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을 넣기 위해서는 어릴 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야 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것은 아예 관심도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장에 나가면 이기는 법부터 배운다. 당연히 골문 앞에서 마음만 급해 부드러워야 할 몸이 막대기처럼 뻣뻣해진다.
“골 넣는 비결은 뭔가. 첫째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넣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그래서 일단 슛을 때려야 한다. 슛을 때리지 않으면 공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포지션에 관계 없이 자기가 슛을 때릴 수 있도록 움직여라. 그리고 때릴 수 있다고 생각되면 망설이지 말고 전신의 힘을 쏟아 슛을 날려라. 이중에서도 떠 있는 공은 지체 없이 슛을 때려라. 떨어지는 공을 때리면 포물선 같은 드라이브가 걸려 땅에 있는 공을 찰 때보다 도중에서 잘리는 일이 적고 키퍼도 잡기 힘들게 된다. 게다가 똑같은 힘으로 1.5배는 멀리 날아간다. 그만큼 강하고 빨라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슛을 때릴 수 있다. 이중에서도 공의 바운드가 꼭대기에 있는 공은 상대 수비가 타이밍을 잡기 참 어렵다. 튄 공을 슛 하면 떨어질 때와 올라갈 때, 정점일 때, 날아가는 공의 궤적이 전혀 다르다. 뜬 공이 골에서 가까우면 지면을 향해 때릴 수도 있다. 그러면 공의 튀는 방향이 럭비공 같아 틀림없이 키퍼가 헷갈릴 것이다. 또한 뜬 공을 두부 자르듯이 회전을 주면 땅 위에 놓고 슛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리한 커브를 걸 수 있다.
더구나 만약 뜬 공을 발끝으로 찰 수가 있다면 자신조차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슛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떠 있는 공을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공격시 일단 하프라인을 넘어 떠있는 공이 보이면 슛찬스라고 생각하라. 이때는 어중간한 컨트롤은 하지 말라.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한순간에 힘껏 날려버려라.
상대 페널티에어리어 10m 정도 바깥쪽에 공이 있을 때 상대 수비는 결정적인 패스나 슛을 때리지 못하게 신경을 쓸 뿐 비교적 수비가 느슨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페널티에어리어 안쪽으로 공을 가지고 들어가면 상대 수비는 필사적으로 공을 뺏으려고 한다. 이때 슛을 하면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 상대 수비 2, 3명이 함께 달려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예측을 뒤엎는 플레이가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의표를 찌르는 패스 한방으로 동료가 상대 키퍼와 일대일이 되거나 때로는 골이 되는 것이다.”
한국축구계의 맏형 이회택 감독도 뜬 공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사실 우리 선수들의 모든 슛이 다 불안하지만 이중에서도 뜬 공에 대한 슛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거의 홈런성 ‘똥볼’이다. 근래 K리그에서 간혹 발리슛이 나오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엉겁결에 잘 맞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몸이 뻣뻣하다. 힘으로 때리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 프로리그에서 터지는 ‘뜬 공 슛’만 봐도 부드럽고 정확하고 강하다.
‘이겨야 한다’가 문제
이회택 감독은 말한다.
“한국축구의 골 결정력을 선진축구와 비교해보면 그들과 우리 선수들은 근본적으로 배운 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이 바닥에 닿았을 때 차는 것과 10㎝와 20㎝ 높이에서 차는 것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줄 아는가? 우리 선수들은 그런 점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또 우리 선수들은 응용력이나 상황판단력이 모자란다. 그것은 초등학교부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각급학교 축구대회에 가보면 오늘 오후 5시에 경기하고 내일 아침 10시에 또 뛰도록 시간표가 나온다. 그러니 이기려면 지구력밖에 없는 거다. 10년, 20년 후에 아이들이 어떤 기술을 쓸까 따위를 고민할 틈이 없다. 98프랑스월드컵 때 반짝했던 스타들은 지금 다 뭘 하나. 이동국 고종수 등이 기대주로 각광받았지만 믿을 만한 선수로 성장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익기도 전에 일찌감치 시들어버렸다. 사실 일본이 16강에 진출하고 우리는 떨어지고, 뭐 이런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자 한번 20년, 30년 후를 생각해보자. 일본은 물론이고 이제 중국도 우리와 거의 대등한 팀으로 성장했다. 중국 프로축구 열기는 무시무시하다. 월드컵에서 우리팀이 16강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프로축구팀 중 몇 팀이나 남을 것 같나. 그렇다고 16강에 올라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2, 3일 지나면 사람들은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막말로 16강과 한국축구 발전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컵 대회 때 프랑스와 브라질이 수원에서 경기를 가졌는데 관중석이 다 안 찼다. 이런 상황에서 16강을 바라보는 게 어리석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고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쳤을 때 한국선수들은 골을 잘 넣을까. 선진축구선수들은 그런 경우 95% 이상 확실하게 해결한다. 한마디로 히딩크 감독이 말하는 ‘킬러역할’을 해낸다. 한국선수들은 솔직히 10개 중 3개도 넣지 못한다. 어이없는 ‘똥볼’을 날리기 일쑤이거나 골키퍼의 가슴에 안겨다준다. 왜 그럴까?
네덜란드에서 영입한 한국축구지도자 전문강사(director of coaching) 로버트 레네 앨버츠는 “한국선수들은 빠르고 투지도 넘치는데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경기템포가 빨라지고 허둥거려 조직력이 깨지고 어이없는 슛을 남발한다”고 지적했다.
이 방면으로 세계에서 제일 가는 잉글랜드 마이클 오언의 얘기가 빠질 수 없다. 그는 바람같이 빠르다. 그래서 쉽게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친다. 하지만 그는 어김없이 해치운다. 거의 실수하는 법이 없다.
“수비수에게 제압당하고 있을 때는 수비수로부터 멀리 있는 쪽의 발로 공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몸을 방패로 쓸 수 있고, 상대 수비는 태클을 걸기 힘들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잉글랜드-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내 오른쪽에 있던 데이비드 베컴으로부터 패스를 받아 아르헨티나 수비수 두 명을 순간적으로 따돌렸다.
그러자 내 앞에는 아르헨티나 수비수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 측면으로 달려들고 있는 동료 폴 숄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가 나를 대신해서 공을 드리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득점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골포스트를 향해 달렸고 결국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되었다. 골키퍼가 빈틈을 보이자 난 골문을 향해 슛을 날렸다.
