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일은 자신의 강성대국 마스터플랜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잡았다. 북한 경제문제는 그들 자체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며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조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의 마스터플랜이 성공하려면 대외환경을 북한에 유리하게 끌고 가는 대외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면 김정일의 마스터플랜을 위한 대외전략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균형(등거리)을 이용한 실리 추구’로 집약된다. 곧 미·중 등거리전략이 유지되는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통미인일봉남(通美引日封南)에서 통남인일인미(通南引日引美)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소련붕괴 이후 동북아에는 미·중의 갈등구도가 형성되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을 21세기 잠재적 적국으로 가상한 세계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당시 소련을 겨냥한 소모전 양상의 스타워즈 계획과 대비되는 ‘미사일방어망 구축계획(TMD, NMD)’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심하게 반대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정당화해 결국은 중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본적으로 김정일은 동북아 국제질서를 중국과 미국의 대결구도로 인식하고 미·중 등거리 전략을 통해 북한의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비록 한·중 수교 때 느낀 중국에 대한 서운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대미(對美) 견제와 아울러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한 경쟁 카드로 중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경제난과 안보 위기에서 벗어나 체제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무엇보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다.
지난 해 북한이 취한 미·중 등거리외교의 대표적인 실례가 페리 조정관의 방북(99.5.25∼28)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중(99.6.3∼7)이었다.
지난 몇 년간 북한의 적극적인 대미 접근은 전통적 우방인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게 사실이다. 99년 3월 코소보사태 당시 나토군 미사일의 중국대사관 오폭은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러던 차에 페리의 방북은 북·중 관계회복에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페리가 평양을 떠난 후 김정일은 서열 2위인 김영남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주목되는 점은 약 5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에 경제·무역 부문 관계자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방문시 경제관련 활동은 거의 없었으며, 다만 김영남이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이례적으로 평가한 것이 전부였다. 북한이 중국모델을 따라 개혁·개방에 나서겠다는 의사 표시도 없었고, 중국도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김영남이 중국으로부터 정치·군사적 성격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큰 군사·안보문제를 더 이상 일으키지 말고 특히 미사일 재발사를 강행하지 말 것을 북한에 주문하면서, 대신 대북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해주기로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페리의 포괄적 제안을 북한이 적극 수용할 것을 권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페리권고안은 중국의 대북 경제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북한이 미국의 영향권으로 급속히 편입되는 것을 경계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강화하고 심지어 김정일 정권의 안위에 관련된 강력한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을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러한 해석은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하고 회담 개최 이전에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설명할 때에 유용하다.
북한의 미·중 등거리 외교
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 이후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강해진 반면 중국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중국은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접근을 방치할 경우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태, 곧 압록강을 경계로 미국과 대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에 빼앗겼던 한반도 관련 주도권을 상당 부분 회복한 것으로 판단된다. 달리 말해 이것은 미·중 갈등구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양쪽으로부터 이익을 추구한 김정일의 미·중 등거리 전략이 적중했다는 말이 된다.
또한 완전 해결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 미사일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99년 9월 미·북 베를린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것도 김정일의 등거리전략이 먹혀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2000년 대통령선거로 대북문제에서 해결책을 쉽사리 제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 기회를 이용해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을 적극 끌어당기려 노력해왔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미국답지 않은 협상을 해서라도 이를 견제해야 했다. 그 결과 북한은 미사일 발사의 잠정적 유예만 약속하도 그 대가로 경제제재 완화, 대규모 식량지원 및 체제보장 등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당시 양측의 거래내용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유리한 것이었다.
한편 금년 3월 김정일은 중국에 대해 주평양 중국대사관의 전격 방문을 통해 중국과의 우호를 과시하고, 급기야 남북정상회담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김정일이 중국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했다. 비밀리에 방문하고도 북·중 양측이 거의 동시에 그 사실을 공개한 것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주는 행위다.
