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햇볕정책이 덮어버린 금강산댐의 진상

北 금강산댐 완공, 실개천이 된 북한강

  • 이상면 < 서울대 법대 교수·국제법 > smrhee@snu.ac.kr

    입력2004-09-03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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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이 북한강을 차단해 건설한 임남댐(금강산댐)이 사력댐으로 완공돼, 1년 전부터 담수에 들어갔다. 북한은 북한강 수계에서 연간 확보할 수 있는 18억t의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임남댐 증축에 착수했다. 여름철 오랫동안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사력댐 옆에 설치된 여수로(餘水路) 같은 방류시설은 제구실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위험수위에 이른 물이 제대로 방류되지 못하면 증축(增築) 중에 있는 사력댐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임남댐의 붕괴는 도미노처럼 북한강 수계 댐들의 붕괴로 이어져 한강 수계에서는 전대미문의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다. 아울러 지난 겨울 휴전선을 넘어 북한강으로 갑자기 흘러든 3.5억t의 ‘겨울홍수’의 비밀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북한이 금강산댐 2단계 공사를 완료하여 담수에 들어갔다. 이로써 휴전선 남쪽으로 흘러 내려오던 연간 18억t의 북한강물이 동해 방면으로 역류해, 북한강은 실개천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부는 북한강 물이 말라버린 것은 별 문제가 없다며 피해상황을 축소해서 발표했다. 제대로 발표하면 현 정부가 힘들여 추진해온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물이 부족해 화천댐과 춘천댐, 의암댐은 오래 전에 발전을 중단했고, 청평댐과 팔당댐도 발전량을 크게 줄였다. 공업용수와 농업용수도 부족해 앞으로 갈수기에 생활용수마저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생태계 파괴를 비롯한 환경피해가 예견되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로 물부족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동강댐과 밤성골댐 건설이라는 대안을 내놓았으나, 모두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춘천 이북의 북한강은 실개천이 돼 버려, 바짓단만 좀 걷으면 얼마든지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지난해 장마철 집중호우로 강물이 불어났을 때를 제외하곤 1년 내내 그러했다. 예년의 장마철이었다면 북한강 물은 높이 30m의 화천읍 당거리 철교 위로 철철 넘쳐흘렀을 것이다. 그 옛날에는 장마철이 아닌 때에도 배가 다니고 뗏목이 둥둥 떠내려갔다. 지금도 북한강 양변의 산허리에는 수심 30∼40m로 도도히 흐르던 강물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 화천댐은 ‘수리중’을 이유로 몇 달째 발전을 하지 않고 있다. 발전을 하려면 물을 흘려보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파로호(화천댐이 만든 저수지)가 금방 바닥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는 휴전선 북방에서 댐이 터졌는지 갑자기 흙탕물이 범람해, 때아닌 홍수 피해를 입기도 했다. 날벼락 같은 겨울 홍수는 1월 중순부터 20여일간 계속되었다. 이때 흘러 내려온 물이 약 3.5억t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은 갈수기. 화천댐 이하 5개 발전소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공업용수와 농업용수가 부족해 공장은 돌아가지 못하고 농작물은 타들어가고 있다. 물이 부족하다보니 북한강은 천연적인 정화작용이 일어나지 않아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끼벌레 등 괴상한 생물이 발생하여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렇게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 팔당댐으로는 더 이상 서울에 1급수를 공급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 북한강 수계 댐의 ‘물부족 사태’는 계속될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로 인한 강물 유입량 감소는 연간 3.5억t 정도다. 한강수계에 미치는 영향은 2% 정도에 불과하여 별것 아니다”라고 해명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북한강 유역의 ‘물부족 사태’를 부른 주범은 2000년 10월 북한이 완공한 ‘임남댐’이다. 우리가 ‘금강산댐’으로 부르는 것이 바로 임남댐이다. 임남댐이 담수에 들어가자 그 이남으로 흘러 내려오던 연간 18억t의 물이 차단돼 버렸다.



    임남댐에 가둬진 물은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45㎞의 도수터널을 통해 동해 안변 방면으로 흘러가, 그곳에서 300m의 낙차로 떨어지며 수력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휴전선 부근의 높은 산에 올라가면 소양호보다도 더 큰 것으로 보이는 임남댐을 관측할 수 있다.

