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일본으로 유출된 감정가 42억 불상, 日 소장자가 부른 150억에 찾아와야 할까

[명작의 비밀]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학부 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4-07-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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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구 약탈 부석사 불상, 장물로 귀국

    • 일제 수탈 규암리 불상, 수백억 원대 판매 중

    • “불상 일본에 보내선 안 된다”는 여론 불거져

    • 감정에 휘둘려 현실 외면해선 안 돼

    2012년 절도범들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 온 ‘부석사금동관음보살좌상’ [서산 부석사]

    2012년 절도범들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 온 ‘부석사금동관음보살좌상’ [서산 부석사]

    최근 10여 년 동안 화제와 논란이 된 한국 불상 2점이 있다. 모두 일본에 넘어가 있던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2012년 한국의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對馬)의 사찰에서 훔쳐 온 불상. 범인은 이를 팔아넘기려다 경찰에 붙잡혔고 불상도 압수됐다. 조사를 해보니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불상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었다. 고려 때 충남 서산시의 부석사에 봉안돼 있던 14세기 불상으로 밝혀졌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자 “고려 말 일본 왜구들이 약탈해 간 것이니 일본에 돌려주지 말고 부석사에 다시 봉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돌려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고 법적 소송까지 진행됐다.

    다른 하나는 1907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7세기)이다. 발견 당시부터 최고의 백제 불상이란 찬사를 받았을 정도로 그 자태가 아름답다. 그러나 1929년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 불상이 2018년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을 설레게 했다. 동시에 “한국 정부가 불상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 가격이 300억~500억 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 불상을 구입해 한국으로 들여오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상을 구입해 국내로 들여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만, 엄청난 돈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두 불상에 얽힌 논란은 흥미롭고 이례적이었으며 또 뜨거웠다. 그 논란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움으로 넘기기에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이런 논란은 과연 필요했을까. 두 불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과연 적절했을까.

    장물이 돼 나타난 부석사 고려불상

    2012년 10월 두 명의 한국인이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시 간논지(觀音寺)의 불상 창고에 침입했다, 이들은 창고의 지붕을 뜯고 들어가 안에 있던 금동여래입상과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도주했다. 불상 두 점은 배편을 통해 부산항으로 반입됐다.

    2개월 뒤인 2012년 12월 초, 일본 정부는 “한국인이 간논지에서 불상을 훔쳐 한국으로 반입했다”며 한국 정부에 수사를 요청했다. 도난 문화유산이 어떻게 부산항 세관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부산항의 문화유산감정관이 이 불상들을 모두 가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짜라고 하면 문화유산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이 들여오든 가져가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 뒤 문화재청(지금의 국가유산청)과 대전지방경찰청이 범인을 붙잡았다. 훔친 불상을 압수해 조사해 보니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조성돼 충남 서산의 부석사에 있었던 고려 불상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예상치 못한 주장이었다. 서산 부석사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일본이 약탈해 간 것이다. 그러니 일본에 돌려주지 말고 다시 부석사에 봉안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 부석사의 소유권 주장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엄연히 도둑들이 훔쳐 온 장물인데 그것을 우리가 갖겠다는 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었다. 일단 일본 사찰에 돌려주고 일본 측과 환수 협상을 진행하는 적이 합당하다는 반론이었다. 하지만 돌려주지 말자는 주장은 세력을 얻어갔고,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뜨거운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1심에선 부석사가 이겼다. 2017년 1월 대전지방법원 재판부는 “증여나 매매 등 정상 방법이 아니라 도난이나 약탈로 간논지에 넘어갔다고 보는 게 맞다. 간논지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장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반환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2심에선 부석사가 졌다. 2023년 2월 대전고등법원은 “이 사건은 국제사법을 따라야 한다”며 “일본 민법이 정한 점유취득 시효(20년)가 1973년 완성되어 소유권이 일본 간논지에 있다”고 판결했다.

