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우선, 한미동맹·한미일 협력 강조
중도 확장 노림수… “언제든 변신 가능한 李 생존 방식”
‘운동권 정당’, 불확실한 대선… ‘영리한 고육지책’
“‘우클릭’해도 이탈표 없다” 과감한 대선 행보
여당 “겉과 속이 다른 수박, 믿을 수 없는 꼼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월 23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이 주도하는 ‘친(親)기업’ 성장 담론을 제시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5/8c/79/67b58c790baad2738276.jpg)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월 23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이 주도하는 ‘친(親)기업’ 성장 담론을 제시했다. [동아DB]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중국 근대화의 ‘작은 거인’ 덩샤오핑의 유명한 어록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이 잘살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흑묘백묘론은 선부론(先富論·먼저 부자가 되고 이후 낙오된 사람을 도와라)과 더불어 중국식 개혁개방의 상징이 됐다. 덩샤오핑 시절 비약적 경제발전은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을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냈다. 이후 중국은 세계 최대 패권국인 미국을 위협하는 G2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흑묘백묘론을 한국 정치에 소환했다. 탄핵정국 이후 조기 대선 흐름 속에서 이 대표는 최근 정당 지지율 역전 및 하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反)윤석열 비(非)이재명’이라는 여론 확산에 민주당은 비상이다. 기정사실로 여겼던 정권교체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재명 대표는 변신을 선택했다. 대선 플랜 일환으로 ‘우클릭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한 것이다. 다만 ‘집토끼’의 반발 없이 ‘산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 대표의 조기 대선 방정식을 짚어봤다.
‘민주당 비주류’ 이재명의 생존 방식
보수와 진보 진영은 늘 영·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을 토대로 수도권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영·호남 표심이 극단적 상호 배타성이라면 계급적 투표 성향이 강한 수도권 표심은 실리(實利)에 좌우된다. 여야의 해법은 실용주의였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3일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결정을 발표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b5/8c/d9/67b58cd9020dd2738276.jpg)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3일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결정을 발표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동아DB]
이 대표의 최근 언행에는 우클릭 또는 실용주의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는 이 대표가 직면한 위기 탓이다.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및 체포·구속까지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면 민주당 집권은 기정사실로 보였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복잡 미묘하다. 보수 지지층은 결집했고, 대선 캐스팅보트인 중도층은 민주당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한마디로 “윤석열이 싫지만 이재명도 대안은 아니다”는 것이다.
새해 들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정당 지지율은 역전되거나 박빙 양상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본질적 위기다. 수권 정당으로 국민적 신뢰를 얻기에는 아직 2% 부족하다. 이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도 위태롭다. 과반인 탄핵 찬성 여론을 흡수하지 못한 채 30% 안팎의 박스권이다. 여야 차기 주자 가상 대결에서도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이 대표는 정치적 돌파구가 절실했다. 선택은 실용주의였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명대사를 인용, 정치의 본질은 실용주의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는 지난 20대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자주 언급한 내용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장교가 마을 이장에게 ‘동무, 와 이래 인기가 좋아?’라고 비결을 묻는다. 이장은 무심하게 ‘뭘 많이 믹이야지’라고 한마디한다. 이게 바로 정치가 할 일 아니겠나.”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 “이재명 대표는 동교동계, 친노·친문 등 민주당의 주류가 아니었다”며 “실용주의라기보다는 위기 극복을 위해 언제든지 변신이 가능한 정치인 이재명의 생존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이 대표의 변신은 발 빠르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투자소득세, 이른바 금투세 폐지 논쟁이 상징적이다. 민주당은 1500만 동학개미의 표심을 고려해 금투세 도입·시행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폐지로 선회했다. 당내 반발에도 이를 주도한 것은 이 대표였다. 새해 들어서는 복지나 분배보다는 기업과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전통적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야심만만한 전략이다.![2024년 10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주최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참석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5/8d/09/67b58d091f80d2738276.jpg)
2024년 10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주최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참석했다. [동아DB]
이 대표의 실용주의는 1월 신년 기자회견과 2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구체화됐다. 탈이념·탈진영의 실용주의를 내세워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전환을 선택했다. 더불어 이 대표 본인에게 덧씌워진 ‘반(反)기업·반(反)시장’의 부정적 이미지도 벗겠다는 의지다.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 실용주의는 조기 대선과 연결선상에서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판단 아래 대선을 겨냥한 과감한 행보가 지속되는 것”이라면서 “소속 정당의 전통적 가치와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도층 소구 노력은 모두 대선주자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여권 후보와 달리 당내 도전자가 사실상 없는 이 대표는 서둘러 대선 본선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부를)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사항이다.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성장의 길을 얼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민간기업 주도의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를 강조해 온 보수 진영의 프레임이다.