스피드가 빠른 난 골키퍼와 일대일 승부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친 상황에서 골키퍼를 제압하는 방법은 많다. 골키퍼는 자세를 움직이지 않고 가능한 한 끝까지 버티려고 한다. 이럴 땐 우선 가장 좋은 슈팅 타임을 순간적으로 정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골키퍼가 적절한 위치를 잡기 전에 재빨리 슛을 해야 한다. 슛 할 때는 절대 위쪽을 보지 말고 공을 주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공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만약 골키퍼가 골라인에서 벗어나 포스트 뒤로 충분한 거리가 있고, 슈팅하는 선수와도 떨어져 있다면 골키퍼 머리 위로 공을 낮게 올려 찰 수도 있다. 이때는 아주 정확하면서도 대담하고 신중해야 한다. 한쪽 골포스트로 비스듬히 접근할 때 가장 좋은 슈팅은 골키퍼가 있는 곳에서 먼쪽의 골포스트로 슛을 날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골키퍼가 수비하기 어렵고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온 경우 리바운드된 공을 득점으로 연결할 기회가 생긴다. 골키퍼가 돌진해 나오면서 공격수의 발쪽으로 몸을 던지면 골키퍼보다 먼저 움직여 가능한 한 골키퍼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 골키퍼가 몸을 던지면 발등이나 발끝을 사용하여 골키퍼의 몸 위로 공을 넘겨야 한다. 슛동작을 취하면서 발의 안쪽이나 바깥쪽을 이용하여 공을 드리블할 수도 있다.”
샤샤와 비슷한 이야기다. 정작 슈팅연습을 해야 할 때는 건성건성으로 한다는 뜻이다. 한때 한국축구인들은 한국선수들이 똥볼을 잘 날리는 것은 어릴 때부터 맨땅에서 공을 차던 습관 때문이라고 핏대를 올리며 말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왜 그런지 이말이 갑자기 쏙 들어갔다. 월드컵경기장이 10개나 생겨서 그럴까? 아니다. 펠레나 마라도나의 말을 들어보면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 같은 천재들도 그들의 축구기술을 기르고 완성한 곳은 ‘맨땅 길거리 축구’였다. 그들의 80%는 ‘맨땅축구’가 만들어냈다. 펠레는 “우리의 운동장은 내가 살던 루아 루벤스 아루다 거리였다. 골대는 거리가 끝나는 양끝이고 사이드라인은 포장된 도로와 인도의 경계선에 연석이 깔린 곳이었다.
펠레와 마라도나도 맨땅에서 배웠다
그나마 포장된 곳이 아니면 약간의 기술이 있어야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은 넝마더미에서 찾아낸 커다란 남자양말에다 속을 꽉꽉 채운 것이나 신문지를 뭉쳐 그럴 듯한 공 모양이 날 때까지 굴린 다음 그 끝을 끈으로 묶은 것이었다. 이 공은 얼마나 최근에 채워졌냐에 따라, 혹은 얼마나 많이 진흙탕에서 걷어 차였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마라도나도 전혀 다르지 않다. 마라도나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벽치기’를 강조할 뿐이다.
“난 어릴 때 집 근처의 자동차가 잘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공을 찼다. 그 도로에는 층계가 있거나 구멍이 뚫려 있는 곳이 있었지만 그것만 피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공은 대부분 잘 튀고 촉감이 부드러운 고무공이었다. 고무공은 띄우기 쉬워 길가의 구멍이나 층계를 피할 수 있었다. 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선수들이 공을 띄워 처리하는 데 능숙한 것은 모두 내가 어렸을 때처럼 부드러운 공과 형편없는 맨땅 길거리운동장에서 축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혼자 놀아야 할 때는 ‘벽치기’를 했다. 머리로만, 인사이드로만, 아웃사이드로만, 발뒤꿈치로만, 넓적다리로만 하는 식으로 친구와 경쟁적으로 ‘벽치기’에 열중했다.
이러다 싫증이 나면 기상천외한 공차기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벽에서 튀어나오는 공을 연속적으로 몸의 일정 부분에 정확히 맞추는 장난도 했다. 공을 벽에 치고 있는 중에 일단 공을 머리나 가슴이나 발의 인스텝 등으로 멈추고 밑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시 벽치기를 시작하는 기술도 몸에 익히게 되었다.난 어떤 팀에 소속되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져 공과 놀고 있던 그 시절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맨땅축구의 예찬론자다. 크루이프는 아예 어릴 땐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배우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어릴 때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배우는 게 오히려 문제다. 길거리 축구에서 시작하는 게 훨씬 낫다. 상대방하고 축구하다 넘어지면 다치는 게 길거리 축구다. 아이들은 한번 다쳐보면 다음부터는 다치지 않으려고 공을 차면서 생각하게 된다. 공을 다루면서 몸싸움을 하더라도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린 여기에서 한국축구 지도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거꾸로 10개의 월드컵경기장과 파주 트레이닝센터가 생겼으니 한국축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할까? 똥볼을 날리지 않고 골문 안으로 들어갈까?
아니다. 그것은 슈팅이 한국선수들보다 10배는 더 정확한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윤태조씨는 “한국사람들은 일본은 돈이 많아 선수들이 모두 잔디밭에서 공을 차고 잘 발달된 유소년클럽이나 해외유학을 통해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본도 공식경기를 제외하고는 잔디에서 공을 찰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맨땅에서 찬다.
해외유학을 통해 발굴된 선수도 극소수에 불과하며 그것도 거의 자비유학생들이다. 일본도 한국에서처럼 학원에서 대부분의 선수를 발굴한다. 일본축구의 성장은 일본축구협회의 체계화된 축구행정과 학원 지도자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잘 배운 덕분에 일본은 이제 외국인이 많지 않아도 그들로부터 충실히 수업 받은 국내파들이 일본선수들에게 선진축구를 전파하고 있다.”
