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리스 신화에도 있었다

[브랜드가 된 신화] 리조트·패션·증권사…‘황금손’ 미다스의 부활

  • 김원익 문학박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

    입력2025-03-09 09: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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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손 원한 탐욕의 아이콘 미다스

    • 음악의 신 아폴로 심기 건드려 당나귀 귀 되기도

    • 신라 경문왕 설화와 닮은 그리스 여이설화(驢耳說話)

    • 경문왕 당나귀 귀, ‘실패한 개혁 정치 비꼰 표현’說

    자신의 딸에게 손을 대 황금상으로 바꿔버린 미다스. [Arthur Rackham]

    자신의 딸에게 손을 대 황금상으로 바꿔버린 미다스. [Arthur Rackham]

    ‘미다스의 손’이라는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금융계나 증권가 등에서 단시일 내에 고객의 돈을 아주 많이 불려주는 사람을 뜻한다. ‘미다스의 손’은 ‘황금손’이라고도 한다. 미다스(Mida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탐욕의 아이콘인데, 그가 손으로 만지면 뭐든지 황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미다스의 손’은 ‘미다스’의 영어식 발음을 써서 ‘마이더스의 손’, 혹은 ‘마이다스의 손’이라고도 한다.

    미다스가 손 씻은 강에서 사금 나오기 시작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는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중서부에 위치한 ‘프리기아(Phrygia)’라는 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아주 욕심이 많았다. 어느 날 미다스의 군사들이 국경 근처 산속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던 노인을 데려왔다. 출신이 미심쩍어 이웃 나라의 첩자 같았기 때문이다. 미다스는 단박에 그 노인이 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의 스승 ‘실레노스(Silenos)’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 노인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미다스의 예상대로 얼마 후 디오니소스가 스승에게 사정을 전해 듣고 그를 불렀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스승을 잘 대해 주어서 고맙다며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미다스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손으로 만지는 건 뭐든지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디오니소스는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왕에게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어서 가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미다스는 쾌재를 부르면서 자신의 궁전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행운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 손으로 길 위의 돌멩이를 집어보았다. 그러자 돌멩이는 바로 황금으로 변했다. 미다스는 이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화려한 잔치를 벌였다. 미다스는 궁전 기둥을 손으로 만져 황금 기둥으로 만드는 시범을 했다.

    바로 그때 미다스에게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왔다. 기쁨에 겨워 먹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잔칫상에서 사슴의 넓적다리를 들어 입에 덥석 물었다. 바로 그 순간 딱딱한 돌을 씹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며 이가 몇 개 부러졌다. 사슴의 넓적다리가 그의 손이 닿는 순간 바로 황금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당황한 그는 이번에는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하지만 포도주는 미다스가 입에 대기도 전에 이미 황금 포도주로 변해 버렸다.

    미다스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불행에서 벗어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결국 몸져누웠다. 이 소식을 듣고 미다스의 외동딸이 문병을 왔다. 미다스는 반가운 마음에 자신의 처지를 잊고 두 손으로 공주를 끌어안았다. 공주도 순식간에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팍톨로스강의 원류에서 몸을 씻는 미다스. [Bartolomeo Manfredi]

    팍톨로스강의 원류에서 몸을 씻는 미다스. [Bartolomeo Manfredi]

    ‌미다스는 염치불고하고 디오니소스를 다시 찾아가 용서를 빌며 자신의 손을 원래 상태로 돌려달라고 간청했다. 디오니소스는 그에게 근처 ‘팍톨로스(Paktolos)’강의 원류로 가서 몸과 마음을 씻으며 탐욕의 때를 깨끗이 털어내라고 일러주었다. 디오니소스가 시킨 대로 하자 미다스의 손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후 미다스가 손을 씻은 강에서는 사금 나오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튀르키예 최대 사금 산지로 남아 있다고 한다.

    경문왕 설화와 닮은 미다스 귀 이야기

    미다스는 실재한 왕이라는 설과 왕조의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미다스가 다스렸던 프리기아는 그 지역에서 가장 부유했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미다스의 황금손 신화가 나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미다스는 귀가 길어진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언젠가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로(Apollo)와 ‘사티로스(Satyros)’족 팬파이프 연주 달인이었던 ‘마르시아스(Marsyas)’가 연주 대결을 할 때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는 일도 있었다. 사티로스족은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염소 모습을 한 괴물을 총칭한다.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대결이 끝나자 다른 심판관들은 모두 아폴론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미다스 혼자 마르시아스의 연주가 더 나았다고 주장했다. 분노한 아폴론은 “그따위도 귀라고 달고 다니냐”고 핀잔을 주며 양손으로 미다스의 두 귀를 잡아당겨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사티로스(Satyros)’족 ‘마르시아스(Marsyas)’와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로(Apollo)의 연주 대결(왼쪽).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로. [Hendrick de Clerck, Jusepe de Ribera]

    ‘사티로스(Satyros)’족 ‘마르시아스(Marsyas)’와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로(Apollo)의 연주 대결(왼쪽).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로. [Hendrick de Clerck, Jusepe de Ribera]

    ‌다른 설에 의하면 어느 날 숲속을 헤매던 미다스가 ‘트몰로스(Tmolos)’ 산까지 갔다. 마침 그곳에서는 마르시아스의 팬파이프와 아폴론의 리라 연주 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산과 같은 이름의 그 지역 왕인 트몰로스가 아폴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자 누가 의견을 묻지도 않았는데도 미다스가 나서서 그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폴론보다 마르시아스의 연주가 더 훌륭했다고 말이다.

