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KF-21 보안위반 사건 수사 끝내고 방산 협력 재개해야

[Focus] 한국-인니, 전략적 방산 동반자관계 끊어질 위기

  • 정광선 전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예비역 공군 준장

    입력2025-05-2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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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방산 수출 시작점은 인도네시아

    • 보안위반 사건 수사 길어지며 관계 틀어져

    • 인니 대통령 취임 순방에도 한국만 제외

    • 그사이 유럽·미국은 인니 방산 시장 두드려

    한국형 차세대 초음속전투기 KF-21. 방위사업청

    한국형 차세대 초음속전투기 KF-21. 방위사업청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의 개발이 1년여 뒤 완료된다. 항공기 성능은 경쟁 기종에 비해 압도적이다. AESA 레이더, 적외선 탐색추적장비(IRST) 등 국내 자체 개발 첨단 항공전자장비를 적용했다. 전장 전반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동시에 미티어, AIM-2000과 같은 최고 사양의 공대공미사일을 장착·연동해 실사격에도 성공했다. 사실상 현대 공중전을 위한 최상위 수준의 무장 성능도 갖춘 셈이다.

    KF-21 시제기는 총 6대로 지난해 11월 무사고 비행 1000회를 달성했다. 내년 상반기가 되면 시험비행을 비롯한 모든 개발 절차가 끝난다. 우리 공군에 납품될 양산기 20대도 일정대로 생산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말이면 양산 1호기가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오랫동안 미국, 유럽 등 항공 선진국의 전투기 개발 능력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첨단 초음속전투기 개발국 반열에 오를 일만 남은 것이다. K-방산의 힘과 저력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KF-21에 남은 과제는 국제적 영향력이다. KF-21이 다양한 국가에 수출돼야 세계적 명품 전투기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세계 각국은 이미 KF-21에 관심을 보인다. 유럽권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는 물론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다수도 KF-21 도입에 관심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KF-21 최초 구매가 가장 유력한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되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에 참여했다. 2014년 10월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한국형 전투기(KF-X) 공동 체계 개발에 대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후 2015년 11월 정식으로 공동 체계 개발 가계약이 체결됐다. 

    이후 기술이전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엔지니어와 공군 시험비행 조종사가 KF-21 개발 과정을 참관했다. 개발 현장을 지켜본 만큼 KF-21의 성능과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의 차세대 전투기 확보 시 KF-21이 최우선 대상 기종으로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국내 첫 수출 잠수함인 인도네시아 1400t급 ‘나가파사’함. 한화오션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국내 첫 수출 잠수함인 인도네시아 1400t급 ‘나가파사’함. 한화오션

    한국 방산 수출의 시작점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단순한 수교국이 아니다. 양국은 2017년 11월 9일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었다. 아세안(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국가 중 인도네시아와 이 같은 관계를 구축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양국의 우호적 관계는 미·중 패권 경쟁의 국제 정세 속에서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한국 방산업계와 유독 인연이 깊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방산업계의 역사는 1979년 시작됐다. 당시 인도네시아 해군은 HJ중공업의 미사일 고속정 PSK Mk5를 4척 도입했다. 2001년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기본훈련기 KT-1, 2011년 KAI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를 수입했다. 같은 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장보고급 잠수함 3척을 주문했고, 이후 2019년 3척을 추가 주문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항공기 및 잠수함을 최초로 도입한 국가다.

    이후 이 KAI가 수출한 항공기들은 인도네시아가 운용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인접 국가인 필리핀은 T-50을 기반으로 만든 초음속경공격기 FA-50 12대를 운용하고 있다. 태국은 T-50 14대를 사들였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FA-50 18기 도입을 결정했다. 이라크는 2013년 FA-50 24대를 수입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방산 수출 최대 규모의 계약이었다.

