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토끼가 아주 잘됐다고 자랑하는 모습은 시골의 촌부 같기도 하다.
“어릴 때 놀았던 것만 써도…”
그럼 도대체 시는 언제부터 쓴 것일까?
시는 기자가 되고 싶어 입학한 고려대 국문과에서 만났다고 한다. 대학에서 시도 만났고, 평생의 반려자도 만난다. 문예창작모임에 가입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를 발표하고 나서는 혹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경찰대를 갈 생각도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하다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로 내려와서 7월에는 자두를 따고, 8월에는 포도를 따서 추풍령 청과상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시집을 읽었다. 주경야독인가?
그때 읽은 시인은 신경림, 김용택, 고재종, 고은 같은 농촌 정서가 배어 있는 시인들의 시집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지 모른다고, 활활 타오른 시에 대한 열정은 군에 입대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군 생활을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부대에서 한다. 첫 휴가를 나와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었다. 하지만 졸병 시절이어서 군에서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집을 모두 분해했지요. 모두 낱장으로 뜯어 온몸에 감추고 귀대했습니다. 신병이 시를 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서, 화장실 같은 곳에서 몰래 낱장으로 된 시집을 읽고 지내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성복, 황지우에 눈을 뜨고, 시를 읽으니 자신도 쓸 것이 많았다고 했다. 생각해보자, 군인이 자신의 몸에 한 장 한 장 분해해서 숨기고 들어온 시를 읽는 모습. 한 편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는 시에 대한 사랑을 불태웠다. 그 모습이 마치 나뭇잎이 돋아나는 나무 같지는 않은가. 온몸에 한 장 한 장 이파리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
문태준의 그 시절은 한 편의 시를 나뭇잎처럼 매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 문태준의 시는 피어난다. 열매도 달린다. 그는 시 쓰는 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릴 때 놀았던 것만을 써도 되겠더라고요.”
유년시절이 풍성한 사람처럼 부자는 없다. 그의 유년은 가난한 시골이 배경이다. 그의 주위에서 그를 길렀던 것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태준의 앞마당은 거대한 들판이었으며, 뒷 정원은 산이었고, 흐르는 냇물이 생수였다. 곁에 있는 모든 게 바로 태준의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부 시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문태준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94년에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2000년에 첫 시집을 내고, 지난해 낸 것까지 합쳐 3권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2007년 현재 그는 한 권 분량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맑은 물 한 그릇 같기도 하다. 많이 쓴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적게 쓴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시가 담기에 적당한 것들을 담아서 보기 좋았다.
우리는 시를 왜 쓰는지를 이야기했다. 문태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서 시를 왜 쓰느냐고 물었다. 문태준은 소처럼 눈을 꿈벅이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안 쓰면 불편해요. 한 달 정도 시를 안 쓰면 마치 내가 할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목욕을 안 하고 사는 기분이랄까.”
뱀이 온몸으로 지나간 흔적
그는 문득 고향의 큰집에 있던 가죽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시는 가죽나무 같기도 해요.”
가죽나무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나고, 두껍고 어두운 껍질이 있다. 가죽나무 잎으로 쌈을 싸 먹기도 했는데, 맛있다고 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비릿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시의 느낌이 마치 이 가죽나무와 같은 것이라는 은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시인이 시 같다고 한 가죽나무에 대한 시 ‘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를 읽어보자.
지난 여름 나는 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 늘 어둡고 눈이 침침하던 나무를 사랑하였다 지난 여름 나는 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 나무에서 둥지를 틀던 검은 소리들을 사랑하였다 말라붙은 우물처럼 알몸으로 그녀가 우는 것을 사랑하였다. 매미의 뱃가죽보다 많이 주름진 그 소리들을 사랑하였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 본 바 없이 나는 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 -시 전문 |
어둠, 울음, 주름, 이 시를 채우고 있는 이미지는 어둡고 우울하다. 그리고 시인은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한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 사람이 부처말고 누구인가 싶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가죽나무, 사람의 기쁨보다는 고통과 울음소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시인은 자꾸 외로운 쪽으로 가는 자신의 이정표를 길 위에 세워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가끔씩 지게에 꼴을 베어가지고 오시다가, 어느 날은 지겟작대기에 뱀 한 마리를 돌돌 말아서 오시곤 했어요. 시를 쓰는 것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런지 설명은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죠.”
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적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인 ‘수런거리는 뒤란’에 뱀 이야기가 여러 편 나온다. 그의 말대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는 뱀이 온몸으로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하다.
