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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공격적으로 포용하라”

“북한을 공격적으로 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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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대 ‘강철’이란 필명으로 주사파학생운동의 이론적 대부로 활동하다가 91녀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김영환(37). 북한과 연결된 민혁당사건으로 지난해 국정원의 조사를 받았으나 반성문을 쓰고 사상전향을 하고 나온 그는 오늘의 급변한 남북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6월13일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조선노동당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인 김정일과 반갑고 힘차게 손을 부여잡았다. 역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의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곧 이어 이루어진 의장대 사열에서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장 차민헌 대좌는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대한민국 국군과 조선인민군은 50년 전에 서로 수백만 명을 죽인 당사자인데 바로 그 책임자들이 반갑게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화해의 악수를 하고 조선인민군의 사열까지 받았으니 이 어찌 감격스러운 일이 아니랴.

그러나 여기서 나는 감격스러워 할 수만은 없었다. 김대중대통령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수백만 명의 북한 동포들을 굶어죽게 하고 지금 정치범수용소를 비롯하여 북한 전역에서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바로 그 최고책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으면서 매초마다 반가움과 감격,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교차했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감정은 ‘남북문제’와 ‘북한문제’라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그 차원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문제가 겹쳐서 생겨난 것이다. ‘남북문제’란 남한과 북한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내며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고 지원하고 더 나아가 통일하는 문제이고 ‘북한문제’란 북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경제적으로는 굶주림과 궁핍에서 벗어나 유복한 삶을 누리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보다 많은 권리를 향유하는 문제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지금의 북한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결정적 책임이 있는 김정일정권 대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여 그 새로운 정부 주도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남북문제’는 남북분단과 6·25전쟁, 냉전, 대결정책 등으로 야기된 모든 문제를 평화적이고 상호존중적이고 협력적인 관점과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다. 남북분단이나 6·25전쟁이나 과거의 대결정책 등에 관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을 것이지만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다 보면 화해와 협력과 통일의 길로 가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털어버리고 남북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한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은 정당하고도 정확한 일이었다. ‘남북문제’만 있다면 뭐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남는 ‘북한 민주화’ 문제

나는 ‘북한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꼭 대한민국 정부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있다고 해도 좋고 없다고 해도 좋다.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는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지역이니까 책임이 있다고 해도 좋고.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고 남한 주민들에 의해 구성된 정부이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해도 좋고 형식 논리를 떠나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해도 좋다. 그 어떤 입장을 취하더라도 그에 관해 시비 걸 생각이 전혀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북한문제’의 해결과는 초연하여 남북간의 대결종식과 화해와 교류에 힘을 집중한다고 해서 이를 올바르지 않다고 몰아붙일 생각도 전혀 없다.

사실 한국 정부는 남북긴장완화와 화해 등에서는 주연의 하나로서 결정적인 구실을 해야 하지만 ‘북한문제’의 해결에서는 주연이 아니다. ‘북한문제’의 해결에서는 북한 인민이 주연이며 한국 정부는 조연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또 남북대결과 냉전이 북한 인민의 해방과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 노릇을 해 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남북대결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와 교류의 시대를 연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북한 인민의 해방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민간단체나 개인이 할 일은 정부의 역할과는 다르다. 어떤 민간단체나 개인은 정부가 할 일을 단순히 보조하거나 선도할 수도 있겠지만 또 정부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맡아서 하는 단체나 개인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북한민주화’와 관련된 주장을 편다면 이는 화해와 교류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조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 정세 속에서는 적절하지 않지만 민간단체나 개인은 정부와는 다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북한민주화’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북한민주화’는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하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남북문제’의 해결보다는 ‘북한문제’의 해결이 훨씬 중요하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체제 대결도 이미 끝났고 군사력도 한미연합군이 인민군에 비해 상당한 우위에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좀 더 적극적인 관점에서 화해와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문제’는 이보다 훨씬 절박하다. 경제가 최악의 상태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민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과 인권유린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모든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문제이고 ‘사람’의 문제 중에서도 선차적인 것이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과 최소한의 건강과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하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북한에서 김정일 주도의 개혁과 개방이 성공한다든지 등의 다른 발전경로를 생각하면서 ‘북한민주화’ 노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적절한 주장이 아니라고 본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리더십을 만드는 노력이 북한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은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이로운 것이다. 70년대에 김대중, 김영삼, 재야, 학생 등이 완전히 새로운 질의 민주적 리더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한 것은 그 어떤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더라도 그 이후의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됐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박정희정권의 공(功)을 강조하든 아니면 과(過)를 강조하든 박정희를 영웅으로 보건 아니면 악마로 보건 바뀌지 않는다.

