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의 방법은 시장지향적이라야
- 나에 대한 비토그룹은 사람이 아니라 사고방식
- 작년에 권노갑 찾아가 중립지켜 달라고 요청했다
- 박근혜와 합당은 안돼도 정략적 제휴 가능하다
- 김정일, 냉정하고 타산적으로 대응해야
이른바 이회창-이인제 대세론으로 굳혀진 정치구도를 하루 아침에 허물어뜨린 ‘낯선 사나이’, 노무현 후보의 ‘정체’가 무엇인지, ‘노무현 돌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이른바 ‘주류사회’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에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 ‘ET’에 대해 순진한 어린이들은 공감을 가지고 환호하는데 반해 어른들은 어떤 위해라도 끼치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각종 여론조사를 해보면 젊은 세대들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인 반면 50대 이상은 그렇지 않다.
최근 ‘노풍’의 진원지로 알려진 노무현 팬클럽 ‘노사모’의 열광적인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무현은 ‘386세대’로 불리는 30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경선현장에 가보면 30대 부부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거나, 20대의 젊은 커플들이 손을 잡고 군중속에 묻힌 노무현 후보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부패하고 부정한 기존 정치판과는 다른 ‘신선한 희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분단으로 좌우대립과 전쟁의 고통을 맛본 세대들에게는 ‘국가보안법 철폐’ ‘언론과의 전쟁 불사’ 등을 운운한 노무현 후보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과격한 정치인으로 보일 수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가장 높고 올 연말에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노무현 후보가 지금 현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어떤 비전과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월7일 오후 3시30분경 민주당 경북지역 경선 합동연설회가 끝난 직후 그를 만나 70분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한 장소는 경북 포항 실내 체육관 지하의 한 작은 방이었는데 마치 경찰서나 정보기관의 취조실같이 딱딱한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에다 직전의 합동연설회에서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장인이 좌익활동을 하다가 옥사했는데 그 딸이 어떻게 영부인이 될 수 있느냐”며 공격한 탓인지 노후보는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특히 인터뷰하기 며칠 전에 이인제 후보측에서 폭로한 ‘노무현 후보의 술자리 발언 파문’으로 메이저 언론과 신경전을 벌인 탓인지 인터뷰하는 심경이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무현 후보는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 대해 사상검증을 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그는 ‘불쾌한 인터뷰’를 참아가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노무현 후보의 연설을 모두 지켜봤는데 열정에 겨워 미완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되면 너무 의욕에 넘쳐 개혁적인 일을 벌이다가 마무리를 못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다르죠. 선거시기의 연설은 즉흥성이 아주 많이 들어갑니다. 참모들이 적어주는 연설을 또박또박 읽어서는 선거 상황에서 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즉흥성이 아주 중요합니다. 마지막 마무리가 안되는 부분은 불과 수초 사이입니다. 기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연설 기교에 신경을 덜 쓰는 편입니다.”
민주당 경선이 시작된 후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지는 않고 ‘원칙과 신뢰’가 서고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추상적인 주장만 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노무현 후보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그는 4월9일 충북 청주와 옥천에서 가진 이 지역 민주당 대의원과 당원들과의 간담회에서는 나름대로 비전과 정책을 제시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시장경제를 추진하되 불완전한 시장의 한계와 실패를 보완할 수 있도록 하고, 부국정책을 추진하되 부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정책노선으로서는 독일 사민당의 ‘연대’를 중요시했고 지방화시대를 열기 위해 수도의 이전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언제부터 대통령이 될 생각을 했습니까.
“구체적으로 책임있게 말한 것은 2000년 4월13일 총선 때였습니다. 부산에서 출마하면서 당선되면 대통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이나 꿈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치를 시작할 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언론과의 전쟁’을 말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인데, 그 기적을 일으키겠다는 판단 근거가 지금의 언론지형이 방송사와 마이너 신문들, 그리고 인터넷언론과 힘을 합하면 메이저 신문들과 해볼만하다는 겁니까.