한국축구의 ‘똥볼’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고칠 수도 없다. 결국 지도자가 문제다. 축구행정이 문제다. 한국사회의 승리지상주의도 문제지만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기본기를 충실하게 가르칠 만한 지도자가 너무도 적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축구인들은 틈만 나면 유소년축구가 큰일이라고 앵무새처럼 말한다. 그러나 온몸으로 유소년축구 발전을 위해 애쓰는 ‘소위 잘 나간다는 축구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축구인들에게 일본 지도자들 10분의 1만큼이나 열정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35년간 주요 국제대회를 분석한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팀의 슈팅수와 골 득점 비율은 10:1 정도다. 열번 정도 슛을 때려야 1골이 들어간다. 그러나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월드컵 16강에 들 정도의 팀은 그 성공률이 20%대로 껑충 뛴다. 네댓번의 슈팅으로 반드시 1골을 뽑아낸다. 한국은 어느 정도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 5%를 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득점의 66%가 양쪽 골대로부터 1.8m 사이와 높이 66㎝ 아래로 들어갔다. 슈팅 수단은 오른발 55%, 왼발 33%, 머리 12%순이었다.
한마디로 슛은 골대 구석쪽으로 낮게 차야 한다. 낮게 깔리는 슛은 몸의 무게중심이 낮아야 나온다. 마음이 뜨면 슛도 뜬다. 마음을 낮춰야 골대가 보이고 골키퍼가 보인다. 골키퍼가 보이면 슈팅이 자유롭게 된다. 마음이 낮아진다. 슈∼우웃 고∼올인. 골문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1997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린 4개국 초청 프레월드컵 프랑스-브라질전.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상대진영 골문에서 37m나 떨어진 거리에서 얻은 프리킥을 그대로 골로 연결했다. 카를로스의 이날 슈팅은 프랑스팀의 방어벽을 우회해 골대 안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당시 이 골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미국 CNN방송은 스포츠뉴스에서 이를 세 번씩이나 다시 보여주었다. 카를로스는 왼발 바깥쪽을 이용해 공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도록 공의 오른쪽 모서리를 힘껏 찼다. 공의 회전은 초당 10회 정도에 속도는 초속 41.6m(공식기록 시속 150㎞). 공은 상대 수비수가 벽을 쌓은 곳에서 공기 저항력이 커져 속도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옆으로 휘었다. 이것은 카를로스가 공을 왼발 바깥쪽으로 힘껏 차면서 순간적으로 끊어 찼기 때문이다. 회전이 걸린 느린 공은 똑같은 회전이 걸린 빠른 공보다 더 많이 휜다(마그누스 효과). 수비벽을 휘어돌아간 공은 골라인 부근에서 다시 한번 휜 뒤 그대로 골네트를 갈랐다. 프리킥한 공의 궤적 끝에서는 속도가 더 느려지면서 각도가 더 크게 휜 것이다.
고종수의 왼발 슛
공의 회전수는 이론으로만 보면 공의 무게중심으로부터 발까지의 거리가 멀수록 많아진다. 쉽게 말하면 발에 맞는 부위가 공의 바깥쪽으로 가면 갈수록 회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공의 바깥만 찬다고 회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발이 닿는 시간이 짧아지고 발과 공이 닿는 부위도 좁아지기 때문에 공의 회전수와 속도를 떨어뜨린다. 한마디로 공의 무게중심에서 너무 가깝거나 너무 먼 위치를 차면 많은 회전을 얻을 수 없다.
회전수가 최대가 되고 속도가 빠른 슈팅을 하려면 어디를 차야 할까. 그것은 많은 연습을 통해 느낌으로밖에 알 수 없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슈팅을 날리는 선수만이 알 수 있다. 카를로스는 허벅지 둘레가 58cm나 되는 어마어마한 다리근육을 자랑한다. 카를로스가 강한 회전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허벅지 근육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수도 이런 킥을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카를로스의 바나나킥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고 말한다. 회전을 주는 힘도 중요하지만 정확도와 정교한 발놀림이 필수적이라는 것.
그러나 한국엔 고종수가 있다. 고종수는 카를로스와 같이 다리 근육이 강하지 않아 먼 곳에서 찰 수는 없지만 정교함은 그에 못지않다. 그의 왼발 슛은 좌우로 흔들릴 뿐만 아니라 위아래로도 꿈틀댄다. 킥 방향과 공의 비행경로는 좌우로 2.2∼3.1m나 차이가 난다. 미국 프로야구 김병현 투수의 커브와 싱커를 합해 놓은 공 같다. 발목의 유연성이 뛰어나 스냅이 좋다. 소위 ‘감기는 맛, 휘는 맛, 날카로운 맛’이 일품이다.
그의 왼발 프리킥을 보면 숨이 막힌다. 정작 본인은 “공 차는 데 무슨 기술이 필요한가. 관중들 박수만 있으면 되는 거지…난 그냥 발목의 감각으로 찰 뿐”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는 “고종수의 왼발 프리킥은 포인트가 좋다. 순간적인 발목 스냅을 이용해 굉장한 회전이 걸리도록 한다. 게다가 고종수는 필드골을 넣을 때도 슈팅을 날릴 타이밍에서는 패스를 날리고 패스 타이밍에서는 슈팅을 해 골키퍼를 아주 골치 아프게 한다”고 말한다.
전 국가대표 골키퍼 서동명도 “다른 선수들이 좌우로 휘어지는 공을 차는 데 비해 고종수는 프리킥을 할 때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는 드롭성 슈팅을 한다. 또 고종수는 공을 차는 마지막까지 골키퍼의 움직임을 계속 보고 있다. 슈팅시 최후까지 골키퍼를 보고 있다가 그가 움직이는 반대방향으로 회전을 줘서 골을 넣는다”고 감탄했다.
한국선수들은 대부분 발목 스냅이 약하다. 발목 스냅은 슛할 때도 필요하지만 패스할 때도 아주 중요하다. 백스윙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패스타임이나 슛시간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또한 공을 짧게 끊어 찰 수 있어 공에 회전을 줄 수도 있다.
공이 회전하면 꿈틀거려 골키퍼가 방향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스냅은 어렸을 때부터 길러야 된다. 때를 놓치면 근육이 굳어 소용없어진다. 배드민턴의 스매싱이나 배구선수의 강스파이크도 어깨보다는 손목의 스냅에서 나온다. 남미선수들의 발목 스냅은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유럽선수들의 발목 스냅은 부드럽기보다는 힘이 넘친다.