    정부측 설명과는 달리 2001년 4월 화천댐으로 흘러든 유입량은 평년 유입량의 20%에 지나지 않았다. 5월의 유입량은 그보다 더 적어 평년 유입량의 7%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이 휴전선 이북 8㎞ 지점에 건설한 임남댐 상류 유역의 연평균 총강수량은 18억t이다. 이 강수량은 2001년 화천댐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유입량 감소치 17.7억t과 거의 비슷하다. 이러한 비교는 임남댐 이북에서 화천댐으로 흘러드는 유입수가 거의 100% 차단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화천댐은 휴전선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천으로부터도 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사라져버린 17.7억t은 화천댐으로 흘러들던 연간 유입량29.3억t의 60%에 해당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한 전체 유입량이 150억t이므로, 임남댐 건설로 인해 12%에 해당하는 엄청난 한강 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화천댐으로 흘러드는 나머지 40%의 물 중에서 절반 이상은, 장마철 집중 호우 때 몰려드는 것이다. 이러한 물은 댐을 보호하기 위해서, 유입되는 즉시 상당부분 방류해야 한다. 이러니 40%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물을 가둬놓고 발전도 하지 못하면서 겨우 파로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다. 장마철을 제외하면 춘천 이북의 북한강 수계는 80% 이상 물이 줄어들어 상당한 피해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강은 이미 옛날의 한강이 아니다.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서울 지역을 흘러가는 한강의 수위는 예년보다 1∼2m 정도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측은 1986년 임남댐을 착공하면서 이미 “임남댐이 담수를 시작하면 한강 본류에도 영향을 끼쳐 한강철교의 수위는 1m 이상 낮아져, 서울의 홍수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86년 여름, 북한이 유역변경식으로 ‘금강산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정부는, ‘금강산댐(북한에서는 임남댐)’이 건설될 최적지는 휴전선 북방 8㎞ 지점인 임남면 일대의 협곡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 댐에 가둔 물을 역류시켜 81만㎾의 전력을 생산할 경우 댐의 규모를 산정해본 결과, 댐의 높이는 215m가 되고, 저수용량은 200억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1986년 10월21일 북한이 ‘금강산발전소’ 건설 기공식을 감행하자, 정부는 이러한 대규모 댐을 지으면 북한강의 수자원이 고갈돼 환경파괴를 유발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더욱이 이 댐이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붕괴될 경우 수도권 일대는 가공할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대응댐’의 건설을 추진했다.

    그해 12월25일 북한은 ‘금강산 발전소 건설 백서’를 발간하여 “금강산댐’이라는 초대형 댐 하나만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임남댐 북방에 전곡댐을 더 건설하고, 임진강 상류에 댐 두 개를 지어 도수터널을 통해 북한강 수계로 물을 보낸 다음 다시 동해 안변 방면으로 보내어 발전한다. 이 댐들은 특수 공법에 의하여 건설되므로, 대형 댐이 붕괴되는 사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를 국가안보 문제로 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금강산댐의 자연적·인위적 붕괴를 우려하여, 휴전선 바로 밑에 ‘대응댐(counter-dam)’인 ‘평화의 댐(peace dam)’을 짓기로 했다. 1987년 2월28일 ‘평화의 댐’ 공사를 서둘러 시작하여 1988년 5월에 제1단계 ‘평화의 댐’이 완공되었다. 이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총 1150억원 정도인데, 이중 국민의 성금이 635억원이고 나머지 515억원은 국고에서 충당되었다.

    ‘대응댐’은 상류국이 하류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댐을 건설해 하류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 상류국이 하류국의 입장을 존중해 협상에 응하도록, 하류국이 상류국의 댐 건설을 방해하는 한 방법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은 임남댐이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붕괴될 경우에 일어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평화의 댐’을 건설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던 전두환 정권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예상되는 피해상황을 과장한 면이 많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두환 정권이 물러가고, 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진 후, 금강산댐은 정권유지 차원에서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어지자 점차 잊혀져갔다.