“언론이 너무 부당합니다. 제가 안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잖아요.”
-아무튼 지금 언론간의 힘의 균형이….
“제가 그렇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 힘의 균형에 있어 당신들만이 모두가 아니다, 해볼만하다, 이런 이야기 많이 했는데 이것은 나와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하는 설득논리이기도 합니다. 겁내지 마라는 거죠. 실제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부나 권력이 언론에 대해 개입한다는 것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언론에 문제가 있으면 시민사회가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저는 정권이 언론에 개입하는데 대해서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되면 어떤 언론정책을 펼 겁니까.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주장만 할 수 있을 뿐이지 제도적 장치는 어떤 것도 만들지 않을 겁니다.”
-이인제 고문이 주장하는 ‘국유화, 폐간’ 등의 발언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까.
“제 머릿속에 한번도 담아본 일이 없는 이야기가 아무리 자유스러운 자리라고 하지만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몇 번 검증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다 말한 것입니다. 유리알처럼 공개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제 머릿속은 투명합니다.”
-앞으로 노후보가 거짓말을 했느냐 아니냐는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데 자신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우리 사회에 반미적인 정서가 퍼지고 있는데요….
“저는 반미주의자 아닙니다. 소련이 러시아로 변해도 대외적인 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조약이 있고 그것을 승계해 나가는데, 하물며 제가 대통령이 됐다 해서 한미관계가 달라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죠.”
-지난해 허바드 주한미대사와 만난 적이 있죠. 어떤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별 이야기 안했는데요. 주한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옮기기로 했으면 빨리 재원을 마련해주고 협상을 해야지 지금까지 무엇하고 있었나, 그리고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안은 집지어 줘야지… 어떻게 모순된 일을 하고 있나, 내 생각은 서울시의 장기적 계획과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추진해야 될 것이 아니냐 했는데 며칠뒤에 서울시에서 그렇게 했더라구요. 합리적 생각이라는 게 비슷한 것 아닙니까.”
-작년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권노갑 고문 등을 찾아가서 이인제만 지원하지 말고 중립을 지켜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까.
“시기는 생각나지 않는데 권노갑 고문을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이미 국민일보에 보도된 겁니다. 내가 구애했다고 기분나쁘게 보도했어요. 구애한 적은 없어요. 권고문에게 이인제 고문으로 어떻게 이기려고 뒤를 밀고 있느냐, 하지 말라, 중립지키고 두고보라 했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아요.”
-박근혜 의원이나 정몽준 의원은 정치적 파트너가 될 것 같습니까, 경쟁자가 될 것 같습니까.
“박근혜 부총재가 무얼 하려고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외형상으로는 저하고 잘 안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만나서 대화를 해보고 토론을 해보면 맞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외형상으로는 동지적 관계로서 함께 손잡고 가기에는 원칙적으로 안 맞는 것 같고, 나중에 정치세력간 정략적 제휴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략적 제휴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당을 함께 할 만한 정치적 입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몽준 의원은?
“그분 잘 몰라요. 아직은 그런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라서 깊이 알아보지도 않고….”
-대선 후보가 되면 엄청난 돈이 들 터인데 도움 받을 데가 있습니까.
“당에 맡겨야죠. 저는 돈 없이 해보려고 합니다. 대선을 치르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이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는데 그것이 각종 산악회 등을 복잡하게 조직하는 데서 비롯된 겁니다. 원칙적으로 미디어선거로 가야 합니다. 여당이 먼저 주도해야 합니다. 조직선거를 탈피하고 미디어 선거로 가야죠. 원칙적으로 당에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해나갈 겁니다.”
-대통령이 되면 첫 조각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영·호남 비율을 동일한 비율로 하겠습니까.
“인사에 관해서 두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기본 원칙이 적재적소이고 그 다음이 보완적으로 안배하는 겁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4월15일 오후 우연히 들른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노후보를 잠깐 만나 두 가지를 추가로 물어보았다.