프리킥의 마술사는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다. 그는 프리킥을 매우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강하게 회전을 먹여 찬 공은 수비벽을 피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 경기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다. 그것은 늘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공을 차야 축적될 수 있다. 상대 골키퍼의 작은 습관까지도 머리에 새겨둬야 한다. 또한 페널티에어리어 어느 곳에서든지 슛을 날릴 수 있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바로 이러한 ‘생각하고 연구하는 축구’를 안 해왔기 때문에 멋진 슛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순간적으로 자기 발 밑에 공이 와도 우물쭈물하다 슛을 놓친다.
대부분의 스포츠경기를 보면 경기경험에 따라 경기기술이나 운영 면에서 현격한 수준 차이가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 축구경기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끔 대학팀이 고등부팀에게 혹은 실업팀이나 프로팀이 대학팀에게 어이없이 지는 경우도 있다. 공이 둥글기 때문에 그런가. 아니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신동성 박사는 “고등학교 이상의 우수선수를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한국축구선수들의 경기흐름 파악이나 상황 대처능력은 고등학교, 대학, 실업, 프로팀 선수들이 거의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고등학교 선수나 프로팀 선수나 경기운영 및 흐름파악 능력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 이는 돌려 말하면 고등학생이나 프로선수나 아무 생각 없이 공을 찬다는 얘기다. 그러니 고등학교 때 ‘천재’가 조금만 지나면 ‘둔재’가 된다. 이런 면에서 한국선수의 테크닉은 고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축구에서는 내가 공을 가지고 있을 때, 동료가 공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선수가 공을 가지고 나한테 다가올 때, 상대 선수가 공을 가지고 내쪽이 아닌 다른 동료쪽으로 공격해올 때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이해도’이고 ‘테크닉’이다.
요한 크루이프는 말한다. “테크닉은 단순히 공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술 시스템의 전제가 되는 상황판단까지 포함하는 실천적 개념이다. 리프팅을 천 번 계속할 수 있는 것보다 경기에서 원터치 패스를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뛰어난 테크닉이다.”
오스트리아 프로팀에서 뛴 적이 있는 국가대표 최성용은 “상무시절 98프랑스월드컵에 참가했다. 0대5로 진 네덜란드전에서 오베르마스의 두번째 골을 막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그것만 잘 막았어도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열심히 뛴다고 축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이젠 생각하는 축구를 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라스크린츠에서 뛰며 유럽선수들은 경기중 항상 생각하면서 공을 찬다는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회택 감독도 직격탄을 날린다.
“히딩크가 ‘16강 자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가 그렇게 믿고 하는 말일까? 야전사령관이 전쟁터에서 ‘우리는 져, 지게 돼 있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벌써 16강에 진출했다고 보고 있다. 진출하지 못하면 감독은 물론 선수 등 한국축구인들은 모두 무능한 사람이 되는 상황이 됐다. 왜? 16강 진출한다고 떠들고 다닌 언론이나 일부 축구인들 탓이다.
어렵다는 것은 기자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이건 한마디로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16강에 못 오르면 누가 최대 피해자일까? 히딩크는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럼 누군가. 우리 국민이다. 한껏 기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느낄 실망감이 가장 큰 문제다. 그 실망감이 그대로 축구인들에게 쏟아진다. 전력으로만 따진다면 한국팀은 예선 3패라는 게 가장 정확하다. 물론 16강은 불가능하니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되 기만이나 피해는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유럽 감독, 브라질 감독을 불러다 조직력과 개인기를 배워 지금의 일본축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린 그걸 1년 만에 빼먹으려 하고 있다. 이건 도둑놈 심보다. ‘히딩크, 넌 100만달러 받았잖아, 그러니까 16강 진출시켜!’하는 식이다. 히딩크가 요술쟁이인가?”
98프랑스월드컵 당시 일본감독이었던 오카다도 점잖게 ‘한국선수들의 생각 없는 플레이’를 꼬집는다. “현대축구에서는 한 선수가 공을 가지고 패스할 즈음이면 주변의 3∼4명이 함께 이리 저리 움직여줘야 공간패스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한국선수들은 한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 주위 선수 가운데 2명만이 움직인다. 그래서 공을 잡은 선수는 어느 선수에게 공을 줘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패스 시기를 곧잘 놓친다. 당연히 뒤로 패스하거나 횡패스가 많고 전방으로의 날카로운 전진패스가 드물다. 이것은 선수들이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선수라는 지단은 왜 강한가. 그는 전술 이해도가 뛰어나 운동장 전체를 한눈에 꿰뚫어본다. 지단의 드리블이나 패스, 슈팅에는 군더더기나 망설임이 전혀 없다. 지단은 유로 2000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연장 포함 12분, 프랑스 2-1승)에서 팀에서 가장 많은 109회의 공을 받아 75회의 패스를 날렸다. 일반적으로 한 선수가 공과 만나는 평균 횟수는 90분 경기 기준으로 60∼70회 정도. 지단의 109회는 아무리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였다지만 그의 비중을 알게 해준다.
축구황제 펠레는 그가 뛴 4번의 월드컵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96회의 볼 접촉 횟수를 기록한 바 있다. 지단의 공 보유시간은 5분24초. 90분 경기 기준 3분 정도인 일반 선수보다 훨씬 많은 공 점유율을 보인다. 공이 올 때마다 다음 패스가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97초.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가끔 쓸데없이 공을 끄는 것과 견주어보라. 세계적인 선수는 3초 이상 공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지단의 선수별 패스전달 횟수를 보면 공격 때는 최전방 오른쪽 앙리(13회)에게 들어가는 스루패스를 많이 날렸다. 윙백인 리자라쥐와 튀랑에게도 상당량의 패스(각각 8회)를 해 측면공격을 활용했다. 지단 바로 뒤에 있는 앵커맨 역할의 수비형 미드필더 데상과도 수시로 리턴패스(10회)를 하며 중앙돌파나 경기 속도를 조절했다. 지단의 패스 특징은 백패스가 거의 없다는 것. 하프라인 뒤 자기진영으로 패스한 것은 총 75회중 12회에 불과했다.
축구는 누가 뭐래도 골을 넣는 운동이다. 그러나 골은 슛을 때리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골문에는 슈팅을 막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서있는 골키퍼가 있다. 세계축구 사상 가장 유명한 골키퍼는 옛 소련의 ‘흑표범’ 야신이다. 야신은 무려 42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150번도 넘게 페널티킥을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통계에 따르면 야신은 그토록 오랜 선수생활을 했는 데도 그가 허용한 골은 100골이 안 넘었다고 한다.
