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AI 시대 ‘구독형 방위 서비스’ 제공하는 팔란티어

[이주택의 미국 투자 스토리] ‘반지의 제왕’과 ‘배트맨’에 영감받은 이 기업

  • 이주택 미국 럿거스대 로스쿨 교수

    입력2025-06-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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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지의 제왕’ 속 수정 구슬서 유래…테러 미리 엿봐

    • 정보망 속 숨겨진 패턴 파악해 새로운 정보망 형성

    • ‘40의 법칙’ 아득히 뛰어넘는 SaaS 유망주

    • ‘고담’과 ‘파운드리’로 공공·민간 시장 모두 겨냥

    2018년 11월 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타임스 딜북 콘퍼런스’에서 피터 틸 팔란티어 창업자가 연설하고 있다. Gettyimage

    2018년 11월 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타임스 딜북 콘퍼런스’에서 피터 틸 팔란티어 창업자가 연설하고 있다. Gettyimage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 뉴시스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 뉴시스

    “팔란티어(Palantir)는 정말 대단하다. 실적을 어떻게 발표해야 할지 많이 논의했고, 좀 더 겸손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노력해 보겠다.”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5월 6일(이하 현지 시간) 1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팔란티어의 미래에 대해 매우매우(very very)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팔란티어는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6억3400만 달러) 대비 39.4% 증가한 8억84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1억550만 달러에서 2억1400만 달러로 102.8% 급증했다.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페이팔에서 시작된 팔란티어

    팔란티어는 빅데이터에 기반해 고객의 의사결정을 돕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회사다. 2003년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과 앨릭스 카프 CEO가 공동 창업했다. 팔란티어라는 이름은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수정 구슬 ‘팔란티르(Palantíri)’에서 유래했다. 동명의 영화에서 마법사 사루만이 들고 있던 수정 구슬이 팔란티르다. 팔란티르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물론 과거에 벌어진 일과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도 보여준다. 팔란티르처럼 팔란티어는 고객에게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 특히 테러를 사전에 경고하는 역할을 수행해 주목받았다. 

    팔란티어의 뿌리는 페이팔이다. 온라인 결제회사 페이팔은 일찌감치 사기 결제 사건 간의 연관성을 분석해 사기 탐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페이팔은 경쟁업체보다 사기 피해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2003년 틸은 카프에게 해당 기술을 발전시켜 테러 대응을 위해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당시는 9·11테러가 미국을 침통에 빠뜨린 지 2년여 지난 때였다. 결국 두 사람을 포함한 5명이 의기투합해 팔란티어가 탄생했다.

    팔란티어는 빅데이터에 기반해 고객의 의사결정을 돕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회사다. 사진은 팔란티어에서 시연한 자사 소프트웨어. 팔란티어 홈페이지 갈무리

    팔란티어는 빅데이터에 기반해 고객의 의사결정을 돕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회사다. 사진은 팔란티어에서 시연한 자사 소프트웨어. 팔란티어 홈페이지 갈무리

    오늘날 팔란티어는 미국을 필두로 각국 정부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 회사는 고객에게 군사용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을 제공한다. 핵심 소프트웨어는 ‘고담(Gotham)’으로 테러 예방 및 첩보 활동 등에 사용된다. 배트맨이 활약하는 범죄 도시 이름이 고담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영국 국방부 등은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를 애용하며 고담의 배트맨처럼 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자원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값어치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과거 미국 정보기관은 방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보가 서로 연결돼 있지 않아 문제를 겪었다. 예를 들어 한 정보요원이 업무를 위해 수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여러 정보가 다양한 데이터베이스에 제각각 저장돼 있어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각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 권한이 차등 적용되는 점 역시 정보 분석을 어렵게 만든다. 

    팔란티어는 다양한 정보처리 기술을 통해 데이터 정보처리 과정을 효율화하며 디지털 공백을 메운다. 정보망 속 숨겨진 패턴들을 파악하고, 사용자가 이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작업을 처리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데이터베이스에 테러 용의자로 등록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 혹은 관련 문건을 분석해 새로운 정보망을 형성하는 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팔란티어는 과거 알카에다의 문서 700여 건을 분석해 시리아의 자살 폭탄 테러 조직을 지도화한 바 있다. 이외에도 팔란티어는 정보 분석 과정에서 위험이 관측되면 사용자가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추가 계약을 하는 등 정부와 협력하는 범위도 확대되는 추세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AI 시대가 펼쳐지면서 팔란티어 시스템의 파급력은 커지고 있다. 팔란티어는 지난 분기에 100만 달러 이상 계약을 139개 추가로 따냈다. 개중에는 1000만 달러 이상의 계약도 포함됐다.

    20여 년 만에 방위산업 핵심 기업으로 서다

    필자는 2022년 팔란티어를 처음 접했다. 당시 팔란티어 주가는 3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적정 주가(20달러)보다 높다고 판단해 지켜보기만 했다. 그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등으로 증시가 폭락했고, 이듬해까지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팔란티어의 주가는 6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2023년 생성형 AI 열풍이 시장을 강타하면서 주가는 반등하기 시작했고, 필자는 이때부터 팔란티어를 조금씩 매집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하면서 팔란티어에 대한 시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기술계 거물들과 협력하면서 전통적 방위 기업보다 팔란티어와 같은 기술 기업에 주목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주도하던 정부효율부(DOGE)가 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소프트웨어, 드론, 로봇 등에 방점을 찍는 식으로 예산을 재편할 것이란 생각이 확산하면서 팔란티어의 주가는 상승했다. 머스크와 틸이 페이팔을 함께 창업한 인연이 있다는 사실 역시 기대 요인이었다. 