-반DJ정서가 워낙 강하고 아들 문제로 인해 앞으로 본선에서 이 문제와 부딪혀야 할터인데 DJ를 안고 갈 겁니까.
“복안이 있습니다. 차별화하기 위해 의리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부산사나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해 영남 사람들은 정권교체만 되기만 하면 다시 원상회복시켜야 한다고 단단히 벼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첨예한 지역갈등을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해소하겠습니까.
“막상 밥상을 받게 되면 생각이 달라지게 돼 있습니다. 지역대결구도 시대에나 그런 감정이 생기지….”
노무현 후보가 아직까지 대선고지에 도달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당장 지방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비록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앞서가더라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보이지 않는 통과의례가 있다. 그 ‘통과의례’를 통과해야만 지지도와 당선가능성의 갭을 메울 수 있다. ‘부산일보’의 한 간부도 “노풍이 불긴 하지만 반DJ 정서가 워낙 강해 정권교체의 열망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아직까지 노무현 고문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마지막에 자신의 이미지를 보수화하는 작업을 최측근들이 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민주투사 이미지와 여당 후보 지지자들 사이의 갭을 메우기 위해 연설 어투 하나하나 모두 바꿔야 했다. 노무현 후보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다듬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노후보는 4월15일 낮 민주당의원 15명과 만난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그동안 거의 혼자서 참모들과 부닥치면서 돌파했는데 앞으로 방식을 바꿔 여러분과 함께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노후보의 거친 말투에 대한 여러가지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노후보도 스스로 자신이 성질이 모져 있다든지, 말투가 좀 거칠다며 고치겠다는 말을 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면 시대적 상황이 노무현 후보를 필요로 하니까 출마하게 된 겁니까.
“제가 살면서 그때그때 부닥치는 주제에 따라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그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역정이 축적돼온 겁니다. 맨 처음에는 우리 사회의 비민주적인 요소와 약자에 대한 부당한 억압 문제를 풀려고 했고요. 나중에는 정치가 동서로 분열되면서 분열을 극복해야겠다는 새로운 주제에 부딪치게 된 겁니다. 분열적 정치의 기저에는 원칙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가 좌우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는 것은 무원칙의 정치를 원칙의 정치로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에서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분열구도에 끝까지 저항했고 그 결과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된 겁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처한 시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대통령 후보로 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나선 겁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려면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대통령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력입니다. 단순하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판단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대한 포괄적 판단력을 말합니다. 이처럼 가장 높은 수준의 판단력을 통찰력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이런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의지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용기와 결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을 설득하고 조직하고 이를 꾸려나갈 수 있는 추진력도 필요합니다.”
-그런 자질은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특별히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시대 정신을 알고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람이 그 시대의 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가령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총체적 평가가 어떠하든지, 그분은 1960~70년대 지도자로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는 그런 리더십이 맞지 않거든요. 지금은 이 시대에 맞는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다음 대통령은 동서화합 등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주장인데, 노무현 후보는 국민통합 외에 또 어떤 시대적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원칙과 신뢰죠. 특권과 반칙과 부조리는 사회적으로 하나로 결합돼 있습니다. 특권적 구조와 사고는 항상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수반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칙이 바로 선 사회, 우직하게 원칙을 지킨 사람이 성공한다는 상징적 모델을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통해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국 사회엔 대화와 타협의 경험과 전통이 없습니다. 극단적 대결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전 시대의 ‘일방 통행’적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일방 통행에 대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노무현 후보가 제시하는 시대적 과제란 마치 초등학교 ‘바른생활’ 수준의 상식일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과정이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식을 다음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로 꼽는 것일까.
-그동안 어떤 신념이나 이념을 가지고 조직을 이끈 경험이 있습니까.
“그게 꼭 필요한가요.”
무슨 의도로 질문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다. 노후보는 상대편의 질문이 무슨 의도가 개입돼 있는지 따지는 습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말로 인해 사단이 가끔 발생했던 만큼 질문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기 전에는 즉답을 피하려는 듯했다.