고독한 골키퍼
축구의 골키퍼와 야구 투수는 비슷하다. 혼자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늘 외롭고 두렵고 불안하다. 오죽하면 독일의 작가 피터 핸트케는 ‘페널티킥을 기다리는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소설을 썼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골키퍼 중에는 튀는 선수가 많다. 파라과이의 칠라베르트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칠라베르트는 동료가 골을 넣으면 골대 그물에 매달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는 골키퍼이지만 A매치에서 6골이나 넣은 ‘골 넣는 골키퍼’다. 그는 매일 120번 정도 프리킥을 연습한다. 그는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또 큰소리다. 지난해 브라질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브라질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얼굴에 침을 뱉어 4게임 출전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월드컵 B조 예선에서 남아공-스페인전에 나설 수 없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골키퍼 예찬론자다. 그는 늘 말한다. “내가 축구를 했다면 골키퍼가 됐을 것이다. 골키퍼는 어려울 때 가장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명감독 보비 롭슨은 말한다. “이제 골문만 지키는 골키퍼의 시대는 끝났다. 골키퍼는 다른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킥을 구사해야 한다. 현대축구에서 골키퍼는 공격의 시작이다. 골키퍼는 수비수가 자기에게 패스한 공을 4∼5초 안에 처리해야 한다. 현대축구에서 골키퍼는 거의 리베로 역할을 한다. 칠라베르트는 21세기의 가장 이상적인 골키퍼상이다. 골키퍼는 약간 미쳐야 된다.”
골키퍼가 미쳐야 된다는 말이 엉뚱하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골키퍼가 다이빙 캐치를 하거나 점프를 해서 펀칭하면 멋있어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페널티에어리어를 벗어나 발로 공을 다루거나 드리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칠라베르트를 보라. 칠라베르트는 절대 골문 앞에서는 위험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다이빙이나 펀칭은 역설적으로 골키퍼가 위치를 잘못 잡아서 그럴 수도 있다.
차범근 감독은 골키퍼가 미쳐야 된다는 뜻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골키퍼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침착성이다. 골을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거나 몇 골을 먹고도 ‘뭐가 문제냐’는 듯이 웃으면서 경기하는 골키퍼를 만나면 골잡이들은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슈팅하기가 지긋지긋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골잡이가 골을 넣으려면 골키퍼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또한 골키퍼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골키퍼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면 슛은 한층 쉬워진다. 골키퍼는 그 키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유럽리그의 한 통계에 따르면 1973년 골키퍼의 평균 키는 182㎝였으나 1998년엔 평균 6㎝정도가 커진 188㎝로 조사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은 축구골대를 현재보다 폭 55㎝ 높이 22㎝ 정도 늘여 폭 7.82m 높이 2.66m로 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골키퍼들도 하루 빨리 장신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골키퍼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컵 축구 한국-프랑스전에서 5골을 먹은 국가대표 골키퍼 이운재의 말을 들어보자. “골키퍼를 시작한 이래 5골이나 먹은 것은 처음이다. 정말 그때는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얼이 빠져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어른하고 아이들이 경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의 벽이 너무 높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프랑스가 진짜 잘한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이것은 축구환경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지도받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또 그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기면서 하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즐기면서 해야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법인데….”
안양LG의 귀화용병 신의손도 말한다.
“모든 골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골을 먹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든 이기든 경기만 치르고 나면 잠을 못 이룬다. 새벽 4시경이나 돼야 겨우 잠이 들까. 필드 선수들의 실수도 일단 골을 먹으면 모두 골키퍼의 책임이 된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팬들이 TV로 보면 골키퍼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90분 동안 100%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골키퍼는 필드플레이어만큼 안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경기 끝나고 나올 땐 그들 이상으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골키퍼는 집중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한국 골키퍼 스타일을 이해할 수 없다. 쓸데없이 뛰고 다이빙 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난 상대 공격수가 어디로 움직일지, 어떤 슈팅이 나올지 대부분 예측하고 움직인다. 한국선수들은 너무 많이 뛰고 움직인다. 이에 반해 유럽이나 러시아 선수들은 너무 많이 생각한다. 한국선수들처럼 그렇게 많이 뛰진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골키퍼와 다른 선수와의 움직임 비율은 보통 1대17 정도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거꾸로다. 골키퍼의 머리 속은 온갖 생각으로 꽉 차있다. 그만큼 많이 생각하고 애간장을 다 녹인다. 상대 골잡이의 습성을 늘 관찰하고 연구한다. 어떤 골키퍼는 스트레스를 못이겨 머리가 한움큼씩 빠지기도 한다.
골잡이와 골키퍼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맞붙는 장면이 바로 페널티킥이다. 페널티킥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두 총잡이의 맞대결과 같다. 숨이 막힌다. 둘다 마음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차는 쪽이 더 부담이 크다. 골키퍼야 못 막아도 그만이지만 차는 선수는 못 넣으면 ‘역적’이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 필드골은 잘 넣으면서도 페널티킥만 차면 똥볼을 날리는 선수도 부지기수다. 마치 미국프로농구 샤킬 오닐이 호쾌한 슬램덩크는 잘하면서도 자유투에서 죽을 쑤는 것과 같다.
어떤 선수는 페널티킥을 차라면 아예 손사래를 치며 꽁무니를 빼는 경우도 있다. 그 유명한 펠레도 “모든 페널티킥은 가장 비겁한 골”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런 펠레도 자신의 ‘1000번째 골’은 페널티킥으로 넣었다. 살다보면 하기 싫은 일도 정면으로 맞대결을 펼쳐야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페널티킥 직전의 키커와 골키퍼의 신경전, 수읽기 등을 보면 골잡이들이 평소 슛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신경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서로 눈을 부릅뜨고 눈싸움을 하는 경우, 공을 들었다 놓았다 하거나 축구화를 만지작거리며 신경전을 벌이는 키커, 자기가 믿는 종교의 신에게 기도하는 형,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는 포커페이스형, 공을 놓고 골키퍼와 등진 상태로 한참동안 중얼거리는 형. 골키퍼도 마찬가지다. 양팔을 벌려 높이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키커를 위협하는 골키퍼, 골망을 움켜쥔 뒤 한동안 괴성을 지르는 골키퍼 등 별별 형태가 다 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선 64 경기에서 18개의 페널티킥이 나왔는데 그 중 17개가 골로 연결됐다. 성공률 94.4%. 역대 월드컵의 페널티킥 성공률을 보면 86멕시코월드컵 75%, 90이탈리아월드컵 72%, 94미국월드컵 100%다. 이탈리아월드컵 이후 경기중에 나오는 페널티킥은 거의 예외없이 성공했다. 그만큼 골잡이들도 이젠 페널티킥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연습도 많이 한다는 것을 뜻한다. 월드컵 득점 중 페널티킥골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안팎. 86스페인월드컵 9%, 90이탈리아월드컵 11.3%, 94년 미국월드컵 10.6%, 98프랑스월드컵 9.9% 선이다.