탄핵 정국 이후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 트럼프 리스크로 고조되는 대내외적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진보정책이든 보수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해야 한다. 어떤 정책도 수용할 것”이라고 유연한 태도를 선보였다. 특히 추경을 전제로 했던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 지급 시행을 철회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도한 재정 부담은 물론 포퓰리즘식 퍼주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고려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무상교복·청년수당·공공 산후조리원 등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재직 시절 선보인 보편적 복지와 비교해 볼 때 전략적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2월 13일 ‘전국민 25만 원 지원금’ 13조 원을 지역화폐로 푸는 내용을 담은 35조 원 규모의 자체 추가경정예산안을 공개했다. 이는 이 대표가 또다시 입장을 번복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경제만이 아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우향우도 뚜렷하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동맹 기조에 비판적이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쎼쎼(고마워)’ 발언의 후폭풍으로 덧씌워진 ‘친중(親中) 반미(反美)’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다. 이는 조기 대선 이후 집권 가능성을 고려해 외교 노선을 좀 더 현실적으로 재정비한 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누그러진 태도다. 이 대표는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대일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 한미일 협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앞서 한미일 해상 합동군사훈련과 관련, “한미일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좌시할 수 없는 국방 참사”라고 언급한 것과 대비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정권을 잡으려면 실용주의로 가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중도 성향의 당내 인사 중용이나 외부 명망가 영입 등의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씨 없는 수박’이 이재명 우클릭 실체”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는 현 상황에서 민주당 최우선 목표다. 조기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해야 내란의 완벽한 종식은 물론 민주당이 그동안 추구해 온 정치적 이상과 비전의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용주의는 위험한 도박이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비판의 지점이 존재한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관련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이 재현될 수 있다. 진보 성향 차기 주자의 우클릭은 숙명이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한마디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것이다. 중도층이라고 하는 산토끼를 잡으려다가는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가 흔들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산토끼 구애에는 실패하고 집토끼 이탈의 위험성만 커진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2월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재명 세력이 내놓고 있는 정책 대부분이 핵심을 빼놓은 기만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5/8d/28/67b58d280ee7d2738276.jpg)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2월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재명 세력이 내놓고 있는 정책 대부분이 핵심을 빼놓은 기만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DB]
진보의 반발은 더 매섭다. 특히 노동시간 유연화 방침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정면 반발했다. 민주당 내부도 시끄럽다. 구체적 사례가 반도체특별법에서 주52시간 근무 예외를 허용하는 문제다. 금투세 폐지 논쟁과 달리 당내 여론은 이 대표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5선 중진인 이인영 의원은 “민주당은 윤석열이 아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뒤 “윤석열 대통령의 ‘주69시간제’ 주장에 ‘야근지옥’ ‘월화수목금금금’이라며 비판했던 것도 민주당이었다”라며 “단순한 우클릭, 기계적 중도 확장은 오답”이라고 비판했다. 비명계 차기 주자인 김동연 경기지사도 가세했다. 김 지사는 “AI 기술 진보 시대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본질이냐”고 반대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 역시 “연구개발 노동자를 쥐어짠다고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차재원 교수는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에 따른 집토끼 이탈은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차 교수는 “진보정당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며 “민주당보다 왼쪽 정당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이탈할 표도 없다. 집토끼가 실망한다고 해도 국민의힘 후보를 찍지 않을 것이다. 아주 최소한의 이탈이 있다고 해도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윤희웅 대표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윤 대표는 “진보정당 세력이 약화되면서 민주당을 제외한 선택지가 존재했던 과거 대선과는 다른 환경”이라며 “다른 대안이 있다고 해도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와의 후보단일화나 연대의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전망했다.
지지층엔 ‘내란 세력 재집권’은 상상하기 싫은 악몽
![2012년 1월 12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손을 잡고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경제민주화’를 도입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5/8d/3d/67b58d3d1a14d2738276.jpg)
2012년 1월 12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손을 잡고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경제민주화’를 도입했다. [동아DB]
민주당의 부정적 이미지는 ‘운동권 정당’이다.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한 최대 걸림돌이다. 권력 장악 게임에는 능수능란하지만 민생경제 등 현실적 문제에는 의지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비판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민주당의 숙제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당시 “386 정치인들이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역설적으로 이 대표는 보수층의 격렬한 공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민생과는 거리가 먼 운동권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부정적 이미지에 포위돼 있다. 민주당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지 못하면 조기 대선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 대표가 온갖 논란에도 우클릭과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다.
아울러 현직 대통령의 실패와 레임덕이 반드시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변수다. 역대 대선에서 증명된 사안이다.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승리,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가 대표적이다. 특히 2012년 대선의 경우 진보 진영은 문재인·안철수의 조합과 후보단일화에도 대선에서 실패한 악몽도 있다. 민주당의 기존 이미지로는 조기 대선이 성사돼도 정권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선거법 2심 등 사법 리스크만 넘어서면 조기 대선은 탄탄대로라는 전망이 빗나갈 수도 있는 셈이다.
올 상반기 조기 대선의 성사는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과 정치적 실패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다만 변화무쌍한 한국 정치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재명표 실용주의와 우클릭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재명표 실용주의는 ‘영리한 고육지책’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최진 원장은 “보수·진보의 양극단 정치 지형이 고착화될수록 중도층 공략은 필수적이다. 중도층은 갈팡질팡 유권자가 아니라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집단”이라면서 “산토끼를 잡는 데 집중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지지 기반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김진욱 평론가는 “0.73%포인트의 대선 패배를 기억하는 지지층에게는 비상계엄이라는 사태에도 내란 세력에 정권을 내준다는 건 상상하기 싫은 악몽”이라면서 “이재명은 이재명이고 정권교체는 정권교체다.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을 비판한다 해도 진보 진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산토끼 공략으로 집토끼를 잃을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신동아 3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