-그런 경험은 없으시죠.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면서 한 조직을 이끌었죠.”
-그런 것은 기능적인 것이고 정치인으로서 자기 노선을 갖고 정파를 이끈 경험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동안 노고문은 혼자서 행동한 측면이 많지 않습니까. 한 조직내에서 얼마나 대화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까.
“그런 측면에서의 경험이라면 말할 것이 있습니다. 기존의 조직을 이끄는 것과는 다른 경험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피라미드 시대에서 네트워크 시대로 바뀌기 때문에 생각이나 가치지향을 함께 하는 정치인 상호간의 관계도 이제 수직관계가 아니라 상호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 네트워크 관계로 봐야죠.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리더로서 조직을 이끌어본 것은 아니지만 조직을 만드는데 현실적으로 기여한 적은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1993년 통합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된 뒤에 최고회의 운영과정에서 그 시대 민주당의 성격에 맞는 아주 합리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피라미드 조직을 이끈 것은 아니지만 김원기 조세형 대표 같은 분들과 어울려서 합리적 리더십의 한 축을 이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혼자서 지역통합을 위해 부산에 3번이나 내려가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그런 명분을 위해서라면 주위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을 설득해 함께 노력을 했을 법한데요.
“그 질문에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의 정치문화를 잘 분석해보십시오. 한국의 정치가 무리를 짓고 관계를 맺는 동기가 대의명분이냐, 이해관계냐 이런 여러가지 현실의 문화를 토대로 놓고 분석을 해야 합니다. 제가 그런 부분에서 성공적인 정치인이 됐다면 또 많은 문제를 가진 정치인이 됐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에 경선이라는 예비고사에서 본고사보다 더 혹독한 검증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어떤 검증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한가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세계의 조류,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검증해야 된다는 거죠.
“그렇죠.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 전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는 많은 시비에도 불구하고 20년 뒤에는 대단히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는 세계역사의 흐름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르윈스키 사건으로 클린턴 전대통령이 전세계의 망신거리가 됐을 때도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치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의 도덕성보다는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시대의 조류에 대한 명확한 인식입니다. 그것은 수백만, 수천만 명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고 화복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 다음에 검증돼야 할 것은 진실성이 있느냐는 겁니다.”
노무현 후보는 경선 연설에서 기회만 되면 “참모들이 써주는 화려한 비전보다는 진실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을 강조했다.
-노후보는 정치에서 ‘상징조작’을 긍정적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대통령이 상징조작을 하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포퓰리스트들이 상징조작을 즐기는데….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까.”
-팍스코리아나 모임에서 강연을 할 때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아, 그 강연을 할 때 대통령은 매력있는 지도자라야 한다는 말은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훌륭하게 정책을 성공시키고도 상황을 돌파해 나가지 못하고, 클린턴은 엄청난 비난거리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소위 매력있는 지도자라야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겁니다. 상징조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다시 재신임받겠다’는 식의 단정적인 표현에 대해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다고 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그런 단정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비판적인 지적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함부로 물러나면 안되는 자리이지만 대통령의 꿈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물러나도 괜찮은 자리이거든요. 물론 제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작은 일이 아니지만, 그 말을 한 당시에는 제가 물러난다고 해서 답답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치인은 진퇴가 분명하고 결단이 강해야 합니다. 이번에 한나라당의 이회창 전총재를 보십시오. 내놓을 것 다 내놓고도 타이밍을 놓쳐서 또 궁지에 몰리지 않았습니까. 이왕 할 것을 한달만 먼저 내놓았더라면 상황을 주도해 나갈 수 있었죠.”
-노후보가 배짱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묘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벌이나 메이저언론이나 난공불락같은 지역감정의 벽과 싸우는 정도의 배짱인데 미국을 상대로 배짱을 부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기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배짱 싸움하면 안됩니다. 아주 냉정하고 타산적인 행보를 해야죠. 때로는 화를 내는 듯이, 배짱을 부리는 듯하더라도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야 하지요. 지금까지 제가 배짱 있게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한 겁니다. 어떤 일이든 똑바로 제대로 못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 배짱의 비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굳이 제가 말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부닥치면 전문가들이 분석해놓은 자료를 보고 적절하게 대응하겠습니다.”