    그로부터 10년간 북한은 임남댐 공사를 착착 진행해 왔다. 1987년 10월에 가(假) 배수터널이 완공되고 1992년 말 가물막이 댐이 축조되었다. 장마철에는 공사를 해놓은 것이 유실되는 변을 겪기도 했으나, 1996년 6월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45㎞의 도수터널을 완공했다. 1996년 9월에는 그 상류 30㎞ 지점에 3억t 규모의 포천댐을 완공해, 담수한 물을 회양군 전항리 조정지 댐을 거쳐 도수터널을 통해 동해 안변 방면으로 보내 ‘금강산발전소’의 시험발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우리 언론에는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필자가 1996년 11월8일 이 문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그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3∼4년 후 임남댐이 완공돼 담수에 들어가면, 휴전선 이남으로 내려오던 연간 18억t의 물이 차단돼, 북한강 수계 일대에는 심각한 물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거둔 국민의 성금 사용 내역이나 ‘금강산댐’에 관한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있던 국민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터져나왔다. 언론은 필자의 지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자 정부는 “북한은 원래의 계획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완공된 포천댐의 저수량은 3억t 정도의 소규모 에 불과해 별문제가 없어, 대응할 필요가 없다. 임남댐 공사를 할 조짐이 보이면 국제법적 대응을 포함해 적극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연말, 북한이 임남댐 건설을 포함한 제2단계 공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했으나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부는 북한의 포천댐 건설로 잃어버린 수자원 3억t을 확보하기 위해 영월에 동강댐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동강댐 건설계획은 환경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백지화됐다. 그후 밤성골댐 건설 등이 대안으로 나왔으나, 모두 타당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북한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평화의 댐’을 지어 강경하게 대응할 때는 우리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가, 남북합의서가 체결되고 교류협력의 기운이 일자 임남댐 1단계 공사를 서둘렀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 ‘햇볕정책’을 표방하고 교류협력의 기운이 일자 1999년 북한은 ‘금강산발전소’ 건설 제2단계 공사에 돌입해, 임남댐의 물막이 공사를 본격적으로 감행했다. 이듬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들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북한은, 임남댐 제2단계 공사를 끝내고 담수에 들어가 북한강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북한이 임남댐 공사에 착수하면 대응 하겠다던 우리 정부는 1999년 북한이 임남댐 공사를 대대적으로 재개했어도 이를 모른 체했다. 2000년 말에는 임남댐이 담수에 들어가 북한강 수계가 차단되었어도 대응하기는커녕 국민에게 이를 알리지도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금강산댐’ 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영삼·김대중 정부도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의 임남댐 건설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네 정부 모두 국민을 안심시킨다는 명분 아래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것이다.

    전두환 정권 등은 수자원 고갈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국제법 원칙에 의거해 풀어나갔어야 할 금강산댐 문제를 안보문제로 고착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들어 안보차원의 문제가 시들해지자, 금강산댐 문제는 국가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로 인해 수자원 문제로 봐야 하는 임남댐 건설 사태의 핵심을 덮어버리고 ‘안보’라는 미명하에 ‘무사태평’으로 일관한 것이다.

    북한강 수계 차단으로 인해 가공할 피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임남댐은 사력(砂礫)댐으로, 1996년 제1단계 공사를 완료했을 때 높이는 88m이고, 저수용량이 9.1억t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1999년 본격적인 공사가 재개되어 2000년 담수를 했을 때는 높이가 105m에 저수용량은 12억t 정도인 것으로 관측되었다. 제3단계 공사가 완료되면 그 높이가 더욱 높아지고, 저수용량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

    최근 위성사진을 보면 임남댐은 저수용량 5.9억t인 평화의 댐보다 댐의 길이가 5~6배 긴 것으로 보여, 그 저수용량이 소양강 댐을 능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임남댐의 저수용량은 그들의 목표치인 26.24억t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임남댐은 수문과 발전시설을 갖추고 발전하는 여느 댐들과 달리, 물을 가둬 뒀다가 필요한 양만큼 동해 방면으로 보내기만 하는 사력댐이다. 사력댐은 댐둑을 따라 돌과 자갈을 비스듬히 쌓아올려가며 차수벽(遮水壁)을 설치하여 물을 가둬두는 댐이다. 장마철에 많은 물이 몰려들면 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방류를 하는 여수로(餘水路) 같은 시설을 설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임남댐은 동해 방면으로 물을 역류(逆流)시키기 위해 만든 댐이라, 장마철 집중호우로 몰려드는 물을 처리하는 데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더구나 북한은 사력댐 공법으로 물막이 공사를 하며 댐을 축조하는 2단계 공사에 성공한 후 바로 담수에 들어갔다. 사력댐은 댐을 완공한 다음에 담수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력댐을 쌓는 중간에 담수를 한 후 다시 댐을 높이는 공사를 벌이는 것은, 누수구(漏水口)가 발생하고 물이 넘칠 우려가 있어 자칫 댐의 붕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겨울 휴전선 북쪽의 북한강 수계에서는 갑자기 3.5억t의 흙탕물이 쏟아져 내려와 일대 주민과 자연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이 ‘겨울 홍수’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왜 때아닌 ‘겨울 홍수’가 일어났을까? 그 원인은 여러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임남댐이 어느 정도 담수를 완료한 상태에서 혹한이 닥쳐 적설기와 해빙기 때 저수량이 불어날 우려가 있자, 댐이 터지는 위험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방류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임남댐 북방에 있는 중소형 댐 중 하나가 붕괴되고, 임남댐이 붕괴된 중소형 댐에서 흘러나온 물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방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댐이 붕괴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당시 뻘건 흙탕물이 장마 때처럼 흘러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임남댐 등에서 공사가 부실해 과도한 저수량을 이기지 못하고 누수현상이 일어난 것을 간신히 막은 것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수력발전용댐 건설이 보편화된 것이 불과 1백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댐이 붕괴된 사례는 수백 건이 된다. 특히 사력댐은 담수 시로부터 5년 이내가 위험하다. 1959년 일어난 프랑스의 말빠쎄(Malpasset)댐 붕괴 사고와 1976년 미국 아이다호주의 티톤(Teton)댐 붕괴가 특히 유명하다. 티톤댐은 임남댐과 비슷한 사력댐으로 담수한 지 몇 년도 못 돼 붕괴해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다. 피해자들은 10억 달러를 보상받았다.