외할아버지의 낡은 옷을 보면 나는 뱀 껍질 같은 비릿한 내를 맡았다 지게의 등이나 바쳐주던 지겟작대기 끝에 뱀 한 마리가 대롱대롱 걸려 들어왔다 숫돌에 얹혀져 푸른 등을 내보이던 낫보다 그 능구렁이가 더 무서워 보였다 (저녁연기가피는집을방문한者/ 그놈을/낯선꽃이라/부르겠네) -시 ‘사라진 뱀 이야기’ 첫 부분 |
이 시에서는 뱀을 본 누이들이 도망치는 모습, 독에 뱀을 집어넣은 모습이 펼쳐진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쉬이쉬이 숨이 가빠졌는데 능구렁이도 늙으면 쉬이쉬이 휘파람을 불고 그 소리가 끝나는 자리에서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신 애를 배어, 애를 배게 만든 남정네들이 매번 그녀를 둔덕에서 밀어버린다는 소문이 돈 여자가 동네 길 위에서 죽었을 때에도 늙은 구렁이가 거두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뱀은 그렇게 문태준에게 시로 형상화해 있다. 그의 영혼에 어떤 배암이 물었던 자리라도 있는 것일까? 지겟작대기에 매달려 있는 죽은 뱀. 그리고 가죽나무…. 문태준은 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문태준의 시를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강경희는 문태준의 시에 대해서 이런 글을 보내주었다.
“문태준의 시는 풍경의 자연이 아니라 실존으로서의 자연을 형상화한다. 그것은 풍경의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쓴 시의 풍경은 대상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화된 자연’ ‘자연화된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시학을 구축한다. 문태준의 시는 가장 농밀하게 표현된 ‘인생의 사생화’이기에 미와 감동이라는 두 가지 예술적 성취를 모두 이뤄내고 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취업공고문을 보고 찾은 불교방송에 입사한다. 그의 시 세계에서 불교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는데, 입사하기 전에 읽은 불교서적이라곤 육조단경 하나뿐이라고 했다. 마침 육조단경의 게송 하나를 잘 외워서 입사시험에 썼더니 합격했다며 웃었다. 불교와의 인연은 어릴 때 집 가까이에 있는 용화사에 어머니 손을 잡고 몇 번 다닌 것이다. 어머니 따라 영문도 모르고 부처님께 절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생의 중요한 고비를 만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의 육체는 죽을 고비를 넘긴다.
중학교 2학년 때, 병명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린다. 환청이 들려오고, 열나고, 정말 죽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유도 알 수 없고, 병원에서도 그 병인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무당을 찾아가 밤새워 굿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아버지는 아들을 거적에 말아 마당에 놓고 삽으로 흙을 퍼서 덮는 시늉도 했다. 내 아들이 이미 죽어 매장했으니 어서 역귀는 물러가라는 의식이었다.
그렇게 지독한 열병을 앓아 죽다 살아난 것을 문태준은 불교와의 인연으로 엮었다. 이러한 체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들, 죽을 만큼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살아난 사람들은 생의 다른 것을 보는 것 같다.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 있다.
그가 가까이 하는 불교서적은 많겠지만, 역시 육조단경과 임제록, 그리고 한암 스님의 법문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능엄경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루는 불경인데, 문학적인 수사가 좋은 불경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기회가 되면 절의 강원에서 스님들과 불경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불교는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자리를 살피는 종교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마음자리를 살피는 시이기도 하다.
마음을 쉬어라. 자꾸 다른 쪽으로 가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시 쓰는 쪽으로 마음을 두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쉬어야 시가 나온다. 그러면서 능엄경의 칠처징심(七處徵心)을 이야기했다. 능엄경의 초반부에 나오는 칠처징심은 부처의 제자인 아난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스승의 질문에 대답을 한 이야기다. 아난은 마음이 ‘몸 밖에 있다’ ‘몸 안에 있다’ ‘눈 속에 있다’ ‘어두운 몸속에 있다’ ‘합하는 곳에 있다’ ‘근과 진의 중간에 있다’ ‘안 밖 근간 그 어디에도 없다’고 철학적인 답변을 하지만, 부처가 보기에 그것은 모두 잘못된 집착인 것이다.
제자의 대답에 하나하나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이야기인 칠처징심.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을 잘못 가고 있는 마음자리의 사자성어로 배운다. 문태준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자리를 잘 보살피려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럼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는 그 어디에도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육조 혜능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마땅히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움직여라)이라는 유명한 금강경의 한 구절에서 대오각성하지 하지 않는가.
그런 것 같다. 마음은 가만히 두면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그러면 몸도 따라 움직인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문태준의 마음에는 두 개의 큰 공간이 있다. 하나는 직장으로서의 공간이고, 또 하나는 시인으로서의 공간이다. 일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시를 쓰는 자리로 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주필하지 말라, 살찌지 말라
두 번째 시집인 ‘맨발’을 내고 나서 그는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한 것이다. 이러한 주목이 그에게는 별로 반가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처음엔 반가웠지만 무거운 짐으로 어깨를 누르는 것 같은 부담감을 가진 것 같았다. 혼자 조용히 머물던 공간이 다친 것일까. 빛이 밝으면 눈이 먼다. 지나친 찬사나 칭찬은 사람의 눈을 멀게도 한다.
