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설 자리 잃어가는 ‘진퇴양난’ 유업계

[유통 인사이드] 고가로 소비자 외면하는데 ‘무관세 우유’ 공습까지…

  • 임유정 데일리안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2025-03-0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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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FTA 발효 미국·유럽 흰 우유 무관세

    • 수입산 ‘가성비’ 전략에 설 자리 잃어가

    • 저출산 악재 더해져 가격경쟁력 악화 일로

    • 물가상승 원인으로 지목돼 눈총 받기도

    • 흰 우유 고급화·신사업 다각화로 자구책 모색

    2월 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고객이 우유 매대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2월 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고객이 우유 매대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2025년 새해에 접어들면서 유업계의 발걸음이 더 바빠지고 있다. 2026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미국·유럽의 우유가 무관세로 국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할 시간은 불과 1년뿐이다.

    관련 기업들은 흰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의 가격경쟁을 사실상 포기하고 고급화 전략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업계, 유업계의 상황을 두루 고민했을 때 당장 원윳값을 대폭 낮추기란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원윳값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동결됐다. 유업계는 매년 원윳값이 정해지면 이를 토대로 우윳값을 조정해 왔다. 통상 6월께 원유 가격 인상률이 결정되면 10~11월께 이를 반영,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그러나 지난해 원윳값을 올리지 않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우윳값에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우유와 연관된 다른 가공식품은 물론 카페 음료 등 외식 물가도 함께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우려도 당분간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윳값 동결에는 유업계의 요구도 있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의지도 강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유업계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이 수두룩하다.

    가격경쟁력 낮고, 수입산에 밀리는 국산 우유

    가장 큰 문제는 가격경쟁력이다. 국내 흰 우유 가격은 타국 대비 여전히 비싼 편이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우유(1리터 기준) 가격은 2.12달러로 전 세계 6위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13위·1.89달러)나 일본(43위·1.41달러), 미국(73위·1.06달러) 등 주요 국가보다 높다.

    이는 흰 우유의 원자재인 원윳값 자체가 비싸기 때문이다. 원인은 높은 사룟값이다. 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원윳값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사료비는 원유 생산비에서 59.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낙농가는 매년 생산비가 오르면 원윳값을 올리는 ‘생산비 연동 방식’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 멸균 우유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낙농진흥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서 주로 생산되는 흰 우유(백색·가공) 소비량은 1인당 38.2㎏에서 30.9㎏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줄고 있는 우유 소비량을 메우는 것은 수입산 원유다. 수입량이 국내 원유 생산량보다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원유 생산량은 193만800t, 수입량(원유 환산)은 236만4000t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국내 원유 소비량은 2023년 대비 2.6% 감소한 415만3000t으로 추정됐다. 1인당 원유 소비량은 80.8kg으로 환산된다.

    즉 국산 우유 가격이 매년 오르는 사이 값싼 외국산 우유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파고든 것이다. 대규모 젖소 목장을 운영하는 폴란드, 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우유는 1리터당 가격이 1500~1600원으로 국내산의 절반 정도다.

    지금까진 각 가정의 냉장고를 장악해 온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론 B2C(기업 대 소비자)를 넘어 B2B(기업 대 기업) 시장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가형 카페가 늘고 있는 가운데 제품 가격 인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카페들이 수입산 우유 수요를 늘려 가격 방어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수입산 멸균우유 판매·유통사는 카페를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일부 브랜드는 6개월간 우유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파격적 조건을 내걸거나 판촉 행사로 가격을 할인하는 등의 방식으로 저가형 카페를 공략하고 있다. 이에 현재 카페 매장 가운데 수입산 멸균우유를 사용하는 비중은 아직 10% 미만으로 추정되지만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업계를 둘러싼 환경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는 양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국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합계출산율이 0.70명으로 2040년까지 유지되면 유소년 인구가 2020년 632만 명에서 2040년 318만 명으로 줄고, 영유아 인구는 263만 명에서 130만 명으로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상승 주범으로 눈총 받아… 업계 “우린 억울”

    출산율이 하락하면서 우유는 물론 분유 매출까지 하락세를 걷고 있다. 식품산업 통계정보 ‘소매 POS’에 따르면 2020년 559억 원 수준이던 분유 매출은 지난해 301억 원으로 46.1%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가장 큰 산이 유업계를 가로막고 있다. 내년부터 FTA에 따라 미국·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다.

    현재 미국산·유럽산 우유, 치즈 등에 대한 관세율은 11~13% 수준으로 매년 단계적으로 하락해 2026년 이후에는 0%가 된다. 유업계에서는 2026년 미국·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다면 국내 업계가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제품 강국인 호주, 뉴질랜드의 무관세 적용 시기도 각각 2033년, 2034년으로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외환(外患)에 내우(內憂)도 있다. 물가상승 속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이 유업체들로 향하고 있다. 수요가 줄고 흰 우유 경쟁력이 여전히 낮아도 도소매 가격은 매년 오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유업체가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는 눈총이 적잖다. 우유 가격이 오르면 연관 물가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식료품비 부담이 계속 커지는 상황인지라 소비자의 불만이 더 크다. 한번 오른 외식 물가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아 체감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우리나라 물가 수준 특징 및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료품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상위권으로, OECD 평균 대비 56%나 높았다.

