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결정과 실행은 나의 강력한 무기”

[Interview] ‘서울의 뉴욕’ 꿈꾸는 이필형 동대문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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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5-12-1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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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탄공장 이전, 불법 노점 정비 등 숙원 해결

    • 빠른 판단과 꾸준한 설득, 그리고 추진력

    • 꽃의 도시, 탄소중립 도시, 스마트 도시 꿈꾼다

    • 아픔 잊으려 쓴 에세이…6권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 “말은 사람을 잇는 다리…정치권 ‘언어 품격’ 고민해야”

    “희망을 말하자. 가능성을 말하자. 사랑을 말하자. 그 말들이 모여 정말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필형 서울 동대문구청장이 2025년 10월 발표한 에세이집 ‘말이 세상을 바꾼다’의 한 구절이다. 그의 말처럼 말이 세상을 바꿨다. 

    이 구청장은 2022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동대문구청장에 출마하며 이문동 삼천리연탄공장 이전을 공약했다. 1968년 설립돼 한창때는 하루에 약 30만 장의 연탄을 생산하는 전국 최대 규모 공장이었지만, 연탄 소비가 급감하고 소음과 먼지로 이전을 요구하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도 컸다. 이 구청장은 취임 이후 꾸준하게 공장 소유주를 찾아가 설득했고, 2024년 8월부터 철거를 시작했다. 불법 노점을 정비하고, 서울시립도서관 유치 등 동대문구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하나둘 해결하다 보니 그에겐 ‘숙원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이 2025년 12월 8일 동대문구청장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상윤 객원기자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이 2025년 12월 8일 동대문구청장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상윤 객원기자

    2025년 12월 8일 오전, 56년간 가동된 삼천리연탄공장 부지(이문동 22-2번지 일대)를 지나 동대문구청으로 향했다. 서울 시민의 겨울을 지켜줬던 연탄공장 터는 문화·체육 복합문화단지로 탈바꿈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구청장실에 놓인 스탠딩 책상

    이필형 구청장을 만나러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서서 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흰 스탠딩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큰 나무 책상에 커다란 명패가 올라와 있는 일반적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스탠딩 책상이 아이들 공부방이 아닌 구청장 집무실에 있으니 생경하다. 

    “그런가?(웃음) 의사결정을 빨리하기 위해 들여놓았다. 어떤 사안이든 앉아서 장고(長考)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서 들여놓았다. 실무자 보고를 듣고 토론한 뒤 즉석에서 판단하거나 결정할 일이 많다. 빠르게 판단하는 데는 스탠딩 책상이 제격이다.”

    섣부른 결정을 할 위험도 있을 거 같은데.

    “비교적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현장 목소리를 듣는다. 지역의 숙원사업이던 삼천리연탄공장 철거도 마찬가지다. 철거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뒤 공장으로 달려가 공장 소유주를 만났다.”

    연탄공장 소유주 설득이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만나서 여러 얘기를 하다 보니, 당시 공장이 자금난으로 힘든 상황이라 소유주는 내심 부지 매입을 바라는 것 같았다. 가능성이 보이자 그를 빠르게 설득했다. 2년여 간의 설득 끝에 공장 부지를 동대문구가 사들여 철거할 수 있었다.”

    제기동-청량리 구간 불법 노점 정비도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불법 노점을 정비하겠다는 결정은 빨랐으나 방법이 문제였다. 일부 상인은 ‘생계가 걸린 문제’라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무조건 강행하기보다는 확실한 기준을 세워 천천히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노점 정리의 기준은 관련 법이다. 이를 기준으로 정비를 시작했다. 정비사업으로 불안해하는 상인들에게는 노점 정비의 목적을 꾸준히 설명했다. ‘단속’이 아니라 ‘상인과 주민이 함께 웃기 위한 정비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동의하는 상인이 하나둘 늘었다. 불법 노점 정비가 끝난 지금은 오히려 보행로가 넓어져 손님이 늘었다는 상인도 많다.”

    2023년 2월 14일 동대문구 관계자들이 서울 동대문구의 노점 한 곳을 철거하고 있다. 뉴스1

    2023년 2월 14일 동대문구 관계자들이 서울 동대문구의 노점 한 곳을 철거하고 있다. 뉴스1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하나둘 해결하면서 동대문구 생활환경도 바뀌는 거 같다. 

    “동대문구를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 미국 뉴욕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정말 걷기 좋더라. 걸으며 만나는 거리 풍경도 다채로웠다. 동대문구를 뉴욕처럼 탈바꿈시키고 싶다.”

    구체적인 복안은 있나. 

    “물론이다. 꽃의 도시, 탄소중립도시, 스마트도시라는 세부 계획도 세웠다. 2023년 9월 전농동에 ‘지식의 꽃밭’이라는 5000평(약 1만6530㎡) 규모의 꽃밭도 만들었다. 2006년 학교 부지로 선정됐으나 학령인구 감소로 10년 넘게 방치된 공터였다. 이곳에 꽃을 심어 주민의 ‘걷는 경험’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배봉산 숲속 폭포’ ‘중랑천 사계절 꽃밭’ 등 자연 친화적 공간을 조성한 것도 ‘걷기 좋은 도시’를 위해서다. 이문 수변공원에 ‘동대문구 수상스포츠 체험교육장’도 열었고, 최근에는 중랑천 변에 ‘메타세쿼이아길’도 조성하고 있다. 같이 한번 걸어보자(웃음).”

    동대문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1호선 지하화 사업도 필요해 보이는데.