형식은 페널티킥이지만 그 성격이 다른 승부차기도 있다. 승부차기는 연장전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을 때 실시한다. 심리적 부담면에서 경기중 상대의 파울로 얻는 페널티킥보다 훨씬 더 크다. 물론 차는 방식은 똑같다. 하지만 승부차기는 한번 실수하면 곧바로 승패와 연결된다. 다시는 기회가 없다.
승부차기는 1982년 스페인월드컵 때부터 도입됐다. 그 이전까지는 연장전까지 승부가 나지 않을 때 재경기를 했다.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최대 희생자는 단연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다. 이탈리아는 90, 94, 98 월드컵에서 3회 연속 승부차기로 패했다. 1990년 자기 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 승부차기에서 3대4로 패했다.
94미국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전 승부차기는 이탈리아로선 땅을 칠 만하다. 당시 이탈리아와 브라질은 전후반 90분, 연장 30분, 총 120분의 혈투를 벌이고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마침내 ‘승부차기.’ 그러나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 로베르토 바조는 공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천하의 바조가 똥볼을 찬 것이다. 바조는 마음공부를 으뜸으로 하는 불교신자. 그런 그도 중압감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불운은 계속된다. 이번엔 98프랑스월드컵 이탈리아-프랑스 8강전 승부차기. 로베르토 바조가 가장 중압감 크다는 첫번째 키커로 나와 가볍게 성공시키며 4년간 시달려온 페널티킥 망령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그러나 마지막 다섯번째 키커로 나온 명수비수 루이지 디 비아조가 골대를 맞추는 바람에 이탈리아가 3대4로 지고 말았다.
비아조는 “볼을 골문 중앙으로 강하게 차려고 했다. 동료들과 감독, 그리고 팬들께 죄송하다. 이번 일은 내 생애 최악이다. 플라티니와 지코 같은 대스타들도 현역 때 페널티킥을 실축했다지만 이는 전혀 위로가 못 된다”며 울먹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일간지 가제타 델로는 “페널티킥은 악마의 창조물”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한국은 아직까지는 이탈리아처럼 ‘페널티킥 망령’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다. 물론 1970년대 호주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실축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 이후로는 비교적 잘 차왔다. 그만큼 한국선수들이 ‘정지된 공’을 슈팅하는 데는 비교적 정확하다. 슈팅은 사전 예비동작이 크거나 길면 골키퍼에게 잡힐 확률이 많다. 페널티킥도 가능하면 공과 최소한의 거리를 두고 슈팅을 해야 골키퍼의 사전동작을 막을 수 있다. 뒤로부터 너무 많이 달려와 슈팅을 하면 골키퍼에게 방향을 읽히게 된다.
공은 생물이다. 경기중엔 공이 죽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슈팅도 움직이는 공을 그대로 차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선수들은 ‘움직이는 공’을 슈팅하는 데 약하다. 똥볼이나 홈런볼이 많다. 그래서 어쩌다 경기중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슈팅 찬스가 오더라도 일단 공을 잡아 죽여놓고 슈팅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면 이미 너무 늦다. 수비수에 막히거나 빼앗기기 일쑤다. 이에 반해 외국 유명선수들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이 정지된 페널티킥’을 차는 데 서투르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공의 속도가 골키퍼의 반응시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구석으로 강하고 빠르게만 찬다면 골키퍼가 페널티킥 공을 막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 골키퍼의 반응시간은 0.25~0.35초 정도. 여기에 골키퍼가 반응한 후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까지 합하면 0.5∼0.6초쯤 걸린다. 이에 비해 페널티킥한 공의 빠르기가 시속 120km라면 11m를 통과하는 시간은 약 0.33초 정도 걸린다.
시간상으로 골키퍼는 자신에게 정면으로 오는 공이 아니면 페널티킥을 거의 막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순발력이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일지라도 전체 골문의 40%를 겨우 막을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1980년대까지 페널티킥은 주로 양쪽 측면을 목표로 스피드보다 정확도 위주로 차왔다. 코스만 정확하면 시간상으로 골키퍼는 몸을 던져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골키퍼들은 상대방이 공을 차는 순간 코스를 보고 몸을 움직이면 이미 늦기 때문에 미리 코스를 예상하고 골대의 한쪽은 버리고 한쪽만 막는 방어법을 택했다.
공이 가는 방향과 전혀 반대방향으로 골키퍼가 어이없이 몸을 날리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공의 방향에 상관없이 미리 한쪽을 택해 몸을 날렸기 때문.
그러나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신동성 박사는 이러한 페널티킥 방어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신박사는 86멕시코월드컵대회부터 세계축구에서 페널티킥의 주류가 코스 위주의 킥에서 강한 파워슈팅을 구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파워슈팅을 할 경우 보통 대표선수의 경우 시속 120km 정도를 웃도는데 이렇게 되면 반응시간상으로 막기가 더욱 힘들어 골키퍼 쪽으로 가는 슛이라도 골인할 확률이 높다는 것.