    이에 대해 유업계는 억울하다는 태도다. 저출산이 심화하며 우유 소비가 크게 줄었음에도 낙농가 생산원가를 반영해 오른 가격의, 과잉 생산된 물량을 무조건 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업체들은 고물가·원가 부담 등을 고려해 원윳값 인상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엔 우유 가격이 오를 때마다 소비자의 외면을 마주해야 하는 심경이 반영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요를 반영해서 원유를 사들일 수 없는 구조지만 이를 인지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이로 인해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을 납득시키기 어렵다”며 “시장 상황·수요·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낙농가는 원윳값을 올려달라고만 한다. 심지어 인상 폭도 높아서 협상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흰 우유 업그레이드, 제품군 다변화로 살아남기 모색

    어려운 상황 속 유업체들은 각각 위기 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흰 우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품 업그레이드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론 우유 섭취 후 배앓이 등 불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당분해우유(락토프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을 꼽을 수 있다.

    락토프리 시장을 선점, 주도권을 쥔 기업은 매일유업이지만 근래 타 기업들이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다. 고물가에 힘입은 저렴한 수입 멸균우유의 공세 속에서도 우유 품질 향상과 기능성에 집중한 프리미엄 전략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관련 제품 판매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9년 306억 원이던 락토프리 시장규모는 지난해 870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4월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서울우유A2+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문진섭 서울우유협동조합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4월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서울우유A2+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문진섭 서울우유협동조합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가장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업체는 업계 1위인 서울우유다. 서울우유는 지난해 4월 프리미엄 흰 우유 ‘A2+ 우유’를 선보였다. A2+ 우유는 일반 우유에 포함된 A1, A2 단백질 가운데 A2만 함유한 우유다. 유당불내증이 있어도 소화가 잘되는 게 특징이다.

    서울우유는 2030년까지 모든 원유를 A2원유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이 시장은 매일유업이 2005년 ‘소화가 잘되는 우유’로 락토프리 시장의 문을 처음 열었다. 매일유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세 필터로 유당만 제거하는 공법을 적용한다. 매일유업의 락토프리 시장점유율은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업계는 이와 같은 ‘흰 우유 업그레이드’ 외에도 안정적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유가공 사업의 한계를 극복, 신규 수익 창출을 위해 성장세가 높은 디저트 시장 관련 제품을 출시하거나, 자사 제품을 활용한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나서는 등 외식·베이커리 등의 신사업에 적극 뛰어드는 양상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밀도’ 정자점 내부. 밀도는 지난해 4월 매일유업의 자회사 엠즈씨드가 인수한 프리미엄 식빵 브랜드다. [매일유업]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밀도’ 정자점 내부. 밀도는 지난해 4월 매일유업의 자회사 엠즈씨드가 인수한 프리미엄 식빵 브랜드다. [매일유업]

    ‌예컨대 매일유업 자회사 엠즈씨드는 폴바셋 등 카페와 편의점에 디저트를 납품하는 등 B2B 중심 사업을 해왔으나 지난해 프리미엄 식빵 브랜드 ‘밀도’를 인수하며 B2C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또 남아도는 원유를 활용해 치즈·요거트·컵 커피 등 다양한 고수익 제품 출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비자 입맛이 고급화하면서 고급 치즈 수요가 지속 증가하는 데 따른 대응이다. 아울러 컵 커피 출시 등을 통해 ‘MZ 세대’가 자주 찾는 편의점 채널을 공략하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군 다변화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매일유업은 2018년 성인 영양식인 ‘셀렉스’를 출시한 데 이어 2021년 건강기능식품 등을 생산하는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을 설립했다. 본사 내부에서는 메디컬푸드사업부가 환자식, 고령친화식 제품 생산을 맡는 등의 방식으로 매출 다변화를 노리고 있다.

    남양유업은 시장 트렌드에 맞는 기능성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 건기식 발효유 제품인 ‘이너케어’를 출시한 이후 2022년 고함량 완전 단백질 음료인 ‘단백질음료 테이크핏 맥스’, 2023년 단백질분말 ‘테이크핏 케어’를 선보였다. 지난해엔 부스터 단백질 음료인 ‘테이크핏 프로’까지 잇따라 내놓았다.

    서울우유는 ‘가공유 시장’ 확장에 진력하고 있다. B2C 사업에선 가공유 수요가 훨씬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가정간편식(HRM) 제품 개발을 통해서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우유 관계자는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시장 반응이 꽤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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