    심기가 불편해진 아폴론은 우선 감히 신에게 도전한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살가죽을 벗겼다. 이어 미다스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그의 두 귀를 잡아당겨 당나귀 귀처럼 기다랗게 만들어버렸다.

    그 후 미다스는 왕관으로 두 귀를 늘 가리고 다녔지만, 이발사에게만은 비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이발사에게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고, 어길 경우 엄벌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이발사는 한동안 입을 잘 닫고 살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비밀을 발설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참다못한 이발사는 어느 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구덩이를 파고 끓어오르는 말을 마음껏 내뱉고 흙으로 덮었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자 이발사가 흙으로 덮은 곳에서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억새밭이 흔들릴 때마다 이발사가 구덩이에 뱉고 간 말이 쏟아져 나왔다.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다!”

    우리나라에도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처럼 귀가 길어진 왕이 있는데 바로 신라의 경문왕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는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지자 그것을 ‘복두(幞頭·일종의 관모)’ 속에 감쪽같이 감추고 다녔다. 경문왕은 너무 늘어져 보기 흉한 귀를 관리나 왕후를 비롯해 나인들에게까지 비밀로 했으나 복두를 만드는 ‘복두장(幞頭匠)’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복두장도 그 사실을 평생 남에게 발설하지 않고 있다가 죽음이 임박하자 도림사 대숲으로 들어가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대숲을 향해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그런데 그 후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같은 소리가 났다. 경문왕은 이 소문을 듣고 즉시 대나무를 베어내고 산수유나무를 심게 했다.

    우리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나 혹은 ‘여이설화(驢耳說話)’로 잘 알려진 경문왕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이야기를 빼닮았다. 그리스 신화에는 미다스의 귀가 길어진 사연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에 비해 삼국유사에는 경문왕의 귀가 길어진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래도 경문왕의 귀가 길어진 이유를 추정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경문왕은 백성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아 하늘의 벌을 받고 그렇게 귀가 길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탐욕스러운 데다가 신을 무시할 만큼 오만방자했던 미다스의 귀를 아폴론이 잡아 늘인 것처럼, 제발 좀 민심에 귀를 기울이라고 타박하며 하늘이 경문왕의 귀를 잡아당겨 나팔처럼 길게 늘어뜨린 것은 아니었을까.



    경기도 청평에 내려온 그리스 신화 속 신들

    역사학자 조범환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책에서 귀가 길어진 경문왕의 이야기를 그 당시 시대 상황과 연관시켜 분석해 우리 눈길을 끈다. 책은 경문왕이 쇠락한 신라를 부흥시키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실패한 ‘개혁 군주’였다고 주장한다. 이어 경문왕의 귀가 길어지고 뱀과 함께 잠을 잤다는 일화가 후대에 그의 반대 세력이 대왕을 깎아내리기 위해 만들어낸 설화라고 말한다.

    즉 경문왕의 ‘당나귀 귀’는 그의 개혁 정치를 비꼰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대나무를 베고 그 대신 심은 ‘산수유’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은 산수유가 결핵, 천연두 등의 여러 가지 전염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생약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산수유는 당시 경문왕이 빈발하는 전염병을 막기 위한 시책들을 빗댄 것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속 트리톤상. [AP뉴시스]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속 트리톤상. [AP뉴시스]

    ‌오늘날 마이다스는 중권사·패션업체·리조트 등 두루두루 쓰인다. 경기도 청평 북한강 강변에 대교그룹에서 운영하는 ‘마이다스 호텔&리조트’가 있는데 호텔의 공간 이름을 그리스 신들 이름을 따라 지어서 자못 흥미롭다. 회의장은 태양의 신 ‘아폴로’, 대연회장은 신들의 왕 ‘제우스(Zeus)’, 레스토랑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다. 글램핑(glamping)장은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Hestia)’, 보트 선착장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 ‘트리톤스(Tritons)’다.

    포세이돈과 바다의 요정 ‘암피트리테(Amphitrite)’ 사이에서 태어난 트리톤스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는 ‘s’가 없는 ‘트리톤(Triton)’이다. 트리톤은 상체는 인간, 하체는 물고기 모습의 인어로 바다에서 고둥을 불며 아버지 포세이돈의 수상 마차를 끌었다.

    세기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지가 된 덕분에 일약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Trevi)’ 분수의 조각 작품에서 고둥을 불며 대양강의 신 ‘오케아노스(Okeanos)’의 수상 마차를 끌고 있는 인물이 바로 트리톤이다. 트리톤을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 볼 수 있다. 잠실역 지하 광장에는 트레비 분수를 그대로 재현한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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