그렇다면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신박사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골키퍼가 선 채로 양발을 벌리면 신체가 차지하는 폭이 90cm 정도다. 여기에 양팔을 뻗으면 좌우 90cm씩 폭 2.7m가 된다. 여기에 골키퍼가 최대한 빠른 반응으로 상대가 킥 하는 순간 한발 정도 좌우로 90cm씩 움직일 수 있다고 계산한다면 골키퍼는 골대 중앙에서 한발 정도 움직이는 작은 동작으로 좌우 4.5m 정도를 방어할 수 있다(머리 위로 가는 공은 다 막을 수 있다고 봄). 골대 전체의 폭이 7.32m이므로 산술적으로 골문의 약 61%를 방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이젠 골키퍼가 골대의 한쪽을 포기하는 방어법을 쓰지 말고, 중앙에 서서 몸쪽으로 날아오는 공만 막겠다는 방어법을 써야 한다. 일례로 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 1대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 들어간 벨기에-스페인 8강전에서 벨기에 골키퍼 파프는 중앙으로 오는 슛 하나를 막아 벨기에의 5대4 승리를 이끌었다.
이때 스페인팀이 찬 5개의 페널티킥중 2개가 골키퍼가 서있는 골대 중앙 1.5m폭 안에 들어갔고 이중 1개를 벨기에 파프 골키퍼가 막았다. 반면 벨기에팀이 찬 5개 페널티킥 중 무려 3개가 골대 중앙 1.5m폭 안에 들어갔지만 스페인의 아르코나다 골키퍼는 번갈아 골대 구석쪽으로 몸을 날리는 바람에 하나도 막을 수 없었다. 또한 페널티킥을 막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골키퍼는 무릎 각도가 105∼110도일 때가 가장 빠르고 큰 힘을 발휘할수 있다. 그래야 반응시간을 최대한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 보면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무릎각도가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자세를 너무 낮추는 경향이 많다.”
축구선진국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영국 스완지대학의 사이먼 젠킨스연구팀장은 “골키퍼의 잠재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을 디지털 카메라로 다각도에서 촬영해 컴퓨터로 분석하면 슛을 날리기 전 골키퍼의 운동방향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젠킨스는 “정신상태와 몸동작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 골키퍼가 움직일 방향을 3차원의 영상에서 볼 수 있는 장비도 개발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축구인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케빈 키건 전 잉글랜드대표감독은 “경기의 승리는 선수들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축구경기는 첨단무기가 등장하는 스타워즈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완벽한 페널티 키커를 만들어낸다면 조만간 페널티킥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골키퍼도 나오지 않겠냐”며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키건의 예상은 맞았다. 이번엔 페널티킥을 막아낼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과학전문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골키퍼는 페널티킥 때 키커가 공을 차려는 마지막 순간 키커의 엉덩이가 향하는 방향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면 공이 날아갈 곳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페널티킥을 하는 순간 오른발잡이 키커의 엉덩이가 골키퍼와 직각을 이루면 공은 골키퍼의 오른쪽 방향으로 날아가고 둔각을 이루면 왼쪽으로 날아간다는 것. 연구를 맡은 존 모즈대의 마크 윌리엄스 교수는 “키커의 엉덩이 외에도 볼을 차지 않는 발, 종아리의 방향, 볼을 차기 위해 달려드는 각도 등이 공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뛰는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키커 엉덩이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뜻하는 것은 골키퍼는 키커의 몸동작을, 키커는 골키퍼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심리학자들은 페널티킥 실패 이유를 다음과 같이 꼽는다. 첫째 지나치게 완벽한 킥을 추구할 때, 둘째 이리 찰까 저리 찰까 망설일 때, 세째 너무 많은 생각을 할 때다. 결국 이것은 필드골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경기중에 슛을 날릴 때도 과감하고 단호하게 슛을 때려야 된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홈런볼이 돼도 좋으니 망설이지 말고 때리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미국월드컵 한국-독일전에서 한국에 두 골을 먹였던 골잡이 클린스만은 “경기의 승부는 ‘정신력’이 가른다. 본선진출국 실력은 대부분 비슷하다. 월드컵경기는 ‘마인드게임(mind game)’이다. 체력이 아니라 정신이 무장된 팀이 이긴다” 고 말한다.
슛도 그렇다. 기본기가 잘못돼서 잘못 때리는 슛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자신감 없이 날리는 슛은 문제가 있다. 자신 있게 쏜 슈팅은 공 끝이 살아있다.
히딩크는 왜 한국선수 중엔 킬러가 없냐고 말한다. 홈런볼이라도 좋으니 자신 있게 날리라고 말한다. 그렇다. 일단은 자신감이다. 그런 다음에 정확성이다. 현역 때 슛깨나 날린 포항의 최순호 감독은 “골 넣는 것은 어릴 때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듬어야 되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것은 아예 관심도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장에 나가 이기는 법부터 배운다. 당연히 골문 앞에서 마음만 급해 부드러워야 할 몸이 막대기처럼 뻣뻣해진다”며 쯧쯧 혀를 찬다.
만약 지금과 같이 ‘성적 지상주의’로 나간다면 한국선수들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수십년간 똥볼을 찰 수밖에 없으리라는 말이다. 몸이 뻣뻣해지면 무게중심이 높아진다. 소위 ‘마음’이 배꼽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가슴위로 뜬다. 그러면 발끝은 자연히 하늘로 향하게 되고 공은 똥볼이 된다. 하심(下心)이 왜 안되는 걸까? 마음이 급해서 그렇다. 그럼 마음은 왜 급할까? 공 컨트롤이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공 컨트롤은 왜 안될까? 그것은 동료의 패스가 나쁘거나 자신의 기본기가 달려 상대 수비가 다가오기 전에 허겁지겁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내지르는 슛은 발과 공의 중심(Sweet Spot)에 맞지 않는다. 머리가 들리기 때문에 몸의 무게중심이 뜨게 된다.
축구는 ‘둥근 공 바이러스’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의 핵(DNA)은 바로 골이다. 아무리 드리블이 좋고 기술이 현란해도 골을 못 넣으면 그 선수는 반쪽선수다. 어느 팀이든 간판 골잡이가 있다. 골잡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처럼 스스로 슛찬스를 만들어 골을 넣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이동국이나 폴란드의 올리사데베처럼 동료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는 타입이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는 천재형이다. 오늘날 현대축구에서 이런 유형은 갈수록 줄고 있다. 대신 미드필더에서 천재형이 많이 나온다. 지단, 피구, 베컴이 바로 그렇다. 이들은 동료에게 슛찬스를 만들어주는 패스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혼자 드리블해 가다가 번개같이 슛을 날린다. 그래서 이런 형은 수비하기가 보통 골치아픈 게 아니다. 밀착 마크를 하면 그 마크하는 상대 수비수 등뒤로 날카로운 송곳 패스를 날리고, 그렇다고 거리를 떨어뜨리면 무차별적으로 전방위 미사일슛을 쏘아댄다.