    1986년 북한이 발표한 계획에 의하면 임남댐의 높이는 121.5m이고 댐 길이는 700m이며 저수용량은 26.24억t에 달한다. 여기에 전곡댐에 가둔 9.7억t의 물과 포천댐·신명댐의 저수용량까지 합치면, 북한측 북한강 수계에 만들어진 댐이 가둘 수 있는 총 저수용량은 40억t에 이르게 된다.

    북한은 또 임진강 수계에 장안댐과 내평댐을 건설하기로 계획했는데 장안댐의 저수용량은 6.2억t이고, 내평댐의 저수용량은 5.1억t이다. 만약 북한이 52.8㎞의 도수터널을 뚫어 두 댐의 물을 북한강 수계로 보낸다면, 북한강 수계에서 집수되어 흘러가는 물은 간단히 50억t을 넘게 된다. 물론 11.3억t의 물을 더 얻기 위해 52.8㎞의 도수터널을 뚫는 것은 비경제적이므로 북한은 임진강 수계의 물을 북한강 수계로 역류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임남댐 이북의 북한강에서 모을 수 있는 총 수자원은 연 18억t이다. 이중 상당부분이 장마철에 유입되므로 북한으로서는 가능한 한 댐을 높여, 장마철에 모여드는 물을 가둬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서는 계속해서 임남댐의 높이를 올리는 공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력댐에서는 일정한 양의 물이 늘 새기 마련이다. 북한의 기술과 장비 수준은 열악한 편이다. 더구나 임남면 일대는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북한은 담수한 상태에서 댐의 높이를 올리는 것이 ‘원칙적으로 용납이 안되는데도’ 위험천만한 증축 공사를 벌이고 있다. 무리하게 저수용량을 늘리다보면 댐 붕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여름철에 오랫동안 집중호우가 퍼불 때는, 방류를 위한 여수로가 제구실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위험수위에 이른 물이 제대로 방류되지 못하면 증축중인 사력댐은 쉽사리 무너진다.

    평화의 댐이 그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북한강 수계의 댐들이 ‘도미노 게임’처럼 연속적으로 무너져 북한강 수계와 팔당 이남의 한강 수계에서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홍수가 일어난다.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은 자명한 일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댐 건설을 강행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수공(水攻)’이나 ‘자연적인 댐 붕괴’ 같은 안보차원에만 국한해서 이 문제를 보았다. 때문에 과거 정부는 ‘평화의 댐’이라는 대응댐을 짓는 데 그쳤고 그후의 정권에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북한측의 댐 건설로 북한강이 말라버린다는 수자원 부족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안보는 매우 정치적인 주제라 순식간에 확대됐다가 일순간에 사그러들 수도 있다. 그러나 수자원 부족 문제는 장기간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북한의 임남댐 건설을 안보차원에서만 대응하다가 우리는 연간 18억t의 수자원을 잃었다. 반면 북한은 모든 것을 얻었다. 수자원 고갈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 일각에서는 늘어나는 서울~인천간의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해 ‘경인운하’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경인운하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게 파야할 것 같다. 이는 미래에 건설할 경인운하 건설비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한강 본류의 수심도 얕아져 주운(舟運)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의 임남댐 건설을 처음부터 안보 차원이 아니라 수자원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우리는 북한측에 대하여 당당하게 협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수자원 문제로 접근했다면 인더스강 분쟁처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개입해 자금지원을 대가로 중재를 하거나, 유엔이 나서서 국제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북한측에 대해, 수자원 고갈로 인한 피해사실을 적시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합리적인 주장을 북한측은 일축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북한측이 비합리적으로 나오더라도, 우리는 합리적인 주장을 계속 펴면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국제기구와 연계해 북한을 움직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관례와 국제법 원칙은 공평한 해결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북한과 북한강 이용 문제를 협의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가 누려온 ‘기득 수리권(旣得 水利權)’을 인정받는 것이다. ‘기득 수리권’은 물분쟁에 관한 만국 공통의 ‘법의 일반원칙’으로, 북한도 이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득 수리권’을 인정받은 사례는 1977년 인도와 방글라데시간에 체결한 조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인도는 파라카(Farraka)댐을 건설해 갠지스강으로 흘러가던 물을 후글리강으로 돌려버렸다. 갠지스강 하류 델타 지역에는 방글라데시가 있다. 갠지스강 물이 줄어들자 델타지역에는 바닷물 유입이 늘어나 상당한 양의 농토가 황폐화되었다. 바닷물에 섞인 염분 때문에 농사를 망친 것이다.