김정일의 방중은 양국간에 절박한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대중 공세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고, 이 시점에 북한이 자칫 과거와 같은 벼랑끝 전술을 재시도할 경우 미국에 직접적인 공격 빌미를 제공해줄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음직하다. 남북정상회담을 중국이 적극 지지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음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대중 견제를 무력화하는 선전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다. 아울러 중·미가 충돌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중국은 최소한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를 미국에 보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북한은 지난 몇년간 미국과 협상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지만, 미국의 지원이 가시화되기까지는 까다로운 절차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최소한 미국의 대선이 끝날 때까지 필요한 식량과 재원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었다. 특히 미국 대선이 공화당 부시 후보의 승리로 끝날 경우 예상되는 강경책보다는 클린턴 행정부의 페리권고안을 수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정지작업도 필요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대선 일정으로 일단 미국내 국론이 통일될 수 없는 상황임을 간파한 남북한과 중국은 미국 대선이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고, 그 결과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남북정상회담은 미국 대선이 끝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고,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과 중국의 속마음은 이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정치경제학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로서는 미·중 등거리 전략과 통남인일인미(通南引日引美) 전략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대선 캠페인 때문에 대외정책 수행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에 김정일은 마냥 미국과 협상하려고 만은 없었다. 방중을 통해 북·중관계가 상당 수준 복원된 상황에, 김정일은 이제 남한과 미·일 등 서방진영과 접촉하는 데 웬만큼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에 김정일은 기존 통미봉남(通美封南), 선미후남(先美後南)의 전략을 잠시 접어두고 중국 및 남한과 접촉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정에는 중국의 지원은 물론이고 김대통령의 대규모 경제협력 용의 표명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에 경제적 협력과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 미국이다. 먼저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고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이 필요하다. 미국 역시 안보·경제 차원에서 중국을 공략할 때 북한의 가치는 크다. 미·중 양국의 이해가 북한을 둘러싸고 충돌하기 때문에 북한의 미·중 등거리 구도가 성립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양국간에는 북한에게 ‘많이 주기’ 경쟁이 붙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다음,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승인이 없는 상황에 일본이 대한반도 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여지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서 관계정상화를 서두르는 것은 김정일의 자존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스타일도 아니다.
남한에 대해서는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통미봉남 또는 선미후남 전략으로 정부차원에서는 남한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지만 김대통령 집권 후 일관되게 추진한 대북 포용정책에 신뢰를 갖게 되면서 남한과 대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특히 지난 4월 총선을 눈앞에 앞두고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김대통령에게 빚을 안겼다. 김대통령은 그 대가를 김정일에게 지불해야 할 것 같다. 또, 지난 3월9일 나온 김대통령의 베를린선언에서 전력·통신·항만·철도 등 북한의 기간산업에 대한 지원 제의는 북한으로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음에 틀림없다.
세계에 대한 ‘현지지도’?
그러면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또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가정할 경우 국제사회가 북한에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김정일 스스로가 답안을 마련할 수 있을 때, 그의 마스터플랜은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먼저, 이번 정상회담 이벤트가 도출해낸 성과를 정리해보자.
첫째, 가장 큰 의의는 정상회담을 통해 은둔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알려져 있던 것과 달리 ‘멋진 지도자’ 그리고 ‘정상적인’ 지도자로 등장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북한의 변화 의사를 일종의 ‘현지지도’ 방식으로 전 세계에 연출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또 김정일이 일단 긍정적인 모습을 연출한 이상 그런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둘째, 6·15 공동선언에 양 정상이 직접 서명하는 광경이 세계에 방영됨으로써 선언문의 약효를 높인 것이다. 이것은 김정일이 세계에 대해서 한 약속이 되므로 이를 위반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 아울러 김정일이 벼랑끝 전술을 통해서라도 미국에게서 약속받으려 했던 체제보장 문제는 방송 한 번 탄 것으로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성급한 판단일 수 있지만 이제 북한이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외부에 의한 붕괴 위협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셋째, 김정일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북한에 대한 모든 대외 채널을 김대통령과 남한으로 단일화했다. 이제 세계는 북한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남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김대통령으로서는 김정일에게 신세를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또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남북 당사자 원칙이 관철되는, 대단히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컨대 김대통령이 미국 일본 등의 요구를 김정일에게 전달한다든지, 교황의 방북의사를 전달한 것 하며, 돌아와서는 직간접으로 주변 4강에 회담 결과를 설명한 것 등이 모두 남한이 대북문제에 관한 중재자가 됐음을 확보했음을 과시한 일들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김정일이 자신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어떤 목표를 제시하면 김대통령은 이를 조율하면서 남한이 실천할 것은 하되 국제사회의 도움을 주선해주는 중재자가 되는 것이다.
넷째, 정상회담으로 남북이 접촉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한꺼번에 가동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을 비롯한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는 점이다. 이 점은 향후 남북관계가 대결보다는 대화에 의해 풀려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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