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호

쿠바 접수 나선 美 트럼프의 속내

[Focus] ‘한계상황’ 쿠바 압박해 정치적 회복 노린다

  • 채인택 국제저널리스트 tzschaeit@gmail.com

    입력2026-07-02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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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수엘라에 의사 보내며 석유·외화 벌었던 쿠바

    • 마두로 몰락 후 무너진 베네수엘라-쿠바 협력 관계

    • 美, 쿠바 향하는 석유길 막자 대규모 정전 발생

    • 쿠바 핵심 산업 ‘관광’, 美 압박에 개점휴업

    • 쿠바 주민, 냄비 들고 나와 전국 단위 시위

    • 사면초가 쿠바 정권, 속절없이 붕괴 중

    한 쿠바인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대통령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미 남부사령부

    한 쿠바인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대통령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미 남부사령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다음 야심은 몰락해 가는 카리브해의 공산국가 쿠바를 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접수’를 거론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한계상황에 이른 쿠바를 접수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 회복을 노린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서 145㎞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 쿠바는 미국인에게 ‘냉전시대의 상흔’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핵무기를 배치하려다 발각돼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의 현장이기도 하다. 

    쿠바의 공산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트럼프는 일시적이나마 정치적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모든 재산을 공산당에 몰수당하고 쫓겨났던 미국 자본가들과 쿠바 망명객들의 귀환, 재산 회복이 67년 만에 이뤄질 수도 있다. 

    트럼프 “쿠바, 붕괴 직전의 국가”

    트럼프 행정부의 쿠바에 대한 압박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집요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6월 4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쿠바를 “붕괴 직전의 국가”라고 부르며 “쿠바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에 앞서 미국 재무부는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 격)과 배우자를 포함한 정권 실세 전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쿠바를 접수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5월 20일 라울 카스트로(95)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기소했다. 1996년 발생한 미국 민간 경비행기 2대의 격추를 지시해 미국인 4명을 숨지게 한 혐의다. 라울은 쿠바혁명의 주역으로 종신 통치를 하다 2016년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1926~2016)의 동생이다. 라울은 형의 뒤를 이어 2011~2021년 쿠바공산당 제1서기, 2008~2018년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1996년 미국 경비행기 격추 당시 국방부 장관(1959~2008년 재임)을 맡고 있었다.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의장에게 공산당 제1서기와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겼지만, 여전히 쿠바의 실질적 지도자로 군림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미국이 그를 기소한 건 쿠바의 집권 세력인 공산당과 카스트로 일가를 향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다. 

    현재 쿠바 공산당은 1959년 혁명 이래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료진 해외 파견과 관광산업 등 쿠바 정권을 지탱하던 돈줄을 틀어막고 있어서다. 쿠바 경제와 공산 정권 몰락의 가시화는 올해 1월 3일 시작됐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부인을 납치하면서부터다. 뉴욕으로 옮겨진 마두로는 마약 밀거래 관여 및 살인 교사 등의 혐의로 미국 법정에서 재판받는 처지가 됐다. 베네수엘라는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을 임시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친미 정책의 일환으로 쿠바와 관계를 끊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3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국외 이송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3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국외 이송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처

    베네수엘라는 쿠바의 우방이었다. 쿠바는 의사들을 보내주는 대신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공급받으며 체제를 유지해 왔다. 쿠바는 무상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의사를 대대적으로 양성했다. 그 결과 세계은행(WB) 통계로 의사 비율이 인구 1000명당 8.2명에 이르고 있다. 세계 평균 1.5명의 5.5배에 달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2.7명(한의사 포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 유럽연합(EU) 평균 4~5명, 북미 평균 2.7명보다도 많다. 

    그 배경에는 정원 1만2000명의 거대 의대인 라틴아메리카의대(ELAM)를 포함한 14개 의대가 자리 잡고 있다. 쿠바 의사는 교육비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일반 노동자와 동일한 급료(월 16~20달러 정도)를 받는다. 쿠바 의사는 국가가 주도하는 해외 파견을 가면 더 많은 급여와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로 달러는 넘쳐나지만 보건의료 인프라와 인력은 부족했다. 