7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고 현재의 북한과 비교해 훨씬 자유로웠지만 그래도 민주화운동이 필요했다면. 경제정책의 실패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억압 아래 있는 북한은 더 말해 무엇하랴?

어떤 사람은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자꾸 거론하거나 북한민주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국론분열’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그 나름대로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어떤 정치인이 한일관계나 역사문제에 대해 적절치 않은 발언을 했을 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와 민간단체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가 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석이고 민간단체는 외교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외교적인 측면보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따지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국론분열이 아니라 일종의 역할분담과 같은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고 남북간에 긴장을 조성하는 일은 북한 정부의 자세를 더욱 경직되게 하고 북한의 문을 더 걸어닫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지만 민간단체는 북한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이를 사실대로 알릴 의무가 있다. ‘북한민주화’는 분명히 북한 인민이 주체가 되어서 해야 할 일이다. 국제적으로 아무리 난리를 친다고 해도 북한 인민이 나서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단체와 개인들도 ‘북한민주화’를 위해 해야 할 그에 맞는 구실과 의무가 있다. 특히 동족인 우리들이 해야 할 구실과 의무가 특별히 크다.

중국식 개혁·개방이 어려운 이유

북한민주화를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앞날에 대해 어느 한 가지 가능성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거기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중 하나가 최근에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김정일정권 주도의 개혁과 개방의 길’이다. 그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는 사람이 많은데 솔직히 말해 낙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사람들은 중국에서 이러한 정책이 성공한 것만 생각하고 78년 당시의 중국과 현재의 북한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중국식 개방정책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다. 78년의 중국 상황과 현재의 북한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 개방을 추진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약간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선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장황하게 설명하기로 하자.

첫째, 78년의 중국은 새롭게 집권한 세력이 주도하고 있었지만 현재의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76년의 모택동 사망과 4인방 타도, 78년의 등소평의 당내 투쟁 승리와 실권 장악 및 노선의 대전환은 사실상 하나의 커다란 혁명이었다. 이러한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세력이 중국을 주도했으나 북한은 그 반대다.

둘째, 등소평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잔혹한 행위들과 경제적 파탄에 책임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가장 큰 피해자의 한 사람이었으나 김정일은 지금까지의 북한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파탄에 결정적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의 등소평은 중국 실상과 과거의 잔혹한 일들이 알려지더라도 별타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정적들을 공격하고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데 이용할 수 있었는데 비해 북한의 김정일은 실상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될 가능성이 많다.

셋째, 78년 당시 중국에는 매우 강력하고 높은 권위를 가진 공산당이 있었지만 북한에는 이런 것이 없다. 78년 당시 중국에서 혁명적인 대전환이 가능했던 것도 강력한 공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오랜 기간에 걸쳐 1인독재의 도구로만 이용되어오다보니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북한에서 오래전부터 당이 무슨 내린 결정을 내리는가보다 김정일이 무슨 지시를 하는가가 훨씬 중요했다. 당이 내린 결정이라도 김정일의 새로운 지시에 반하는 것이면 즉각 수정했으며 만약 김정일의 지시에 어긋나는 당의 결정이 나오는 경우에는 설사 그것이 실수였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반혁명’의 죄로 처단되거나 까다로운 심사의 대상이 된다. 오랜 기간 이렇게 길들어 있다 보니 설사 김정일이 죽거나 제거된다 하더라도 조선노동당이 자기 중심을 확실히 잡지 못하고 누가 권력을 잡을지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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