    또한 “왜구의 약탈에 의해 반출된 사실을 인정하지만 지금의 서산 부석사가 고려시대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인지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2023년 10월, 대법원 역시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여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고려 때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유산이라는 사정만으로 이런 취득시효 법리를 깰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10년 동안의 공방 끝에 일본 사찰의 소유물이라고 최종 판결이 난 것이다.

    현재 부석사 불상은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보관하고 있다.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여전히 불만을 표하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89년 만에 존재를 드러낸 규암리 백제불상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2018년 존재가 드러난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 [호암미술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2018년 존재가 드러난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 [호암미술관]

    2018년 6월, 흥미로운 뉴스가 터졌다. 1929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7세기)이 일본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불상은 1907년으로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당시 한 농부가 규암리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두 점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발견했다. 이곳 바로 옆에선 1937년 산수무늬벽돌 등 백제의 7세기 벽돌 40여 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1907년 일본 헌병대는 농부가 발견한 불상들을 모두 강제로 압수했고, 1년 동안 보관한 뒤 경매에 부쳤다. 두 점 모두 한 헌병대원에게 낙찰됐는데 형식적으로만 경매 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두 개의 불상은 하나씩 두 사람에게 넘어갔다. 하나는 니와세(庭瀨)라는 사람(가문)에게 넘어간 뒤 1950년경 국가에 귀속됐다. 이후 국보로 지정돼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대구에 살던 일본인 의사 컬렉터 이치다 지로(市田次郞)에게 넘어갔다. 이치다는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거금을 주고 불상을 구입해 대구로 가져왔다. 이 불상이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이치다는 대구에서 의사로 지내면서 조선의 문화유산을 열심히 수집한 사람이었다. 그의 컬렉션은 1000여 점에 이르렀다. 이 불상은 일제 패망 직후에 이치다가 일본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으로 반출된 시기나 과정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전해오지 않는다.

    이 불상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7세기 백제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에 힘입어 1929년 대구에서 열린 ‘신라예술품 전람회’에 출품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대중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리건판 사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전문가들의 연구논문에 백제 불상의 대표작으로 언급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존재가 됐다(임영애, ‘백제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의 流轉, 그리고 그 성격’, 2020).

    높이 26.7㎝인 이 불상은 첫눈에 반해버릴 정도로 아름답고 세련됐다. 자비로운 미소, 부드러운 천의(天衣)와 유연한 포즈…. 특히 얼굴 표정과 포즈가 압권이다. 웃는 표정은 자비롭고 편안하면서 우아하다. 무릎에 힘을 빼고 목과 허리를 살짝 튼 포즈 또한 매력적이다. 이런 자세를 두고 3번 꺾었다고 해서 3곡(三曲)이라 하는데, 뒤에서 보면 이 3곡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백제 불상이 89년 만에 존재가 확인됐으니 전문가나 마니아들은 흥분했다. 이 불상의 존재를 국내에 알린 단체는 문화유산회복재단이었다. 현재 이 불상의 일본인 소장자는 개인사업가로, 1970년경 이치다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시 정황이 좀 특이했다. 불상이 소개되면서 동시에 불상의 가격이 흘러나왔다. “국보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백제금동대향로에 버금가는 유물로 300억~5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역사적 예술적으로 빼어난 불상이기에 그 가격을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국보급 가격이 거론되는 것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곧바로 “한국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 “수백억 원을 들여서라도 사와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런 분위기로 미뤄볼 때, 당시 이 불상의 존재를 공개한 것은 국내 판매를 염두에 둔 일종의 홍보마케팅이었다.

