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성인도 읽기 좋은 청소년용 ‘과학자 시리즈’

  • 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

    입력2004-09-06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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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이라는 범주는 산업혁명을 거친 뒤에야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 대부분의 전통사회에서는 15∼16세 이상이 되면 농경과 전쟁에서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각 사회 나름의 통과의례를 거쳐 유년에서 성년으로 곧바로 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책의 경우, 조선의 사대부 집안 자제들이 공부해야 할 텍스트에는 연령 제한이 사실상 없었다. 텍스트의 심도에 따른 단계와 각자의 능력에 따른 진도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천자문’‘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등이 기초 텍스트라면 사서오경(四書五經)이 고급 단계의 심화된 텍스트였던 것.

    오늘날에는 전세계적으로 청소년 도서가 특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 도서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반복적인 문제풀이 연습과 암기, 학원 수강 등이 필수적인 대입 전략이라는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은 참고서 소비자 이상이 못된다. 대부분의 서점 매장에는 청소년만을 위한 별도 코너가 없으며, 있다고 해도 참고서 코너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 시리즈물 출간 붐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두 종의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바다출판사에서 나온 ‘옥스퍼드 과학자 시리즈’(전 5권)와 지호출판사에서 나온 ‘발명가와 과학자 시리즈’(전 5권)가 그것이다. 바다출판사의 시리즈는 ‘E=mc²과 아인슈타인’ ‘진화론과 다윈’ ‘라듐의 발견과 마리 퀴리’ ‘위대한 발명과 에디슨’ ‘만유인력과 뉴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호출판사의 시리즈는 ‘파괴를 위한 과학 무기: 불화살에서 핵탄두 미사일까지’ ‘생의 암호를 풀다 유전자: 진화론에서 DNA 지도까지’ ‘더 멀리 더 가까이 통신: 봉화에서 인터넷까지’ ‘세균과의 전쟁 질병: 천연두에서 에이즈까지’ ‘목숨을 건 도전 비행: 열기구에서 우주선까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 두 시리즈는 자연과학을 주제로 한다는 점 이외에, 원서가 9∼12세 연령층을 대상으로 출간되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9∼12세면 우리나라 학제에서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에 해당한다. 번역서를 출간한 두 출판사 측은 이 시리즈를 중학생 이상을 염두에 두고 펴냈다고 한다. 분명하게 청소년용 도서로 설정한 것이다. 원서가 9∼12세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청소년용, 이른바 1318용이 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정을 말하면 이렇다.

    외국 도서 시장에서 10대 중후반(young adult) 연령층이나 9∼12세 연령층 용으로 분류되는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내용 수준에서 성인 독자들까지 포괄하기에 손색이 없다. 외국의 청소년용 도서가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용으로 독자 연령층이 한 단계 높아지는 것이 흔한 일이다.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회 일반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청소년 독자층이 소화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와 수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시리즈 역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또 하나 각별하게 거론해야 할 사항이 있다. 외국에는 청소년 도서 전문 필자군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호출판사의 시리즈 가운데 ‘생의 암호를 풀다 유전자: 진화론에서 DNA 지도까지’의 저자 네이선 아셍을 예로 들면 이렇다. 아셍은 미생물학을 연구하다가 청소년 도서 전문 집필자가 되었고, 지금까지 과학·역사·생물학·사회 문제·스포츠·경제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청소년 도서 160여 권을 집필했다.

    같은 시리즈의 ‘더 멀리 더 가까이 통신: 봉화에서 인터넷까지’를 집필한 토마스 슈트라이스구트는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 편집자, 기자, 작가로 일했으며 청소년 및 성인용 논픽션 도서 50여 권을 집필했다.