    지정학적 불안 역시 팔란티어의 주가를 띄우는 주된 요소였다. 지난 몇 년 사이 전 세계가 전쟁의 공포에 직면하면서 이스라엘을 포함한 각국 정부가 팔란티어와 협력을 이어갔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는 데 팔란티어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 흐름이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팔란티어의 시가총액은 5월 12일 기준 2796억 달러로 록히드마틴(1109억 달러), RTX(1744억 달러) 등 전통적 방위산업체보다 크다. 불과 20여 년 만에 방위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한 셈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누구보다 팔란티어에 열광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기업 팩트셋은 지난해 팔란티어의 발행 주식 절반가량을 개인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흐름은 한국에서도 관측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5월 8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팔란티어 보유 지분은 42억5468만 달러에 달한다. 테슬라(195억3220만 달러), 엔비디아(108억6528만 달러)에 이은 3위다. 

    시장 분위기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았다면, 개인투자자 대부분은 팔란티어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2023년 1월 6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팔란티어 주가는 2년 동안 꾸준히 상승해 20배나 급등했다. 팔란티어 주가는 2월 19일 신고가(125.4달러)를 달성한 후 4월 폭락장을 맞아 66달러까지 급락했지만, 이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전고점을 돌파하는 양상을 보였다. 필자 역시 이 기간 때때로 수익을 실현하는 등 좋은 시간을 보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흐름에 탑승한 기업이라는 사실도 팔란티어를 주목하게 만드는 요소다. SaaS란 소프트웨어 등 정보통신(IT) 자원을 인터넷을 통해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기존에는 고객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사용했는데, 대신 월별 구독료를 내며 클라우드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식이다. 이 경우 구독자는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계획에 맞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공급자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사업 구조를 SaaS 중심으로 전환하는 이유다. 

    SaaS 기업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퍼포먼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는 SaaS를 둘러싼 환경을 변혁시키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정보처리 과정 전반을 도와주면서 사용자의 업무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덕분이다. 로봇이 전통 제조업의 영역을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서비스업 역시 AI가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오라클·구글·텐센트 등이 모두 SaaS 기업으로, AI 시대를 맞아 도약하고 있다. 

    팔란티어 역시 대표적 SaaS 기업이다. 팔란티어는 클라우드 기반 SaaS 플랫폼인 아폴로(Apollo)를 통해 고담과 파운드리(Foundry)를 지원한다. 파운드리는 산업용 서비스로 민간 부문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팔란티어의 1분기 민간 부문 매출은 3억9700만 달러로 전년 동기(2억9900만 달러) 대비 33% 성장했는데, 이는 파운드리 덕분이다. 

    흔히 SaaS 기업을 평가할 때 ‘40의 법칙(rule of 40)’을 사용한다. 건강한 SaaS 기업이라면 ‘매출 성장률(%) + 이익 마진(%) ≥ 40(%)’을 충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팔란티어의 경우 연간 매출 성장률과 이익 마진의 합이 지난해 4분기 81%였고, 올해 1분기는 83%에 달했다. 기준치를 2배 이상 초과한 것이다. 이에 카프 CEO가 1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팔란티어는 40의 법칙이 제시하는 기준을 두 배나 초과 달성했다”며 “시장에서는 팔란티어가 가치 창출의 주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의하면 2025년 기준 SaaS 시장의 규모는 3156억80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 기관은 SaaS 시장이 매년 20%씩 성장해 2032년 1조1315억 달러까지 확장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SaaS 시장에 눈독 들이는 이유다. 팔란티어가 SaaS 기업 가운데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 만큼 향후 기업 실적 역시 호조세를 이어갈 수 있다.

    물론 팔란티어의 주가는 결코 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기업을 둘러싼 시장 분위기 또한 다소 과열된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2025년 기준 팔란티어의 적정 주가를 56~80달러 상당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목표 주가 역시 100달러로 설정했는데, 2월에 이미 이를 달성했다. 

    팔란티어가 2027년까지 시장의 기대대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더라도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를 넘길 공산이 크다. 게다가 미국 행정부의 연방 지출 감축 및 국방부 예산 삭감이 팔란티어의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팔란티어가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어닝 서프라이즈 소식을 전했음에도, 주가가 12% 하락한 것 역시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팔란티어가 SaaS 부문에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고품질 기업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팔란티어는 유럽 시장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카프 CEO는 앞선 콘퍼런스 콜에서 “유럽은 아직 AI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도입할 것”이라며 “우리 사업은 유럽 대륙을 제외하고 49%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AI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데이터 분석 및 의사결정 플랫폼에 대한 수요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이에 40의 법칙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팔란티어에 대해 시장의 관심 역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AI 산업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팔란티어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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