-노후보는 정치적 직관이 뛰어나다고 스스로 평가했는데, 대통령이 직관에 의해서 국가 운영을 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정치적 직관에만 의존하면 안되죠. 그러나 중요한 결단은 직관이 크게 작용합니다. 직관에 의한 결단이 오류를 일으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논리적 훈련을 해나갑니다. 끊임없이 사실을 수집하고 판단하면서 논리적 훈련을 해나가기 때문에 직관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직관이 없는 사람의 판단은 항상 타이밍을 놓친다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직관은 살아온 경험이나 성장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경험의 성격에 따라 편향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편향될 수 있지요.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편향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이인제 후보측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안동시민학교에서 노후보가 강의한 내용을 보면 백범 김구선생이나 김규식 선생의 중도노선을 강조하기 위해서 남북 분리주의자 모두를 비판했습니다. 대통령이 돼도 그런 역사관에는 변화가 없습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이상해요. 정통성 있는 정부는 모든 정책이나 모든 존재 근거에 있어 완벽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불완전한 대로 법통과 정통성을 인정받으면서 그렇게 역사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분열주의 세력이 그 당시 득세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피할 수 있었든 피할 수 없었든, 정치적 조건이 무엇이었든지간에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은 분열적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란 말이죠. 분열적 정권이라 해서 제가 불법이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절반은 절반으로서도 합법이고 정통성이 있는 겁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이런 논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직 정치인에게 과거 정부에 대해서 정통성, 적법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노고문은 몹시 격앙됐다. 목소리도 점점 올라갔다.
-아니죠. 노후보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경력으로 볼 때 3당합당을 한 사람이나 따라간 사람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각 정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죠.
“도덕적·정치적으로는 하자가 있는 것이죠. 각 정부마다 하자를 가지고 있고 김대중 정부라고 할지라도 지역 분열의 실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하필 이런 것을, 지금 이 시간에 저한테 질문하느냐는 것이죠.”
노고문은 방금 경선 연설회장에서 이인제후보로부터 이런 식의 이념적 공세를 받아서인지 몹시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았다. 질문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논리적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김영삼 정부는 5공의 품속에 들어가 대통령이 된 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처벌했고, 김대중 정부는 3공을 옆에 끼고 정권교체를 한 뒤 5공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과거 정부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이 시기에, 제가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해서 무슨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런 형태의 질문을 하는 것은 사상검증이란 말입니다. 언론이 제기하는 것도 그렇고, 이인제 고문이 제기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제가 이 문제에 대해 거부적인 느낌을 갖는 겁니다. ‘내 사상이 이렇습니다’ 하면 되는데 상대편에게 사상고백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불쾌합니다.”
-지금 질문드리는 것은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노후보가 경선 초기에 이인제 고문은 3당합당 당시 따라갔으니까 후보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노후보도 DJP연합에 합류한 것이 비판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3당합당시 따라갔다가 다시 민주당에 합당한 것은 정치적 일관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고, DJP 연합에 합류한 것은 부득이한 것 아닙니까. 제가 지난번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변절과 실책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DJP연합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있습니다. 정치는 논리가 아닙니다.”
애당초 노무현 고문은 3김청산을 내세우며 ‘김대중당’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정권교체가 더 큰 대의명분이라고 인정하고 민주당에 합류했다.
-노후보에게 가장 크게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실입니다. 제가 경험한 정치적 현실입니다.”
-1980년대 부산지역 학생운동권을 탄압한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기 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까.
“제가 어두운 시절에 유신헌법으로 공부해서 19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그해 동아일보 광고사태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짓고 분개했던 사람입니다. 부마항쟁이 났을 때 젊은 청년이라든지 시민들에게 동조하면서도 가담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림사건을 보니까 너무 부당한 일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더란 말이죠. 그래서 부당하다고 생각해 나선 겁니다.”