    T-50을 기반으로 만든 국산 초음속경공격기 FA-50. 홍중식 기자

    T-50을 기반으로 만든 국산 초음속경공격기 FA-50. 홍중식 기자

    한국 대신 튀르키예와 새 전투기 개발 착수할지도

    폴란드가 이 기록을 깼다. 2022년 9월 KAI는 폴란드와 FA-50 48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KAI는 이 실적을 기반으로 항공기 수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잠수함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인도네시아의 성공적 도입 이후 국제 방산 시장에서 한국 잠수함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 잠수함 건조 능력을 갖춘 회사들이 고객 맞춤형 모델을 선보이며 캐나다와 폴란드 등 해외 잠수함 수주전에 본격 돌입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만 봐도 국내 방산업체 수출 신화의 시작점이 인도네시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국 방산에 우호적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최근 우리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타 국가와의 방산 협력을 염두에 둔 행보도 연일 보인다. 이러한 행보는 2024년 1월 발생한 보안위반 사건 관련 인도네시아 연구원에 대한 수사가 수개월째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2024년 10월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전(前)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산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 취임 이후 일본, 중국, 유럽 등 주요국을 순방하면서 한국만 방문국에서 제외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연구원 수사 장기화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2월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KF-21 관련 자료를 비인가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KAI 사천공장 밖으로 나가려다 사내 보안 검색 과정에서 적발됐다. 현재 이들은 출국금지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전투기 시장을 차지하려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다쏘사는 인도네시아에 라팔 전투기 42대를 총 81억 달러에 판매했다. 이후 추가 판매를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월 중 인도네시아를 직접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미국 보잉사도 지난해 인도네시아와 체결한 다목적 전폭기 F-15EX 24대 판매 양해각서(MOU)를 실제 계약으로 확정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튀르키예의 신형 전투기 칸(KAAN) 공동개발에도 관심을 보인다.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4월 10일 현지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는 튀르키예 방산업계와 함께 5세대 전투기 칸 개발과 잠수함 개발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은 인도네시아 장관급 이상의 정부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도 못 하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대사 자리조차 10개월째 공석이다. 사실상 양국 정부 간 방산 협력이 단절된 지 오래다. 

    프랑스 다쏘사의 전투기 라팔. 다쏘 홈페이지

    프랑스 다쏘사의 전투기 라팔. 다쏘 홈페이지

    튀르키예가 개발하고 있는 신형 전투기 KAAN. TUSAS 홈페이지

    튀르키예가 개발하고 있는 신형 전투기 KAAN. TUSAS 홈페이지

    한-인니 방산 협력 수출 규모만 13조 원

    KF-21 개발업체인 KAI에 따르면 향후 인도네시아는 한국 방산의 미래 먹거리 시장 중 하나였다. KT-1 20여 대, T-50 계열 40여 대, KF-21 48대 등을 추가 및 신규 도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합산하면 추가 수출 규모만 13조 원에 달한다. 수출 성사 시 KAI는 물론이고, 10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협력업체의 고용 창출 등 국내 방산 항공 분야의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수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기술진에 관한 수사 장기화로 인해 수출 추진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 수사가 시작된 지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수의 정부 및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연구원이 반출한 비인가 USB에는 설계·해석 등 KF-21의 주요 설계 자료가 아닌 단순 점검 절차서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는 공동개발 기간 중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 연구진에게 이미 공개된 자료이며, KF-21 개발이 끝나면 인도네시아로 이전될 자료로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KAI가 제작한 기본훈련기 KT-1은 국내 자체 기술로 만든 최초 항공기다. KAI 

    KAI가 제작한 기본훈련기 KT-1은 국내 자체 기술로 만든 최초 항공기다. KAI 

    물론 인도네시아 엔지니어가 비인가 USB를 소지한 것 자체가 문제다. 다만 수사 기간이 너무 길었다. 수사기관이 1년 넘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자 양국의 여론만 악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도네시아를 ‘먹튀’라며 악마화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일을 마치 ‘도둑 취급’을 하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수사 장기화가 외교적 문제뿐만 아니라 전략적 방산 파트너십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KF-21 공동개발에 대한 우려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KF-21, KT-1 및 T-50 계열 항공기 수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도 늦은 감이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수사가 종결돼야 한다. 그에 따른 후속 조치도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K-방산이 두각을 나타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등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방산 재건 움직임을 보이면서 우리 한국의 방산이 견제받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선진국들은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13조 원이라는 대규모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면 보안 사건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고, 한-인니 양국 간 방산 협력을 재개하자는 신호를 하루빨리 보내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정광선
    ● 전 방위사업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
    ● 전 방위사업청 항공기사업부장·국제계약부장
    ● 예비역 공군 준장
    ● 현 세종대 항공시스템공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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