    이렇게 되자 1977년 11월5일 인도-방글라데시 두 나라는 ‘갠지스강물 공동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1948년부터 1973년까지 파라카에서 측정한 수위의 75%의 이용도를 기초로 하여, 건기인 매년 11월1일부터 다음해 5월31일 사이 파라카댐에서는 정해진 표에 따라 방류한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로써 두 나라는 수십년간의 분쟁을 끝내고 강물을 공평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공동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그간 우리는 북한강 수리권 문제를 방치해 너무 많은 기회를 잃었다.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지금 우리가 침해당한 권리의 회복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북한강 수계 차단행위는 기정사실이 되고 만다.

    기정사실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북한에 대하여 권리주장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자원 고갈은 회복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북한강 수계 차단으로 인해 발생한 수자원 고갈이라는 우리의 절박한 피해를, 안보라는 추상적인 가치로 덮어버려서는 안된다. 우리가 입는 피해 상황을 ‘국민의 목소리’로 외칠 때 북한은 이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국제법 원칙에 따라 이를 해결하자고 당당히 협상을 제안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우리의 정당한 협상 요구를 무시한다면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고 이 문제를 대북 교류나 경제협력 문제에 연계시키는 등 다각도로 북한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공평하고도 객관적인 기준인 국제규범에 순응하도록 설득하여야 한다.

    우리가 수자원 고갈 피해를 거론하면, 북한은 분명히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댐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할 것이다. 남북은 이미 남북합의서에서 ‘수자원의 공동이용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므로 북한강 수자원의 공동 이용은 남북합의서의 내용을 실천한다는 명분이 있다.

    현재 ‘평화의 댐’에 담수를 하면, 북한지역이 침수돼, ‘역수공(逆水攻)’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평화의 댐’의 평화적 활용 방안을 위해서는 남북이 협의해야 한다. ‘평화의 댐’은 임남댐이 붕괴될 경우 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하여 지어진 것이므로, 장마철에 홍수조절용으로 잠시 사용하는 외에는 댐을 비워둘 수밖에 없다. 비어 있는 평화의 댐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먼저 북한과의 협력 무드가 조성돼, 임남댐의 규모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우리측 기술진이 북한에 들어가 임남댐의 안전도를 측정해본다고 가정해보자. 그리하여 임남댐의 안전에 대해 확증이 생긴다면, 그리고 남북간 신뢰가 어느 정도 확보된다면, 그때부터는 평화의 댐 증축과 담수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댐을 안전하게 증축해 남북한 모두에게 용수를 공급하고, 이 댐에서 생산한 전기 중 일부는 북한에 제공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수도 있다.

    최근 임진강 유역에 수차례 수해가 발생하자 임진강 수계 수해 방지를 위한 남북 협력이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임진강 상류에 여러 개의 중소규모 댐을 짓고 있어, 어느 정도 기다리면 치수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임진강 수해에 눈을 돌리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우리의 목줄이 마르는 북한강 수계 고갈에 대해서는 거론하는 사람이 적다. 우리에게 다급한 것은 북한강 수계의 고갈 문제다.

    우리는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다. 2011년이 되면 우리는 연간 18억t의 물이 부족하게 되는데, 이중에서 6억t은 필수불가결한 물이다. 그러나 이 계산에서는 북한측이 잘라간 연간 18억t의 물은 들어가 있지 않다(이 18억t을 더하면 2011년 우리는 연간 36억t의 물이 부족한 나라가 된다). 북한강 수자원 확보는 안보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래도 북한강 수계 고갈을 방치하고 있을 것인가. 정부와 언론은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로 뭉친 ‘국민의 힘’을 업고 북한과 협상을 벌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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