-그전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시를 해서 출세를 해야겠다는 정도의 수준이었죠.
“경험이 달랐죠. 사회문제에 대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 뒤에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점차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게 된 거죠.”
-고 정주영 현대회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훌륭한 기업인이죠. 그뿐입니다. 구조로서의 재벌구조, 집단으로서의 재벌집단에 대해서는 정책적 비판을 많이 했지만 정주영씨는 탁월한 기업인이 아닙니까. 기업인은 기업 잘 하면 되고 축구선수는 공 잘 차면 되지, 정치 잘 할 일도 없고 사회정의를 부르짖을 일도 없는 것이죠.”
묘하게도 노후보가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정주영 회장 덕분이었다. 당시 정경유착 혐의로 증언대에 섰던 정주영 회장 등 재벌 총수에 대해 다른 의원들은 ‘회장님’ 하며 굽신거렸는데, 당시 초선의 노무현 의원은 ‘증인’이라고 호칭하면서 매섭게 추궁했던 것이다.
-기업인들이 오너직을 세습한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 족벌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은데….
“헌법 119조에 보면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 지나친 경제력의 집중, 독점 이런 것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경제민주화 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 정도의 생각입니다. 사회정의라는 관점에서 부의 독점과 세습이라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효율을 위해서 경쟁과 소유, 즉 경쟁의 결과로써 소유하고 상속하는 것은 장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독점과 경쟁력 집중이 경제의 효율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국민의 정부가 목표로 하는 재벌 개혁은 사회정의보다는 경제의 효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재벌개혁이 수행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오면 이들과의 경쟁력을 위해서 재벌 형태도 인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죠. 제가 대기업에 대해 한번도 해체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1988년 문제된 대정부 질문에서도 대기업 그 자체를 해체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뒀습니다.”
-한때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을 했지만 제도나 사상만으로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는데, 한때 사회혁명을 생각한 것인지….
“제가 생각한 것은 민주주의 혁명이지 계급혁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주로 소외된 사람, 억울한 사람,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 편을 들었고 이들의 사랑을 받은 편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부자들을 포함해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초선 국회의원 때 노동자 집단에 대해 각별히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가 노동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이었고 저는 단지 전체 299명의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편에 서든 대세에 지장이 없었던 것이고, 오히려 그 당시는 노동자들에 대해 우호적이고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었던 것이 탈이었지요.
그래서 도와준 것이지요. 그 이후 중진이 되니까 전체 이익을 조정하고 포괄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런 위치에 맞추어 생각도 변화하게 된 겁니다. 사람이 변절하는 것이 아니고 역할이 바뀌는 겁니다. 어느 회사의 과장을 하다가 상무나 전무가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되는 것 아닙니까. 변화가 당연한 겁니다.”
노후보는 최근 언론들이나 정치적 경쟁자들이 예전에는 이런 말을 했으면서 왜 말을 바꾸느냐 식의 추궁을 하는 데에 대해 해명을 하려는 것 같았다. 가령 사람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겠다는 인생관은 쉽게 바꾸면 안되지만, 세계관이나 역사관 등은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사회적 위치가 달라지면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파업현장 등에서 불의에 대해 투쟁하는 주장을 강하게 했는데 최근에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 대화와 타협의 문화는 집단간의 세력균형의 기초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일방적인 힘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사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력균형을 항상 이야기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흔히 중산층과 서민의 시대를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삶을 윤택하고 안정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지만 아울러 그들의 정치적 역할이 좀더 강화돼 대등한 힘의 균형 위에서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이뤄가야 합니다.”