    워낙 중요하고 가치 있는 백제 불상이다 보니 국내로 들여오길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급부상하자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이 모여 적정 감정가를 논의했고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은 42억 원 정도로 평가했다. 그러나 소장자는 150억 원을 불렀다. 42억 대 150억. 협상은 더는 진척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불상을 사들여야 한다는 의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부여군과 충남 지역에서 환수 추진 단체를 결성하고 기금 마련 운동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소장자가 제시한 150억 원을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해외 유출 불상에 대한 감정의 과잉

    두 불상은 최근 10여 년 사이 본의 아니게 입길에 올랐다. 그 과정은 한편으로는 매우 흥미롭고 이례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매우 논쟁적이었다.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돌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거액을 들여서라도 규암리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을 구입해 들여와야 한다는 의견과 적절한 가격 이상으로 사들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을 제외하고 최근 들어 이렇게 집중적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불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부석사 불상을 돌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부여 규암리 불상을 소장자가 요구하는 거액을 주고서라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 이런 주장은 과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가.

    이 논란은 기본적으로 해외 유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했다. 그런데 그 애틋한 마음이 지나쳐 감정의 과잉으로 나아갔다. 물론 부석사 불상은 고려 말에 왜구들이 약탈해 갔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고려시대 불교미술이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으로 왜구의 약탈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쓰시마 일대에 근거지를 둔 왜구들이 고려 금동불을 많이 약탈해 갔다. 신앙의 목적에서, 경제적 목적에서 고려의 금동불을 적극적으로 약탈해 간 것이다(최선주, ‘일본 소재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연구’, 전남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8).

    부석사 불상도 왜구들이 약탈해 갔을 가능성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연성이고 가능성이다. 개연성만으로 부석사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게다가 그것도 한국의 절도범들이 사찰 건물의 지붕을 뚫고 들어가 훔쳐 온 것 아닌가. 이러다간 문화유산 절도범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고 만다.

    1911년 도난당한 이력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동아DB]

    1911년 도난당한 이력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동아DB]

    1911년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쳐간 이탈리아 청년 빈센초 페루자가 떠오른다. 그는 “나폴레옹이 약탈해 간 것을 조국 이탈리아로 되돌려 놓고 싶어 모나리자를 훔쳤다”고 했다. 그런데 모나리자는 약탈당한 그림이 아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6세기 초 자신을 후원해 주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한 것(또는 돈을 받고 판 것)이다. 페루자는 이탈리아에서 모나리자를 팔아넘기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조국에 돌려주기 위해 훔쳤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변명에 불과했다. 그는 그저 절도범일 뿐이었다.

    부석사 불상을 돌려주지 않아야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것이고, 돌려주면 일본의 약탈을 용인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도난범이 훔쳐 온 장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물이 아닌 상태로 되돌려놓고 일본 측과 반환 협상을 벌이는 것이 합당하다. 규암리 백제관음보살입상을 일본인 소장자가 부르는 대로 150억 원을 주고서라도 사들여와야 하는 것인가. 그 거액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불상을 일본에 그대로 두면 문화유산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두 불상, 어떻게 기억할까

    두 불상에 얽힌 논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롭게 존재를 드러낸 두 불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떻게 향유하려고 하는지, 해외 유출 문화유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등등.

    공교롭게도 두 불상은 현재 한국에 있다. 부석사 불상은 아직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보관하고 있다. 일정이 잡히지 않았지만 부석사 불상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머지않아 쓰시마섬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은 연꽃처럼’(2024년 3월 27일~6월 16일)에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전시됐다. [호암미술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은 연꽃처럼’(2024년 3월 27일~6월 16일)에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전시됐다. [호암미술관]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은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은 연꽃처럼’에 출품됐다. 저 아름다운 백제 불상을 95년 만에 실견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일본인 소장자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소장자는 지금 아마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8년 처음 세간에 불상이 드러나자 소장자는 이 불상을 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처음 사진이 공개됐을 때도 홍보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 사진만으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는 있었으나 판매에는 실패했다. 이번에는 실물을 내보였다. 이 또한 홍보마케팅의 수단일 수 있다. 소장자는 이번에는 이 불상을 팔아치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전시를 마련한 호암미술관은 “처음부터 순수 전시 목적으로 섭외를 했다”고 말했다. 나의 이런 불순한 생각이 근거 없는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두 불상이 일본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앞으로 두 불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번 논란의 스토리가 두 불상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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