    쿠바는 베네수엘라에 의사들을 보내고,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면서 의사들의 급여를 책임졌다. 양국 모두가 이득을 보는 교환이 성립된 셈이다. 베네수엘라는 쿠바 의사 1인당 월 1만 달러 정도를 지급했지만, 쿠바 정부는 의사들에게 급여와 현지 생활비로 200~450달러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로 귀속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관광업 차단당한 쿠바, 정전에 민심 이반 겹쳐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의 몰락과 미국의 압박으로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석유 선적을 중단했고, 쿠바 의사들을 돌려보냈다. 석유와 외화 수입의 상당 부분이 끊긴 쿠바는 경제난에 처하게 됐다. 미국이 쿠바로 가는 베네수엘라 석유의 선적을 막자, 쿠바는 화력발전소를 돌릴 석유가 고갈되기 시작했고 전기 공급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를 상대로 파상 공세를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쿠바 경제를 고사시켜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다. 올해 들어 미국이 쿠바에 가한 압박을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시간대별로 살펴보자. 1월 3일 마두로 대통령 납치 직후부터 쿠바에 대한 석유 선적을 막았다. 1월 27일에는 멕시코도 쿠바에 대한 석유 선적을 중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에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에 2차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미국의 에너지 봉쇄가 가속화하면서 1월 30일 쿠바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2월 이후 쿠바 내부에서 주민 소요 사태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2월 6일 정전 사태가 발생한 수도 아바나 일부 지역에서 항의 시위의 한 형태인 ‘카세롤라소(Cacerolazo)’가 처음 보고됐다. 카세롤라소는 ‘냄비(cacerola)’와 ‘두들기다(azo)’의 합성어로, 주방용품을 두들기며 소음을 내는 중남미의 전통 시위다. 중남미에서 이 시위는 민심 이반의 징후로 읽혀왔다. 3월 7~8일 야간 카세롤라소 시위가 아바나 전역으로 확산됐으며, 전력망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같은 달 16일과 21일 전국적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4월 13일 유엔 및 국제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긴급 호소할 정도로 쿠바의 식량·의약품·연료 부족 사태가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13~14일 아바나에서 카세롤라소 시위가 다시 발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의 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기 시작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 의사를 송출하고 받는 석유와 달러,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외화, 그리고 여러 권위주의 국가에 경호 인력과 군인 등을 보내서 얻는 돈이 쿠바의 3대 외화 수입원이다. 

    이 중에서도 관광은 쿠바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산업이다. 쿠바는 1959년 공산화 이후 미국과 관계가 단절됐음에도 캐나다와 유럽, 남미 등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카리브 지역 전문 관광 컨설팅사인 투어리즘 애널리틱스(Tourism Analytics)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181만 명의 관광객이 쿠바를 찾았다. 물론 이것도 줄어든 수치다. 2024년에는 220만 명이 방문했고, 2018년에는 470만 명의 관광객이 쿠바를 찾았다.

    최근 쿠바의 관광산업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올해 1월에는 관광객 수가 5.9% 줄었고, 2월에는 56.6%, 3월에는 82.1%, 4월에는 82.0%가 연쇄적으로 줄었다. 쿠바를 찾는 관광객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그러자 쿠바 관광산업에 투자한 글로벌 호텔 체인들도 하나씩 떠나고 있다. 지난 5월 스페인 이베로스타와 캐나다 블루 다이아몬드와 인도네시아에 본사를 둔 아치펠라고가 쿠바를 떠난 데 이어 6월 3일에는 쿠바에 15개의 호텔은 운영해 온 ‘큰손’ 멜리아가 쿠바 영업을 중단했다. 

    글로벌 신용카드업체인 비자와 마스터 카드는 6월 6일부터 쿠바에서 자사 카드 사용을 중단했다. 미국이 6월 6일 쿠바에 대한 여행 제한 조치를 발령하면서 주요 크루즈 선사들은 쿠바 기항을 중단했다. 이렇게 쿠바 관광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미국 눈치보는 베네수엘라, 도울 길 없는 중국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올드카.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미국과 수교 단절로 인해 자동차 수입이 어려워지자 쿠바인들은 1950년대 자동차를 고쳐서 타고 있다. 동아DB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올드카.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미국과 수교 단절로 인해 자동차 수입이 어려워지자 쿠바인들은 1950년대 자동차를 고쳐서 타고 있다. 동아DB

    미국의 압박은 쿠바 공산 정권에 실존적 위기로 작용했다. 사회주의 중앙통제 경제체제의 모순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회복 불능 상태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1959년 1월 1일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 주도 경제체제를 유지해 왔다. 소련의 원조를 바탕으로 작동하던 쿠바 사회주의 체제는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시기(Período especial)’로 불리는 쿠바 경제위기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닮았다. 주민들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면서 개와 고양이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견디다 못한 쿠바는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부분적 개혁에 나섰다. 2011년 제6차 쿠바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경제사회개혁방안’을 의결하고 이른바 ‘신경제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책임지던 국민 경제활동을 민간으로 부분 이양하는 것이 골자다. 소규모 자영업을 육성해 경제를 활성화하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이를 위해 택시, 렌터카, 민박집, 50석 이하의 민영 식당, 이발소, 청소업, 수리업, 건설 노동 등 관광업 진흥과 관련이 큰 180여 분야를 민영화했다. 

    그 결과 2008년 15만 명에 불과하던 자영업자가 2015년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친지의 창업을 돕기 위해 미국 등 해외 거주 쿠바인들도 나섰다. 이들이 쿠바에 송금한 금액이 한 해 최고 30억 달러를 넘기도 했다. 관광객도 늘어 매년 25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안긴 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개혁의 성과는 미국의 압박 앞에 사라지고 있다. 

    현재 수시로 벌어지는 주민들의 항의 시위인 카세롤라소는 민심이 공산 정권으로부터 돌아섰다는 징조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쿠바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디아스카넬 의장이나 실세인 카스트로 전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와 모종의 ‘딜’을 시도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거래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쿠바를 도울 수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전통의 우방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눈치를 보게 됐다. 베네수엘라를 전진기지로 삼아 남미 측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중국도 쿠바를 돕기 어렵다. 사면초가 속에 쿠바 공산 정권은 속절없이 무너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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