    어린이, 청소년 도서 전문 필자라면 헨드릭 빌렘 반 룬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인류사화’(아테네, 1956) ‘인류의 역사’(범조사, 1977) ‘아버지가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들녘, 1994) ‘사람 이야기’(보고 싶은 책, 1997) 등의 다른 제목으로 여러 차례 출간된 바 있는 그의 ‘인류 이야기’(전3권, 아이필드, 2002)는 청소년 도서의 모범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 책의 원서(The Story of Mankind)는 미국 도서관협회가 미국 어린이 도서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뉴베리상(Newbery Medal)의 제1회 수상작(1922)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독일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AP통신 기자로 활동하기도 한 반 룬은 역사가로서의 자신의 목표를 ‘역사의 대중화 및 인간화’로 설정했다. 이탈리아의 유명 가수이자 작가, 배우인 프란체스코 구치니가 반 룬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니, 그의 책이 전세계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미친 영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목표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시킨 책이 바로 ‘인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각별한 고백을 들어보자.

    “역사책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면 나는 애초부터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한 5년간 도서관의 케케묵은 자료더미 속에서 지낼 수 있을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모든 시기,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묵직한 책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출판사는 리듬을 가진 역사책을 내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걷기보다는 뜀박질하는 이야기책을 말이다.”

    위에서 거론한 두 시리즈와 ‘인류 이야기’가 모두 번역서라는 사실, 더구나 ‘인류 이야기’의 경우 80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은, 청소년의 감수성과 이해력에 적합한 글쓰기를 하는 전문적인 필자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현실을 반영한다.

    출판사에서 청소년 도서를 기획하고자 해도 필자를 구하기 힘들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청소년 도서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독서문화 및 출판문화 전체 차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몇 년에 걸쳐 어린이 도서 시장이 유례 없는 활황을 보인 것은 당장의 결과도 결과지만 더 먼 미래를 내다볼 때 더욱 고무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책을 자주 접한 세대는 미래의 성인 도서 독자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어린이 독자들이 입시 전쟁에 뛰어드는 청소년기가 되면 읽을 만한 책도 드물고 읽을 만한 여건도 변변찮다는 데 있다. 독자층의 자연스런 세대 흐름이 청소년 단계에서 끊어져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청소년 도서의 기획과 출판은 미래의 출판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장기투자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청소년기가 되면서 어린 시절 읽던 책을 놓아버린 청소년들은 과연 무슨 책을 읽는가? 두말할 나위 없이 교과서와 참고서일 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 교과서는 제외시켜도 좋을 듯하다. 국정 및 검인정의 사슬에 묶여 도무지 진화할 줄 몰랐던 것이 우리 교과서이니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출간된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중학생용, 전 2권, 휴머니스트)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2000여 명의 역사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이루어낸 성과다.

    제목의 ‘살아 있는’이라는 표현이 사뭇 도발적이다. 기존의 국정 및 검인정 교과서가 죽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비록 대안 교과서를 표방하지만, 대안이 아니라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과시한다. 살아있노라고 자신 있게 제목에서 밝힐 수 있는 까닭은 분명하고 정당하다.

    ‘청소년의 삶과 꿈’ 코너를 두어 우리 역사를 오늘날 청소년의 삶과 연계시켜 논한다든가, 상태가 좋은 풍부한 사진과 컴퓨터 그래픽 자료를 수록한다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운동과 전두환 장군의 광주학살 행위 등 기존 교과서가 눈감아 왔던 사실들을 거론한다든가, 한마디로 신선한 내용, 구성, 글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과서, 특히 역사 교과서 하면 생각나는 세계적인 학자가 한 사람 있다. 아날학파 최대의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페르낭 브로델은 프랑스의 대입 준비생들을 위한 역사 교과서, ‘문명의 문법’(영어판 제목 A History of Civilization)을 집필한 바 있다. 이 책은 서양사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특히 아랍 문화권이나 중남미 문화권의 역사를 부각시킨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책은 교재로 널리 채택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반 도서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영어판이 일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청소년이 대입 준비생과 사실상 동의어인 우리 현실에서는 청소년 도서 시장과 대입제도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청소년 도서가 대입제도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는 늘 외국의 청소년 도서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늘 제한적인 범위에서 청소년 도서를 기획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및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현재의 어린 독자가 미래의 필자로 이어진다”는 말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던 스필버그이고 보면 어린이, 청소년 독자가 미래의 문화 생산자로 이어진다는 다분히 체험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책과 출판의 관점에서 보면 청소년은 미래의 성인 독자이자 미래 출판의 희망이다. 그 희망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마련해 나가는 것이 우리 출판계 나아가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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