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작열하는 6월7일 오후 인도네시아 발리섬 남단 베노아항(港). 인도네시아 ‘PT사리 세가라’사(社) 소속 선단(船團)이 막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의 환호속에 선원들은 인도양에서 갓 잡아 올린 수천 마리의 참치를 창고에 내려 놓았다. 작업대에 내려진 참치는 현지 주민들의 능숙한 손놀림에 따라 부패방지를 위한 몇가지 작업을 거친 뒤 곧바로 냉동창고로 보내졌다.
꼬리를 떼고 창자를 긁어낸 참치는 얼음에 쟁여진 채로 일단 거대한 냉동창고에 보관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적어도 3일 이내에는 신선한 참치를 먹고 싶어하는 세계인의 식탁을 향해 머나먼 ‘여행길’에 다시 오른다.
오후의 적막을 깬 참치선단의 귀향(歸鄕)을 지켜보다 보니 인도네시아인들 속에 한국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을 한 이 사람은 주로 영어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지만 간간이 인도네시아 말을 섞어 가면서 신속한 작업을 독려하고 있었다. 2시간여의 작업으로 옷은 흠뻑 젖어 있었지만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
참치 하역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EAD’ 그룹의 이상룡(李相龍·58)회장. ‘PT사리세가라’는 이씨가 합작계약을 한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으로 50∼80t급 선박 3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부터 인도네시아 정부의 어업방침 변경으로 외국국적 선박이 EEZ(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조업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기업과 합작계약을 체결해 어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일견 규제가 강화된 것 같아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국적을 변경할 경우 고액의 입어료를 내지 않아도 자유로이 어로를 할 수 있고, 그동안 접근이 불가능했던 12해리 이내에서 고기를 잡을 수도 있어 오히려 유리하다”고 말했다.
온 나라가 경제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어민 대부분이 영세하고 변변한 어선마저 보유하고 있지 않아 현지법인과 합작하거나 직접투자를 해 고기잡이에 나설 경우 힘들이지 않고 어획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 이씨는 “외국선박을 돌려보내고 새로운 어업허가권을 부여하는 과정에 1년 이상의 고기잡이 공백이 생겨 인도네시아 어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기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리섬 베노아에서는 아이슬랜드에서 온 어장탐사 전문가 아인스타인 부이 에를랜드슨, 인도네시아 현지인인 람리 하투위 등과 함께 어장에 대한 실사까지 마친 상태. 이씨는 이 밖에도 인도네사아 자카르타에 있는 ‘PT아르고 투나 누산타라’ 사(社)와는 합병계약을 체결하고 인도네시아 내 어업허가권을 획득했다. 자바섬 동쪽 끝에 위치한 반유양이에도 베노아에 있는 것과 같은 대형 창고와 처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산업을 농업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산업의 총 GDP(국내총생산) 기여도는 3% 수준(농업부문 GDP 중 10.3%)이며 고용인력은 450만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 고용인력의 5% 수준.
인도네시아 국기를 달아라!
어획가능자원은 연간 700만t 정도지만 97년 어획량은 500만t. 그나마 85년의 240만t에서 연간 5.85%씩 늘어난 수치다. 기술부족과 어획장비 낙후로 어획가능량의 68% 수준밖에는 잡아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씨의 기술고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에를랜드슨은 “모르긴 해도 상당수의 고기들이 바닷속에서 생을 마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인도네시아 어장은 더 이상 매력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알려지지 않은 신어장이 얼마든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지난 10년간 수산물 수출은 1983년 8만9000t에서 ▲1992년 42만1000t ▲1994년 54만5000t ▲1997년 65만2000t으로 연평균 20% 이상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으며 97년 수출액도 16억8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주요 수출 품목 중 새우(70%)와 참치(12%)는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의 해조류나 어류 수출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수산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도 외화 획득률이 높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산업 발전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동안 집중 개발된 인도네시아 서부지역 어장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되었던 동부지역과 배타적 경제수역내의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민이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한데다 어항(漁港) 등 기반시설도 태부족인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관리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자국 해역에 외국국적 선박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고기를 잡아가는 것을 보다 못해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외국배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자국의 자본으로는 변변한 어로가 불가능한 것.
이 밖에 새우양식의 경우 자바섬에만 집중돼 있고 그나마 환경오염으로 인해 질병이 만연해 있는 것도 문제점. 게다가 경제위기로 달러당 9000루피아까지 하락한 탓에 수입어구(漁具)나 어분(魚粉)은 물론이고 어선 부속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영세한 어민들을 더욱 곤궁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고육책으로 내세운 것이 7월1일 발효된 새로운 어업규정. 인도네시아 정부는 90년대 초반까지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내에 외국어선이 들어와 고기를 잡는 행위를 특별한 제한없이 허용했다.
그러나 입어 어선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무분별한 어로와 불법조업 사례가 급증하자 96년 12월 ‘EEZ내 외국어선 용선규정’을 제정했으며 급기야 2000년에 들어와서는 외국어선의 조업을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있는 외국 어선수는 급격히 줄어, 99년 3월 현재 22척만이 인도네시아에서 조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인 소유 어선 500여척이 인도네시아 국적으로 전환해 조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거나 현재 EEZ내 외국어선의 입어는 어업면허(IUP)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어선사에 배를 빌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외국선박이 단독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있다 해도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모두 앞 바다로 삼고 있으니만큼 무궁무진한 수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이점은 시장으로서도 무한대에 가까운 잠재력을 남겨두고 있는 것. 인도네시아 정부도 2004년까지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수산물 수출증대로 외화획득 ▲어분 생산증대로 수입대체 ▲수산물 공급확대로 국민식량 문제 해결 등의 정책방향을 수립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인도네시아 어장에 진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87년 7월 동원산업 트롤어선 3척이 입어 허가를 받아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조업을 시작한 이래 94년 73척까지 그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어선이 주로 진출했던 인도네시아 아라푸라 해역의 어족자원 감소로 어황이 나빠지고 해군 및 수산당국에 의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97년말에는 46척으로 급감한 적도 있었다.
이후 98년 들어서는 북태평양, 대서양 등 원양어선의 조업가능 지역이 줄어들면서 인도네시아로 진출하는 우리 어선수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대만 중국의 불법 트롤어선이 대량 진출하고 있어 우리어선은 타 해역 등으로 밀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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