그는 수상 이후에 힘들었다고, 남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생활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분들이 자신이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지금 시를 쓰는 것, 그것을 견디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처음의 것을 잘 지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라고 격려해준다고 했다. 밖의 평가에 의존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문태준은 그런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듣는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은사가 들려준 이 두 가지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첫째가 주필(走筆, 말 달리듯이 글쓰기)을 하지 말라. 둘째가 살찌지 말라.
그는 살찌지도 않았고, 많은 글을 쓰지도 않는다.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은 그리 많은 책을 그리 많이 읽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저 겸손한 말 같지는 않았다. 책을 정선해서 깊게 읽는 스타일로 보였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 게 아니라, 한 가지에 천착해서 깊게 파내려가는 모습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듯 그는 필요한 것만을 한다. 그래서 그는 마음자리를 채우기보다는 비우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날마다 차올라오는 망상을 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대학 동기동창인 그의 아내, 대학 1학년 때 만나 ‘이 사람이다’ 싶었다는 그의 아내도 그에게 책을 많이 읽지 말라고 권했단다. 두 사람은 아들딸 낳고 소박하게 살고 있다. 문태준은 아내가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몇 마디를 비치는데도 두 사람의 금실이 보였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모양이다. 시인에게 책을 많이 읽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근본적인 고독감을 품고 있어 보였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내 시가 슬픈 것 같아요. 살고 죽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적이 많지요. 사는 것이 즐거운 것 같지 않고, 또 그런 것에는 눈길이 가지 않아요.”
‘가재미’를 닮은 여인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장 선생은 문태준 시인의 부인이 이제 몸이 다 나았냐고 물었다. 사실 부인의 안부까지 알 정도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도 없어,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시 ‘가재미’에 나오는 여인이 부인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아마도 아닐 것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가재미’에 나오는 죽어가는 여인에게 문태준의 삶의 쓸쓸한 눈길이 머문다. 사실 나는 ‘가재미’를 읽고 나서 ‘문태준’이라는 시인을 보게 됐다. 그때부터 그를 좋아하게 됐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여인. 그녀가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누워 있다고 시의 초반부는 시작된다. 이 시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도 생의 어떤 순간에 납작해져버린 가재미가 된 느낌이 든다. 시에는 가재미처럼 병상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여인이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누구일까.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
그녀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이 질문한 모양이다.
문태준은 자신의 큰어머니라고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대답한다. 들어서는 안 될 대답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뜨끔했다. 큰어머니가 점점 위독해지고 있는 상황이 시에는 잘 나타나 있다. 문병을 간 문태준은 큰어머니의 아픈 몸을 보면서 자신도 같이 아파버린다. 그리고 그의 영혼이 그녀 곁에서 메말라간다.
슬픔은 모래사막 같은 것이다. 황폐해진다. 그때 암투병 중이어서 가재미처럼 납작 엎드린 그녀가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내 마른 몸 위에 가만히 적셔준다.’ 큰어머니는 살아 싱싱한 자신의 몸에 물을 내려준다.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읽었다. 두 번째 시집인 ‘맨발’에 이성복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글로 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뛰어난 미문이어서 잘 그린 문태준의 초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시인 문태준에 대한 시 같다.
“어찌 보면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그의 시의 목소리는 비 온 다음 뻘밭을 기는 지렁이의 행보를 닮는가 싶더니, 어느새 뿌연 수면을 내리찍는 물총새 부리처럼 날카롭다. 쥐를 삼킨 뱀의 몸통처럼 꾸불텅거리는 그의 시의 행갈이는 기필코, 포획한 대상을 흐물거리는 단백질 덩어리로 만들어놓는다. 그의 시 행간마다 육식 곤충이 내뿜는 끈적한 타액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아니다.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달빛 없는 밤, 세상의 갈라터진 껍질 사이로 배어나오는 수액을 느리게 음미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억지로 주는 삶을 살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일종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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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퍼내야 한다. 말라버리면 바닥이라도 박박 긁어내야 한다. 집에서는 자식들에게, 형제들에게,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퍼주어야 한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우울함이다. 그 우울을 견디지 못하면 미치는 것이다. 그럴 때 작은 처방전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은 가까이 있는 화분의 꽃이나 나무를 보는 것이다. 짬이 나면 가로수의 큰 나무 아래에서 큰 나뭇잎을 본다. 꽃을 보는 것이 좋은데, 꽃핀 자리에 열매가 맺기 때문이다.
나는 ‘장수하늘소’ 한 마리 같은 문태준을 보면서 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각박한 마음에 문태준의 시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내어주는 꽃이었고, 열매였다. 거기에서 어느새 날아오르는 나비였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웃고 있는 할머니의 웃음소리, 걸어가고 있는 노승의 걸음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