    “그렇다. 이제 중점을 두고 추진할 일이 지하철 1호선 지하화와 동대문구 스카이라인 정리(재개발)다. 1호선 지하화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사업이다. 지금은 동대문구 차원에서 구상을 명확히 정리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동대문구 재개발도 구도심인 청량리 일대가 2025년 3월 공간혁신 구역으로 선정된 만큼 주민 의견을 토대로 재개발 기본 방향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추후 정부, 서울시와 협의를 본격화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동대문구 개선 계획을 빨리 세울 수 있었던 이유

    동대문구는 12년간 여당 소속 단체장이 당선했는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 구청장이 뽑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동대문구 주민들이 날 선택해 주신 이유는 정치색이 아니다. 동대문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 때문에 당선됐다고 생각한다. 2022년 지방선거 운동 기간 내내 동대문구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임기 내 성과를 내고 싶었다.”

    국가정보원과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을 거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일했다. 경력만 보면 국회의원 출마도 고려할 듯한데. 

    “동대문구는 내가 자란 곳이다. 답십리초등학교, 전농중학교를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대학에 간 뒤에는 경희대와 한국외대 일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청춘과 유년기를 보낸 곳인 만큼 동대문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다.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 없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다. 과거 홍 전 시장이 3선을 했던 지역구(서울 동대문을)여서 구청장에 도전한 것은 아닌가.

    “홍 전 시장은 정치 이전에 내 인생의 선배 중 한 분이다. 간혹 조언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도움을 받진 못했다. 나도 처음에는 홍 전 시장이 동대문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오래 활동했으니 명함에 홍 전 시장의 대선캠프에서 일한 이력을 적었다. 지역 당원들이 명함을 보더니 ‘홍 전 시장과 관계된 이력을 지우는 편이 낫겠다’라고 조언했다. 명함을 다시 찍느라 선거운동도 시작일 하루 뒤에 시작했다(웃음).”

    2022년 지방선거에선 14개 동에서 전부 상대 후보를 앞서며 압승했다. 

    “그만큼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가게 문을 전부 열고 들어가 고충을 들었다. 얼마나 문을 많이 여닫았는지 선거운동 중반부터 어깨 근육을 다쳐 팔이 올라가질 않을 정도였다. 대신 이때 들은 주민 고충이 공약의 씨앗이 됐다. 덕분에 동대문구 개선 계획을 빠르게 세울 수 있었다.”

    퇴직 후 마음 추스르려 오른 백두대간 

    이 구청장은 6권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2025년 10월 발표한 에세이집 ‘말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교보문고 시·에세이 부문 판매 1위를 기록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이 2025년 10월 발표한 에세이집 ‘말이 세상을 바꾼다’. 실크로드 출판사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이 2025년 10월 발표한 에세이집 ‘말이 세상을 바꾼다’. 실크로드 출판사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3년경 28년간 몸담았던 국가정보원에서 명예퇴직을 하며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퇴직 전만 해도 차장으로 승진할 줄 알았다. 승진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기 직전엔 내 사무실에 승진 축하 화분이 배달됐을 정도다. 그런데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기대했던 승진에서 배제되고 명예퇴직을 하게 돼 상처가 컸다.”

    상처를 달래려고 에세이를….

    “그렇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하루에 30㎞ 넘는 거리를 걷다 보니 묵은 생각이 하나둘 정리됐다. 이 경험을 공유하려고 ‘숨결이 나를 이끌고 있다’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이 에세이집이 베스트셀러가 됐더라(웃음). 이후 산과 인연이 닿아 산악 에세이를 더 썼는데, 네팔 안나푸르나를 걸으며 ‘네팔의 시간은 서두르지 않는다’(2017)를,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마터호른과 몽블랑을 오르며 ‘몽블랑, 하늘로 가는 길목’(2019)을 냈다. 구청장이 된 이후에는 동대문구를 걸으며 ‘동대문을 걷다’(2022)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홍 전 시장과 관련된 책도 냈던데. 

    “2022년 홍 전 시장이 대선에 도전할 때였다. 경선 경쟁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책은 시중에 많은데 홍 전 시장에 관한 책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캠프에서 나왔다. 그래서 2주 만에 ‘홍도는 잘 있느냐-홍준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2022)라는 책을 썼다.”

    2주 만에 책을 한 권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홍 전 시장과 1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인상 깊었던 장면을 메모해 뒀다. 메모를 정리하고 다듬으니 금방 책 한 권이 나왔다.”

    최근 발표한 에세이집은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

    “2주 정도 걸렸다. 평소에 했던 생각을 정리하며 어느 정도 기획을 해 둬서 빠르게 쓸 수 있었다.”

    단체장보다는 에세이스트로 더 인기가 있는 거 아닌가. 

    “정견을 다룬 책이 아니어서 독자의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이 책은 현장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내 삶을 붙잡아 준 문장을 담은 이야기의 모음이다. 정치 색깔도 최대한 지웠다. 독자들은 현직 단체장의 정견보다 중년의 아저씨가 실패하고 넘어져 보고 다시 시작한 이야기에 공감했을 것이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말의 품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말’을 주제로 에세이를 낸 작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정치권에서 쓰는 말은 대부분 상대를 공격하는 칼로 쓰인다. 이런 말은 지지자를 결집할 수는 있으나 다른 유권자들은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말은 사람을 잇는 다리가 돼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지적하기보다는 갈라진 생각을 잇는 통로가 돼야 한다. 말로 상대방을 이기려는 생각을 접어두고 말로 문제를 풀려 노력한다면 한국 정치에 오가는 말의 품격도 회복될 것이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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