-지금 시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데 강남의 부자들은 과소비다, 낭비한다 해서 국내에서는 돈도 못쓰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
“강남의 부자들이 외국 가려면 천천히 가도 됩니다. 만약 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제가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모략과 기우가 섞여 그런 말들이 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부자들의 부의 형성과정에 문제점이 있다 할지라도 국내경제의 관점에서는 이들이 국내에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1993년에 금융실명제를 할 때 지하자금이 지상에 올라오는 통로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 제도를 제가 비판했습니다. 왜 지하에 있는 자금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려 하면서 검문소를 세워놓고 세금을 부과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느냐고 여러 차례 주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최고위원직을 맡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기자가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무현 의원이 지하자금을 양성화할 때 면책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때부터 입을 다물었습니다. 제가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현실주의자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법이나 권력으로 다스리지 못합니다. 경제는 물 흐르듯 유도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의 방법도 시장지향적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후보를 지지하는 한 민주당 간부가 CEO 출신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노무현 그 사람 미국 갔다왔나, 상고 출신인데 제대로 하겠나, 뭔가 우리와 다른 종류인 것 같다’는 말을 하더랍니다. 노후보의 국제적 경험의 부족,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학력, 비주류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점을 강조한 말 같습니다만… .
“편협한 관점 같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지만 세계 외교 무대에서 아주 화려한 업적을 쌓았구요. 독일의 콜 수상은 영어를 못해도 독일을 통일하는데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인류사회,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여러 가지 이치에 대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철학적 방향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상고 졸업의 학력은 당시 제가 처한 시대적 환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상고 나와서 잘못한 게 뭐가 있나요.”
-그럼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혹자들은 김대통령이 독학을 해서 너무 똑똑하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맡기기보다는 매사를 지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해요.
“김대중 대통령의 잘못이 있다면 지역분열 공작에 몰려서 피해를 입고 그래서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다시 지역구도를 이용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국민들에게 스스로 지역주의자처럼 인식되고 그런 와중에서 게임을 한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적 업적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짚어서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 노후보도 4월9일 청주지역 민주당 대의원 및 당원 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불만이 하나 있다고 했다. “김대통령이 너무 많이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저는 대통령이 되면 사람들에게 맡기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노후보에 대한 비토그룹은 노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여러가지로 불안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거부감을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제가 대선후보가 되면 비토그룹을 모두 설득하겠습니다. 비토그룹이 누군지 모르지만….”
-비토그룹이 누군인지는 상정하고 있을 것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고학력층, 전문지식인, 여론주도층 사이에서는 노풍이 불기 이전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소득별로 분석해보면 소득이 높을수록 저에 대한 지지가 높았습니다. 비토그룹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고 잘못된 사고방식들이지요.”
비토그룹이라고 하면 몇몇 언론사들을 거론할 줄 알았는데 노후보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문제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인천 경선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로부터 소유지분제한 견해를 철회하라는 압력을 주는 듯한 감을 받았다고 했지요. 그런 식의 감으로 말하자면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 정초에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개혁을 이야기했지만 여당에서는 누구도 지원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김대통령이 굉장히 섭섭해 했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지원하고 나선 사람이 노후보였거든요. 사실 장관은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노후보의 발언이 있고 나서 김대통령이 흡족했다고 하는데 어떤 교감이 있었습니까.
“우연한 사건이었어요. 그날 동석했던 기자들은 알 텐데…. 밥먹고 난 뒤 기자들이 먼저 언론이야기를 거론하더라구요. 기자들이 왜 하필이면 이때 세무조사를 하느냐, 탄압이 아니냐고 하기에 제가 무슨 탄압이냐고 해서 서로 합의가 안됐어요. 그러면 그러고 말아야 하는데 제 논법에 항상 결함이 있어요. 그래 탄압이라고 치자, 너희들은 똑바로 해? 너희들은 입맛대로 거짓말하고 왜곡하고 조작해가지고 정부를 마구 조지는데 정부는 아무 말 못해? 정부도 싸워야지 이런 식으로 간 겁니다. 절대로 언론탄압이 아니다고 끝내야 하는데 내 논법에 잘못이 있어요. 내가 변호사할 때 사용한 논법을 못버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