그렇다고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느끼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골잡이들이 수비하기에 꼭 편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평소 게으른 것처럼 어슬렁거리다가도 공이 주위에 오면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그들은 동료의 결정적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슬며시 들어가거나 상대의 실수 혹은 서로 공을 다툴 때 공이 흘러나올 만한 곳에 어떻게든 가서 대기하고 있다.
그러다가 공이 흘러나오기만 하면 그저 한번 가볍게 건드리거나 인사이드로 툭 차서 골을 넣는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공이 어디로 올지 냄새를 맡고 움직인다. 스페인월드컵 때 득점왕이 된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나 미국월드컵 한국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가볍게 따낸 독일의 클린스만이 이런 스타일이다.
이들의 ‘비상한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로시는 말한다.
“물론 본능적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전혀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상대 페널티에어리어 부근에서 동료의 결정적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는 늘 상대 수비의 등 뒤쪽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몇군데 있는 그 뒤쪽 공간 중 어디가 가장 파고 들어가기 쉽고 동료들이 패스 보내기가 좋은지를 자기와 공을 가진 동료의 위치 관계에서 순간적이고 본능적으로 생각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정하면 즉시 두세 걸음 그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가(페인트 모션) 공을 가진 동료의 움직임에 맞춰 거의 일직선으로 그 공간으로 뛰어든다. 5번 시도하면 이중 4번은 도중에 차단당하거나 오프사이드에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이중 한번쯤은 결정적인 찬스가 생긴다.”
한국선수들은 왜 이런 냄새를 못 맡을까? 한국대표팀 중엔 혼자서 골문을 열 만한 천재형이 없다. 황선홍이 조금 낫지만 그도 결국은 동료의 패스를 받아 슈팅을 날리는 타입이다. 이것은 패스를 잘해주는 동료가 없다면 슈팅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허리에서 지단이나 피구 베컴처럼 예측불허의 슛을 날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일본의 나카타, 이탈리아의 토티처럼 허리에서 한방에 길게 양쪽 사이드로 정확하게 갈라주는 패스능력을 가진 선수도 없다.
그래서 한국팀은 대충 ‘눈깜땡깜식’으로 슛을 한번 날려볼 수밖에 없다. 들어가면 좋지만 안 들어가도 그만이다. 일단 들어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을 빼앗겨 역습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3월17일 아디다스컵 개막전에서 혼자 5골을 넣은 성남 일화의 유고용병 샤샤의 말을 들어보자.
“골은 한마디로 집중력에 달려있다. 골을 만들어내려면 우선 페널티에어리어 주변의 모든 변화를 읽을 줄 아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다음은 공이 들어갈 목표지점을 확인하는 일이다. 목표를 확인하려면 골키퍼의 위치 파악이 중요하다. 공을 보고 차는 순간적인 일은 기본이다. 평소 슈팅연습 횟수는 한국선수들과 똑같다. 난 다만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 방향을 항상 생각하고 슛의 임팩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한국의 공격수들은 미드필드 진영에서부터 너무 바삐 움직여 종종 마지막 골을 넣는 순간 집중력을 상실한다. 난 아직 100m를 전력 질주해 골을 넣어 본 적이 없다. 나의 100m 기록은 12초 중반쯤이나 될까. 한국의 공격수들보다 결코 빠르지 않다. 그러나 센터링 타임에 맞춰 빠르게 쇄도하는 동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울산 현대의 브라질용병 파울링뇨도 한마디 거든다. “난 볼을 찾아 많이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앞뒤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지만 좌우로는 엄청나게 뛰어 다닌다. 항상 볼을 쫓아다니고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려 움직이기 때문에 찬스가 많이 온다. 성남의 샤샤는 골을 넣는 방법을 아는 훌륭한 선수다.”
그렇다. 한국선수들은 슈팅할 때 집중력이 떨어진다. 죽어라 페널티에어리어까지 잘 몰고 왔다가도 정작 슛을 할 때는 힘이 달려 똥볼을 날린다. 힘이 떨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샤샤를 비롯한 외국선수들은 문전까지는 대충 왔더라도 골문이 가까워지면 먹이감을 본 사자처럼 눈빛을 반짝인다. 그리고 침착해진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골문을 정확히 응시하고 골키퍼의 움직임을 살핀다.
한국선수들은 어떤가. 골문 앞에만 오면 ‘빨리빨리’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골키퍼의 움직임도 잘 살피지 않는다. 오직 공만을 보며 온힘을 다해 발을 내지른다. 슛동작도 너무 커서 발을 뒤로 제키는 백스윙 동작과 발이 공에 닿는 시간이 한 1년은 걸리는 것 같다. 발의 백스윙 없이 스냅으로 경쾌하게 슛을 날리는 선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골게터 설기현의 슛동작은 얼마나 큰가. 이에 견주어 안정환의 슛동작은 짧고 빠르다. 끊어서 때린다. 그가 이탈리아 무대에서 그래도 통하는(?) 것은 슛동작이 짧고 발목 스냅슛을 날릴 줄 알기 때문이다. 스텝도 문제다. 힘이 많이 들어가면 스텝이 커진다.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성큼성큼 발놀림을 가져가면 거의 100% 상대 수비의 발에 걸리기 마련이다. 조금씩 잰걸음으로 경쾌하게 발놀림을 가져가야 빈틈을 노릴 수 있고 발목 스냅을 줄 수 있다. 황선홍의 잰걸음과 설기현의 큰걸음을 비교해보라. 이래서 어릴 때 배우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신문선 sbs해설위원의 해석도 재미있다.
“남미 축구선수들과 클럽들은 훈련의 상당 시간을 슈팅에 할애한다. 반면 한국에선 ‘축구는 잘 뛰어야 승리한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이 문화는 연습 때 몸풀고 운동장을 숨가쁘게 돌아야 직성이 풀리고 이도 모자라 훈련 막판에 또 운동장을 다람쥐처럼 10바퀴, 20바퀴 뛴다.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선착순까지 한다. 뒤쪽 꼴찌는 감독 눈밖에 난다. 이런 잘못된 훈련 덕택에 정작 가장 예민하게 가동해야 할 슈팅과 전술 훈련 때 전력을 다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